“마음 아파도 괜찮아” 집담회 전문가 강연
[지난 8월 23일에 정신 장애와 심리적 문제를 겪고 있는 활동가들과 함께 행동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집담회 “마음 아파도 괜찮아”가 열렸습니다. 아래 글은 이 행사의 메인 강연이었던 ‘1부 전문가 발표’를 맡아주신 라다님(한국성폭력상담소 책임상담원, 여성주의상담연구회 이사)의 강연 내용을 녹취해 정리한 것입니다. 이 날 발표를 맡아서 소중한 기여를 해주신 라다님에게 다시 감사드립니다. 녹취와 정리에 수고하신 밀사님과 전진한 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이 날 있었던 나머지 발표 내용과 전체 행사 내용은 앞서 올린 후기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상담심리 전문가인 라다입니다. 저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책임상담원으로 상담을 하고 있고, 여성주의상담연구회라는 심리학회 내 산하조직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늘 강연에서는 질환에 대한 이해를 임상적으로 구체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운동사회 내에 정신질환이나 심리적 문제들이 어떻게 형성되는가,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를 중심으로 다루려고 합니다.
우선 주최 측에서 요청한 대로 정신장애의 구체적인 기준, 활동가들이 주로 경험하는 심리적 문제나 정신장애 몇 가지를 이해해보는 시간을 갖고, 끝으로는 인간의 의식, ‘나’라는 존재, ‘사람’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 하고, 그 속에서 ‘활동가’라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강연 오기 전에 활동가들 관련된 연구가 있나 찾아보니 3~4개 남짓이더군요. 국내에서 활동가의 심리적 소진, 정신장애를 다룬 연구 사례가 거의 없었어요. 그 중 올해 2월 발표된 NGO 활동가를 대상으로 그들의 감정노동에 대해 연구한 논문을 봤는데, 활동가들의 감정에 대한 억압이 상당히 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반적으로 심리적 문제나 정신장애의 근원은 감정을 회피하고 억압하는 것으로부터 발생하고 그것이 누적되어 나타난다고 봅니다. 활동가들은 어떤 경우에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나약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경향도 있는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강력한 의지이고 변혁의 목표를 향해 꿋꿋하게 나아가는 것이지, 그 과정에서 느끼는 두려움, 슬픔 등을 표현하는 건 ‘운동가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활동하는 동안에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활동가들이 스스로 가하는 심한 감정 억압이 정신적 어려움과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연구에 의하면 감정 억압의 원인은, 첫째 스스로에게 가하는 높은 도덕적 기준입니다. 활동가들이 운동을 시작할 때 갖는 것은 선의입니다. 즉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생각인 것이죠.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도 굉장히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타인에게도 마찬가지로 그런 기준을 가지기 쉽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그 기준에서 어긋날 때 스스로 죄책감이나 자책 등이 많아지고, 기준에서 어긋나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생각이 감정적 억압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두 번째 원인은 내면적 보상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활동가들에게 물질적 보상이 너무 주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 활동을 시작할 때 보상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생계가 어려운 경우가 많을 정도로 심한 것이죠. 외부에서 주어지는 보상이 워낙 없기 때문에, 내면적 보상을 훨씬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게 된다고 합니다. 투철한 이념, 혹은 이상적 활동가의 태도와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경향 때문에 자기 감정을 더욱 억제하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원인은 공사 구분의 이중적 잣대입니다. 먼저 개인의 삶에서는 공사의 구분이 불분명한 경우가 많아요. 일에 한 번 몰입하기 시작하면 사생활이 사라지고 일과 사생활의 구분이 불분명해지는 반면, 개인의 사적인 문제를 공적으로 드러내기 어렵다는 점에선 공사구분이 너무 명확한 것입니다. 이러한 이중적 잣대 속에서 활동가들이 자신을 평가하고 판단하기 때문에 이로 인한 어려움 또한 클 것입니다.
