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여성, 남성,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성별이분법은 틀렸다

콜린 윌슨(Colin Wilson)

번역: 두견

 

 

[영국의 사회주의자인 콜린 윌슨(Colin Wilson)이 왜 성별이분법의 강요가 억압으로 작동하게 되는지에 대해 논의한 글이다.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이었던 1120일을 맞이하여 번역한 이 글이 모든 차별과 억압로부터 해방에 대한 고민에 도움이 될 것이다.]


출처:

https://www.rs21.org.uk/2016/10/24/notes-on-women-men-trans-and-intersex-the-gender-binary-does-not-fit-the-facts/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공격하는 트럼프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대


 

사회에 대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상식중 하나는 인간이 - 누구도 만날 가능성이 없는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 남성과 여성의 두 그룹으로 간단히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이르길 그분이 남성과 여성을 창조하셨다.” 그렇지만 이 생각은 점점 더 의문에 부딪히고 있다.

 

그것이 사람들의 몸에 대한 문제이든, 그들이 삶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여성 대 남성이라는 성별 이분법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점점 더 자신들의 목소리를 듣고 삶을 존중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진실은 상식적 견해보다 더 복잡하다는 것이 명백해지고 있다. 이 노트는 인터섹스와 트랜스젠더 모두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인터섹스인 사람들의 몸은 남성이 아니면 여성이라는 분류에 쉽게 잘 맞지 않는다. 트랜스젠더인 사람들은 태어날 때 배정된 성별과는 다른 삶을 살거나 살고 싶어한다. 그들은 여성으로 배정되었지만 남성으로 살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고, 남성 아니면 여성이라는 분류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살 수도 있다.

 

인터섹스나 트렌스젠더인 사람들의 경험은 다르다. 그들은 자신들이 공통의 경험이나 정체성을 공유한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섞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방식을 통해서 성별이분법이 사실과 맞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유발하며, 그것을 강요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몸들

 

'인터섹스'라는 용어는 그들의 몸을 남자나 여자로 쉽게 분류할 수 없는 사람들에 관해서 사용된다. 상식은 그러한 사람들이 아주 드물다고 말해준다. 실제로는, 그것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인구 중에 인터섹스인 사람들의 비율은, 아마도 1,000명이 출생하면 그 중에 1 명이라고 한다. 대략 6만 명의 인터섹스가 영국에 살고 있는 것이다.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터섹스가 희귀하다고 생각할까? 한 가지 이유는 인터섹스로 태어난 아기들은 어느 한 성별에 일치시키기 위한 수술을 당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가디언>에 실린 이 기사를 보라.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6/jul/02/male-and-female-what-is-it-like-to-be-intersex) 페니스가 아주 작은것을 제외하고 모든 면에서 남성인 많은 아기들이 강제로 여성으로 배정되는 것이다.

 

수술을 통해서 그들의 작은 페니스는 제거되고 질이 만들어진다. 이것은 아주 작은 페니스를 가지고는 남성으로서 삶을 살 수 없다는 가정 하에 행해진다. 그 아기가 나중에 자라서, 자신을 남성으로 정체화하면서 처음에 태어날 때 가지고 있던 생식기를 유지하기를 더 원할지 모른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들이 좋은 의도로 그것을 할지 모르지만, 의료진과 부모들은 사실상 성별이분법을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인터섹스 활동가들은 이 수술들을 성기 절단과 훼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태어났을 때의 몸이 외형적으로는 남성또는 여성으로 보였을 경우에도 젠더와 관련된 생물학적 특성은 여전히 사람마다 다 다르다. 예를 들어, ‘여성으로 분류되고 배정된 서로 다른 신체들은 각기 다른 수량의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 호르몬을 가질텐데, 이것은 그들의 생애주기 동안에 걸쳐 변화해 갈 것이다. 그런 신체는 항상 남성과 여성의 범주로 깔끔하게 나눠지지 않으며, 그렇게 나누려는 시도는 억압이 될 가능성이 있는데, 이것은 엘리트 여성 스포츠의 경우에도 명확하다.

