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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창원 재보선/ 미세먼지/ 성폭력과 좌파, 페미니즘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9. 3. 28.

전지윤

 

진보정치의 반목과 창원 재보선

 

얼마전 논란이 된 블룸버그의 문재인은 김정은 수석대변인기사 논란에서 분명 민주당이 기자 개인에게 과하고 부적절하게 공격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기자의 입을 막으며 매국노라는 조리돌림을 부추기는 듯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민주주의의 진정한 걸림돌인, 자한당이 일으키는 냉전 색깔론의 문제가 가려져선 안된다. 여전히 대통령까지 종북몰이의 타겟이 되는게 한국사회다. 북한에 대한 냉전적 혐오는 국제적 프레임이기도 하다. 블룸버그의 데스크도 자유롭지 않았을 것이다.

 

강대국들 속에서 국제적 왕따를 당해온 북한을 대변하는게 뭐가 문제야. 더 대변해야지이런 상식적 생각은 거의 먹히지 않는다. 요며칠도 통일부 장관 후보 김연철 청문회에서 공공연하게 사상검증과 십자가밟기 강요가 벌어졌다.

 

반면 하노이 회담 며칠전 미CIA의 주도로 스페인 북한 대사관이 침탈당한 사건, 김정남이 사망 전에 미국정보부를 만나서 거액을 받은게 드러나고 살인핵심 용의자가 석방된 것 등은 거의 보도도 관심도 받지 못한다.

 

이 프레임은 이 나라 진보정당들을 옥죄는 가장 큰 멍에이고, 수많은 갈등과 분열을 낳은 주요인이기도 하다. 종북몰이에 짓밟히고 이간질에 흔들리면서 감정의 골이 깊게 파여 온 것이다. 창원 성산 재보선을 둘러싼 갈등에도 그것이 드러나보여 참 서글프다.

 

바람직하기로, 창원 성산 재보선은 적폐본당인 자한당을 심판하면서, 중도자유주의적 민주당의 한계를 넘어서 진보적 대안을 세우기 적절한 기회였다. 민주당이 존재감없는 지역이었고, 더구나 문정부가 갈수록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촛불정신을 이어 철저한 적폐청산, 진보개혁을 할 수 있는 건 진보정당들이라는 걸 보여줘야 했다. 이를 위해 노회찬 정신 계승의 정의당과 민주노총 조직 기반의 민중당이 손을 잡았다면 큰 시너지 효과가 나타났을 것이다. 다른 진보정당들도 여기에 힘을 보탤 여지가 생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진보단일화는 삐걱거리다 어그러지더니, 결국 정의당과 민주당이 손을 잡는 단일화만 실현됐다. 새누리당 출신의 보수적 철새인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는 과정도 문제였지만, 이후 민주당에 대한 비판과 선긋기도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소수파인 민중당은 무시하면서 집권 민주당과의 단일화에 치중하는 정의당의 모습도, 종북몰이 과정에서 이미 생긴 서운함과 상처를 더 들쑤신 꼴이 됐다. 이명박근혜 때는 집권우파에 맞선 야권단일화라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민주당이 집권여당 아닌가.

 

물론, 민중당은 이런 정의당만 비난하기보다 자신들이 야권연대라는 이름으로 소수 진보정당들을 소외시키며 민주당과 협력을 우선했던 과거를 성찰하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이정희 전 대표는 이런 소중한 성찰을 보여 준 바도 있다.) 노회찬을 잃은 정의당의 아픔을 더 배려하지 못하고 특정 경선방식만을 고집하지 않았는가 하는 아쉬움도 크다.

 

그런데 지금, 선거와 경쟁의 논리 속에 양쪽 모두에서 이런 성찰이나 배려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거친 공방 속에 서로 상대방의 가장 아픈 상처를 건드리며 감정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드는 비극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창원 지역의 진보적 유권자들 속에서 냉소와 환멸을 일으키며 자한당에게 어부지리를 가져올지 모른다는 걱정만 커진다.