이 얘기를 드리는 것은, 정신장애나 심리적 문제를 이해할 때, 개인이 놓인 환경, 구조, 조직사회를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의 심리적 문제를 기질적 문제로만 보게 되고, ‘개인 의지가 박약해서’라는 식으로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다는 것이죠. 심리적 문제에 있어서 사회문화적 맥락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앞으로의 내용을 살피기로 하겠습니다.
어떤 것이 장애인가
먼저 어떤 것은 장애이고 어떤 것은 장애가 아닌가 하는 점을 살펴보겠습니다. 객관적으로 관찰되는 행동이 부적응적일 때 그것을 ‘이상행동’이라 하고, 이런 것이 몇 개가 합쳐지면 ‘장애’로 진단을 받게 됩니다. 어떤 것이 ‘이상행동’일까요? 네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적응적 기능이 손상된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환경과 상호작용을 합니다. 환경의 변화가 일어날 때 내가 환경에 적응하거나 환경을 바꾸거나 하는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작용이 잘 일어나지 않아서 직업적으로나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이것을 이상행동이라 합니다.
두 번째, 적응은 문제가 없는데 심리적 고통을 겪는 상황을 말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잘 적응하는 것 같지만 내면적으로는 불안하고 우울하고 슬픈 것이죠. 이런 감정으로 개인이 고통을 현저하게 느낀다면 그것 또한 이상행동이나 정신장애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문화적 규범으로부터의 일탈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조심스럽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문화적 규범은 그 사회의 관습, 권력, 위계에 따라서 규정되고 특히 가진 자에 의해 규정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무엇이 일탈인가’를 세심하게 봐야 한다는 것이죠. 대체로 통용되는 기준이 바로 미국의 DSM이라는 시스템인데, 그 기준에 따르면 60-70년대까지만 해도 동성애가 정신장애로 분류되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빠졌습니다. 이렇게 문화적 규범이란 그것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정상이고 비정상으로 보느냐에 따라 변화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섬세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운동사회 내에서도 성폭력이 많이 일어나는데, 어떤 사람이 상대의 성적 경계를 함부로 침범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저지른다면 이것 또한 이상행동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네 번째는 통계적 규준에서의 일탈입니다. 정신적·심리적 상황을 측정하는 통계적 기준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적 장애를 판별할 때 아이큐의 평균이 100인데, 여기에서 30퍼센트 미달하면 장애라고 판단합니다. (근데 130이 넘어가면 장애가 아니에요.) 통계적 수준에 미치지 못할 때, 평균의 얼마 미만일 때 장애라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이런 심리적 어려움에는 크게 세 가지 분류가 있습니다. 신경증, 정신증, 성격장애입니다. 우리는 신경증을 중심으로 이야기할 거예요. 먼저 이 세 개가 어떻게 다른지 보겠습니다.
신경증 중에서 활동가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것은 우울입니다. 노동조합 활동가 중심으로 우울증을 연구한 사례를 보면 우울증 유병률이 굉장히 높게 나옵니다. 신경증의 특징은 인격 침해가 덜 하다는 것입니다. 원래 자신의 성격적 스타일을 유지하고, 사회적 기능도 웬만큼 할 수 있습니다. 즉 내적으로는 우울하거나 고통을 겪지만 외적으로는 어느 정도 컨트롤이 됩니다. 또한 현실검증능력이 있습니다.
현실 회피도 부분적으로 하긴 하지만, 나와 타인을 구분하고 자아를 건전하게 유지하면서 현실적으로 무엇이 객관적인지를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고도 현실적이구요. 또한 스스로 자신이 고통스럽다는 걸 압니다. 자신의 우울, 불안, 분노 등 감정상태를 인지한다는 거예요.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이 유지되면서 사회관계를 맺을 수 있고, 감정도 환경과 연관을 맺으면서 유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신증은 조금 다른 범주입니다. 인격과 성격에 침해가 있고, 사회적 기능을 하기 어려운 상태이죠. 그래서 보통 입원치료를 많이 합니다. 환자는 자기의 주관적 경험과 실제 현실을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사고도 비현실적이고, 사회관계에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의 병에 대한 통찰이 없어서 스스로 치료를 받거나 병원에 가는 일이 별로 없고,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병원을 데려가는 일이 훨씬 많습니다.
