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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난민 환영/ 멕시코 대선/ 장애인 이동권/ 사과와 치유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8. 7. 9.

전지윤


 

난민을 환영하고 연대하는 희망이 만들어져야

 

6월말에 난민 문제를 다룬 KBS 심야토론을 뒤늦게 봤는데 자한당 위원 등이 나와서 문제발언을 많이 했다. 테러, 할례, 집단성폭행을 운운하면서 이런 사람들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은 혐오가 아니라 존중받을 정서라고 했다.

 

밤에 난민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면 무서운 생각이 든다’, ‘난민들이 지나가는 여성을 보며 웃더라’, ‘난민인정률이 낮은 것은 그만큼 가짜난민이 많기 때문’, ‘일자리를 위협하고 저임금을 유발한다등의 이야기도 나왔다. 오늘 광화문에서 난민 반대 집회도 열린다고 한다.

 

일상적 인사가 당신에게 평화를인 무슬림이야말로 전쟁과 테러의 최대 피해자인데, 그들이 주범처럼 돼 있다. 중동에서 전쟁과 테러의 씨앗을 뿌린 강대국과 서방언론들이 이런 이미지도 만들었다. 지난 수십년간 전세계 테러 희생자의 압도다수는 무슬림이었다. 하지만, 서방 대도시에서 벌어진 테러만이 언론의 주목을 얻는다.

 

IS가 장악한 시리아 라카를 배경으로한 다큐 <유령의 도시>를 보면 끔찍하다. 참수, 즉결처형, 고층빌딩에서 떨어트리기 등이 나온다. 이런 폭력과 죽음의 문화는 분명히 아프간, 이라크 침공과 전쟁 속에 만들어진 것이고, IS는 그것이 만들어낸 괴물이다.

 

이것에 가장 큰 충격을 받고 고통받는 것도 라카의 무슬림 시민들이다. 그들이 이에 어떻게 목숨걸고 저항하는지 <유령의 도시>는 보여 준다. 영화에서 IS를 피해 독일로 간 그들이 무슬림 테러리스트 추방을 외치는 신나치 시위대와 마주하는 장면은 역설적이다.

 

서방의 군사적 개입이 극단주의를 낳고, 그걸 피해 서방으로 간 무슬림은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라며 파시스트의 표적이 된다. 2011년 혁명을 통해서 33년 독재자를 쫓아냈고, 그후 극단주의 반군에 쫓겨온 예멘 민중이 테러리스트라고 공격받는 것도 비슷한 역설이다.

 

이런 편견과 혐오는 20세기 중반 미국 흑인들이 겪은 것과 비슷하다. 디트로이트 봉기 50주년에 만들어져 최근 국내개봉도 한 영화 <디트로이트>에서 주방위군은 창가의 흑인 소년을 사살하고, 경찰은 죄없는 흑인 청년들을 사살한다. ‘도둑질과 강간을 일삼는 집단이라고 낙인찍힌 흑인 저격수폭도에 대한 혐오가 이걸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더 교묘해진 오늘날의 변형된 신인종주의는 혈통과 유전자보다 문화와 종교를 문제삼으며 여성주의 언어까지 이용해 인종차별하자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종북몰이나 동성애혐오에 앞장섰던 기독교우파가 이번에도 앞장서고 있고, 정부의 방조와 잘못된 정책이 그것을 부추기고 있다.

 

사실, 우파의 혐오 선동을 정부가 방조하고, 일부 진보진영까지 혼란 속에 끌려가는 모습은 새롭지 않고, 가장 극심했던 것은 종북몰이 때였다. 당시 종북낙인이 찍힌 집단에 대한 편견과 혐오는 전국민적이었고, 진보좌파도 크게 자유롭지 않았다. 성소수자나 난민에 대한 혐오 선동이 그렇게 발전해 나가며 신우파를 만들어낼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그걸 막기위해서도 차별과 폭력의 진짜 뿌리를 봤으면 한다. 외부에서 오염된 균이 들어와서 순수한 우리를 망가뜨리는 게 아니다. 여성혐오와 성폭력의 위협도 난민이 아니라 가부장제와 한국사회에서 비롯한 게 분명하다. 또 정의와 평등의 요구는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 구성원이 우선이고 그들만 챙기면 된다며 비정규직과 여성을 외면하는 일부 정규직노조가 반면교사이다.

