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성평등, 성폭력, 그리고 좌파

전지윤

 



20대 남성과 성평등, 그리고 남성성

 

20대 남성들의 일부가 자신들이 역차별 당하고 있다는 피해의식 속에 페미니즘에 적대감을 보이고 있다는 다양한 통계와 사례들이 제시돼 왔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서 문정부의 개혁 배신을 탓하지만, 번지수가 틀린 거 같다. 개혁 배신이 불만이라면 더 강한 개혁을 요구해야지 왜 페미니즘에 화살을 돌리는가.

 

남성과 여성의 공통의 이해관계를 위한 단결을 주장하는 것도 너무 원론적이고 설득력이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아래쪽과 위쪽의 이해가 다르지 않고 서로 잘 지내야 한다는 주장은 위쪽에서만 편하게들리기 쉽다. 지금의 현상은 기울어진 운동장과 편파적인 심판을 바꾸자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나타난 반발로 보인다.

 

노동시장, 연애결혼시장, 법과 제도에서 공정한 경쟁과 실력이 존중되지 않고 오히려 남성이 역차별을 겪고 있다는 논리다. 여성이 남성을 돌보거나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자신을 이기는 경쟁자로 나선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한국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여성이야말로 너무 오래동안 공정성을 보장받지 못해 왔고 남성들은 상대적 특권을 누려왔다는 것이다. ‘여성스럽게차분히 책을 보거나 꼼꼼히 과제를 챙기지 않고, ‘남자답게거친 운동을 하고 어울려 술을 먹다가도 성별 위계의 덕을 볼 수 있었다.

 

결국 이 문제에 접근하려면 가부장적 자본주의와 그것이 요구하는 남성성이라는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자본주의와 민족국가는 작업장과 군대로 동원돼서 규율있는 노동을 수행하고 가장으로서 생계부양을 하며 국가에 충성하는 남성성을 요구한다.

 

자신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허위의식 속에 그런 요구에 순응하는 남성들은 부분적 특권과 그에 따라붙는 부담도 짊어지게 된다. 식민지, 전쟁, 분단을 거쳐온 징병제 국가인 남한에서는 군대가 특히 남성성 형성에 큰 트라우마적 작용을 해 왔다.

 

여기에 97IMF 전후로 본격화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산업 구조개편, 장기 침체와 저성장이 운동장 전체를 밑으로 가라앉게 해 왔다. 더구나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이중적 수탈에 시달리던 여성들이 운동장의 기울기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에서 일부 ‘20대 남성 현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것을 새롭다고만 보긴 어렵다. 한국사회와 다수 남성은 원래부터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 반페미니즘적이었기 때문이다. 일부 20대의 반페미니즘에서 기성세대와 다른 새로운 것이 있다면, 가부장제의 부담은 거부하면서 특권의 상실에는 분노하는 정서, 가부장제 구조의 상대적 약자에 대한 동정과 시혜의 시선에서 적대로의 변화,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허위의식에서 오히려 자신들이 역차별 받는다는 피해의식으로 전화와 두가지 모순된 의식의 결합 등에 있는 것 같다.

 

이것이 최근 많은 대학들에서 총여학생회의 폐지를 추동한 동력일 것이다. 이것은 마치 70년대 한국 노동운동을 주도한 여성 노동자들의 분출에 자본의 구사대로 이끌렸던 일부 남성들의 정서와도 유사한 면이 있다. 그래서 페미니즘만이 아니라 난민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타적 태도와도 연결돼 있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결국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남성성의 독성을 직시해야 한다. 거기에는 여성을 대상화하고, 성별이분법에서 벗어난 소수자를 배척하며, 자신과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성찰을 방해해 분노와 좌절감을 타자에 대한 적대와 폭력으로 이끄는 메커니즘이 있다. 그것이 자본주의에서 착취적 사회관계 유지와 노동력 재생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남성성의 위기에서 비롯한 일부 20대 남성의 반페미니즘은 이해와 변호의 대상이기 보다 비판과 극복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신자유주의)에 맞선 남녀의 단결이 중요하다면서 성차별적 관행을 간과하거나 타협하기보다, 비판과 극복의 화살은 가부장제, 성별이분법, 그것이 강요하는 남성성이라는 표적을 향해야 한다.

 

‘20대 남성과 성평등, 그리고 페미니즘토론회를 돌아보며

 

지난달에 있었던 ‘20대 남성과 성평등, 그리고 페미니즘토론회를 좀 뒤늦게 돌아보면, 많은 분들이 오셨고 여러모로 유익하고 너무 흥미진진한 자리였다. 발제자인 박노자 샘과 토론자인 김홍미리 샘의 기여로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자리였다.

