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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40

5월 10일 안산 세월호 집회 참가기 조경은 나로써는 너무 늦은 방문이었다. 생중계와 뉴스를 챙겨보면서도 막상 옷을 챙겨 입고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은 큰 결심이 필요했다. 아이가 있어서 움직이기 힘들다, 감기 몸살 때문에 아팠다는 말은 이제와 보면 핑계였던 것 같다. 입구에서 나눠주는 근조(謹弔)리본을 달고 합동 분향소에 들어섰을 때, 나는 그 거대한 규모와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나를 안내해주던 아주머니는 얼굴이 벌겋게 부어있었고 꽃을 나눠주는 사람들은 지쳐보였다. 방명록을 쓰고 국화를 들고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사실 내가 합동 분향소를 방문했던 건 그곳에서 나를 짓누르는 슬픔을 정면을 마주하고, 시원하게 울고 털어버리자는 계산속이었는데 막상 그곳에서 나는 울 수조차 없었다. 애초에 나를 내려다보는 .. 2014. 5. 14.
5월 3일 세월호 참사 첫 촛불 대중집회 후기 서범진 1. 5월 3일 오후, 오늘도 시청 앞에는 합동분향소에 조의를 표하기 위해 들른 이들로 길고 긴 줄이 세워져있었다. 기적을 비는 노란리본, 슬픈 체념 속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리본들 시청 이곳저곳을 가득 채웠다. 이 날씨 좋은 날, 사람들은 나들이를 나와놓고서도 차마 밝게 웃지를 못했다. 살아있는 우리가 즐겁게 웃어도 되는걸까. 숙연함이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다. 내 잘못이 아닌 걸 알지만, 그래도 또 미안했다. 광장 한 켠에서는 희생자 추모를 위해 "참여연대"의 그림 소모임이 걸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노란 바탕에 많은 사람들이 밝게 웃고 있는 걸개 그림 위로, 라는 제목이 붙었다. 세월호의 희생자들이 살아있었더라면, 그들도 우리처럼 밝게 웃으면서 이렇게 있었을 거라고.. 2014. 5. 4.
세월호 참극 - 이윤 체제와 한국 사회의 축소판 전지윤 [필자] 이 글은 원래 4.23일에 필자가 페이스북에 올리고 다음날 약간 다듬어서 에 보내고 실렸는데, 다시 4월 29일까지의 상황을 반영해 업데이트한 글이다. 이재빈 동지의 조언이 글을 수정하는 데 도움이 됐다 지금 우리의 눈과 귀는 진도 앞바다를 향해 있다.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아이들만 봐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일을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문득 세월호 속의 아이들이 떠오른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하거나 괴로워하는 것만 봐도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눈 앞에서 차디찬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 자식을 보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가슴이 타들어가고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이란 바로 이런 것이리라.그 엄마아빠들은 이 사회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사람들도 아니다.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에, 불안정한 .. 2014. 4. 29.
세월호 선장을 위한 '변명' [편집자] 세월호 참사는 단지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들의 비겁함이 만들어낸 사건이 아니었다. 정작 가장 중요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자신의 짐을 벗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이 쌓아올린 이윤 중심의 사회구조를 지키기 위해 몇몇 개인들을 마녀사냥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 글은 박근혜 대통령의 선장에 대한 비난 발언이 나온 직후에 씌여졌다. (http://omn.kr/7vra)에 기고했고, "세월호 선장과 대통령의 자세, 놀랍도록 닮았다"란 제목으로 실렸다. 메인 페이지에 올라갔고, 2천 건 이상의 페이스북 공유와 1만 5천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세월호 참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정부와 사회 구조에 분노하고 있음을 이 글에 대한 반응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서범진 친구가 마음을 털어놓았다. 세월호 참.. 2014.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