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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미 제국, 몰락의 예감?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0. 4. 1.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5년 전의 일인가요? '평화학'을 체계화시킨 노르웨이의 (좌파) 석학, 요한 갈둥은, "팍스 아메리카나"2020년쯤에 해체될 것"이라는 예언 아닌 예언을 한 바 있었습니다. 자신이 보기에는, 현재의 헤게모니 '누수' 속도로 봐서는 그때쯤 미국의 세계에 대한 장악력이 결정적으로 약화될 것이라는 이야기이었죠. 갈둥이 쏘련 연방 해체의 시기를 거의 정확하게 미리 알아맞춘, 통찰력이 매우 훌륭한 노련한 국제관계 전문가인 만큼 그 견해에는 저 같으면 늘 귀를 기울이지요. 그럼에도 그때는 '너무 빠른 게 아닌가? 몰락하긴 하겠지만, 더 걸릴 것 같다'라고 좀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어쩌면 크게 틀리지 않은 예언인 것 같기도 합니다.

 

'헤게모니'라는 게 무엇입니까? 물론 핵심은 '군사력'이지만, 일단 군사력을 뒷받침할 만한 군비 지불능력, 즉 지속 가능한 효율적 경제모델부터 '헤게모니'의 전제조건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그 모델에 대한 자국민과 헤게모니 적용 대상자인 외국인들의 '신뢰', 즉 일종의 '연성 권력'도 필요하고, 나아가서 타국에 대한 지원 능력도 필요합니다. 헤게모니란 군사력이라는 ''만으로 얻는 것이라기보다는 동시에 각종의 지원금, 차관 등으로 공고화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갈둥이 소련의 망국을 정확히 예언했는데, 소련은 군사력이 약해서 망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군사력을 뒷받침했던 소련의 경제는 구조적으로 개인 소비의 억제에 기반하고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그 주요 특징으로 했는데, '소비 억제''중앙 관료들의 경제 통제'에 대한 동의 기반은 그 당시 소련을 포함한 동유럽 전체에서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외부 기술과 투자가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 성장이 결국 둔화돼 군비 지불 능력이 떨어지고, 급기야 타국에 대한 지원 능력까지 떨어졌습니다. 1990년부터 소련이 북조선에 대한 지원을 사실상 중단했는데, 그 망국이 이미 멀지 않다는 중요한 조짐이었습니다. 하기사 체르노블 사고 뒷수습 등으로 소련은 이미 경제적 여유는 전무했지요.

 

미국의 헤게모니가 확립됐던 1940년대 이후의 미국이란 과연 어떤 경제모델이었나요? 맞습니다. 뉴딜 식의 수정 자본주의이었지요. 조선 전쟁이 막바지인 1953년에는 미국 국민총생산의 28%나 제조업이 차지했는데, 이건 금일의 대한민국과 거의 같은 경제구조이었습니다. 제조업의 대기업 조직 노동자들은 중산계층 수준의 생활수준을 누렸고 대학 교육을 받아 고급 전문가 계층으로 신분 상승도 쉽게 할 수 있었습니다. 국가가 필요시에 제조업에 쉽게 개입할 수 있었고, 금융은 어디까지나 소비자나 생산자에 대한 '서비스'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정부 주도와 제조업 위주의 수정 자본주의, 케인스주의적 모델을, 한국을 위시한 미국의 위성 국가들이 1950~60년대부터 학습한 것이었죠. 물론 박정희 식의 관치 경제는 그것보다 훨씬 더 나아간 것이었지만, 수정 자본주의, 케인스주의 경제의 세계에서 그렇게까지 별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위성 국가들의 '충성'에 대해 미국은 엄청난 지원금 지불로 '보답'(?)하기도 했지요. '충성'을 돈으로 샀다는 표현은 어쩌면 더 정확한지도 모릅니다. 미국이 한국에 1949년부터 1971년까지 지급한 약 130억불 어치의 원조금은, 전체 동구권과 중국이 같은 기간에 북조선에 지원한 금액보다 거의 3배 이상 큰 것이지요. 아무래도 ''의 경쟁에서는 소련은 처음부터 미국을 이기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원조'만이 주효한 것도 아니었죠. 사실, 많은 한국인들의 입장에서는 미국 중산층의 안정되고 풍유로운 삶은 선망되기도 했죠. 미국은 1950~70년대 대중들의 의식에서는 안정성이나 풍요, 선진성 등과 연결돼 있었죠.

 

지금은 어떤가요? 우리 시대의 체르노블,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겨내기 위한 의료 설비 생산 능력부터 미국이 과연 빠른 시기에 갖출 수 있을 것인지 아직 의문입니다. 미국의 경제에서는 제조업은 이미 12%밖에 되지 않고 의료 설비 등도 주로 '수입'에 의존해온 것인데, 전세계적으로 인공호흡기 등이 품귀 현상이 난 오늘날에는 이 모델의 치명적인 약점들이 다 드러난 것입니다. 1980년대 이후에 미국이 따른 신자유주의 모델에서는 기업으로서 제일 중요한 것은 '생산' 그 자체보다는 금융 투자나 주가 상승인데, 2020316일 하루만에 미국의 다우 지수가 12%나 떨어졌을 때엔 그 전략이 경기하강 국면에서 얼마나 위험한지 세상이 다 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미국은 군비 지불 능력을 과연 어디까지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요?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의 전체 국민총생산보다 더 많은 2조불 수준의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는데,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한 재원은 결국 미국 달러 화폐의 '양적 완화'와 국채 발행이지 않습니까? 달러와 미국 국채에 계속 투자하는 외부 자본이 있으면 이 모델은 이번 위기도 어쩌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달라나 미국 국채에 대한 외국 기관들의 투자도 결국 그 '안정성'에 대한 신뢰를 그 바탕으로 하는 것이죠. 그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달러와 미국 국채를 보유하는 외국 기관 투자자들이 '팔자'에 나서면...

 

아무래도 군비 지불 능력이 머지 않아 크게 꺾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군비는 아직 축소되지 않았지만, 코로나라는 이름의 '신종 체르노블'을 겪고 있는 미국은 - 예컨대 중국과 달리 -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지원도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의 제조업 대기업 노동자들은 이미 '중산층'으로서의 지위를 잃은지 오래됐고, 미국의 중산층은 천천히 붕괴돼 갑니다. 미국 의료 시스템이 '선진적'이긴커녕 '코로나' 대비에 완전히 실패해서, 지금 한국이나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 유학생들이 가능만 하면 미국을 빠져나가 자국으로 '도피'하는 추세입니다.

 

금융 본위의 신자유주의라는 미국의 경제 모델은 이미 자타가 더이상 신뢰하지 못하고 있으며, 미국의 타국 지원 능력은 거의 바닥을 친 상태입니다. 미국의 군비 지불 능력은 아직 유지되지만, 미국 화폐와 국채에 대한 국제적 신뢰가 붕괴되는 그 순간 이 능력도 크게 저하될 수 있죠. 물론 한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부자가 망해도 3대 걸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영국은 더이상 세계 패권 국가가 아니지만 여전히 '열강' 중의 하나며, 쏘련은 망했다 해도 러시아는 여전히 시리아 같은 곳에서 대리전을 수행하지 않습니까? , 갈둥의 말대로 "팍스 아메리카나"가 무너지더라도 미국은 여전히 하나의 '열강'으로 남을 것이고 국제관계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입니다. , 미국 중심의 세계가 금년에 그 마지막의 순간들을 보내는 것 같다는 느낌은, 저뿐만 아니라 여러 관찰자들에게 강하게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기사 등록 20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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