주최측에서 성격장애에 대해서도 물어보셔서 짧게 소개하겠습니다. 그런데 활동가들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성격장애를 굳이 주되게 다룰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성격장애는 만성적인 것이고, 어린 시절부터 만들어진 특성이 문제적으로 굳어진 것이기 때문에 활동가들의 문화적 분위기 때문에 형성된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활동가들의 문제가 어려움을 증폭시킬 수는 있겠지만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성격장애의 특징은 기능적 손상이 있고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다. 신경증과 비교하면 신경증은 타인과 관계에서 자신의 문제를 돌아보는데 비해 성격장애는 외부 환경을 바꾸려는 특징이 있습니다.
우울증
먼저 우울증을 보겠습니다. 활동가들이 많이 경험하는 증상 중 하나가 우울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울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주요우울장애’만 진단기준을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중에 몇 가지는 해당될 수 있어요. 우울증 진단은 9가지 증상 중 1,2번을 포함해 5개 이상이 2주 이상 반복될 때 내리는데, 따라서 1,2번이 주요하다고 볼 수 있겠죠.
‘우울한 기분이 거의 매일,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에 주관적인 보고나 객관적인 관찰에 의해 나타난다(1번)’, 그리고 ‘모든 또는 거의 모든 일상 활동에서 거의 매일, 하루 중 대부분 흥미나 즐거움이 현저히 저하되어 있다(2번)’는 항목이 그것입니다. 그 외 나머지 항목들은 조금씩 달라요. 체중 증감, 불면, 초조함, 안절부절 못 함, 피로 같은 증상이구요. 이 중에서 저는 7번(‘거의 매일 느끼는 무가치함 또는 지나친 죄책감(망상적일 수 있음)’)이 활동가들이 많이 느끼는 어려움인 것 같아요.
제가 노동자 활동을 했을 때 활동가들이 무가치함, 죄책감 등을 많이 호소했어요. 마지막으로는 ‘죽음에 대한 반복적인 생각’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울증의 증상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울장애가 왜 생길까요? 유발 원인은 매우 다양한데 심리학의 계통별로 분석 방법이 다르긴 하지만 공통적으로는 상실이나 실패를 의미하는 부정적인 사건을 경험하고 그것이 내부의 심리적 문제를 촉발시킨다고 봅니다.
[노동조합 활동가의 정신건강 : 우울증과 직무스트레스 (2008년 박진욱)]라는 논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논문은 민주노총 중앙, 그리고 산별연맹·산별노조에서 활동하는 194명 활동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입니다. 노조활동가들이 어떤 스트레스 요인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다섯 가지로 봤습니다. 민주노총의 역할, 정파조직, 본인의 업무 역량, 운동의 전망, 조직운영에서의 만족도. 이것이 스트레스 요인이라는 것이죠.
활동가들은 주로 운동 전망에 대한 만족도가 낮을 때 스트레스가 높고 우울증상을 많이 보입니다. 운동가들은 이념과 조직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것이 ‘나’라는 사람을 설명합니다. 예를 들면 보통의 경우 ‘나는 상담사에요’ 혹은 ‘나는 누구 엄마에요’ 이렇게 자기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데, 활동가들은 내가 생각하는 이즘을 실천하는 것이 나의 정체성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몸담은 운동이 전망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이 좌절될 때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죠.