 

희망을 찾아온 난민 앞에 벽을 세우는 어떤 논리도 거부해야 한다. 난민을 받아들이고 돕기 위한 더 많은 인력과 자원을 요구해야 한다. 500명의 예멘 난민을 단 2명이 심사하는 상황에선 제대로된 지원도 교육도 가능하지 않다. 어떤 보호도 없이 기본적 의식주도 불가능한 상황으로 몰아넣으며 사회적응을 요구할 순 없다.

 

최근 미국에서는 멕시코 이민자들은 강간범이라며 벽을 세우던 트럼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뉴욕에서 28세 여성 라티노 사회주의자가 하원의원 후보로 선출됐다. 그녀는 이민세관단속국(ICE), 세관국경보호국(CBP) 폐지까지 주장하며 민주당 10선 거물후보를 꺾고 승리했다. 우리도 이런 희망을 만들 수 있을까.

 


멕시코에서 미국까지 불어오는 좌파의 바람

 

얼마전 멕시코 선거에서 오브라도르의 압도적 승리와 거의 90년만의 좌파정권 등장은 큰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같이 치러진 총선에서도 상하원 모두 좌파가 다수파가 됐다고 한다. 신자유주의와 부정부패의 닮은꼴이던 제도혁명당-국민행동당 양당 구도는 무너졌다.

 

일부에서는 오브라도르를 멕시코의 트럼프라고 하면서 약간 깎아내리지만, 인종주의와 백인우월주의, 온갖 차별로 범벅이 된 트럼프와 좌파인 오브라도르를 비슷하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오브라도르는 최저임금 인상, NAFTA 재협상, 친시장 정책과 민영화 재검토, 연금 증액, 농촌 무료 비료,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 빈민구제 확대, 마약과의 전쟁에서 군대 철수, ‘마피아들이 운영하는 권위주의 체제 타파등 급진적 주장과 공약으로 승리했다.

 

민주혁명당에서 모레나당으로 계속 왼쪽으로 이동해 왔지만, 오브라도르가 20세기초 민족주의적 농민혁명을 제도화시킨 제도혁명당 출신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에 당해온 멕시코의 민족주의와 아메리카 퍼스트트럼프의 제국주의적 민족주의는 다른 것이다. 국경과 이민을 막겠다는 트럼프와 그것을 비난하는 오브라도르는 반대편에 서 있다.

 

물론 오브라도르의 집권은 타협을 수반한 과정으로 보인다. 그를 결사 반대하던 자본가와 기득권층은 들어가서 바꾸기로 전술을 바꾼 거 같다. 멕시코 최대재벌과 기존정권 출신 인사들이 새정부로 들어가고 있다. NAFTA나 트럼프에 대한 오브라도르의 비판도 강도가 약해지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도 보여주듯이 정권 교체는 변화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고, 진정한 전투와 승부가 다가올 것이다.

 

멕시코뿐 아니라 얼마전 콜롬비아 대선에서 좌파 후보가 2차 결선투표까지 진출해 40% 넘는 득표를 한 것도 콜롬비아 근대사에서 처음있는 일이었다 한다. 지금의 관심사는 이런 좌파 바람이 다가오는 브라질 10월 대선까지 이어질지만이 아니다.

 

좌파 바람은 미국의 뒷마당을 넘어서 미국 안마당에서도 불고 있다. 미국 청년세대의 급진화와 미국 민주사회주의자(DSA)의 폭발적 성장이 그것이다. 최근 뉴욕에서 28세 여성 라티노 사회주의자가 하원의원 후보로 선출된 것도 그 결과였다.

