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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판도라 - 촛불혁명의 기소장같은 영화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6. 12. 30.

전지윤




<판도라>는 강추하지 않을 수 없는, 지금 시국에 보면 딱 좋을 영화였다. 나에겐 충격과 눈물의 2시간이었다. 한 혁명가의 말을 패러디한다면 이 영화는 한국 사회에 대한 촛불혁명의 기소장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흘러내린, 훔쳐내야만 했던 수많은 눈물들이 이 사회를 당장 뒤엎어야 한다는 가장 강력한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이 영화가 묘사하는 것과 한국 사회의 현실은 정말 싱크로율 100%라고 할만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사회를 빨리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엄청난 재앙을 피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 숨이 막힐 듯 했다.

 

세월호 진상규명에 힘을 보태 온 김인성 전 한양대 교수는, 한국 사회가 이대로 간다면 세월호의 수백 배가 넘는 부모들 속에서 함께 통곡하게 될까 두려울 뿐이라고 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상황을 스크린으로 재현해 내고 있다.

 

영화 속에서 가장 갑갑했던 장면 중 하나는 핵발전소의 폭발이 다가오는 것을 알게 된 하청 노동자들이 굳게 내려진 철문 앞에서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순간이다. 그 노동자들의 심정이 바로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심정일 것이다.


사실, 개봉 초기에 나는 이 영화가 별로 땡기지 않았다. ‘2명의 아줌마가 우리 영화의 최대 경쟁작이라는 감독의 인터뷰를 보고나서 좀 기대가 낮아졌었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여성주의 시각에서 보면 좀 걸리는 부분이 몇 개 나온다. 마지막 결정적 장면에서 너가 해주는 따순 밥을 먹고 싶었다는 대사 등은 한참 고조되는 감정을 약간 끊기게 만들었다.

 

아줌마라는 용어나, ‘가사일은 여성같은 고정관념에 대해 보통 사람들은 아무 거부감이 없을텐데 그렇게까지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우리 삶에 녹아있는 차별적 용어와 편견들에 대해선 민감할수록 좋을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는 영화라면 더더욱 그렇다.

 

더구나 이 영화가 고발하는 탈핵의 문제의식과 소수자 차별없는 세상도 결국에는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환경 문제에 민감한 사람이 여성 문제엔 둔감하고, 여성 문제에 민감한 사람이 종북몰이에는 둔감한 그런 일들을 흔히 접할 수 있다.

 

이런 아쉬움에도 한국사회의 부조리와 탈핵에 대한 시각 등 이 영화의 다른 측면들은 흠잡기 어렵다. 마지막 자막이 올라올 때 총괄자문으로 동국대 김익중 교수가 뜨는데, 이 영화는 저명한 반핵 운동가인 김익중 교수의 시각을 그대로 영상화했다고 할만하다. 실제로 감독은 수치 하나, 단어까지 면밀히 교수님께 확인받았다고 인터뷰했다.

 

이런 영화를 이미 4년전에 기획하고 제작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4년 전이면 박근혜 정부의 공포통치와 김기춘의 공작정치가 한참 서슬이 퍼렇던 시기다. 게다가 이 영화의 시나리오에서 악역인 이경영의 직위는 원래 지금처럼 총리가 아닌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고 한다.

 

결국 비서실장이 아닌 총리로 배역 설정이 바뀌고, 일부 투자자들이 투자를 철회하고, 개봉이 늦춰지고 이런 일들이 이어진 게 충분히 이해가 간다. 특히 한국수력원자력과 부산시의 비협조와 방해로 영화 촬영 시간과 비용은 크게 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감독은 원전사고가 난다면 딱 <판도라>처럼 될 거다”(김익중 교수)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그 충격과 공포를 성공적으로 영화화했다. 특히 높이사주고 싶은 것은 이 영화에 아래로부터시각이 깔려있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세상을 망치고 있는 무능하고 악독한 자들은 모두 정부 고위층과 국가기구 관료다.

 

이들은 단지 재앙을 막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재앙을 만들어내고 부채질하는 주역으로서 등장한다. 또 생명과 안전보다 이윤과 발전만을 최우선하는 사고방식을 거듭 드러낸다. 폐로 결정에 대한 극명하게 엇갈리는 반응이 대표적이다.

 

재앙이 더 커지기 전에 하루빨리 저 괴물같은 원자로를 폐기해야 한다고 조바심을 내던 관객들은 그 장면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반면 영화 속에서 한번 폐로한 원자로를 다시 살리긴 어렵다던 핵발전 옹호자들은 하늘이 무너진 듯이 좌절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이윤과 발전만을 우선하는 체제와 그 부역자들 때문에 피해와 고통, 죽음을 겪는 것은 밑바닥 노동자, 민중들이다. 영화 속에서 그들이 겪는 고통과 슬픔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영화는 몇 가지 설정을 통해서 그들이 단지 희생자일뿐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주체라는 점도 말하고 있다.

 

엄청난 재앙 속에서 그들은 변화해 간다. 예컨대 주요 등장인물 중에는 정부의 거짓말을 철석같이 믿고 무조건 따르던 인물도 나온다. 박사모를 떠올리게 하는 이 인물이 엄청난 비극 속에서 잘못을 깨닫고 자학하는 장면에서도 어떤 메시지가 느껴진다. 촛불혁명의 와중에 이 영화를 보고 특별히 더 뭉클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무능하지만 소신있는 대통령은 이 영화의 현실성과 아래로부터 관점을 일부 흐려버리는 옥의 티다. 이것은 대중적 상업영화의 한계일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것이 판도라 상자 속의 주된 희망으로 그려지진 않는다. 명백히 희망은 고통받는 민중들이 서로를 걱정하고 살리기 위해 발버둥치고 용기내는 장면에 있다.

 

따라서 이 영화가 가족주의를 설파하는 신파극이란 일부의 평에는 많은 부분 동감하기 어렵다. 만약 가족주의를 내세워 모순을 은폐하고 권위와 억압을 정당화하며 억지 눈물을 짜낸다면 그것은 맞는 비판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것과 거리가 멀다.

 

게다가 핵발전소 폭발이라는, 세월호 참사와도 비할 수 없는 그 거대한 재앙이 터져나올 때 한국 사회가 얼마나 엄청난 슬픔과 비통에 빠져들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그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끊이지 않을 것이고, 그 비극과 슬픔은 우리 모두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이 명백하다.

 

그런 재앙의 미래를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낸 것은 신파라고 하기 어렵다. 누구보다 핵폭발이 낳을 미래를 구체적으로 예상하고 있을 김익중 교수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처음 받자마자 펑펑 울면서 다 읽었다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 가족이라는 제도와 이데올로기가 가져오는 문제점과 가족이라는 인간관계로 맺어있는 개인들이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할 때 나타나는 사랑과 용기는 구분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서로를 위해 모든 것을 거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마치 직업병 피해자나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는 이미 지난 수년간 이들의 눈물겨운 투쟁과 고난, 용기를 지켜봤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바꾸고 있는 이들의 투쟁과 연대를 누가 가족주의’, ‘신파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오히려 판도라 상자의 밑바닥에 남아있던 마지막 희망이다.

 

그 희망이 거리에서 분출하고 있는 촛불혁명의 한복판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다행이다. 만약 아직도 박근혜 정부가 끄떡없이 버티고 있던 와중에 이 영화를 봤다면 그 절망감은 상상하기 싫을 정도다. 대신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모든 핵발전소의 폐쇄와 탈핵도 거리에서 외쳐보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았을까


(기사 등록 2016.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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