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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민주노총/ 언론중재법/ <D.P.>/ 류호정 의원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1. 9. 6.

전지윤

 

●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을 석방하라

 

얼마전 민주노총이 경찰력에 침탈당했고 양경수 위원장은 강제연행됐다. 한국사회에서 억압받고 투쟁하는 사람들의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존재인 민주노총에 대한 이러한 탄압은 얼마 전 삼성 이재용의 가석방, 여전히 감옥에 있는 이석기 의원과 함께 ‘촛불혁명’이 5년이 지나서 지금 어떤 기로에 서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거대한 촛불이 낳은 정치적 지진은 분명히 한국사회를 뒤흔들었고 여기저기서 민중이 진출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냈다. 권위주의적 우파가 물러선 자리에는 자유주의 중도파 정부가 세워졌고, 노동운동에도 그것은 맞서 싸우거나 무엇을 요구하기에 상대적으로 더 나은 조건이었다. 노조 조직화에도 기회가 열렸고 민주노총 조합원은 100만을 넘어섰다.

 

촛불을 들고 정치권력을 무너뜨린 사람들은 그 자신감을 가진 채 자신의 삶과 작업장으로 돌아와서 행동하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투쟁의 명분에도 도움이 됐다. ‘촛불 정신’, ‘나라다운 나라’를 말하면서 부정의를 고발하고 개혁을 요구할 수 있었다. ‘촛불정부라더니 이게 뭐냐’, ‘우리가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냐’고 폭로하면서 투쟁을 호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변화를 과장할 수는 없다. 울타리 안과 밖의 노동자들의 거리는 잘 좁혀지지 않았고, 노동운동 내부의 칸막이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조직화와 연대의 힘이 충분치 못해서 여전히 일부는 철탑에 올라갔고, 여전히 일부는 대통령의 결단에 기대했다. 진보정당은 여전히 사분오열 상황이고, 대안 부재 상황에서 자유주의 정치의 견인력은 더 세지고 있다.

 

노조 조직화의 물결도 여전히 중소영세 작업장의 벽을 넘지 못했다. 조직화와 투쟁은 주로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확대됐다. 정부의 ‘비정규직화를 정규직화하고 차별을 없앤다는 약속’은 그 차제로는 빈약했지만, 대기업과 공공부문에서 그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아래로부터 투쟁을 불러내는 효과를 냈다.

 

더구나 플랫폼 산업화, 페미니즘 리부트, 코로나 팬데믹 등이 겹치면서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 배달과 택배 노동자들, 돌봄과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투쟁이 확산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노사정 교섭틀이 막히고 민주노총 새지도부가 총파업을 선언하고 대선과 권력교체기가 다가오면서, 이런 투쟁들은 더 여기저기서 분출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족벌언론과 경제지들은 민주노총의 10.20 총파업, 보건의료 노조 파업 예고, 지하철노조 파업 예고, 거세지는 택배노조의 투쟁, 현대제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점거파업 등을 열거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통제력이 떨어지면서 곳곳이 불안해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몇달전부터 조중동을 주축으로 시작된 '민주노총 죽이기'는 바로 이 불길을 잡으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양경수 위원장이 “대한민국 뒤집기를 시도하다 유죄 판결을 받은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과 같은 경기동부연합 출신”이고, 진경호 전국택배노조 위원장은 “김일성 일가가 묻혀 있는 북한 평양의 혁명열사릉을 찾아 참배까지 한 사람”이라고 낙인찍었다.

 

이런 공격은 코로나 4차 대유행의 도입부에 민주노총이 전국노동자대회를 강행하면서 더욱 본격화됐다. 조선일보는 “민노총의 불법·폭력 횡포”가 “마피아를 방불케”한다면서 민주노총 지도부를 “양아치 같은 노동 귀족 주사파”라고 비난했다. 중앙일보의 ‘저격’ 시리즈에 양경수 위원장이 들어간 것은 이런 맥락이었고, 류호정 의원의 선택이 씁쓸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족벌언론의 민주노총 마녀사냥은 최근 한 대리점주의 비극적 죽음을 발판삼아 최고조로 달하고 있다. 이 비극에는 분명 과도하고 부적절하게 행동한 일부 택배노조원들도 책임이 있지만, 그 배경에는 대리점주와 택배기사들을 비인간적 경쟁으로 내몰며 을들의 싸움을 부추기고 막대한 이윤을 거두는 거대 택배 원청회사들이 있다.