또 운동조직들은 노력에 대한 보상은 거의 없고 개인에게 요구하는 헌신은 많지요. 개인이 자신의 능력과 의지로 성과를 내야 하는 업무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관련해서 활동가에게 과도하게 권한이 위임될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위임되어 있을 때 처음엔 만족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도성이 있고 능력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이것이 지나치고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게 되면 이것에 대한 스트레스와 책임감 등이 오히려 우울을 높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일반 인구의 우울증 유병률(평생유병률)은 남성 1.2%, 여성 6.0%로 전체 3.7%입니다. 그런데 이 연구결과 활동가들의 유병률은 남성 19.1%, 여성 27.9%로 굉장히 높습니다. 활동가들이 우울증을 많이 겪는다는 것이죠. 조직에 대한 희생과 헌신, 도덕성을 당연한 의무로 생각하는 문화,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견뎌야하기 때문이죠. (그러니 재생산이 안 되기도 하구요.)
그러다보니 자신의 업무역량에 대한 만족도도 낮고, 이것이 우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직무 스트레스와 우울이 많으면, 음주나 흡연을 하게 되고 신체활동이 낮아져요. 그것이 또 다른 건강의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는 것을 이 연구는 살피고 있어요.
‘의미’의 좌절과 우울증
우울증을 ‘의미’와 연결을 지어보겠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활동가들은 일반 성인들보다 우울을 많이 겪게 되는데, 내가 동일시했던 가치들 즉 의미가 좌절되었을 때 그런 감정을 겪게 됩니다. 모든 인생은 의미가 있는데, 특히 더 그것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이 활동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의미’를 가지고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려는 분과를 실존심리학이라고 합니다.
실존심리학에서는 각 개인이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자기 존재를 의식하면서, 내가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선택하고, 환경을 변화시키고, 주체가 되고, 주체로서 자유의지로 결정하면 책임지는 존재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런 의미를 추구하다가 그것이 끊임없이 좌절될 때 좌절하게 되는 것이죠.
처음에 활동가들이 가졌던 의미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활동을 하다 보면 그것이 점점 퇴색되고 무의미해지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초기에는 활동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겠지만, 활동 공간에서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생기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조직이지만 자본주의적 속성들을 내재화한 조직 구조에 몸담게 되어서, 권력 위계를 가지고, 다수자가 민주주의라는 명목으로 결정하면 소수자는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는 분위기라면, ‘이런 것이 내가 원했던 가치와 부합하는가?’ 생각하면서 좌절할 수 있는 것이죠. 이걸 표현하면 나약한 사람이 되고 개인에게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분위기라면 아마 더욱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런 좌절들이, 활동가들이 우울을 겪는 과정과 밀접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의 의미 즉 ‘실존적 목표’가 좌절될 때 개인은 우울이나 공격성을 드러내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독에 빠질 수도 있고요. 중독은 의존하는 것이거든요. 내 스스로 안 되니까 약물이든 무엇이든 의존해서 잠시라도 이 상황을 벗어나고픈 욕구를 느끼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자살과 같은 것으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실존치료에서는, 심리적 우울 말고 실존적 좌절과 관련된 신경증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서 ‘누제닉 신경증’이라는 개념을 별도로 만들었습니다. 이 관점에서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의 20% 정도는 ‘심리적 신경증’보다는 ‘누제닉 신경증’이라고 봅니다. 이것은 의미나 가치의 위기, 영적 위기와 관련된 것이에요. 굉장히 진지하고 성실하게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이들이 훨씬 많이 겪게 됩니다. 활동가들이 겪게 되는 우울증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울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죠. 심리학에서는 인지치료라는 것이 굉장히 많이 활용되고 있고,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해주는 약물치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는 단순히 증상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우울 감정이 호소하는 것이 뭐냐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증상을 드러낸다는 것은, 그것을 드러내서 누군가 알아줬으면, 그리고 내가 바뀌었으면, 또는 주변이 바뀌었으면 하고 호소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호소하는 개인적, 집단적 의미를 발견하는 게 중요한 것이죠. 그런 의미를 발견하고 개인의 내면, 삶의 가치, 집단의 문화를 다루는 것이 훨씬 중요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잠을 못 자니까 잠을 자게 하고, 기분이 다운되어 있으니까 올라가게 하는 식으로 증상을 단순히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공황 장애, 알코올 사용 장애, 간헐적 폭발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로 넘어가겠습니다. 외부로부터 주어진 충격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것이죠. 부정적인 사건을 겪으면 고통을 겪는 것은 너무 당연해요. 그런데 대부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PTSD입니다.