 

문정부 집권 절반이 지나고 있지만 이처럼 진보정치의 분열과 갈등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민중당 김종훈 의원을 끌어들이면 정의당이 평화당과 합쳐 20석을 채우며 원내교섭단체를 복원할 수도 있지만, (그 적절성을 떠나서) 상상도 어려운 일이 돼 있다. 원내에서 민주당이나 평화당하고도 손을 잡지만, 진보정당끼리 협력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총선도, 대선도 이렇게 간다면 자한당과 민주당이 주도권 다툼을 벌이며 진보정당들은 주변화되는 구도가 크게 바뀌긴 어려울 수 있다. 종북몰이와 이간질을 통해서 이런 구도를 만들어낸 권력자들은 뒤에서 웃고 있지 않을까.

 

 

미세먼지와 자본주의, 중국 책임론

 

문재인을 깔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게걸스럽게 활용하는 조선일보, 요즘 이들의 타겟중 하나는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다. 트럼프가 하노이 회담을 깽판치면서 사기가 오른 자한당과 조선일보는 요즘 냉전적 색깔론 마녀사냥에 만취했다.

 

덧붙여 감학의, 버닝썬 문제 등을 다루는 조선일보의 내로남불, 적반하장도 지켜보자면 헛웃음에 숨이 찰 지경이다. 자기들이 앞장서 피해자가 누군지 파헤치고 조회수에 매달리다가, 또 그런 새태를 짐짓 꾸짖는 기사를 올리는 걸 보자니...

 

그런데 이런 조선일보가 요즘 가장 열 올리는 문제중 하나가 미세먼지다.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이고 사람들의 불안과 걱정이 얼마나 대단하지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문제는 자본주의와 산업화가 낳은 재앙이면서, 인류가 하루빨리 생태적 전환에 나서야 한다는 지구가 보내는 강력한 경고임이 분명하다.

 

특히 최근에는 탄소경제가 낳은 스모그가, 지구온난화가 낳은 기상이변 속에 대기 중에 정체하면서 최악의 상황이 지속됐던 것 같다. 더구나 이 문제는 마스크, 차량2부제, 공기청정기같은 단기적 대책이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중국 등 주변 나라에서 오는 요인들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일국적 대책도 크게 효과가 없을 것이다.

 

오로지 장기적 국제적 대책만이 해결책이다. 탄소경제에서 탈피하면서 석탄, 석유, 핵 발전소들을 폐쇄하고, 청정 대중교통과 재생에너지에 기반한 사회로 빨리 전환하는 것만이, 그것도 국제적 차원에서 그런 전환이 이뤄지는 것만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대책엔 아무 관심없고 막으면서 문세먼지라면서 문정부 공격에만 열올리는 조선과 자한당 쪽은 정말 너무 한심하다. 무엇보다 이런 방향 전환은 자기 눈앞의 이윤에만 관심있는 기업과 시장에 맡겨선 절대 이뤄질 수 없다. 디젤차를 팔아 돈을 벌던 기업들이 알아서 그런 공장을 풍력 터빈과 태양광 패널 공장으로 바꾸진 않을 것이다.

 

오로지 우리 모두의 건강과 생명, 지구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대한 관점에서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내, 탄소경제 기반 세력들의 저항을 분쇄하면서 과감하고 일관되게 그 방향을 나갈 때만이 문제가 풀려갈 것이다. 그 점에서 중국이 시장개혁 과정에서 최악의 스모그에 시달렸던 것, 이후에 국가 규제로 그나마 문제요인이 줄어든 것은 모두 시사적이다.

 

물론, 중국 공산당이 주도해 농민과 자연환경을 수탈하고 노동자를 쥐어짜면서 진행된 시장개혁의 큰줄기는 여전하다. 그런데 지구온난화, 온실가스, 미세먼지 등의 문제가 논의될 때 항상 나오는 중국 탓은 맞기도 하지만 틀리기도 하다.

 

중국이 수십년 동안 앞뒤 가리지 않고 온갖 공장과 투자를 유치하면서 세계의 공장이 된 과정에서 엄청난 온실가스와 유독가스들이 만들어졌고, 그것이 국경을 넘어서 크고 작은 피해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맞다.

 

하지만, 바로 그 온갖 공장과 시설을 이전한 것이 바로 GE, 포드, GM, 애플 등 미국과 유럽 등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들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틀렸다. 많은 정부와 기업들이 온실가스, 유독가스를 배출하는 오염산업들을 중국으로 수출, 이전했다. 그들은 환경규제를 피하며 싼 임금을 찾아서 중국으로 갔다. 많은 오염기업들이 부유한 서유럽에서 가난한 동유럽으로 이전했던 것을 볼때, 서유럽 일부 국가의 생태적 전환도 칭찬만 하긴 어려운 점이 있다.

