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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과 논쟁

아직도 ‘창녀’에 ‘어마 뜨거라’ 하시나요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1. 1. 31.

윤미래



 

한겨레 칼럼 <‘성노동자로 그린다고 성착취·불평등이 없는 일 될까>에 대한 비판

 

예술을 논하신다는 분께서 타인의 고통에 대해 보일 수 있는 반응이라는 게 2021년에 와서도 '어쩜 이렇게 *참담*하고 *비극적*!!!!'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감수성이 너무 후지니 하루빨리 그만두시는 게 어떤가 싶지만, 이 부분에서 전 그냥 소비자니까 길게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아는 성판매 여성들은 툴루즈로트레크 같은 구매자보다 이 글의 글쓴이를 더 싫어할 것 같지만 이것도 뭐 제가 아는 사람들이 성판매 여성의 대표일 순 없으니까 그냥 개인적인 소감으로 둘게요.

 

근데 "회사에 나가 상사의 지시에 맞춰 업무를 수행하고 정해진 임금을 받는 사람""계급 차이와 기울어진 젠더 권력 아래에서 어쩔 수 없이 착취당하는 존재"를 대비되는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사회 비판 담론에 대해 식견이 없는 분께서 "사회적 부조리"를 파헤치는 글을 써서 신문에 기고까지 하는 건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가 없네요.

 

글쓴이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지은 중국이나 인도네시아의 여성들이 어떤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긴 하나요? 소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주역인 여공들은 또 어떻고요? 노동계급의 '표준'으로 간주되는 유럽의 도시 프롤레타리아트조차도 절반이, 때때로는 반 이상이 여성이었고 그들의 생활 환경은 지금 한국의 집창촌보다도 끔찍했습니다.

 

툴루즈로트레크와 드가의 시대, 극장에서 어머니가 후원자들과 딸의 가격을 흥정했다면 공장 노동 시장에서는 아버지들이 공장 관리인들과 처자식의 가격을 흥정하곤 했습니다. 어린 발레리나들이 고급 창녀로 길러지는동안 어린 공원들은 척추가 굽고 다리가 휘어지다 스무 살을 못 넘기고 숨이 끊어지곤 했죠.

 

어느 쪽이 더 비극적일까요? 전 따지는 게 의미 없다는 입장인데, 아마 글쓴이는 전자라고 생각했으니까 이런 글을 쓴 거겠죠. 이유도 알 만합니다. 여자의 성은, 성만큼은 절대로 팔려서는 안 될 목숨보다도 소중하고 존귀한 것이니까요. 창녀가 되는 것이야말로 여성의 궁극적 파멸이고, 아무하고나 섹스를 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존엄한 일이니까요.

 

어머, 근데 우리 이런 걸 순결주의라고 부르는 거 아니었나요? 성은 인간성의 일부에 불과하고, 여성은 인간이므로 여성의 가치 또한 성만이 아니라 인간성 전체에 있다는 이념이 페미니즘 아니었나요? 아마 글쓴이가 페미니스트가 아니거나, 제가 페미니즘의 정의를 좀 오해하고 있는 거겠죠. 페미니즘이거나 아니거나, 아무튼 글쓴이의 가치관보다야 이쪽이 좀 더 해방적이고 사리에 맞는 것 같으니 저는 이런 이념을 지지할까 합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임금을 받는'이라는 말로 전달하려고 하는 의미가 뭔지는 알아요. 쾌적한 환경에서 일하고 풍족한 봉급을 받는 모종의 전문사무직을 상정하시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그것만을 제대로 된 ''이라고 여기니까요. 그래서 공장이나 농가, 어선이나 편의점에서 일하는 건 '취업'이라고 부르지도 않고요.

 

근데 우리에게 필요한 대부분의 노동은 사실 더럽고 힘들고 위험하거든요. 자연의 이치가 그래서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체제가 그래요. 이 체제 하에서는 심지어 그 번듯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화이트칼라들조차 초과 근무와 성과 경쟁에 시달리는 착취 대상이기 일쑤입니다.


그러니까 요점을 말하자면, 자본주의는 시작부터 현재까지 노동 계급의 감당할 수 없는 가난,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들의 그것을 인질 잡아서 사람의 을 부리고 소모함으로써 건설되고 유지되어 온 거에요. 우리는 계급적 젠더적 착취로 지어진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200년도 더 전부터 주구장창 이어진 뻔한 얘기조차 모르면서 대체 인간 사회의 권력 관계에 대해 누구를 가르치려 하시나요?

 

제가 성노동 담론의 자유주의적 갈래라고 부르는 담론도 상당 부분 이런 통념에서 자유롭지 못해 왔죠. 그래서 현실을 윤색한다는 정당한 비판도 많이 받았고요.

 

근데 노동운동이 사회 주류의 보수적 사고를 답습하는 거, 성노동 운동에만 있는 일도 아니고 변하지 않는 일도 아니거든요. 약하고 빈궁한 사람들일수록 '내 처지를 개선해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만도 큰일이어서, 그 외에는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온 상식이나 가치관을 의심하는 데까지는 안 나가고 못 나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체제에 포섭되고, 다른 약자들을 차별하고, 우왕좌왕하다 패배하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뭐? 모든 지식인들이 그런 이유로 이 글의 글쓴이가 하는 것처럼 운동을 통째로 기각해왔으면 지금 우리의 사회경제적 수준과 정치적 자유는 드가 시절에서 별로 더 나아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실 세계의 많은 지역들이 아직도 그렇지만...

 

그래도 작은 부분이나마 사회가 진보하고, 사람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더 나아갈 미래를 전망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 사회 부조리를 파헤치느니 비판하느니 하는 말과 글을 팔아서 먹고 사는 일이 가능해진 것 자체가, 그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자기 손으로 삶과 세계를 바꾸고 자기가 처한 부정의를 바로잡으려는 의지를 존중하고 그 정치적담론적 표현에 조력해온 지식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식인들이 주역이었다는 말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진보에서 지식인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책무가 그것이었다는 말이에요.

 

짐짓 동정적인 어조로 무식한 노동자들을 훈수 두면서 한 수 가르치려 드는 짓이 아니라요. 그거, 산업화 시대에도 이미 충분히 구린 짓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냥 우스꽝스러워요. 진보를 자처할 거면 우선 사회가 이미 나아온 지점까지 따라오려는 노력부터 해야 할 거 아니에요. 21세기에 나서 진보를 자임할 거면 200년 전 인간들보다도 인식이 뒤처지는 꼴은 좀 면하자고요,


(기사 등록 202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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