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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故 김용균 님을 추모하며/ 프랑스 노란조끼 투쟁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8. 12. 16.

전지윤



 


외주화를 멈추고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라

 

얼마 전 반올림 송년회에 갔다가 너무나 감사하고 잊지못할, 자랑하고 싶은 선물을 받았다. 반올림과 함께하면서 찍은 내가 나온 사진들을 인화한 것이었다. 이 긴 투쟁의 막바지에 결합해 작은 손 보탠 처지에서 너무 과분한 선물이었다. 그 사진 속에는 2년전 촛불 때, 사망한 노동자들의 이름이 담긴 배너를 들고 광화문 광장에서 찍은 사진도 있었다.

 

하지만 며칠 동안 우리 모두의 기분은 참담하기만 하다. 죽어간 79명 노동자의 이름들을 들고 촛불광장에 섰던 저 사진 속의 그때보다 더 우울하고 갑갑하다. 김용균 님의 처참한 마지막도, 그 주검을 친한 동료들이 직접 수습해야 했다는 소식도, 주검을 수습하고 곧바로 컨베이어 벨트를 다시 돌려야 했다는 소식도 잊혀지지 않는다.

 

왜 이런 비극들이 계속되는지 너무 잘 알면서도, 막지 못하고 있기에 더욱 비참할 수밖에 없다. 반올림 송년회에서도, 1213일 광화문에서 열린 긴급집회에서도 모두들 거듭 이야기했다. 민영화와 외주화와 비정규직화와 이윤몰이가 죽음을 낳고 있다고. 원청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사업주 처벌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정말 오래동안 반복돼 온 이야기이고, 문재인과 민주당이 약속했던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말로만이고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 못 믿겠다. 실천하고 행동하는 대통령이 되라는 고인의 어머님의 절규 앞에 무슨 변명을 할텐가.

 

재벌들과 자한당 무리들이 결사 반대하며 가로막고 있지만, 민주당도 아무 의지를 안 보인 게 진실이다. 오히려 탄력근로제를 들고나와서, 정말 필요하고 통과돼야 할 의제들을 묻어버린 책임도 민주당에 있다.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생명보다 이윤이 우선인 게 자본주의의 본질이다. 그래서 사회가 자본을 강제하고 통제해야 한다. 그런데 사회도 통제할 생각이 없고, 벌거벗은 자본의 논리가 계속 우리의 소중한 것을 빼앗아간다면, 이 사회와 체제는 왜 존재해야하는지 의문이 커질 수밖에 없다.

 

자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이 세상에 나온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10퍼센트의 이윤이 보장되면 자본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투자된다. 20%라면 자본은 활기를 띠며, 50%라면 대담무쌍해지고, 100%라면 인간의 법을 모두 유린할 준비가 되었으며, 300%라면 단두대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범하지 않을 범죄가 없다.”

자본은 사회에 의해서 강요되지 않는 한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에 대해서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다.” “이윤율의 증대 수단은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의 손상, 그의 생존조건의 악화를 내포하고 있다.”(마르크스, <자본>)

 

프랑스 노란조끼 투쟁이 보여 준 것

 

어떤 일이 벌어지면 그 현상과 결과만을, 그것도 다수자와 강자의 시각에서 그려낸다. 고통받으며 벼랑으로 내몰려온 사람들의 목소리엔 관심없다. 주류언론과 그들이 몰아가는 여론이란 대개 이런 식이다.

 

근래 유성기업에 대한 보수언론들의 보도가 바로 그랬다. 일부 조합원들이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는, 8년간 수천건의 고소고발, 손배가압류, 징계해고, 괴롭힘을 겪다가 결국 동료의 죽음까지 보게된 과정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는데, 그것은 모조리 삭제됐다.

 

최근 프랑스 노란조끼 운동에 대한 보도도 비슷하다. 왜 이런 운동이 갑자기 폭발하게 됐는지 그 배경과 요구들은 보이지 않고 폭력, 방화, 파괴만이 부각됐다.(안타깝지만, 그런 보도에 휘둘려 저게 진짜 투쟁이지하는 반응들도 있는 듯 )

 

하지만, 이런 무질서는 전통적인 노조나 좌파 밖에서 미조직 대중이 SNS 등을 통해 조직된 자생적 반란의 불가피한 측면일 것이다. 조직이나 운동에 참가해 본 적이 없던 실업자, 퇴직자, 연금생활자, 영세자영업자, 변두리 주민 등이 처음부터 사회과학과 운동방식을 배운 다음에 투쟁에 나서진 않는다.

 

따라서 처음엔 요구와 주장들이 혼란스럽거나 기존의 편견 등이 섞여있기 마련이다. 분명 유류세 대폭 인상이 분노를 폭발시켰지만, 마크롱 정부가 취임 이후 추진해 온 부자감세, 민영화, 노동유연화 등이 휘발성을 키워왔다. 더 멀게는 일자리, 공공서비스, 사회보장 등이 사라지면서 갈수록 살기 힘들어진 프랑스 사회가 불씨를 만들었다.