 

그러나 족벌언론들은 이런 큰 맥락과 슈퍼갑의 존재는 삭제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민주노총 악마화에 올인하고 있다. 살인적 노동조건 속에 택배기사들이 줄줄이 죽어갈 때는 뻥긋도 안하던 그 입으로 말이다. 그 방식과 양상을 보면 ‘조국몰이’, ‘윤미향몰이’가 이제 ‘민주노총 몰이’로 넘어간 것을 알 수 있다.

 

요며칠간 조중동 지면을 뒤덮고 있는 엄청난 양의 기사들에 따르면 민주노총과 택배노조는 그야말로 파렴치한 위선자들이고 잔인한 괴물집단이다. 또 항상 그렇듯이 ‘택배노조 간부가 이석기, 경기동부연합, 통진당과 가깝고 지금은 진보당과 연결돼 있다’는 종북몰이로 나아가고 있다. 민주노총 내부와 진보정당들 간의 정파적 갈등과 균열 요소를 최대한 부추겨 민주노총 양경수 집행부를 고립시키려는 계산도 읽혀진다.

 

이런 공격은 ‘친노조 정부, 민노총 정부가 이들을 편들고 비호한 결과’라는 악선동과 연결된다. 민주노총과 문재인 정부의 관계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어처구니없는 논리이지만, 저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 항상 그렇듯이 자유주의 정부는 이런 족벌언론과 우파의 압박에 타협하고 굴복했다. 정부는 코로나 방역에 대한 기계적 잣대를 내세워 민주노총을 압박하고 책임을 떠넘기더니, 결국 민주노총을 침탈하고 양경수 위원장을 강제연행했다.

 

촛불이 고무한 민중의 요구와 진출, 족벌언론과 기득권 카르텔의 반동 시도, 가장 상징적 집단과 인물에 대한 마녀사냥, 자유주의 정부의 타협과 굴복, 부족한 개혁과 진보마저 중단되고 후퇴... 이런 패턴은 노정관계만이 아니라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검찰개혁이 바로 그런 식으로 껍데기만 남게 됐다.

 

검찰개혁을 가로막던 윤석열은 1~2위를 다투는 대선후보가 됐고, 어렵게 만들어진 공수처는 오늘 조희연 교육감을 기소했다. 언론개혁은 정권 임기말에야 고작 언론중재법 하나가 시작되는 듯 하더니, 도로 서랍 속으로 집어넣어지고 있다. 사법개혁은 시작도 못했다. 특히 언론개혁의 실종 과정은 검찰개혁과 평행우주를 보는 것 같다.

 

전문직 집단으로서 검사와 족벌언론 기자들의 엘리트 의식/ 멋대로 칼을 휘두르는 검사와 멋대로 펜을 휘두르는 족벌언론 기자들/ 사건을 조작하는 검찰과 기사를 조작하는 족벌언론/ 그것을 ‘검찰독립’으로 포장하는 검찰과 그것을 ‘언론자유’로 포장하는 족벌언론/ 수사기소권을 이용해 개혁을 저지하는 검찰과 왜곡된 기사와 보도를 이용해 언론개혁을 가로막는 족벌언론

 

가장 기가막힌 공통점은 족벌언론과 기득권 카르텔이 만들어낸 프레임이 먹히며 전선이 흩어지거나 무너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언론재갈법’이라는 프레임을 주도하며 많은 이들을 언론개혁 반대쪽으로 묶어내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조선일보는 “지구상에서 언론징벌법에 대해 박수 치고 지지하는 집단은 딱 하나 북한뿐”이라며 흡족해 했다.(족벌언론이 어떤 검증과 확인도 없이 온갖 가짜뉴스와 허위보도를 가장 많이 쏟아낸 부분이 북한 관련 뉴스였던 것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긴 하다.)

 

원래 자본주의와 계급투쟁에서 경제투쟁, 정치투쟁, 이데올로기 투쟁이 잘 연결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노동자 투쟁과 검찰개혁/언론개혁/사법개혁 등이 별로 상관없는 별개의 일처럼 취급되고, 특히 정치적 쟁점과 투쟁들에서 노동운동과 진보정당들의 존재감이 보이지 않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은 기득권 카르텔과 자유주의 세력의 다툼으로 인식되고 있고, 주도권과 의제설정력은 우파들이 가져가고 있고, 이를 통해 언론개혁을 막아선 족벌언론들은 그 힘을 이용해 또 온갖 가짜뉴스와 허위보도로 노동자 투쟁을 가로막고 민주노총을 마녀사냥하고 있다.

