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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왜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을 어르고 달래란 말인가”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9. 4. 25.

[근래 버닝썬 게이트와 김학의 성범죄, 단톡방 성희롱 등이 이슈가 된 상황에서 성폭력과 남성성에 대해서 한 다른세상을향햔연대 회원과 인터뷰를 했다. 앞으로 이렇게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회원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직접 듣고 공유하는 기회를 더 많이 가지려고 노력할 것이다.] 





 

* 남성들의 이런 잘못된 문화를 접하거나 알고 있었나?

 

알고 있었다. 내 예전 남자친구들도 대부분 그랬다. 아주 옛날 남자 친구는 오양 비디오를 구해 와서 같이 보자고 했다. 그런 것을 봤다는 사실을 부끄럼 없이 이야기하는 게 당시의 사회 분위기이기도 했다. 진보적 활동가라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디지털 성폭력 영상을 보다가 들키니까 처음에는 부끄러워하더니 나중엔 당당하게 보란 듯이 바탕 화면에 깔아놓고 봤다. 제목부터 자취방에서 여친과뭐 이런 식이었는데, 연출된 것이라는 식으로 둘러댔다. 좌파 단체도 그런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범죄라는 것은 과도한 이야기라는 식으로 말하던 것도 기억난다.


* 성적 대상화를 직접 겪거나 문제의식을 느낀 적이 있었나?

 

애인에게 가슴이나 신체 부위별로 사진을 찍어서 보내라거나 이런 요구를 받아본 여성들이 많을 거라고 본다. 여성들은 그게 일상인 거 같다. 직장에 들어가서 보니 비혼 여성은 툭하면 아무하고 엮는다. 술자리에 가면 남성 상사나 공무원들 옆자리에 앉으라고 한다. 나이들면 더 젊은 여성들에게 그런 역할이 맡겨지는 걸 보는 것도 참 씁쓸하다.

 

* 소수의 남성만이 이런 짓을 하며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면 안 된다는 말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솔직히 그 입을 닫으라고 말하고 싶다. 소수가 하고 다수가 안하는 게 아니라 다수가 하고 소수가 안하는 거 같다. 그런 문화에서 자유로운 사람을 꼽기가 더 어렵다.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은 그래서 조심하라는 충고인데 그게 왜 문제이고 그 말로 상처받았다고 난리인지 모르겠다.

 

권력은 상대적이라서 여성인 나도 직장 후배나 또는 이주민 여성에게는 우위에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내가 별 뜻 없이 한 말이 상처가 된 경우도 봤다. 누구도 위치에 따라서 가해적 측면이 있을 수 있으니 자기 위치를 상대화해서 봐야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도 그렇듯이 남녀관계도 마찬가지인데 왜 특히 그토록 반발하는지 모르겠다.

 

* 남성연대가 존재하고 작동한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너무나 당연하다. 남성연대가 없다면 유리천장이 만들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남자들끼리만 통하는 이야기, 편한 이야기, 자기들만 아는 이야기와 분위기를 자주 느낀다. 사회생활하면서 보면 그 분야에 말단은 전부 여자이고 훨씬 많은데 기관장, 중간관리자는 거의 전부 남자인 경우가 너무 많다. 그런 것을 보면 너무 황당하다. 여성은 결혼하고 애도 낳아야 하고 어쩌고 하면서 배제하면서, 자기들끼리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 국가와 언론의 대응을 보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버닝썬도 남자가 맞으면서 신고가 되고 문제가 시작된 거 자체가 황당한 일이다. 거의 시체 상태로 강간당한 여성을 보고서 신고해도 넘어가 왔던 게 경찰이다. 남자가 맞고 신고하니까 그래도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여자들도 그런 곳인 줄 뻔히 알면서 즐기려고 간 것 아니냐는 남성들의 태도가 이런 것을 뒷받침했다고 본다. <조선일보>이럴 수가! 충격!’이라면서 자세히 보도하면서 클릭수 낚시질을 하고, 피해자가 누군지 계속 추론하던데 너무 끔찍했다. 누구도 피해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보지 않는다는 게 강하게 느껴졌다.

 

진보십치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문제다. 자기들은 큰 일하는 사람들이란 식으로 고통을 상대 비교한다. ‘김학의가 더 중요하고 크다. 버닝썬은 연예인 지라시에나 나올 사건 취급하더라. 피해당사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끔찍한가. 연예인이 결부되면 찌라시고 정치인이 결부되면 큰 사건인가. 나중에 경찰의 유착이 드러나니까 그때서야 더 관심을 갖고 그걸 강조하더라.

 

기본으로 버닝썬에서 나타난 일들에서 자유로운 남성은 손에 꼽힐 것이라고 본다. 대학에서 남학생들끼리 단톡방에서 동기나 선후배 여성 외모 품평한 게 일상인 것도 드러나지 않았나. 보통 좋았다고 기억하는 옛날 드라마나 영화도 지금 보면 불편한 게 많다.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이병헌이 이은주의 외모를 묘사하는 장면, 남자끼리 모여서 이은주를 품평하는 장면, 이런 거 지금보면 역겹다. 그런 게 일상이었던 것이다.

 

* 결국 버닝썬 게이트 등의 핵심이 뭐고 어떤 개선 방안이 있다고 보는가?

 

강간문화가 문제인데 대부분은 남성들은 여성들이 이런 문제로 고통 받고 죽어가도 왜 그러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정신 차렸으면 좋겠다. 남자들이 다 사라져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김지은 씨의 피해를 보면서 직장 신입사원이면서 을의 위치에 있는 남성들이 공감한다는 말이 있던데 그런 것에서 희망을 봐야 하는가 싶다. 그런 위치와 위계관계 속에서 자신을 넣고 생각을 해보면 좋겠다.

 

그러나 남자로 태어나면 평생 그것을 알기가 참 어려운 것 같다. 피해자들에게 가해자들을 어르고 달래고 참고 대화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이제 그만 피해자 자신들을 위해서도 잊으라는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기가 막힌다. 피해를 당한 여성들이 폭로하고 나설 때마다 처음에는 나처럼 이런 사람들이 있다면 숨어있지 말고 나서달라고 하는데, 그 사람들도 나중에는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 알았다면 나서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서라고 말을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 무엇을 보여주는가. 용기있는 여성들 덕에 감사하고 감동을 받지만 내 가까운 사람들이 나선다면 하라고 할지 잘 모르겠다



(기사 등록 2019.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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