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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나쁜 동물원들은 문을 닫아야 한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8. 9. 20.

 최태규(수의사)

 

2010년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난 퓨마 뽀롱이가 열린 철문으로 걸어 나왔다가 사살당했다. 대형 육식동물이라 사살 결정도 빨랐고 언론의 관심도 많이 받았다. 동물원에서 동물이 우리를 탈출하는 일은 당연히 없어야 하지만, 당연하게도 잦은 일이다. 두 달 전 미국 뉴올리언스 동물원에서도 재규어가 탈출해 알파카와 여우를 물어 죽이고 다시 우리로 잡혀 들어갔다. 가축을 기르는 농장에서도 닭이나 돼지는 늘 탈출하고, 동물병원을 할 때 진료하러 갔던 소가 탈출해서 야산으로 소를 잡으러 다닌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물며 날래기로 유명해서 운동복 상표로 쓰이는 퓨마다. 쉽게 흥분하는 이 대형 고양이가 통제를 벗어나고 당황하면 사람을 공격해서 죽일 수 있다. 난생 처음 창살 밖으로 나왔다. 거창하게 자유를 찾아서가 아니라 그저 갈 수 있는 공간으로 조심스레 발을 디뎌봤다. 사람을 잡아먹으려는 게 아니다. 눈앞이 깜깜하고 머릿속이 하얘지는 상황에서 앞에 낯선 사람이 나타나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면 물어뜯고 도망가거나, 그냥 도망가거나 둘 중 하나다. 뽀롱이는 그냥 도망가다가 총에 맞았다. 누군가를 물어뜯을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고, 그런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죽었을 수도 있다.

 

현대의 동물원 동물들은 대부분 동물원에서 태어난다. 야생에서 잡아온 동물들이 아니다. 사람 손으로 먹이를 먹여 기르고 평생 동안 매일 사육사들과 소통한다. 자연으로 돌려보낼 개체가 아니라면 동물들이 동물원에 익숙할수록 좋다. 최소한의 기준을 지키는 동물원이라면, 어떤 종의 동물들은 자기가 사는 집에도 익숙해질 수 있고 동물원 관리자, 관람객들과 나쁘지 않은 자극을 주고받을 수 있다. 특히 사육사와는 서로 없으면 못 사는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동물카페에서 자주 보는 미어캣, 프레리독, 라쿤, 왈라비 같은 동물들은 비교적 쉽게 사람에게 곁을 내준다.



 관람객에 반응하는 게잡이 마카크 원숭이



그게 잘 안 되는 동물도 있다. 특히 대형 육식동물이나 코끼리 등은 사람에 익숙해져도 언제든 마음이 변해 공격할 수 있다. 미국 씨월드에서 각종 묘기를 훌륭하게 해내던 범고래가 훈련사를 죽여 많은 사람들이 충격에 빠진 일도 있었다. 물론 도심 속 시멘트 바닥이나 발 한번 구르지도 못할 좁은 환경에는 어떤 동물도, 심지어 실험용 쥐도 익숙해질 수 없다. 2002년 대전동물원에 간 것이 마지막이니 뽀롱이의 사육 환경을 본 적은 없지만, 듣기로는 사육 환경도 사육 방법도 결코 그에게 익숙해질 수 없었던 것 같다. 동물 카페의 평생 땅 한번 못 파보는 미어캣처럼 살았을 테다.

 

야생동물을 온전하게 가둬놓고 기르려면 종마다 다른 환경을 만들어주고 사육 방법을 세분화해야 한다. 예컨대 알락꼬리여우원숭이와 붉은배여우원숭이는 많은 동물원에서 합사(한 우리에서 같이 길러진다)한다. 가까운 종이고 둘 다 마다가스카르섬 출신이고 무난한 무리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종의 생활양식과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하나는 널뛰듯 노는 걸 좋아하고 하나는 누워서 뒹구는 시간이 더 많다. 함께 사육하기 위해서는 두 종이 각자 그룹을 이루어 서로를 방해하지 않을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 적절한 상호작용을 할 장소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의 동물원들은 그냥 동물을 욱여넣는 수준이다. 외국에서 값비싼멸종위기 동물을 사올 때에 어느 우리에 집어넣을지조차 계산하지 않고 그저 빈 공간에 가뒀다가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동물원 뒤 켠에는 어떤 이유로든 전시되지 못하고 좁은 사육장에서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는 동물들이 생명만 부지하고 있다.

 

그러다 동물이 죽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동물원 관계자가 아니면 그 동물이 죽어나가도 알 수가 없다. 사육사들은 일거리가 많아지거나 징계를 받는 것이 두렵고, 관리직들은 사육사의 의견을 무시한다. 무수히 쏟아지는 연구 논문을 읽을 여유나, 어떻게 더 잘 기를 수 있을지 고민할 의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어떻게 하면 수지타산에 맞춰 더 화려한 동물 전시를 할 수 있을지 정도에서 고민은 멈추는 것 같다.