 

예를 들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육상 선수인 캐스터 세메니아(Caster Semenya)2009년에 그녀가 성별 검사를 요구받았다는 것이 언론에 유출됐을 때 그녀의 생리학에 대한 거슬리는 추측의 대상이 됐다. 그녀의 생리학 및 테스토스테론 수치에 대한 추측은 리오 올림픽 준비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녀의 몸의 성격이 그녀가 다른 여성들과 경쟁하는 것을 불공평하게 만든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므로 소위 상식에 따른 성별이분법은 젠더 구분의 지속적인 사찰 활동과 어느 한쪽으로 깔끔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낙인찍기를 포함하고 있다.

 

젠더 트러블

 

엘리트 스포츠가 생물학적 측면에서 성별이분법의 자의적인 본질을 입증한다면, 남성이나 여성이 되는 것이 일반적으로 실제로는 생물학에 관한 것이 전혀 아니라 매일의 일상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가 사람들과 상호작용할 때 우리는 그들의 생식기, DNA 또는 호르몬에 대해 알지 못한다.

 

남자가 되는 것여자가 되는 것중 많은 것은 사회에서 그렇다고 인정받는 것과 당신이 그렇게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주디스 버틀러가 그녀의 책 <젠더 트러블>에서 개괄한 아이디어를 참고하는 것이 유용하다. 버틀러는 사람들이 여성답다고 또는 남성답다고 인식될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사회가 강요한다고 주장한다.

 

애매모호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종류의 억압에 직면한다. 만약 우리가 남성다움이나 여성다움에 대한 내면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우리가 이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인 행동을 [사회적 강제를 통해] 내면화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인 행동이 어떤 내부적인 남성성이나 여성성의 표현이라는 상식적 견해와는 반대된다.

 

남성 또는 여성으로서의 자기 동일시가 생물학의 직접적인 산물이라고 보는 것은 항상 근거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암 자선단체들은 유방절제술을 받은 여성들에게 이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여성이라고 안심시키고, 질병으로 고환을 잃은 남성들에게도 그들이 예전과 마찬가지로 남성이라고 말을 한다.

 

여성들이 충분히 여성스러워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여성들은 분명히 옷, 화장, 행동 등과 관련하여 이 측면에서 적절한 방법으로 행동하도록 권장된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말했듯이 누군가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여성으로 길러지는 것이다.”

 

남성들은 남성이기에 억압당하지 않지만, 만약 그들이 사회가 일반적으로 남성에게 요구하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그들 역시 행동에 대한 다양한 제약에 직면한다. 그래서 아무도 남자가 되거나 여자가 되는 일을 아주 딱 맞게 수행하지는 못한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젠더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우리는 이러한 전체 과정에서 인간성이 메말라가게 된다


젠더, 섹스, 자연

 

나는 여기서 젠더섹스라는 단어의 사용을 피하려고 노력해왔다. 섹스를 생물학적인 것으로, 젠더를 문화적으로 보는 사회과학의 용어에는 공통된 해석이 있다. 이러한 이해에서, 젠더는 사회에 따라서 다양할 수 있지만, 섹스는 신체의 물질적 현실이며 모든 곳에서 동일하다. 섹스는 진실이고, 젠더는 잠재적으로 거짓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성해방은 젠더를 없애고 섹스의 보편적이고 생물학적인 진실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의 첫 번째 문제는 성적 육체의 물질적 실체가 항상 문화적 맥락에서 이해된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기준을 바탕으로 어떤 사람이 여성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들의 DNA를 통해서나, 특정 신체 부위가 있거나 없다는 것을 통해서나, 호르몬 수치를 통해서나, 혹은 출산 능력을 통해서 알 수 있을까?