일회적 외상만으로도 경험할 수도 있고, 반복적 외상으로도 경험할 수 있어요. 세월호 같은 경우는 일회적 외상으로 인한 트라우마이죠. 용역과 대치하거나, 경찰과 대치하다가 폭력적 상황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거나 혹은 목격할 때도 일회적 외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반복적 외상은 성적 학대, 아동 학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고, 최근엔 비교적 적어졌지만 이념적 문제로 구속되거나 장기간 투옥됐을 때에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PTSD 치료가 그렇게 어려울까요? 기본적으로 인간은 세상을 살면서, ‘그래도 세상이 나에게 안전하고 우호적이고 따뜻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길 가다가 갑자기 땅이 무너질 거라고 생각하면 아무도 못 걸어요. 누구나 의식하지 않더라도 세상이 안전하다고 합리적으로 예측이 가능하다는 기본 가정을 갖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PTSD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을 경험하면서 발생합니다.
나 자신은 소중한 존재이고 누구나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이 훼손되는 경험을 하게 되면 세상에 대해 갖고 있던 가정이 흔들리는 것이에요. 안전함과 신뢰가 훼손되는 것이죠. 그래서 치료가 어렵고 오래 걸리게 됩니다. 안전함을 다시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활동하면서는 안전이 흔들리는 경험들을 다른 직업군에 비해 훨씬 더 많이 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증상으로 인해 고통만 있을까요?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안고 있다고 해서 그게 고통으로만 끝나지는 않고, 고통을 이겨냈을 때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이것이 지나면 괜찮을거야’라고 얘기하면 안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고난과 역경을 겪고 나면 자신의 잠재력과 강점을 발견하고,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고통이나 외상이 가져오는 성장도 있다는 점도 함께 기억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공황장애는 불안장애의 일종입니다. 최근 연예인들의 문제로 많이 회자되죠. 제가 경험하기로는 직업군으로 보면 지하철, 도시철도 등 운전 업무를 하는 승무노동자들이 공황장애를 많이 호소합니다. 죽음을 목도하고 내가 그 죽음이라는 상황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강렬한 불안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활동가들은 다른 직군들보다도 이런 불안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죠.
알코올 관련 장애도 활동가들이 많이 경험하는 것 같아요. ‘알코올 사용장애’는 알코올을 많이 섭취해서 그걸로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술을 먹고 평소에 담아뒀던 얘기를 하다가 폭력적으로 행동한다든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가 된다던지, 사고나 질병을 유발한다던지 하는 것이죠. ‘알코올 의존’은 알코올에 의존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한 장애에서는 어떤 증상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 활동가들이 알코올에 좀 더 의존하게 되는지를 얘기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심리학자 중에는 이 알코올 관련 장애가 가혹한 ‘초자아’와 관련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초자아란 엄격한 부모 같은 자아를 이르는데, 활동가들은 그것이 굉장히 강해요. 초자아가 강하기 때문에 일상적 행동에 무의식적으로 긴장하고, 내 마음대로 안 될 때 분노하고 이런 경향을 보일 수 있어서, 이런 것들로부터 놓여나기 위해 알코올이나 약물을 사용하게 된다고 보는 것이죠.