 

동물원은 어떻게 잘 가둘지에 대한 궁리만큼, 동물이 갑자기 아프거나 탈출하거나 사람을 공격했을 때 누가 무엇을 할 것인지 정해두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동물원의 매뉴얼이 정상적으로 존재할 리도 가동될 리도 없다. 왜냐하면 동물이 탈출하지 않고 일상적으로 생활할 때의 가이드라인조차 없기 때문이다. 서울대공원, 에버랜드를 비롯해 전국의 가장 큰 동물전시업체가 모인 한국동물원수족관협회(KAZA)에서 동물원의 동물복지 기준을 만든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기사를 찾아보니 동물원 야생동물 권리장전을 만든다는 뉴스가 여러 개 뜬다. 동물에게 권리라는 말은 남용되고 있다. 학대만 그만둬도 다행이겠다. 그 장전은 결국 실체도 없이 기사만 냈던 것 같다. 오히려 대규모 동물원들은 동물 사육 환경을 법으로 제정하려는 동물원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이번에 대전 오월드에서는 퓨마가 언제 탈출했는지도 모르고 뒤늦게 우리가 빈 것을 확인했다.

 

동물원의 존재 이유는 계속해서 도전받는다. 제국주의 시대에 귀족들의 과시욕에서 살아 있는 전리품들을 보여주던 속성을 지우려 애쓴다. 차라리 애라도 쓰면 다행인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교육과 종보전의 역할을 한다고 강변한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교육의 기능을 못하거나, 종보전과 무관한 동물 전시를 하는 동물원은 폐쇄되어야 한다. 동물을 괴롭히고, 동물을 괴롭혀도 된다는 교육을 하고, 밀렵동물을 전시함으로써 멸종에 기여하는 동물원은, 적어도 신규 허가를 내어줘서는 안 된다.

 

기존의 낙후된 동물원은 전시동물의 수를 대폭 줄이고 적어도 감당할 수 없는 동물 종은 포기해야 한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동물원은 벌금을 물고 제재당해야 한다. 동물학대를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입법과 행정이 필요하다. 한국 어느 동물원의 종보전 프로그램이 진행 과정과 목표와 결과를 떳떳하게 밝힐 수 있을까. 서울동물원에선 삵을 번식시켜 시화호에 풀었고 거의 다 죽었다. 대전 오월드에서는 러시아에서 사온 늑대를 번식시켜놓고 한국늑대 복원에 성공했다는 기사를 낸다. 종보전이라는 말마저 오락과 흥행에 이용한다.

 

얼마 전, 에버랜드 북극곰 통키가 올해 11월에 가게 된다는 영국 요크셔 동물원에 다녀왔다. 그곳에는 일본의 한 박물관에 전시되었다가 열악한 사육 환경 때문에 구조된 세 마리의 불곰이 있었다. 원래 네 마리가 구조되었는데, 오자마자 한 마리가 건강 문제 때문에 안락사되었다. 해당 곰 우리 앞에는 담당 사육사가 내내 서서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오자마자 안락사된 곰에 대해 물었다.

 

마치 동물원 관계자들의 대화인 양, 관람객들은 곰의 상태가 어느 정도로 나빴는지, 안락사 결정에 충분한 고민이 있었는지, 그 과정이 곰에게 괴롭지는 않았는지 우호적으로 질문했다. 사육사는 가슴 아팠던 경험을 관람객들과 나누었다. 사육사는 관람객들에게 지금 남은 세 마리의 곰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왜 한 마리는 따로 격리되어 있고, 관람객이 볼 수 없는 곳에서 지내는지 긴장한 기색 없이 설명해냈다.


 통키가 가게 될 영국 요크셔 동물원



한국의 사육사들이 이런 역할을 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동물원은 사육사들에게 동물을 돌보며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될 권리조차 보장하지 않는다. 동물원 사육사의 21조 작업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살아 있는 동물을 다뤄야 하고,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기 때문이다. 그 기본 원칙이 지켜졌는지에 대한 기사는 보지 못했다. 퓨마가 탈출한 것은 사육사의 실수 때문이 아니라, 사람의 실수를 응당 보완해야 할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서이다.

 

이중으로 잠그는 철문을 이중으로 확인하는 매뉴얼을 지켰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21조로 일하는 사육사는 외국의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었다. 한국의 몇몇 동물원에도 기준은 그리 정해져 있다고 하지만, 나쁜 노동조건 때문에 원칙을 지킬 수 없다. 그래서 동물원에서 사육사가 동물에게 공격당해 죽거나 다치는 일도 잦다. 그런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의 돌봄을 받는 동물은 결코 온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직무유기는 사육사가 아니라, 열악한 노동조건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저질렀다.

 

퓨마의 죽음에 슬퍼하는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 사람들이 마치 오랫동안 소중히 여긴 가족을 잃은 것처럼 실의에 빠졌다. 더 놀라운 건 동물원의 폐쇄를 주장하며 근본적인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격세지감이고 반갑고 그동안 끈질기게 싸워온 동물보호단체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와중에 누구는 사살은 불가피했느니 폐쇄는 성급하니 하는 훈수들도 둔다. 그런데 자격이 없는 동물원은 장사를 접고 문을 닫는 게 맞다. 먹는 동물의 복지까지 걱정하는 시대가 왔다. 이제 사람들은 나쁜 동물원에 흥미도 잃을 것이다.

 


(기사 등록 2018.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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