 

두 번째 문제는 섹스를 위하여 젠더를 제거하자는 요구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요구와 전부 비슷해 보인다는 것이다. 지금, 자연의 개념은 굉장히 복잡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중요한 부분은 특별히 자본주의적 산업화로 나가는 시대에 도시, 만들어진 상품 등에 대한 낭만적 거절이다. 아주 만족스럽고 통합된 총체성으로 여겨지는 동물, 식물, 그리고 풍경을 위하여 말이다.

 

그래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서 진짜로 벗어나기 보다는, 어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서 다른 것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특히 유럽인들과 접촉하기 전에 아프리카나 태평양과 같은 곳에서 일부 사람들은 문명 이전인 자연 상태에서 살았었다는 오랜 생각이 존재한다.

 

특히 유럽인들과 접촉하기 전에 아프리카나 태평양과 같은 곳에서 일부 사람들은 문명 이전인 자연 상태에서 살았었다는 오랜 생각이 존재한다. 이것은 매우 인종차별적인 견해다 여기서 이 사람들이 개발해 온 문화는 전혀 문화로 간주되지 않는다. 이 접근법은 또한 억압적인 젠더 정치와 관련되는 경향이 있다. 자연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은 일반적으로 모든 청교도적이며 사회적인 제약을 거부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것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이것은, 역사적으로 남성은 특히 섹스에 관한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는 반면, 여성들은 인위적인규범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에 반대한다고 주장한다.

 

삶들

 

상식으로 돼 있는 성별이분법은 많은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적용되지 않았는데, 그곳에서 사람들은 남성이나 여성으로만 살 수 있지 않았다. 남아시아에서는 남자로 자랐지만 남성이나 여성으로 살지 않는 '히즈라스'(hijras)라 불리는 집단이 약 50만 명에 달하고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는 모두 공식 문서에서 이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

 

알바니아에서는 약 500년 동안, 여성으로 성장한 사람이 금욕 서약을 하면 남성으로 받아들여지고, 남성복을 입고, 남성들의 일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 몇몇 아메리카 원주민들 중에서도 남자도 여자도 아니게 사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역할이 주어졌다. - 샤이엔(Cheyenne)족의 결혼중매인, 주니(Zuni)족과 나바호(Navajo)족의 도공, 그리고 라코타(Lakota)인들 중에서 미래를 예언하고 아이와 성인에게 행운의 이름을 지어주는 사람들.

 

서유럽에서도, 과거 몇 세기 전으로만 돌아가도 성별이분법을 하나씩 깨트리는 수많은 증거들이 존재한다. 역사적 기록 속에서 우리는 몇 번이고, 그 젠더로 배정돼서 남자나 여자로 자라도록 길러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보게 된다. 참을 수 없는 일이기에 엄청난 고통을 겪게되며, 때로는 그들이 동일시하는 젠더로 살아가기 위해 억압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잔 다르크는 남자와 연결된 옷을 입는 것을 포함한 범죄 혐의 때문에 1431년에 산 채로 불태워졌다. 1750년에 런던에서는 여성 전사또는 한나 스넬의 놀라운 삶과 모험이라는 책이 출판됐다. 이 책에 묘사된 사람은 실제로, 해병대에 입대하여 인도에서 여러 전투에 참가한 것으로 묘사된 그 기간 동안 제임스 그레이라는 이름을 사용해 살았다.

 

1810년에, 콜 부인은 14년 동안 주거지를 같이 썼던 프랑스 여성의 시신을 매장하려고 준비하다가, 그 시신이 전형적인 남성의 신체로 구분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비슷한 사건이 비교적 근래에도 발생했다. 1989년에 비주류 재즈 음악가 빌리 팁튼이 미국 북서부 스포케인의 트레일러 공원에서 74세 나이로 사망했다.