 

우파에 맞서며 더 급진적 검찰,언론, 사법개혁을 추구하는 진보좌파가 잘 보이지 않으니, 개혁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자유주의 세력에 의존하게 되고, 개혁은 온건한 수준으로 제한된다. 고립된 자유주의 세력은 더 쉽게 우파에 굴복한다. 이런 구도가 계속된다면 촛불이 낳은 변화가 결정적으로 되돌려지는 순간이 다가올 수 있다. 

 

 

● 언론중재법 개정 논란 - 반대 세력의 핵심 주체와 실제 목적을 봐야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어떤 쟁점에 대해 상반된 주장과 정보들이 쏟아지고 혼란이 쉽게 정리가 안 될 때면 대체로 그것을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세력의 핵심에 누가 있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세력이 내세우는 그럴듯한 말과 명분이 아니라, 실제 그들이 행동에서 보여온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봐야 한다. 그러면 더 쉽게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생각의 가닥을 잡을 수 있다.

 

지금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가장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세력은 바로 족벌언론들과 그들과 긴밀히 연결된 기득권 카르텔이라는 것이 너무 명백하다. 이들은 활용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 전면적이고 전방위적으로 반대에 나서고 있다. 개혁언론들과 언론시민단체들과 진보정당, 일부 급진좌파도 반대하지 않냐는 물음이 나올 것이다. 그들이 반대 세력의 핵심은 아니지만, 이 문제는 뒤에 따로 이야기해보자.

 

그러면 족벌언론들과 기득권 카르텔은 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반대하는가? 일단 그들이 사설과 칼럼 등을 통해 내놓은 말과 명분을 보자.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성역없이 비판하며 진실을 파헤치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서.’ 헛웃음이 터지는 것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특히 족벌언론들이 ‘앞으로 재벌 비판은 어떻게 하냐’, ‘힘없는 노동자와 미투 피해자 등의 입이 막힐 것이다’ 등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내가 다 부끄러워진다.

 

‘권력자들의 부패를 감시하고 비판하기 위해서’라고? 윤희숙 일가의 투기 의혹이 제기되고 나서 조중동을 뒤덮고 있는 기사들은 모두 “품격”, “양심”, “소신”, “염치”, “신의 한수”, “막스 베버의 책임정치”... 이런 말들 뿐이던데? 윤석열과 특수관계인 윤우진이 직접 스폰서에게 1억 수표를 건네는 <뉴스타파> 영상은 특종이 명백한데 왜 조중동 등에서는 관련 기사들을 찾아볼 수가 없는가?

 

그래도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을 함께 폭로하지 않았냐고? 제발 그 지겨운 거짓말 좀 그만 듣고 싶다. 족벌언론들은 박근혜 4년간 국정농단을 함께하고 그것을 덮어준 장본인이다. 나중에 박근혜와 갈라선 이유나 그 후 보도 행태는 설명하기가 좀 복잡하지만 적어도 ‘진실 보도에 대한 사명감’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재벌에 대한 비판과 고발은 어떻게 하냐’고? 삼성에 대해서 그동안 조중동이 써왔던, 그래서 이재용이 ‘탈옥’하게 만들어준 모든 기사들을 삭제하고서 이런 말을 하면 믿어주겠다. ‘미투 보도가 막힌다’고? 고 장자연님 사건을 윤지오 마녀사냥을 통해서 덮어버리며 <조선일보>를 오히려 ‘피해자’로 만들어버린 게 누구인가? 비슷한 수법으로 김학의도 성착취 사건의 가해자가 아니라 ‘부당한 공권력의 피해자’로 만들어버렸다.

 

‘전략적 봉쇄 소송으로 비판을 막으려 할 것’이라고? 이것은 언론중재법과 무관하게 이미 족벌언론과 기득권 카르텔이 애용하던 수법이다. <조선일보>는 <PD수첩>의 장자연 사건 보도에 민형사 소송을 했고, <동아일보>는 사장 딸의 입시와 취업비리를 폭로한 이들에게 민형사 소송을 했고, 검찰은 <뉴스타파>의 ‘죄수와 검사’ 보도에 9번에 걸쳐 총 6억5천만원 소송을 했다.

