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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신권위주의/극우화, 세계와 한국을 덮어버린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1. 4. 19.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요즘 - 반갑게도 - 많은 한국인들은 버마의 참극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버마에서는 관료 독재도 당 독재도 아닌 군부 독재가 지금 다시 돌아오는 상황이 조성되어, 그만큼 그 유혈성도 돋보입니다. 한국인들에게 이와 같은 광경들이 1980년 광주부터 연상시켜 커다란 공감을 형성케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 문제는, 2008년 세계 공황의 도래,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파산 이후로는 버마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신권위주의의 커다란 파도들이 퍼지고 있다는 것이고, 이 신권위주의야말로 앞으로 어떤 장기적인 '뉴노멀'이 될 수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버마에서 벌어지는 학살들은 극단적인 경우에 속하지만, 사실 2008년 이후로는 - 비록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것보다 훨씬 '온건한' 방식이긴 하지만 - 준부변부와 주변부뿐만 아니라 핵심부의 일부 사회마저도 점차 보다 더 강력한 권위주의 체제로 전환한다는 사실은 쉽게 관찰됩니다.

 

겉으로는 '체제 변화'는 없을 수도 있는데 기존의 체제의 틀 안에서는 통치의 방식은 훨씬 더 권위주의적 방향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경우는 가장 가시적입니다. 중국은 애당초부터 당-국가 체제이었지만, 2008년 이전의 당-국가 체제에서는 위구르족의 대량 강제 수용이나 민족어 말살, 혹은 영국과의 약속 파괴와 홍콩 자치의 압살 등을 아마도 상상하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러시아에서는 1999 같았으면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상당한 자율성을 가진 주요 재야 정당인 연반 공산당은 25% 가까운 득표력을 총선에서 보일 수 있었으며 2000년대 내내 행정부와 크고 작은 갈등을 빚어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러시아의 정치 체제에서는 그런 걸.... 상상할 수도 없죠. 북한 같으면 장성택 일파는 집단지도 체제로의 전환을 원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2013년 숙청으로 그 꿈이 무산되고 1인 집권 체제인 수령제가 보다 강력한 모습으로 재확인됐습니다.

 

즉, 중-북-러는 다 기존의 틀 안에서도 보다 강력한 권위주의 체제를 향해 가고 있었던 셈이죠. 반면, 미국도 의회민주주의는 그대로긴 하지만, '트럼프' 사태가 보여주었듯이 토착 파시즘의 대중적인 기반이 이미 매우 두껍게 자라났다는 것입니다. 트럼프는 2020년 대선에서 - 다행히도 - 패배됐지만, 트럼프를 찍은 유권자들의 수는 2016년의 6천3백만 명부터 2020년의 7천3백만 명으로 사실 크게 늘어났습니다. 최근에 일상이 된 아시아인에 대한 공격들을 보더라도, '파시즘 도래의 분위기'가 어떤 것인지 실감할 수 있는 거죠.

 

핵심부의 대부분 국가에서는 의회민주주의는 여전히 작동되지만 네오파시스트를 포함한 극우들에 대한 지지가 크게 높아지며, 또 한편으로는 국가 기구들의 대민 권위주의 같은 것도 눈에 띌 정도로 심해졌습니다. 프랑스의 2022년 대선과 관련해서 오늘날 유권자들에게 투표 의향을 물어보면 온건 우파인 현직 대통령 마크롱을 찍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24%인 반면 극우 레펜을 찍으려는 사람들은 이미 27%나 되고 그 상당수는 바로 노동계급입니다.

 

한편으로는, 지난 몇년 간 "노란 조끼" 운동에 대한 경찰의 무차별적으로 폭력적인 초강경 진압을 보면서 과연 '프랑스 민주주의의 현주소'가 어디인지 자못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핵심부를 벗어나기만 하면... 브라질과 인도에서는, 비록 선거를 통해서 집권했지만 지금 극우 정객들이 집권한 것이고 그들의 통치 방식은 민주주의의 기본 룰들도 아주 쉽게 무시합니다.

 

헝가리와 폴란드는 표피적으로 의회민주주의지만 사실 전간기 (1918-39) 권위주의 국가의 '재판'에 가깝습니다. 터키는 사실상의 '선거제 독재'인가 하면, 태국은 비록 겉으로는 2019년에 군정에서 민정으로 이양을 했지만 신군부의 수괴인 쁘라윳 짠오차는 여전히 국무총리, 즉 실권자입니다. 민주주의가 형식적으로 남아 있는 사회에서도 그 형해화의 경향은 대단히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어느 엘리트 정객이 등장해도 민심과 별로 무관한 정책을 집행하는 식이죠.

 

그러니까 이게 단순히 버마 군부 등의 '권력욕'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권력욕'이야 당연히 엄청 크지만, 이 욕망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충족시켜도 되는 '세계적 상황'이 지금 - 불행하게도 조성되었습니다. 기본 원인은? 신자유주의의 치명적 위기죠. 더 이상 뚜렷한 성장 동력이 없는 경제에다가 국가가 계속해서 땅값과 주가를 엄청나게 올리는 새로운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기존의 격차들이 더더욱더 심화됩니다.

 

다주택자와 주택보유자, 모기지론이라도 받아 주택 구매가 가능한 정규직과 무주택자로 살아야 하는 비정규직 사이의 불화와 갈등이 심화되죠. 결국 '양적 완화'를 주도하고 가면 갈수록 늘어나는 피해자들의 불만을 각종의 감언이설, '시장 활성화'에 대한 거짓 약속 내지 타자들에 대한 혐오로 '수습'하거나 필요하면 초강경 진압할 수 있는 '강한 국가'가 요청됩니다. 결국 파열되어 가는 신자유주의적 시스템 속에서 이제 봉합이 불가능한 모순들을 폭력으로 억누를 수 있는 (준)권위주의 국가 없이는 더 이상 이 시스템은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적 운명은요? 약간의 늬앙스들이 있지만, 대체로는 세계적 경향을 그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2008-17년간 극우 집권은 세계적 신권위주의 도래의 경향과 그 궤를 같이 했습니다. 단, 박근혜 집권기의 거의 불가해한 정도의 실정 (최순실 사태 등)은 온건 자유주의자들에게는 2017년에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한데 그들은 그 기회를 전혀 잡지 못하고 시간만 낭비했습니다.

 

경제에의 유동성 공급 (추경 등의 형태로) 지속되고 땅값과 전월세 값, 그리고 가계빚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미국을 방불케 하는 격차들이 벌어졌지만, 정권은 그 잠재적인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약자층, 중하층 등을 위한 그 어떤 제대로 된 '보호정책'도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공공임대주택 공급은 지지부진하고, 임대사업자들이 받는 혜택과 무주택자들의 참상이 노골적인 대조를 이루고 거기에다가 기득권 엘리트 (LH 간부 등)의 사적 지대 추구를 잡는 데에 정권은 완벽하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관악구, 금천구마저도 오세훈에게 다수의 표를 준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정권이 사실 기반을 상실한 거나 마찬가지죠. 이제 한국도 내년부터 극우화/신권위주의화 행렬에 동참할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극우들의 대항마로서는 이미 참패를 거듭한 자유주의자들을 대체할 수 있는 민중 정치 새력들을 준비하는 게 우리들의 과제인데...오늘날 진보 정당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이 이 과제를 어디까지 수행할 수 있을는지 솔직히 회의가 들죠. 급진 진보의 '연합' 같은 게 필요할 수 있는데, 그게 쉽지만 않을 듯합니다.

 

(기사 등록 202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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