 

이 흐름은 트럼프 당선 이후의 여성행진, #metoo 운동, 웨스트버지니아에서 오클라호마, 켄터키, 애리조나, 콜로라도로 퍼져온 교사파업과 연결돼 있다. 교사파업은 작업장을 넘어서 주정부에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정치파업의 성격도 보여줬다. 10대들의 총기규제 운동과 지난 630일 미국 750개 도시에서 벌어진 난민격리 반대 시위도 연장선에 있었다. 이 모든 운동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다인종 여성과 청년들의 급진화와 주도성이다.

 

아직 민주당에 걸쳐있는 DSA가 낡은 도식과 관성에서 벗어나 다른 좌파들과 협력, 토론하면서 노동조합 쟁점으로만 시야를 좁히지 말고 이런 흐름들을 잘 교차시켜, 양당체제를 벗어나는 새로운 대안으로 나가길 기대해 본다. 제도혁명당에서 출발했지만, 민주혁명당을 거쳐 결국 새로운 좌파 건설에 성공한 오브라도르처럼 말이다.

 

 

역사와 승리를 만들어 온 장애인 이동권 투쟁

 

신길역 추락참사에 항의하는 장애인 동지들의 72일 지하철 타기 행동에 함께 한 경험은 중요했다. ‘조직된 노동자들의 파업만이 가장 힘이 있고 중요하고, 그들이 변혁의 핵심주체이고...’ 이런 논리가 왜 협소한지 다시 깨달았다.

 

장애인 동지들의 지하철을 다함께 동시에 타는 것만으로 열차가 멈추고 교통이 마비되는 일이 눈 앞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누구 말대로 이것은 장애인들의 파업이었다. 파업 전에 장애인 동지들은 오늘도 욕많이 먹겠지만, 욕이 노래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자. 우리는 장수할 것이다라며 마음을 다졌다.

 

실제로 욕이 많았다. ‘리프트에서 떨어져 죽은 장애인의 심정을 생각해달라, 교통약자를 위한 시설을 방기하고 죽음에도 침묵하는 서울시의 책임이다는 말을 듣지도 않고 나 병원 늦으면 어쩌라는 거냐라며 우리만 탓하는 분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사람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신들이 얼마나 힘든지 안다, 반대하는게 아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효과적이지 않다, 정부나 서울시에 가서 싸워야하지 않냐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한 노인분은 사람이 죽었다고? 왜 언론에 안나왔지?’라며 갸우뚱했다. 교통공사가 쩔쩔매는게 느껴졌고, 결국 나중에는 서울시 간부가 나와서 항의서한도 받아갔다.

 

여전히, 조용히 입닫고 있으면 만만하게 보고, 행동하고 소리치면 쳐다보고 들으려하고 기사라도 나는 세상인 것이다. 그리고 욕하며 소리치는 사람말고도, 유인물을 받아 읽으며 고개 끄덕여주는 수많은 사람들도 보았다. 결국 이번에도 장애인 동지들은 우리 모두를 위한 승리의 역사를 만들어 낼 것이다.

 


 

더는 늦지 않게 사과와 치유가 이뤄지길

 

노동자연대는 사과하라’(https://www.facebook.com/jmetoowithyou) 페북 페이지에 올라온 아래 글들을 읽으며 생각한다. 피해자의 치유를 위해서도, 노동자연대가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은 하나뿐인데, 그것을 선택하는게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 절망감 속에서도 그 기대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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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연대가 또 언론중재위에 <참세상> 기사를 제소해서 아래처럼 다시 반론보도문이 실렸습니다. 벌금을 내거나 법적 소송으로 가야하는 처지에서 어쩔 수 없이 반론보도문을 실었을 <참세상>의 고충과 괴로움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노동자연대는 그토록 기쁜지 이 소식을 홈페이지 대문에 올려놓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언중위의 이 결정이 큰 의미가 있다“<참세상워커스가 자신들의 오류를 인정하고 진실 앞에 겸손하길 바란다고 엄숙한 충고까지 합니다. 정말 기가 막힙니다.