 

팁튼은 다섯명의 여성과 결혼하였고, 몇몇 입양아들의 아버지였지만, 출동한 응급요원들은 그의 가슴에 가리고 있던 압박붕대를 제거하며 그의 젖가슴을 발견했다. 팁튼은 이 붕대가 그가 트럭에 치었을 때 입은 부상 때문에 필요하다고 설명해 왔다. 이후에 진행된 조사는, 팁튼이 출생 당시에는 여성으로 식별됐지만 19세 때부터 남성으로 살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러한 사례들은, 이 주제에 대한 많은 논의들이 트랜스젠더를 뭔가 새로운 현상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확실히 트랜스젠더인 사람들의 삶의 일부 측면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정치적인 정체성으로서 트랜스젠더의 출현이나 젠더 정체성 클리닉’(Gender Identity Clinic)들에 대한 의뢰 횟수의 증가 등이 그것이다. 호르몬이나 수술과 관련된 절차들도 20세기 중반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러한 현대적 발전은 단지 훨씬 더 긴 이야기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LGBT

 

1969년 스톤월 이후 게이 해방 운동의 현대적인 국면이 시작되었을 때, 그것은 동성간의 욕망이 종종 성규범에 대한 도전과 관련있던 수세기 동안의 서구 문화의 뒤를 따랐다. 게이 남성들은 그들의 여성스러움을 통해 식별될 수 있다고 믿어졌다. 과장된 행동과 복장도 게이 문화의 주요 부분을 형성했다. 한편, 1950년대에 레즈비언 술집 현장에서는 여성들이 부치(남자역)나 팸(여자역)으로 정체화하도록 장려되었다.

 

게이 해방 운동은 두 가지 방법으로 이것에 반응했다. 운동의 가장 급진적인 일부는 사람들이 성규범들을 파괴하는 것을 축하했다. 예를 들어, 머리를 길게 기른 남성의 경우처럼, 이것은 1960년대를 다른 방식으로 특징짓는 과정이었다. 일부 게이 남성은 특히 젠더 엿먹이기’(genderfuck)로 알려진 접근법을 채택했는데, 예를 들어 수염을 기르면서, 풍만한 여성드레스를 입는 식이었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에 레즈비언들은 보통 머리를 짧게 자르고 바지를 입음으로써 여성성과의 작별을 축하했다.

 

그러나 운동의 다른 일부는 다른 논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더 많은 레즈비언과 게이들이 커밍아웃하면서 여성역할을 하는 게이와 남성역할을 하는 레즈비언이라는 고정관념이 흔히 부정확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주로 현존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을 주장하는 데 관심이 있는 보다 온건한 세력들은, 대부분의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젠더 규범적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지난 40년 동안, 이것은 이제 LGBT 정치에서 젠더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변화로 이어졌다. 1980년대 초에, 내 좋은 친구는, 그 때 게이 남성으로 정체화했고, 종종 화장을 하고 긴 검은 드레스를 입기 시작했다. 그가 이렇게 했을 때, 그는 약간 들볶임을 당했는데, 우리 둘 다 그것을 호모포비아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1990년대와 2000년대 초까지 그러한 젠더를 위배하는 행동은 레즈비언이나 게이로 알려진 사람들 사이에서 덜 흔하게 되었다. 젠더 규범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이제 더 자주 트랜스젠더로 식별되고, 그리고 그들이 경험한 억압은 트랜스포비아로 묘사된다. 그 정체성은 이전에 게이 정체성의 일부였던 크로스드레싱같은 행동들을 호르몬 및 수술의 사용과 같은 다른 것들과 함께 한데 모을 수 있다.

 

의사들

 

최초의 젠더 확정 수술’(gender confirmation surgeries)1930년대에 실시되었지만, 그러한 수술은 1952년 말에 미국에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덴마크에서 수술을 받은 크리스틴 요르겐센(Christine Jorgensen)의 이야기가 언론에 널리 보도되었을 때였다. 요르겐센은 그녀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젠더를 바꾸기를 갈망하는 사람들로부터 수천 통의 많은 편지를 받았다.