 

‘알 권리를 가로막게 될 것’이라고? 조중동은 ‘우한 코로나’라고 계속 우겼고, 백신에 대한 온갖 가짜뉴스를 통해 방역을 방해했다. 산업재해 피해자는 외면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기업 편에서 반대했다. 툭하면 민주노총을 두들겼고, 한강대학생 사건은 탐정놀이를 하면서 클릭장사를 했다. 최근에는 ‘청주간첩단’이라며 어아어마하게 부풀린 기사들을 쏟아냈다. 여기 어디에 우리의 ‘알 권리’가 있는가?

 

‘그래도 살아있는 권력, 조국 일가의 문제를 밝혀내지 않았냐’고? 사모펀드 등 권력형 비리에 대한 모든 보도는 대부분 가짜뉴스였다. 조국 교수가 반정부 인사였던 시절의 입시문제는 ‘살아있는 권력 감시’와 무관하다. 언론이 검찰과 함께 조국 자녀의 10~15년전 표창장, 생기부, 체험활동까지 탈탈 털다가 딸의 입학취소까지 얻어낸 것은 도가 지나친 인간사냥에 불과했다.

 

<조국의 시간>은 이것을 “멸문지화를 위한 조리돌림과 멍석말이”라고 했다. 이 대대적인 기사와 보도가 만들어낸 혐오, 편견, 낙인이 얼마나 지독했으면 이제 한국사회에서 조국 가족은 인간 이하로 취급당해도 의문을 제기하기 어려운 인권도 없는 사람들로 전락해 있다. 김수민, 진중권, 서민같은 이들이 조국 교수의 어머니와 딸까지 잔인하게 조롱하고 희롱해도 말리긴커녕 족벌언론들은 그것을 크게 기사로 실어서 더욱 증폭하고 확산시킨다.

 

이처럼 주류언론의 표적이 돼서 고통받은 피해자들은 너무 많은데, 대표적으로 언론이 만들어낸 혐오와 편견이 아직도 강력해서 8년이 넘도록 사면과 석방되지 못하는 이석기 의원이 있다. 세월호 참사 때 대중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대대적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된 홍가혜 씨가 있다. 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함께 가장 열심히 연대하고 투쟁했지만, 조중동이 이마에 찍어놓은 주홍글씨의 효과로 이제는 그 30년의 투쟁을 기념하는 보도와 기사에서도 그 존재와 목소리가 지워지고 있는 윤미향 의원도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핵심에는 이처럼 족벌언론과 기득권카르텔의 인권침해와 조직적 폭력에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피해자들과 그 지지자들이 있다. 서울시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 씨는 “언론으로부터 피해를 많이 입었던 사람으로서 [징벌적 손배금액이] 5배는 부족하다. 10배라도 해야 한다. 사실이 아닌데도 기자들이 검찰과 국정원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담아서 기사를 냈다. 간첩 조작에 가담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황우석 사태 때 언론의 집중 공격을 당했던 류영준 교수는 그 당시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언론이 최대가해자이고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시스템이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과도 없었고 지금도 언론에 당하는 사람이 매일 보인다.” 조국 교수 딸의 세미나 참석에 대한 거짓증언을 용기있게 바로잡고 사과한 장재혁 씨는 왜 자신이 ‘그들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조국 가족에게 그토록 “증오심과 적개심”을 품게 되었을까 돌아보며 이렇게 썼다.

 

“대한민국 언론은 … 정말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조회수를 받기 위해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내용을 사용하죠. 이 언론의 과장된 헤드라인,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 거짓 본문 때문에 생긴 피해자가 교수님 말고 엄청 많았을 것이죠. 그럼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대다수 국민은 그 기사를 읽고 비로소 세뇌되고 믿게 되는 겁니다 …. 인터넷 뉴스는 더 심각한데 기사 밑에 댓글창이 있죠?”

