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박노자] 우리 시대, 전혀 특별하지 않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인간들은 늘 한 가지 흔한 사고의 오류를 범하곤 합니다. 본인들이 사는 시대가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사상 초유의 기술 등 발전의 시대라고 늘 착각하곤 합니다. 또 반대 방향의 착각도 자주 목격됩니다. , 이 시대 만큼의 대대적인 위기가 여태까지 없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엄밀히 따져보면, 우리도 우리 시대도 그렇게까지 특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겪는 기술의 발전도 전혀 특별하지 않으며, 우리가 겪는 위기들도 초유도 아니며 '사상 최악'과도 (아직은) 사이 멉니다. 우리는 그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말기의 한 시기를 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는 파산돼도 (그 파산은 이미 시간의 문제죠) 이건 "역사의 종말"이 아닐 뿐더러 아마도 - 아쉽게도 - 자본주의의 종말도 아닐 것 같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요즘 "4차 산업혁명" 같은 과장된 언사들을 좋아하는데, 사실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굳이 그렇게 이야기하자면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혁명적 시기는, 산업혁명 (18세기말~19세기초) 이후로는 바로 "제국주의 황금기"이기도 하고 사회주의 운동의 태동기이기도 한 19세기말~20세기초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기술의 세계는, 휘발유로 돌아가는 자동차(1885)와 비행기(1903)부터 라디오(1895)나 가장 원시적 형태의 텔레비전 (1909)까지 대체로 이미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거의 완성됐습니다. 그다음에는 그 발명들이 계속 개선돼나갔고 지금도 그 개선 과정은 전개중입니다. 참고로, 우리가 지금 쓰는 주요 개념들도 - 계획경제나 과독점 경제, 복지 국가까지 - 거의 다 이미 1914년 이전에 이미 나와 있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을 "IT 시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 주위의 대부분의 기기들의 원형들은 이미 전후에, 대략 1980년대까지 어느 정도 개발돼 있었습니다. 제가 지금 PC의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데, 최초의 PC(IBM610)는 이미 1957년에 출시됐습니다. 제가 지금 이 순간에 쓰는 인터넷의 원형인 ARPANET1969년에 개발됐으며, 전자우편은 1971년부터 존재합니다. , 지금 대한민국을 먹여살린다는 휴대폰은 처음으로 1984년에 나왔죠. 저는 그 때에는 초5이었습니다. 만의 하나에 제가 1984년에서 2019년으로 그 때 타임머신을 타고 올 수 있었다면.... 아마도 오늘날 세계를 대체로 별 놀라움없이 관찰했을 것입니다. 물론 지난 30여년 동안 휴대 통신을 포함한 각종 통신 기기들이 많이 발달된 건 사실이지만....우리는 근본적으로 1980년대 시대의 연장 선상에서 지금도 살고 있는 거죠.

 

"4차 산업 혁명"은 역사학과 아무 관계없는 신화에 불과합니다. 역사의 프리즘을 통해서 본다면 생산성/생산력 증강의 과정은 그저 그냥 보통의 속도로 진행돼가고 있으며, 19세계말~20세기초나 전후 초기와 같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시기들과 비교했을 때에는 별다른 혁명적 도약은 관찰되지 않고 있습니다. 관념의 세계는... 1980년대의 "포스트모던"의 물결과 그 뒤로는 '발전'보다는 차라리 퇴보에 더 가깝습니다. 오히려 1950년대에 이미 학자로 대성한 노암 촘스키 같은 베테랑 지식인들의 이야기들은, "포스트모던" 류의 지식 사기꾼들을 배경으로 하면 더 참신하고 재미있게 들립니다. 그런데 물질적 생산이나 개념, 관념의 세계뿐만 아니라 오늘날 세계 정치도 전혀 새롭지도 특별하지도 않습니다. 크게 봐서는 신자유주의의 위기 속에서는 1930년대 권위주의의 "라이트 변종"(light version)이 세계적으로 판 치는 것입니다.