 

그러나 매우 적은 수의 미국 의사들만이 그러한 수술을 수행하려 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그러한 것들을 원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 병들어야 한다는 편견을 공유했고, 전문가로서의 지위라는 명성을 잃을까 봐 두려워했다. 이러한 두려움의 한 가지 이유는 젠더를 넘어서는 행동과 동성애의 관련성이었다.

 

1966년에 볼티모어의 존 홉킨스 병원은 수술을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후 2년 반 동안 거의 2,000명의 필사적인 요청을 받았지만 그중에서 24명의 환자들만 수술했다고 설명했다. 의사들은 성별이분법의 전체적인 구조를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면서 적절한사람들만을 골라서 어느 한 젠더에서 다른 젠더로 조심스럽게 옮기는 절차를 개발했다.

 

실제로, 의사들에게서 성별이분법은 훼손되기 보다는 구체화되었다. 존 홉킨스 병원의 의사인 존 머니(John Money)가 그의 환자인 데이비드 레이머(David Reimer)에게 한 행동에서 이것은 명백히 드러난다. 1965년에 태어나 브루스라고 이름 붙여진 레이머는 생후 8개월 때 시술된 서투른 포경 수술 중에 페니스에 생긴 심각한 부상을 간직하고 있었다.

 

머니는 인터섹스에 대한 치료에 있어서 선구자였고, 의사로서 거만한 태도로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다. 브루스 레이머는 남자 쌍둥이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그는 레이머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것을 소년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성적 정체성이 훈육의 문제라는 머니의 믿음을 시험할 기회라고 본 것이다.

 

아들을 위해 무언가를 간절히 해주고 싶었던 레이머의 부모들은, 젊은 노동계급으로서, 유명한 의사와 일류 병원에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브루스가 생식기 수술을 받아서, 브렌다(Brenda)라는 소녀로 길러져야 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 말아야한다는 그의 계획에 동의했다. 브렌다는 정기적으로 머니를 찾아가야 했고, 그곳에서 성적 학대를 구성하는 실험의 대상이 됐다.

 

그 후 수년 동안 머니는 브렌다가 여성으로서 젠더 정체성을 채택했다고 계속 말했지만, 실제로는 브렌다는 15세 때 데이비드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테스토스테론 주사를 맏기 시작했으며, 16세 생일 전에 가슴과 생식기 수술을 받았다. 결국 39세가 됐을 때 데이비드 레이머는 자살했다.

 

이것은 이 분야의 모든 의사들이 그렇게 비윤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의사들은 사람들이 가능한 한 충분한 정보에 입각해서 강요되지 않은 선택을 하도록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젠더 확정 수술이 이란에서 매우 흔하다는 것은 눈에 띄는 일이다.

 

2004년의 한 보고서는 성전환자(transsexual)로 여겨지는 개개인들이 수술을 받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어떤 성별을 원하거나 젠더를 위반하려는 개인들은 강제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여기서 성별이분법을 침식하는 게 아니라 강화하는 방법으로 작용한다.

 

트랜스젠더인 사람들은 만약 그들의 트랜지션(성전환)이 지연된다면, 정신건강의 문제가 커질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제기해야 할 요구들 중 하나는 이에 대한 공공지출을 증대하라는 것이다.(예를 들어 수천 파운드의 비용이 드는 레이저 얼굴 털 제거술은 트랜스 여성에게는 거의 사용 가능하지 않다.) 의료 인력에 대한 교육훈련을 포함해서 말이다.

 

젠더 정체성 클리닉에 대한 의뢰 비율의 엄청난 증가는 또한 서비스가 어떻게 개선돼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동기를 부여한다 - 의료진의 지원을 대신해서 트랜스젠더인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트랜지션을 도울 수 있는 자조 그룹을 위한 역할이 무엇이든 있을까?

