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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동물원에서 경사가 났다고요?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0. 6. 12.

최태규



네이버 포스트 최태규의 동심보감에 실렸던 글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필자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어캣과 그 새끼

어린 새끼가 관람객에게 그대로 노출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어미가 새끼 네 마리중 세 마리를 잡아먹었다.

 

 

봄이다. 혹독했던 겨울이 지나고 땅속에 얼어 있던 에너지가 지상으로 뿜어져 나오는 계절이다. 추운 나날을 견딘 야생동물들은 새싹이 나기를 기다렸다가 계절번식을 시작한다. 사람 손에서 길러지지만 미처 야생에서의 생활사를 다 버리지 못한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동물원에서 꽃 피는 봄이 오면 보도자료를 내기 바쁘다. “ㅇㅇ동물원 경사 났네”, “멸종위기 천연기념물 태어나이왕 태어났으니 경사라고 치자. 그다음은 뭘까.

 

동물원의 역할과 의미가 매우 중층적이기 때문에 동물원에서 동물의 번식도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일단 어린 동물은 귀엽다. 다람쥐원숭이나 사막여우, 미어캣 같은 동물은 크기가 작고 생김새가 만화나 동화의 소재로 자주 쓰일 정도로 (혹은 하도 자주 쓰여서) 귀엽다, 그들의 새끼는 이 세상 귀여움이 아니다. 그 뿐 아니라 코끼리나 기린처럼 거대한 동물의 새끼도, 심지어 뱀처럼 대중적인 취향이 아닌 동물도 어릴 때는 귀엽다. 그래서 귀여운 동물이 태어나면 동물원에서 인기가 좋다. 사람들은 그 새로 태어난 동물을 보려고 몰린다. 귀엽고 어린 동물은 충실하게 셀카의 배경이 되어준다. 다 자라서 특별함을 잃기 전까지.

 

현대 동물원의 역할이 종 보전이라는 말은 이제 제법 중론이 되어가고 있다.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종을 동물원에 가둬두고 번식시켜서 생태계에서의 절멸을 막는 것이 동물원의 역할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호랑이와 표범을 보전하기 위해 세계의 동물원들은 유전적 다양성을 고려한 번식을 시키고 그 동물들을 다시 러시아의 보호 구역으로 돌려보내는 등 노력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야생 아무르호랑이의 개체수는 50마리까지 줄어들었다가 지금은 열 배가 넘는 540마리까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되었다. 번식이 필요한 이유다.

 

성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동물원이 종보전 기관이라고 하기엔 많이 부족하다. 전 세계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약 100만종의 동식물은 동물원이 없어서 사라져 가는가? 아니다. 서식지가 파괴되고 밀렵으로 잡아대서 그렇다. 기후온난화로 생태계 자체가 바뀌어버리는 문제도 야생동물에게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보전을 외치는 한국의 동물원들이 4대강 사업이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에 반대목소리를 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동물원에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동식물의 절멸을 불러오는 생태계 파괴 토건 사업인데 말이다.

 

동물원에서 동물이 태어나는 또 하나의 의미는 동물원 동물의 복지에 미치는 영향으로 드러난다. 흔히 좋은 동물원이라고 불리는 외국의 동물원들을 보면 동물 개체수가 한국의 동물원에 비해 훨씬 적다. 동물복지는 보전이나 교육 등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전제가 되는 개념이며, 이것은 동물의 개체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위에서 이야기한 호랑이 보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물원 대부분은 호랑이를 많아야 대여섯 마리, 보통은 두세 마리를 보유한다. 한국처럼 호랑이를 수십마리씩 보유하고 있는 동물원들은 내 경험이 짧아서 그런지 본 적이 없다. 당연히 수십 마리의 호랑이를 동물원에서 본 적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동물원의 숨겨진 공간에 있다.

 

한 마리의 호랑이를 동물원에서 기르려면 얼마만 한 땅이 필요할까? 한 마리의 호랑이가 먹어야 하는 먹이의 종류와 양은 얼마나 될까? 그 호랑이가 동물원에서 정상적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사육사와 수의사는 몇 명이어야 충분할까? 이 질문들을 회피해왔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동물을 생산할 수 있었다. 동물을 살려두기만 하면 괜찮다고 생각했고, 새끼를 낳을 환경이면 좋은 환경이라고 여겨왔다. 동물을 번식시키는 것이 사육사의 덕목이었다. 지금도 동물원 업계에는 이런 사고방식이 만연하다.

 

그러나 동물 수가 많아질수록 동물 한 마리가 누릴 수 있는 자원의 양은 줄어든다. 특히 동물이 지낼 공간이 자연에 비해 협소할 수밖에 없는 동물원 공간에서 개체수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동물 한 마리가 쓰는 공간을 두 마리가 쓰게 되면 한 마리당 쓰는 공간은 반으로 줄어든다. 동물원에서도 사육공간이 한적한 꼴을 눈뜨고 보지 못하는 건 자투리땅 한 뙈기도 비워두지 못하고 제초제를 치고 콩을 심어온 우리네 정서 때문일까. 동물원 관리자들은 동물사가 비어 있는 걸 몹시 불안해한다.

 

면적은 동물복지를 위한 고려사항 중 일부일 뿐이다. 매일 동물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 변화를 기록하는 일은 동물의 신체적·정신적 상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함께 사는 동물끼리의 관계나 관람객에 대한 반응, 먹이 먹는 속도나 선호도의 변화 같은 것들은 동물복지를 위해 동물원이 이행해야 할 핵심 의무다.

 

그러나 이런 작업들은 대부분 동물원에서 개체수준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고작 이상행동을 발견해내는 정도다.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종의 경우에 개체 구분도 못하고 심지어 암수 구별도 못하는 사육사도 있다. 사육사의 자질 문제도 있지만 한두명의 사육사가 수십 종의 동물을 길러야 하는 상황에서는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조건에서 동물원 동물이 집에서 기르는 애완동물만큼도 관리가 안되는 것은 당연하다. 동물원이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정보다 동물에게 소홀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동물을 연구하는 것도, 비참하게 사는 동물의 모습을 시민에게 교육한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적어도 동물들이 정상적인 행동을 하고 사는 곳이어야 동물의 행동을 연구할 수 있고 사람들에게 동물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보전을 하겠다고 개체수를 무턱대고 늘리는 것은 동물 호더(hoarder)와 다를 바 없다. 동물원에서의 동물 번식은 철저하게 계획적이고 정당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지금도 동물원에서 동물이 태어나면 근친으로 태어난 건지 유전적 결함이 있는지 앞으로 그 동물을 다 기를 수는 있는지 따져보지 않고 멸종위기종 태어나 경사라는 홍보성 기사만 열심히 내는 것은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이다. 동물원이라는 곳을 보전과 연구, 교육을 위한 전문성이 발휘되는 공간으로 발전시킬 것인지, 농장의 가축처럼 최대한 많이 태어나게 해서 양으로 승부하는 관행을 그대로 둘 것인지 이제는 방향을 선택해야 할 때다. 그걸 강제해야 할 동물원 허가제는 20대 국회의 무능과 태만에 발이 묶여 계류되다가 곧 신기루처럼 사라질 판이다. 국회든 지자체든 동물원을 유지할 거라면 공부도 좀 하고 일도 좀 하면 좋겠다


(기사 등록 202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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