 

질문과 제기도 엄청 많이 나왔는데 거의 참가자의 절반이 뭔가를 써서 제출한 거 같다. 발제와 토론, 질문과 답변들을 들으면서 뭔가 복잡하던 머리 속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자원과 자본의 부족을 여성의 몸과 노동을 수탈하며 성장과 축적에 성공해 온 한국 자본주의. 이 체제가 신자유주의를 거쳐 이제 유효성이 다한 고장난 상태에서, 또다시 새로운 성차별적 공격을 시작한 것이 지금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특권을 성찰하지 못하는 일부 남성들은 체제가 가한 스트레스로 인한 번아웃을 여성과 페미니즘이라는 애꿎은 화풀이 대상에게 쏟아내고 있다. 과연 누구이고 존재하는지도 의심스러운 워마드라는 허수아비를 알리바이 삼기도 하면서 말이다.

 

자신들이 오히려 역차별당하고 있다면서, 성차별이 과연 존재하는지 입증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무지할 수 있는 권력에 기댄 성차별주의. 누구도 예외일 수 없고 스스로 계속 노력하지 않으면 들러붙는 혐오에 대한 지적도 많은 공감이 갔다.

 

결국 그런 반페미니즘적 일부 남성들을 이해해주면서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고민하기보다, 더이상 사회와 체제가 강요하는 남성성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힘을 모으고 더 목소리를 높일 것이냐가 중요한 것 같다.

 

남성동성적 공동체에 편입되길 거부하는 아싸력이 필요하고, ‘참조할만한 남성성의 모델이 없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는 지적도 타당하고 인상적이었다. 벨 훅스가 백인우월주의-가부장제-자본주의가 요구하는 남성성에 맞서기 위해 필요하다고 지적했던 새로운 페미니즘적 남성성이 중요한 상황같다.

 

성폭력 생존자들의 투쟁이 만들어온 역사와 성과

 

지난달 노동자연대 운영위원 성폭력 사건의 생존자인 제이 동지와 같이 아산에 내려가, 이 사건에 큰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고 계신 권수정 동지를 만났다. 너무나 치유와 위로가 되는 좋은 시간이었다.

 

금속노조 충남지부 옆에 있는 은행나무길을 같이 걸으면서 너무 멋진 경치에 감탄했고, 비건인 나와 제이 동질를 배려해서 예약해주신 한식당의 맛있는 음식들도 배터지게 먹었다. 특히 두부탕수는 별미였다. 마침 권수정 동지도 최근 채식을 시작하셨단다. 역시 우리는 서로 통하는 게 많은 동지들이었다.

 

많은 흥미있는 이야기들을 들었는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권수정 동지가 2000년대 초반에 금속노조 안에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로서 투쟁했던 경험이었다. 상경 투쟁 농성장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이었는데, 사건 자체는 곧 성폭력으로 인정받았지만 문제는 지속되고 확대된 2차가해들이었다.

 

믿었던 동지들과 조직 안에서의 2차가해들이야말로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힘들게 만든 핵심이었지만, 권수정 동지는 굴하지 않고 투쟁해서 결국 대의원대회까지 가서 문제를 인정받고 승리했다. 금속노조와 노동운동안에서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가해라는 개념이 아직 낯설었던 상황이었기에 이 투쟁은 더욱 더 의미가 있었다.

 

그 후 이런 개념과 관점들이 금속노조의 규약과 절차 등에도 반영되고, 피해자에 대한 지원과 치유 프로그램 등도 도입될 수 있었다니 매우 역사적 의의가 큰 투쟁이 분명하다. 들으면서 이 투쟁은 반드시 노동운동 역사에 중요하게 기록되고 더 많이 알려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아주 많이 들었다.

 

이처럼 권수정 동지 자신이 성폭력 사건의 생존자로서 소중한 승리의 기록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라는 점이 우리에게 너무나 큰 위로와 힘이 됐다. 성폭력 피해자가 고립되고 결국은 운동에서 밀려나기 일쑤이고, 반면에 가해자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활동하면서 연대를 확대하는 일이 아직도 많은 운동사회에서,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보통 누가 과연 내 이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을까하는 갑갑함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권수정 동지를 만나고 나서 제이 동지는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이미 그 마음을 넘어가 있는 동지를 만나고 왔다고 했다.