과연 언중위는 갑자기 한국 사회운동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성폭력 사건의 진실을 판단해주는 가장 권위있고 진실을 보증하는 기관이 된 것입니까? 전혀 아닙니다. 언중위 제소는 그동안 기성정당이나 정치인, 기업주들이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고 입을 막기 위해서 자주 이용해온 무기입니다.


심지어 노동자연대 자신도 노동자 투쟁을 보도하는 기사를 썼다가 몇 차례 언중위 제소를 당해서 고생한 적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좌파를 자처하는 단체가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진보언론의 입을 막기 위해서 언중위 제소를 남발하면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오히려 그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언중위의 정정보도판정과 반론보도판정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정정보도는 허위보도를 바로잡고 정정하라는 판정입니다. 반면 반론보도는 해당보도에 대한 반박도 실어주라는 것일뿐입니다. 그런데 노동자연대는 마치 언중위가 정정보도를 판정하고 진실을 밝혀주기라도 한 것인양 왜곡 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성폭력의 진실은 보수적인 법원의 판결만을 최고권위로서 의존하고, 정치적 비판은 언론중재위 제소로 다 막는다면 노동자연대의 사회주의정치 활동이란 것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지 묻고싶을 정도입니다.

<참세상> 분들이 겪고있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정말 죄송하고, 이런 겁박을 예상하고도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신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노동자연대는 성폭력 피해자만이 아니라, 피해자를 돕고 손을 잡아주는 사람들까지 괴롭히고 겁박하는 행태를 당장 중단하고 부끄러움을 알아야 합니다.

 

<노동자연대가 피해자를 위해 연서명한 단체까지 괴롭히고 있습니다


요 며칠 사이에 피해자와 지지자들에게 놀라운 소식들이 들어왔습니다. 바로 피해자를 지지하는 연서명에 함께한 단체들에게 노동자연대가 직접 항의 방문까지 와서 압박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4~5명이 연락도 없이 해당단체의 사무실로 막무가내로 찾아와서 면담을 요구하고 당신들이 진실을 몰라서 그런다며 서명 철회를 압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실어준 <참세상>에 대해 노동자연대가 보복하며 사용한 것과 같은 방법입니다. 이미 연서명한 단체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계속 전화해서 연서명 철회를 요구하며 괴롭힌 것도 모자라, 이제는 더 강력한 실력행사에 나선 것입니다.


이미 노동자연대는 연서명한 단체 등에 보낸 문건과 메일에서도 피해자를 비방하며 사적인 신상정보와 성폭력 피해 사실들을 멋대로 유출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노동자연대가 진실을 알려주겠다며 또 어떤 식으로 피해자를 공격하는 내용의 주장과 정보들을 말하고 다닐지 너무 걱정되는 상황입니다.

또 혹시라도 이런 압박에 위축되거나 부담스러워서 연서명을 철회하거나 주저하는 일이 생길지도 우려됩니다. 그러면 피해자는 더욱 고립되고 고통을 견디고 이겨내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노동자연대가 바라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연서명을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다시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꼭 그것을 유지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또 아직 연서명을 하지 않으신 단체나 개인들은,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더욱 더 연서명에 동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것은 피해자에게 더욱 큰 힘이 될 것이고, 노동자연대에게도 이런 실력행사는 잘못이고 통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경고를 보내는 일이 될 것입니다.

또한, 만약 노동자연대의 그런 항의 방문을 받거나 소식을 접한 분들은 저희에게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재 얼마나 많은 단체들에게 이런 식의 일방적 방문과 압박을 받고 있는지, 또 와서 어떤 식으로 피해자를 공격하고 있는지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노동자연대는사과하라 #Metoo #Withyou

 

* 서명에 동참해주세요 https://goo.gl/BEapde

 


(기사 등록 201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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