 

위험, 오염, 환경파괴의 외주화, 하청화는 국제적으로 벌어졌던 것이다. 한국도 자유롭지 않다. 90년대부터 한국의 수많은 석유화학, 화학섬유 업체들이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했다. 그 공장들이 배출한 유해물질과 유독가스가 국경을 잘 구분해서 중국의 하늘과 바다만 오염시키고 넘어오지 않길 바랬다면 그처럼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노동해방투쟁연대의 의미있는 입장 표명

 

 

노동자연대 지도부를 향해서 성폭력 사건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요구한 노동해방투쟁연대() 동지들의 이런 입장 표명은 정말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http://nht.jinbo.net/bbs/board.php?bo_table=notice1&wr_id=62&fbclid=IwAR274Q6WCtA3WVADkHmaWbyeqEgVttg3wBI_hnIJsGxIw0J4lLHXvXtmawQ

 

그동안 이 문제에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를 비롯한 많은 인권, 여성, 소수자, 난민인권 단체분들의 관심과 도움이 있어왔지만 상대적으로 노동, 좌파, 민중운동 쪽에서 관심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아 왔던 게 사실이다.

 

왜 그럴까 야속하고 속상해하면서 고민해 본 적도 많다. 역시 억압과 차별 문제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소홀하고 더 중요한 다른 문제들이 있다고 보는 것일까, 그동안 같이 긴밀하게 협력해온 관계 때문에 서로 얼굴 붉히기 싫은 것일까, 사회정의와 진보를 말하지만 막상 운동사회 내부의 부정의에는 무관심한 것일까, 괜히 끼어들었다가 노동자연대 사람들에게 보복당하는게 부담스러운 것일까...

 

하지만 이번 입장 표명은 그런 답답함과 속상함을 날려주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이 문제에 대해서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고 철저하고 집요하게 방대한 관련 자료들을 검토하고 조사한 결과로서 입장을 표명한 것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사실 이런 문제에서 관련된 자료와 증언들을 샅샅이 찾아서 읽고 조사하고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매우 번거롭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특히 사회적 이슈가 아니라 운동사회 내부의 치부로 보이는 사건의 경우에는 더욱 그럴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골치 아픈 문제와는 거리를 두겠다는 식의 소극적 태도를 보이기 쉽다. 그것은 당장 그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서운할 수 밖에 없다. 또 노동자연대 지도부는 그것을 노리고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방대한 자료와 글을 생산해 놓고 잘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라는 식의 압박을 가해 왔다.

 

하지만 이 동지들은 그 어렵고 부담스러운 일을 아주 무게있고 성실하게 수행했다. 이 동지들은 철저한 조사과 분석, 고민과 판단을 통해서 노동자연대 지도부의 행동은 폭력이고 가해였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처럼 성폭력 피해생존자들을 낙인찍고 괴롭히면서 아무리 여성해방과 반성폭력을 겉으로 내세워도 아무 의미가 없고 이중잣대에 불과하다는 것도 명확히 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좌파의 명예와 신뢰를 스스로 실추시켜온 것이며, 그야말로 여성해방을 위한 연대와 투쟁을 가로막는 행위였음을 밝히고 있다.

 

성폭력 가해자의 오락가락하는 태도와 진술에서 자신들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고 하면서, 피해생존자를 낙인찍고 괴롭히며 우리가 닥치고 사과해야 하냐?’고 되묻는 노동자연대의 태도가 얼마나 어이없는것인지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노동자연대 지도부에게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반성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기 전까지는 공동의 활동을 제안하지 않을 것이며, 계속해서 문제제기를 할 것이라고 분명히 하고 있다. 운동사회 안에서 이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잘 알기에 더욱 반갑고 감사하다. 이것은 운동사회 안에서도 고립감을 느껴온 피해자들에게 큰 힘과 용기를 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동지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좌파로서, 동지로서 필요한 것은 서로 치부를 눈감아 주고 못 본 척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분명히 지적하고 극복하고 벗어나서 더 나은 좌파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노동자연대 지도부가 또다시 이런 동지적인 비판과 충고를 한 귀로 흘리지 않기를 기대한다. 사과도 반성도 않으면서 피해자가 지치고 고립돼 결국 사람들이 관심과 기억에서 잊혀지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그런 태도가 운동사회에서마저 지속돼선 안 된다.