 

금일의 중-미의 "무역 전쟁"을 보면 1930년대의 미--불 사이의 "경쟁적인 화폐 가치 평가절하" 같은 역사적 사건들이 바로 연상됩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위기의 자장에 빨아들여지는 국가들이 화폐 가치를 일부러 낮추고 화폐 유통량을 늘리고 수출을 장려하면서도 수입에 재한을 두곤 했습니다. 차이라면, (아직) 위기 심도의 차이죠. 아마도 곧 세계적 경제 위기로 이어질 듯한 오늘날 세계 경제 침체는 그 심도에 있어서는 1930년대 대공황과는 (아직) 다르며, 그만큼은 신권위주의의 강도나 대외 강경책의 강도도 (아직) 다릅니다. 아베는 확실히 전전 일본을 그 이상 모델로 삼는 듯하지만, 만주 침략한 1931년의 일본과 그저 한국에의 무역도발 밖에 별 것 못/안하는 2019년의 일본은 확연히 좀 차이 나는 거죠.

 

자본주의가 지금 '기술 혁명'을 이루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다른 형태로 전환되는 것도 아닙니다. 트럼프 따위들은 권위주의화의 길로 가는 것만큼 확실하지만, 독일 등이 의회민주주의 형태를 완전히 벗어난 1930년대와 달리 아직도 핵심부의 그 어느 국가도 노골적인 "완전한 권위주의"로 그 정치적 궤도를 수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러시아나 중국, 일본의 경우에는 20세기 후반기의 그 역사적 통치 형태 (러시아나 중국은 당-국가 메카니즘, 일본은 사실상의 일당 관료 독재)들이 그저 더 많은 중앙집권성의 방향으로 천천히 '진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가 - 1930년대 초의 '자유 무역 체제'나 금본위제처럼 - 고장나는 데에 따라서 주요 경제들이 이미 점차 더 많은 국가 개입 쪽으로 가고 앞으로 더욱더 그렇겠지만, 아직은 국가 개입의 역사적인 정점인 1930년대나 1950년대에 비해서는 그 강도가 다소 낮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마도 앞으로 또 한 번 2008년과 같은 공황을 겪어야 레이건이나 대처 이전의 국가 개입의 레벨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구 온난화는 수억 명에게 엄청난 재앙이 되고 수많은 동식물의 종류들을 이미 멸종시켰지만, 사실 지구 총자본으로서는 또 하나의 '대목'이 될 뿐입니다. 오늘날 중국에서 보는 바와 같이 '녹색 기술'이 기업들의 매우 유익한 투자처가 되는 것이죠.

 

"4차 산업 혁명"은 지적 사기며, 트럼프 시대 미국이 보여주는 패권의 치명적 위기는 사실 1930년대의 쇠퇴해가는 패권 국가, 즉 영국을 많이 방불케 합니다. 새로울 게 없는 국면? 그런데, 1930년대 그 다음에 어떤 세계적 대사건이 터졌는지 우리가 잘 가억하지 않습니까? 홀로코스트, 대량 살육, 세계 곳곳에서의 징병과 징용, 그리고 '위안소' 등 각종 전시 성범죄들의 시대가 바로 온 것이죠.

 

우리가 1940년대 초반 광기의 시대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채 지금 바로 또 하나의 광기의 시대를 향해서 빠른 속도로 진행하고 있다는 것은 저의 솔직한 인상입니다. 아직은 위기의 심도는 1930년대와 다르긴 하지만, 위기가 더 깊어지는 것은 아마도 가까운 미래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위기를 틈탄 군사주의, 열강 사이 군사 긴장의 질주를 우리가 지금 멈추게 하지 않으면 몇 년 후에는 이미 늦을 수 있습니다. 역사는 종언을 고하지 않았습니다. 학살과 전시 범죄들의 역사도요



(기사 등록 2019.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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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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