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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노자] '시험 사회'에 대한 단상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1. 7. 1.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지금 제가 동아시아의 현능주의적 (meritocratic) 관료 선발제의 거시적 역사에 대한 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준비하는 과정에 강하게 드는 생각은, 아마도 거시 세계사의 차원에서는 동아시아가 세계 문화/역사에 가장 크게 기여한 부분 중의 하나는 바로 '시험'이라는 사회적 통과의례/여과 장치일 것이라는 거죠.

 

동아시아에서는 '시험'의 형식은 통일된 관료 제국과 같이 태어났습니다. 이미 한나라 무제의 시절에는 지방에서 '찰거'(추천) 받은 관료 후보자들이 중앙에서 고시를 보고 임용 절차를 밟는 과정이 있었고, 태학에서 시험과 같은 절차들이 진행됐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물론 우리가 보다 잘 아는 시험은 수나라 문제가 587년부터 실시한 '과거제'지만요. 사실 이미 당나라 진사과의 시무책 같은 것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examination essay'과 그다지 질적인 차이 없습니다.

 

지금 오슬로대도 실시하는 '시험지의 익명 처리'는 동아시아에서는 이미 송나라 때부터 관행화돼 있었고, 단독 시험관이 아닌 '위원회'에 의한, 몇 차례에 걸친 채점도 그 때부터라고 보시면 됩니다. 반대로... 서구에서는 13세기에 볼라냐 대학에서는 최초로 구두 시험은 도입됐지만, 그냥 '문답형' 정도이었습니다. 유럽 대학에서 최초의 정식 필기 시험이 도입된 것은 18세기에 이르러서야 가능했고, 그것도 야소회 선교사들이 소개한 청나라 제도의 '영향'이라고 보는 의견이 강합니다.

 

서구가 세계사에 '의회' 같은 제도로 공헌했다면 '시험'은 동아시아의 공헌입니다. 한국도 788년부터 시험 (독서삼품과)의 제도가 있어온 '시험의 선진국'인지라 한국 사회에 있어서의 시험의 권위는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세에 하루에 한 번 시험을 잘 보고 SKY로 가게 되면 이걸로 남은 한평생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의 주류 정치 무대에서 서로 권력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주요 주인공들을 보면 수능 아니면 사시를 '잘 본'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걸 바로 눈치 챌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노동당이나 다른 유력 좌파 정당 정치인 중에서는 일찌감치 노동 현장으로 나간 고졸들이 수두룩한데, 한국에서는 '시험'을 보지 않은 사람은 통치 행위를 아마도 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한국에서 '대학 교수'들이 구미권이나 일본보다 훨씬 더 높은 사회적 위상을 누리는 하나의 배경은, 그들이 '시험 출제'하는 사람들이라는 점과 연관이 있습니다. 시험이 '다'인 사회에서는 시험을 진행하는 '학관'은 지배자죠.

 

자, 여러분, 행정을 주로 속량된 노예나 황제 내지 주요 대신들의 가신, 문객들이 맡았던 로마 제국에 비해 한나라와 같은 국가적 교육, 시험 제도는 분명 '선진'이었습니다. 신라에서 독서삼품과가 도입된 788년에는 유럽에서는 '시험'이 아닌 전투 능력으로 유력 영주의 '가신'이 될 수 있었겠지만, 좌우간 '학식에 의한 공무원 채용'은 그 당시로서 세계사적으로 '최첨단'이었지요.

 

그런데....과연 이 '공정 제도'의 덕을 본 사람들은 주로 누구이었을까요? 양인이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하는 것이 아주 드문 - 거의 예외적인 - 경우인 조선에서는 과거제는 예컨대 다소 빈한하거나 경화 지역이 아닌 지방에서 세거하는 선비 가문의 '희망'일 수 있었습니다. 아니면 땅과 돈이 있지만 출세한 선조가 없는 지방 유생 토호들에게는 '희망'일 수도 있었고요. 좌우간 지배층의 '코어' (경화벌족)가 과거제를 통해 신분 세습을 하는 동시에는 지배층의 주변부에서도 그 제도에 희망을 걸 수 있었습니다.

 

지배층의 범위를 벗어나서는 이 제도는 신분 상승 차원에선 큰 의미 없었죠. 중국의 과거시험에는 부유한 상인이나 부농의 자녀도 붙을 수 있었기에, '돈 있는 사람'들의 꿈은 자녀들의 과거제를 통한 '입신양명'이었죠. 문화 자본 (대대로 학식을 축적한 가문)이나 경제적 자본 (개인 교사를 초빙할 만한 재력)이 없는 집안으로서는 과거제는 하등의 '찬스'가 되지 않았죠.

 

우리는 물론 좀 다른 세상에서 삽니다. 초밀집 정보 사회에서는 '지식의 획득'이 쉬워지고 지식이 민주화된 부분은 분명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녀가 초인적 노력으로 서울대에 붙고 같은 노력으로 국비 유학생 자격을 얻어 미국에 '공짜로' 갔다오고 그다음 국내 대학에서 '교수'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단, 저는 이와 같은 식의 신분 상승의 경우를 50 이상의 분들 중에서 실제 봤지만, 40이하의 분들 중에서는 거의 본 바 없습니다. 아마도 그런 경우들도 있겠지만, 이건 조선 초기에 양인으로서 과거시험에 붙는 것만큼 드문 게 아닐까요?

 

결국 오늘날 '시험 공화국'은 기존의 문화 및 경제 자본의 '재생산'을 돕는 기능을 하지, '밑으로부터'의 신분 상승을 보다 쉽게 하거나 '공정 사회'를 만드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시험 공화국'은 기득권층에 유리합니다. 그래서 그걸 '공정'이라고 호도하는 극우 선동가들을 조심하는 건 좋을 겁니다. 기득권층의 위치를 영구화시키는 것은 대부분이 합의할 수 있는 '공정'과는 아무 관계 없죠.

 

(기사 등록 202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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