 

 

<페미니즘의 도전>이 좌파에게 주는 영감

 

최근에 세미나를 하면서 <페미니즘의 도전>(정희진)을 다시 봤는데 역시 볼 때마다 영감을 주는 좋은 책이다. 특히 이번에는 피해자가 미투에 나선지 1년이 넘도록, 아직도 여전히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고 있는 노동자연대 분들이 보고 진지하게 돌아봤으면 하는 문구가 더 다가왔다.

 

피해자 진술의 객관성은 피해자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피해 여성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사회의 태도에 따라 결정된다. 다시 말해 성폭력 사건의 객관성은 피해 여성이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여성들의 목소리를 존중하는가, 아닌가에 달려있다.”

 

그 분들이 여전히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단체 홈페이지에 미투 운동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글을 크게 강조해서 걸어두고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핵심은 자신들이 과연 피해여성의 목소리를 존중하고 들을 준비가 돼 있었는지인데, 여전히 엉뚱한 곳에서 답을 찾고 피해자만 탓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폭력은 언제나 피해 여성 개인의 고통보다 그 여성이 속한 집단의 명예와 관련되어 논의되어 왔다... 피해 여성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명예를 더럽힌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자신이 당한 폭력을 거론하는 여성은 공동체 내부의 치부를 폭로한 배신자로 간주된다.”

 

이 구절도 정말 공감이 많이 갔다. 그 분들에게는 오로지 이것이 자기 단체의 명예 문제일 뿐이었다. 그래서 피해여성과 지지자들을 복수심에 가득찬 배신자라는 식으로 거듭 공격했고, 자신들이야말로 명예가 훼손당한 피해자라고 지금까지도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 같다. 이 경험들은 내가 그동안 그 단체에서 배웠던 많은 것들을 다시 재검토하게 만들었고, 새로운 고민을 하게 만들어줬다.

 

상처를 준 사람은 상처에 대해 연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상처받은 사람은 그것의 구조와 원인, 역사를 규명하려 한다. 상처받은 마음이 사유의 기본조건이다. 상처가 클수록 더 넓고 깊은 세상과 만난다.”

 

그리고 이제 나는 마르크스, 레닌, 트로츠키... 가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이미 답을 제시해줬다는 생각에 예전만큼 공감하기 어렵게 됐다.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더욱 더 풍부하고 다양한 해석에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도 그 중에 중요하게 포함돼야 하고, 무엇이 더 중요하고 우선이라는 것은 정해져 있지 않다.

 

가부장제는 성별과 계급 문제를 분리, 대립, 택일해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억압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만이 인식 주체라고 믿는 남성의 생각 속에서 가장 중요한 억압은 자기가 경험한 억압이다. 그 외의 사회문제는 부차적이고 특수하고 주변적인 것이 된다.”

 

이처럼 억압을 위계화하고, 선별해서 어떤 것만 가시화를 허용하는 태도는 미투운동이 터져나오고 나서도 우리 사회 전체에서 여전하다. ‘안태근에 대한 미투는 믿을 수 있고, 안희정에 대한 미투는 의심스럽고, 양예원은 지지할 수 없고...’ 이런 식으로 남성중심 사회는 또다시 미투에 나선 피해자들도 위계화하고 선별하려 한다.

 

노동자연대 분들이 자신들의 잘못은 결코 인정하지 않고, 절대로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으면서도 안희정을 규탄한다거나,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에게는 각별한 관심과 연대를 보내는 것을 보면서도 이런 위계와 선별을 느낄 수 있어서 씁쓸하다.

 

페미니즘은 정체성의 정치이므로 한계가 있고, 총체적이고 보편적인 마르크스주의만이 해방의 길을 제시할 수 있다고? 글쎄. 페미니즘을 특정한 정체성의 정치로 협소하게 규정하는 것이 더 문제가 아닌지 <페미니즘의 도전>을 다시 보면서 생각하게 된다.

 

페미니즘은 정체성의 정치를 벗어나야 하고, 실제로 정체성의 정치 그 이상의 세계관이다.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자만의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철학인데, 왜 여성만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가.”

 

 (기사 등록 2019.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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