 

따라서 마크롱은 이것을 시대착오적이고, 반환경적이고, 폭력적인 운동인 것처럼 비난할 자격이 없다. 유류세 인상으로 기층민중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은 제대로된 친환경 정책도 아니다. 노란조끼는 이제 정의로운 생태전환, 긴축중단, 홈리스 구제, 공평과세, 사회복지 확대, 철도노선 및 학교 폐쇄 중단 등의 요구를 정리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마크롱은 의도적으로 강경진압으로 부상과 충돌을 유도하며 집회의 폭력성만 부각하고 있다. 최초의 사망자도 시위에 대한 강경진압과 토끼몰이 과정에서 나왔다고 한다. 언론은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의 모든 여성,노동,좌파 운동이 총결집한 반성폭력 집회는 제대로 보도도 안하고, 노란조끼 시위는 폭력만 부각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초기에 거리를 두던 프랑스의 노동운동과 좌파들도 노란조끼 투쟁을 지지하며 합동 집회를 제안하고 나섰다. 이런 교류와 협력이 성공적으로 발전하길 기대한다. 마크롱 실패 이후를 노리며, 이번에 나타난 불길을 반동적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개입해 온 르펜과 국민연합이 기회를 잡아서는 안 된다.

 

옐로 이즈 더 뉴 블랙(yellow Is the New Black)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대가 담벼락에 써놓은 구호를 보고 반가웠다. 내가 근래 가장 재밌게 본 미드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오렌지가 새로운 대세)의 패러디였으니. 실제 이 투쟁은 참가자들이 희망도 미래도 없는 밑바닥 변두리 서민들이라는 점부터 오뉴블을 떠올리게 한다. 운동 참가자 중에 파리 거주민은 5%도 안된다고 한다.

 

더구나 오뉴블도 하이라이트는 시즌 4에서 5까지의 교도소 폭동이었다. 그 폭동에서 재소자들이 투표를 통해 요구를 정한 것도 이번 노란조끼 투쟁과 비슷하다. 오뉴블에서도 투표를 통해 정해진 요구들이 전부 정치적으로 올바르진 않았고 별 기발하고 웃긴 요구들도 있었다.

 

오뉴블은, 교도소 안에서도 계급과 인종의 격차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노란조끼 투쟁도 심각한 빈부, 계급격차가 주요 불씨가 됐다. 하지만, 이것이 전통적 계급구도와 조직노동, 좌파정치를 통하진 않고 있다.

 

그 점에서 요즘 뜨거운 포퓰리즘의 문제가 제기되는데, 전통적 도식을 넘어 소수 특권층과 무산대중의 구도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엔 공감이 간다. 엘리트정치를 넘어서고 계급을 확장하며 미조직 대중에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부에선 브렉시트와 비교하던데, 브렉시트는 그 불길이 우파 주도의 인종주의 선동에 이용된 사례였기에 반기기 어려웠다. 반면 이번 투쟁은 분명히 서민감세, 부자증세, 최저임금과 연금 인상, 민주주의 확대 등 정당한 요구들로 나가고 있다.

 

물론 차별과 혐오의 요소도 일부 섞여있고, 지금 르펜의 국민연합과 멜랑숑의 불굴의 프랑스가 모두 인기 상승중이니 안심하긴 이르다. 목소리없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과정은 언제나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또 이번 투쟁은 기후변화가 갈수록 핵심 정치의제로 떠오른다는 점도 보여줬다. 그리고 탄소세같은 방식은 자본의 환경파괴를 막는데, 대중의 지지를 얻는데, 생태적 전환을 이루는데 정의롭거나 효과적이지 않다는 점이 다시 증명됐다.

 

현재 유럽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노란조끼 투쟁은 어떤 면에서 2년전 촛불의 더 뜨거운 유럽판으로도 보인다. 촛불도 조직좌파가 주도한 투쟁은 아니었고, 여혐 등 혼란스런 요소들도 섞여있었다. 더구나 지금 이곳의 현실은 미조직 대중의 자발적 반란이 제도화되며, 중도자유주의 세력에게 공을 넘기면 어떤 갑갑함을 낳는지 보여주는 것 같다.

 

오뉴블에서 재소자들의 평화시위는 교도관들의 폭력 대응 속에 격렬한 행동으로 발전해 갔다.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 며칠전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사망한 80대 여성은 누가 폭력을 책임져야 하는지 보여 준다.

 

오뉴블 시즌 5 마지막의 명장면은 다양한 인종과 정체성의 재소자가 함께 손을 잡고 진압경찰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그런 멋진 연대가 노란조끼 투쟁에서도 더욱 발전해 가기를.

 


(기사 등록 2018.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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