알코올 관련 장애는 사회문화적 요인이 크죠. 알코올 섭취에 있어 한국은 전반적으로 관대한데, 운동권은 더 관대하죠. 중요한 이야기는 꼭 술자리에 가서 하고, 그 다음날 기억도 못 하고 싸움도 나고. 왜 그렇게 될까요? 평소에 활동가들은 생각만 이야기하고 감정 얘길 잘 안 해요. 내 감정이 뭔지도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술 먹고 억압된 감정을 폭발시키는 거죠. 그래서 저는 꼭 알코올 관련 ‘장애’가 아니더라도, 활동가들이 왜 알코올에 의존하고 있는지 그 문화를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분노 얘기를 좀 하려는데, 정신장애 기준에서 ‘분노조절장애’라는 명칭은 없어요. ‘간헐적 폭발장애’가 존재하는데, 분노장애의 다양한 증상을 담아낼 수 있는 개념은 아니긴 합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실제로 사람들이 왜 분노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노를 신체적, 정신적 상처와 아픔으로부터 회복되고픈 열망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좌절된 욕구의 발산이거나, 수치심의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환영받지 못하고 무가치한 존재로 느껴질 때 화가 나는 거죠. 사회적 맥락에서 보면 활동가들은 공동체 내에서 책임을 수행하지 못할 때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나? 멸시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 분노하는 경우가 많아요. 열심히 하다 안 될 때는 솔직하게 표현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많은 경우 그것을 수치심이나 분노로 쌓아뒀다 공격적인 형태로 드러내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데 분노라는 것은 부정적인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에요. 만약에 분노가 없다면 자기를 보호할 수가 없죠. 분노는 자아실현을 위해 투쟁할 수 있게도 해주고, 예기치 못한 일이 있을 때 조치를 할 수 있게도 해 줍니다. 개인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되기도 하는 것이죠. 그러나 부정적으로 나타나면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물론 분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어떤 감정도 문제 되는 감정은 없습니다.
분노라는 에너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표출하는가가 문제입니다.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폭발적으로 공격하게 되면 문제가 된다는 거예요. 억압되면 억압될수록 폭발적이게 될 가능성이 있죠. 죄책감, 수치심, 절망감, 의존감을 어떨 때 느끼는지 잘 표현되지 않으면 뭉쳐져서 화의 형태로 드러날 수가 있는 것이죠.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이해
여기까지는 활동가들이 주로 경험하는 심리적 문제, 정신장애에 대한 이야기였고,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볼 수 있을까를 다뤄보겠습니다. 심리학 이론들이 워낙 많지만, 제가 여성주의 상담을 지향하고 켄 윌버(Ken Wilber)라는 통합상담가의 이론을 지향하고 있는데, 이 학자는 개인의 심리나 의식을 바라볼 때 개인 내면뿐만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이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자본주의 체제, 신자유주의, 정치적 상황, 혹은 개인이 놓인 조직의 상황 등 ‘사회 시스템과 환경’, 맑시즘, 포스트모더니즘, 젠더에 대한 관점 등 개인이 가진 ‘문화와 세계관’, 그리고 ‘뇌와 몸’, ‘자아와 유기체’ 등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사회 시스템’ 뿐 아니라 다른 요소들도 발달하게 된다는 거예요.
주로 우리는 사회 시스템에만 관심이 있고 이게 나선형으로 발달한다고 하는데, 그것만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이즘이나 가치관, 인권을 향한 민감한 의식, 다양성도 발달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도 실제로 진화해 왔죠. 근데 이걸 총체적으로 이해하지 못 하는 게 우리의 현실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인이 가진 자아나 의식이 심리적 문제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활동가들 간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올바른 정치적 가치관을 가지면 다른 것도 발달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론에 밝다고 해서 심리적으로 성숙하거나 타인에게 공감을 잘 하는 것은 아닐 수 있거든요. 골고루 발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선 잘 인정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개인이 심리적으로 아플 때, 이 문제가 어디서부터 왔는가, 어떤 환경에 놓여져 있기에 어려운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강철 같은 의지로 해쳐나가야 하는데 개인이 미숙하기 때문에 심리적 문제를 겪는 것인지, 혹은 사회를 바꾸려고 노력은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저임금의 노동조건 등이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나의 신체적 건강이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등 총체적으로 활동가들의 상황을 파악하지 않는다면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인간의 의식을 통합적으로 이해해야 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기사 등록 2016.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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