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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육식의 편의 뒤에 가려진 채식의 존재를 보려고 노력하자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7. 10. 13.

이 한


육식이 주류인 사회에서 채식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음식 메뉴를 결정하기 위해 혹시 채식하세요?”라고 물어보는 질문에 아니, 미쳤어요? 없어서 못먹는 게 고기인데라는 식으로 대답하는 사람 너무 별로다.

 

나도 비건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1주일만이라도 페스코로 살아보면 한국에서 채식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얼마나 비용이 많이 드는지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거니즘은 사회 운동이기도 하지만 소수자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나도 올해 상반기에 약 2주간 페스코[닭고기와 생선까지는 허용하는], 두 달간 폴로[달걀, 가금류와 유제품까지는 허용하는]로 지낸 적이 있다. 그 기간동안 고기 먹으러 가자는 가족들이나 주변의 비운동권 사람들의 제안을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몰라 애매하게 속이 안 좋다고 대답을 회피한 게 여러 번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는 것만큼이나 비건임을 밝히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체성의 정치에는 반대하고 정체성이 모든 것을 대변해주지 않지만,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해쉬테그 운동처럼, 자신이 비건임을 밝히고 일상에서 당당하게 채식으로만 이루어진 식사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나는 운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때문에 나는 이것을 희화화시키거나 무화시키려는 모든 언행들이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의 존재를 지우는 것만큼 극심한 폭력이 어디 있는가?

 

육식은 분명 한국 식문화에서 주류다. 위계와 계급이 존재하는 이 불평등한 사회에서 주류에 속한다는 건 그 자체로 특권이다. 자신의 존재를 굳이 드러내고 알리려 하지 않아도 사회에서 이미 알고 있고 친숙하게 느끼고 있고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준다는 건, 가지고 있는 사람 입장에선 별 것 아닐지 몰라도 분명 엄청난 특권이다.

 

몰라도 되는 권리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육식을 하는 사람들은 시간을 내서 채식이 가능한 음식점을 알아보지 않아도 되고, 굳이 멀리까지 몇 없는 채식 음식점을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그 편의와 권리가 대체 어디서 기인했는지 알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며, 누가 그 권리를 박탈당하고 누가 배제되고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이고, 차별과 폭력, 혐오를 방조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위에서 언급한 저 발언이 운동사회에서도 심심찮게 나온다는 것이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난다. 적어도 자신의 소수자성을 자각하고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기득권에 대해서도 자각하고 이를 탈각시키려는 노력과 타인의 존재를 지우지 않으려는 노력을 좀 했으면 좋겠다.

 


(기사 등록 2017.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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