 

다른 더 중요한 문제들도 많은데 언제까지 이 문제에 매달릴 거냐는 분들, 무관심한 사람들, 나아가 그만 좀 하라는 사람들, 심지어 반성과 사과를 요구한 것이 가해자에 대한 괴롭힘과 가스라이팅이라는 사람들까지 보면서 실망한 마음의 상처가 다 사라졌다. 그리고 권수정 동지같은 분들이 온 몸으로 전진시켜온 투쟁의 성과를 우리가 후퇴시키는 일은 결코 없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가해를 중단하고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말해줘야 한다

 

민주노총의 권수정 동지가 노동자연대 운영위원 성폭력 사건의 생존자를 위해서 자기 일처럼 나서서 목소리를 내고 싸워주고 있는 것은 너무나 감동적이다. 이 더운 날씨에, 휴가기간 일텐데도 거침없이 문제제기를 해주고 계시다. 나도 너무 고마워서 가슴이 뭉클하고 눈가가 뜨거워질 정도이니 피해생존자 자신에게는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표현 방식이 직설적이거나, 직접 누군가를 지목해 문제제기하는 방식이 좀 과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그런 용기를 내지 못해서 계속 주저하고 에두르고 주춤거렸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동시에 저렇게 용기있게 앞장서 나서다가 또 노연 분들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상처받고, 주변에서 고립되고 지치고 그렇게 되시면 어쩌나 하는 미안함과 걱정도 많이 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권수정 동지가 올린 공개적인 문제제기들을 보다가 어떤 노연 회원분이 답한 것을 보았다. ‘나는 잘 모르는 일이지만 양쪽의 주장이 엇갈리고 평행선을 달리니 사실관계와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공개 토론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노연 지도부에 요청해서 파일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일단 그 분이 흥분하거나 감정적으로 반응하면서 피해자를 공격하는 내용의 답을 하지 않는 것은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노연 회원으로서 그 분도 이런 상황이 얼마나 불편하고 부담스러울지 이해도 갔다. 그러나 답변 내용은 참 동의하기가 어려웠고, 사실 노연측이 반복해온 논리다.

 

먼저 나는 잘 모르는 일이다라는 반응을 보면서 소수자들이 겪는 수많은 억압에 대해 몰라도 되는, 그래도 불편할 것이 없는 위치에 대한 지적들이 떠올랐다. 이토록 오래 피해자들이 고통과 연대를 호소해 왔고, 반면 노연 분들이 그 수많은 글들로 피해자들을 공격해 왔는데도 잘 모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내가 속한 조직이 누군가를 공격해서 당사자가 고통받고 있는데도 회원들은 별 관심이 없고 모른다면 그게 무슨 의미일까.

 

물론 피해자가 호소하는 16년 전의 강간 사건에 대해선 정확한 진상을 모르겠다고 판단을 유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 피해를 호소한 여성을 노연이 괴롭히고 비난(2차가해)하고 있는 것은 명백하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분들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개적으로 그런 글을 올려놓고 있으니까.

 

그 때문에 수많은 여성, 인권, 소수자 단체들이 지난해 연서명해 함께했고, 지금도 맑시즘 연사 등에 응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중 다수는 원사건에 대한 진상을 확신해서라기 보다 지금 벌어지는 피해자에 대한 무조건적 불신과 괴롭힘을 문제삼고 있다. 이 상황에서도 잘 모르겠다며 판단을 유보하는 것은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다.

 

예컨대 직장 갑질의 피해를 호소하는 노동자가 있고, 우리는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측이 있다고 치자. 그런데 사측이 저 노동자는 거짓말쟁이고 평소에 평판과 행실이 안 좋았고...’ 이런 공격을 하면서 그 노동자의 사생활과 프라이버시, 신상정보, 상담기밀까지 멋대로 공개하고 있다면 주변의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어찌하겠는가?

 

양쪽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니 일단 진실과 사실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토론해 보자고 판단을 유보할까? 사측이 그 노동자를 신나게 괴롭히고 공격하는 것도 진실을 위한 토론 과정이라고 그저 보고 있을까? 그 노동자에게 더 중요한 다른 쟁점과 투쟁들이 많으니 이제 사측하고 그만 싸워라고 할까? ‘너는 괴롭겠지만 나는 관심없고 해줄 게 없다고 할까?

 

아니다. 먼저 갑질에 대한 피해를 호소하는 노동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사측에게 그런 공격을 중단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사측의 그런 태도와 공격이 바로 진상규명을 가로막는 것이고, 노동자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그 자체로 갑질이라고 비판할 것이다.

 

그 회원 분이 지도부에게 받았다는 파일의 내용은 뻔하다. 그 파일에는 피해자가 복수를 위해 거짓말과 중상모략을 하는 평판과 행실이 안좋은 여성이라는 온갖 주장이 담겨있을 것이다. 피해자가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 온갖 사생활, 프라이버시, 사적관계와 신상정보, 심지어 상담기밀까지 들어있을 것이다.

 

정말로 노연이 건강한 조직이 되길 바라는 자신의 조직을 걱정하는 회원이라면 이런 파일을 전달해 준 지도부에게 분명히 말해야 한다. 바로 이런 행태야말로 사태의 악화를 낳는 문제의 핵심이고 이것을 중단하고 반성해야 진실 규명이든 토론이든 시작될 수 있다고.

 

#노동자연대OUT #노동자연대STOP

#노동자연대는사과하라 #Metoo #Withyou 


(기사 등록 2019.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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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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