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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노자] 보수화된 사회, 한국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1. 9. 22.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오랫동안 대한민국 역사의 공식은 "국가 권력에 대한 민중 저항"이었습니다. 외부의 힘을 빌어 성립된, 외삽적인 국가 권력이고, 절대적 빈곤에 허덕여야 하는 민중인 만큼 아마도 당연한 공식이었을 겁니다. 그 공식 덕분에 여수, 순천에서의 이승만 정권에 대한 무장 항거, 그 동시의 빨치산 투쟁부터 대체로 2008년 "쇠고기 항쟁"까지 "저항사"라는 틀로 묶어도 될 정도입니다.

 

1948년, 식민지 엘리트와 미국이 합심해서 "대한민국"을 건국하자마자 시작되고 60년 이상 이어진 이 찬란한 저항의 시작은 아예 무장 투쟁이었습니다. 1960년의 4.19때만 해도 시위자들이 경찰의 무기를 빼앗고 그랬죠. 무장 저항의 마지막 불꽃은 1980년의 광주이었고, 그 다음에는 "격렬 시위"는 대체로 화염병 정도를 의미했습니다. 그것마저도 2000년대 중반에 족적을 감추고, 2008년이 계기가 되어 비폭력 저항은 주류가 된 것이죠.

 

그런데 무장 저항이든 "저수준 폭력"이든 비폭력이든 "저항"은 키워드이었습니다. 대략 2008년까지죠. 2017년 촛불 시위에서도 그 메아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촛불 사태의 구조는 좀 더 복합적이었습니다. 적폐 정권에 대한 대중적 항쟁에 엘리트 안에서의 갈등이 가미된 것이죠. 그래서 저항은 있어도 진압 등등은 없었습니다.

 

저항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저는 처음으로 2018년에 매우 강하게 느꼈습니다. 전교조가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걸 읽었을 때에 말입니다. 전교조란 무엇인가요? 사실 "저항"의 상징 그 자체입니다. 교사들의 노조 설립 움직임들이 처음 보인 것도 4.19 직후고, 전교조 창립 이후의 노조 합법화 투쟁도 한국 민중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죠.

 

그 노조의 다수 조합원들마저도, 결국 비정규직들과의 "계급 연대" 대신에 각자가 시험 쳐서 정규직이라는, 시스템 안에서는 상대적으로 "나은" 자리를 차지하는 시스템의 "절차", 개인적 "노력과 성패"의 논리를 택한 겁니다. "계급"을 버리고 개개인의 "이해 관계"를 챙겼다고 보면 됩니다.

 

전교조뿐인가요? 인천국제공항의 정규직들의 상당수도 비정규직들의 정규직화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KBS 등의 정규직들은 아무리 진보적 신념의 소유자라 해도 방송 작가 등 비정규직들의 정규직화를 고려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에 깨달았습니다. 한국에서 "진보"란 더이상 짓밟힌 자 모두들의 공동의 이해관계를 위한 연대, 그 연대를 위한 투쟁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진보"는 보수 양당 중에서 비교적 덜 나쁜 (?) 자유주의 세력을 지지한다는 의미로 전락된 것입니다. "저항사"가 끝났다는 신호이었죠.

 

왜 보수화됐을까요? 조중동과 보수적 교육만을 탓할 일은 전혀 아닙니다. 조중동은 언제 특권층의 이해를 대변하지 않았으며 한국 학교들은 언제 계급론을 가르쳤습니까? 주류 언론과 교육은 늘 보수이었는데, 그게 1980년대의 급진화를 막을 수 없었던 거죠. 그러나 1980년대의 급진적 지식인들이 한국을 "제3세계 국가"라고 인식하고 "제3세계 반제 연대"를 꿈꿀 수 있었던 반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더이상 객관적으로 세계체제 주변부와 무관하다는 게 문제의 핵심입니다.

 

'선진국 인정' 등등의 선언적인 부분들과 별도로, 실제로 강남이 아니더라도 서울 부동산의 가격은 오슬로 정도입니다. 한국인의 40%가 무주택자로서 그 높은 땅값에 오히려 억눌리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주택 소유자인 60%가 이렇게 몇십년 사이에 세계적인 "부자"가 된 거죠. 서울 아파트를 처분하고서 뉴욕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된 거죠.

 

한국 농어업 외국인 노동자들이 현대판 노예 신세고, 비정규직 평균 월급은 생존의 선 약간 위인 170만원이지만, 정규직의 평균 임금인 330만원은 세계적으로는 결코 낮은 편은 아닙니다. 웬만한 유럽 사회와 엇비슷한 정도죠. 한국의 정규직 대학 교수가 받는 한달 6-700만원의 임금은, 한국의 비교적 낮은 세율을 감안하면 구미권 대학 교수보다 더 높은 구매력을 의미합니다.

 

한국의 사회적 피라미드 하층에서는 살인적인 착취가 자행되고 가난한 노인들이 영양실조로 죽고 비정규직들이 죽을 고생을 하지만, 그 피라미드의 중간부터 시작해서 "부자 나라" 된 것은 사실이죠. 물론 여유가 없고 스트레스가 너무 많고 대단히 불행한 부자 나라지만, 그거야 옛날에도 마찬가지이었죠.

 

​한국은 부유해지고 보수화된, 1970-80년대의 일본과 같은 경우라고 본다면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합니다. 물론 이 사회적 피라미드 하부에서는 초착취가 계속 자행되는 만큼 투쟁도 당연히 지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투쟁을 지속하는, 노동당을 비롯한 진보 정당들에게는 앞으로 대단히 어려운 과제 하나 있습니다.

 

이미 "절차", "능력주의" 신화에 포획되어 "시험쳐서 정규직이 된" 사람들의 상대적 특권을 당연시하는 다수, 즉 보수적 중간층을 어떻게 설득해서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것인가 라는 과제입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이 상황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주력하고자 하는 부분은, 한국인의 보수적 다수가 믿는 각종의 신화들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겁니다. "능력주의" 신화부터 혐중 정서를 뒷받침하는 각종의 신화들까지요. 그런데 한국 사회의 장기적인 보수화 경향을 염두에 두면 결코 쉽지 않을 일입니다.

 

(기사 등록 202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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