 

트랜스 억압의 뿌리

 

지배계급은 왜 성별이분법을 지지할까? 핵심은 오직 일부 사람들만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시스젠더(사회에서 지정받은 것과 본인이 정체화한 것이 일치하는) 여성이었다. 출산은 두 가지 이유로 지배계급에게 중요하다. 수천 년 동안, 그것은 재산 상속의 기초를 형성했다. 보다 최근에 자본주의에서, 지배계급은 노동계급의 물리적 재생산을 보장받는 것에 대해 걱정해왔다.

 

그리고 이것을 확실히 하기 위한 주요 방법으로 다음 세대의 노동자를 출산하는 노동계급의 여성들에 거의 항상 의존해왔다. 한 드문 예외는 18세기의 카리브해였다. 거기서 농장주들은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노예를 사오기 전에, 각 세대의 노예들을 죽을 정도로 일시켰다. 리즈 보겔(Lise Vogel)<마르크스주의와 여성 억압> 책 서문을 쓰면서, 수 퍼거슨(Sue Ferguson)과 데이비드 맥낼리(Dave McNally)는 자본주의에서 물질적 재생산의 중요성을 분명히 했다:

 

여성 억압을 지시하는 것은 생물학 그 자체가 아니다. 노동계급의 재생산을 보장하기 위한 여성 특유의 생물학적 과정(임신, 출산, 수유)에 대한 자본의 의존도는 크다. 이것은 자본과 국가가 여성의 재생산을 통제하고 규제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이 남성 지배적인 젠더 질서를 강화하도록 이끈다.”

 

일부 트랜스 남성들도 지금은 임신, 출산, 수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은 퍼거슨과 맥낼리의 설명에 통합되어야 할 지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대부분의 역사 동안 시스젠더 여성들에게만 국한되어 왔고 여성성의 규범적인 설명에 통합되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전략

 

만약 이것이 과거의 트랜스 억압을 설명해준다면, 미래는 어떨까? 가족은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지배계급 전략의 중심으로 남아있다. 실제로, 신자유주의가 공공서비스의 파괴를 뜻함에 따라, 가족 내에서 제공되는 돌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중요해졌다.

 

하지만 가족을 둘러싼 지배계급의 전략은 지금 논란의 여지가 있다. 1960년대까지, 대부분의 성적 쾌락은 본질적으로 가족에게 해를 끼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1990년대까지 지배적인 지배계급의 접근 방식은 LGBT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가족을 훼손하고, 따라서 탐탁지 않다는 것이었다.

 

전 세계의 다양한 지배계급 미국에서 공화당과 동유럽 전역의 집권여당들 - 은 여전히 이러한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민주당이나 영국의 토리당같은 다른 사람들은 다른 관점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1960년대 이후 섹슈얼리티와 LGBT 사람들에 대한 좀 더 느긋한 태도가 가족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들은 LGBT 사람들을 제거할 필요가 없고, 그보다는 우리를 자본주의와 가족, 그들의 조건에 맞게 통합시키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것은 또한 그들에게 다양성을 지지한다고 주장할 수 있게 해주는 이점이 있다. 물론, 이것은 해방이나 성별이분법의 폐기와는 거리가 매우 멀다.

 

우선, 지배계급이 제공하는 공식적 평등은 중간계급 LGBT 사람들에게 불균형적으로 혜택을 준다. 나머지 우리들에게 있어서 LGBT 억압에 대한 경험은 고용, 주택, 보건의료 같은 문제들이나 노동계급의 일원으로서 우리의 경험과 분리될 수가 없다. 노동계급과 중간계급 LGBT 사람들 사이의 계급적 차이와 자본주의에서 LGBT 억압의 뿌리는, 우리에게 트랜스 해방을 위한 투쟁이 사회주의를 향한 투쟁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사 등록 2018.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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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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