 

여기서 드러나듯 한국 언론의 문제는 결코 기자 개개인들이 문제가 아니고 족벌언론이 주도해 만들어낸 구조적 문제이다. 족벌언론은 그 자체가 거대자본이고, 이들은 또 재벌(더불어 거대포털)과 공생관계이다. 나아가 정치권력과 유착하면서, 기사와 보도를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 기자 개개인들은 노동강도, 고용불안 속에 클릭경쟁에 내몰리며 충분히 취재와 검증도 없이 기사를 쏟아내야 하는 을이고 장기판의 졸에 불과하다.

 

족벌언론의 상층 간부들은 좀 다르다. 이들은 족벌언론 사주와 이해관계와 가치관을 일치시키며 로비스트나 브로커로 발전해간다. 조선, 중앙 간부들이 정치인들과 엮여서 뇌물과 ‘성상납’(성착취)까지 받은 것이 드러난 ‘가짜 수산업자’ 사건(족벌언론 게이트)은 바로 이러한 구조적 부패고리를 보여 줬다.

 

이런 모든 문제들은 한국에서 특별히 심각하긴 하지만, 자본주의적 거대언론이 낳는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언론개혁은 어디서든 진보좌파의 주된 과제이다. 예컨대 제레미 코빈이 주도하던 영국 노동당 좌파의 주요 공약 중 하나가 ‘진실을 왜곡하고 강자의 편에서 증오를 퍼트리는 과두언론의 개혁과 민주화’였다. 한국에서도 언론시민단체들, 개혁언론, 진보정당 등은 오랫동안 언론개혁과 언론 피해자들의 인권을 주장해 왔다.

 

여기서 ‘언론중재법 개정을 족벌언론과 기득권 카르텔만이 아니라 언론시민단체들, 언론노조, 진보정당 등도 반대하고 있다’는 문제로 돌아가 보자. 첫째,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언론개혁을 철저히 하기에 지금의 개정안이 부족하다는 비판과 가해자들의 편에서 어떠한 언론개혁도 가로막는 반대는 결코 하나로 묶여질 수 없다. 두 가지를 섞어서 마치 양쪽이 한편인 것처럼 프레임을 짜서 언론개혁을 가로막으려는 족벌언론들의 시도는 노골적이고 악의적이다.

 

둘째, 이런 시도를 위한 틈을 열어주는 일부 진보좌파들의 정치적 혼란과 잘못된 대응은 안타깝다. 어쨌든 저들도, 우리도 반대하니 일단은 함께 힘을 합쳐서 막아내면 된다고 판단한다면 크게 실수하는 것이다. 족벌언론들과 기득권 카르텔의 주도로 이러한 부분적 개혁조차 실패하면, 그것은 더 철저하고 급진적인 언론개혁으로의 전진이 아니라 언론개혁 자체의 후퇴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셋째, 언론노조와 기자협회 등의 반대에는 단지 정치적 혼란만이 아니라 언론 피해자들에 대한 연대보다는 아쉽게도 기득권 구조를 지키려는 주류언론 구성원들에 대한 동료의식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 출입기자실 폐쇄에 족벌언론을 넘어 모든 기성언론들이 함께 반대했던 것과 같은 메카니즘이다. 이것은 전문직으로서 기자의 모순된 계급지위, 계급적 정의보다 소속 조합원들의 이익을 우선하게 되는 노동조합의 일반적 한계 등과 연결돼 있다.

 

따라서 이것을 뒷받침하는 논리도 설득력이 없다. ‘선의의 개혁이라도 악용될 수 있다’면서 그것을 가장 악용할 세력과 손을 잡는 것은, ‘더 철저한 더 많은 개혁이 필요하다’면서 최소한의 개혁조차 반대하는 세력과 같은 편에 서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진보좌파는 자유주의 세력이 아래로부터 압력에 떠밀려 너무나 뒤늦게 매우 타협적 내용으로 제안한 개혁의 부족함과 한계를 비판하면서도, 그것조차 반대하는 세력에 앞장서 맞서며 더 신속하고 더 급진적인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

 

● 넷플릭스 드라마 <D.P.>와 군대 억압

 

넷플릭스 드라마 <D.P.>를 봤다. 원작 만화가 5년전 한겨레 지면에 연재될 때도 빠짐없이 찾아 봤었지만, 시간도 많이 지났고 각색도 해서 그런지 새롭게 다가왔고 재미와 감동도 많았다. <D.P.>는 지금 큰 인기를 끌며 화제가 되고 있는 데, 군대와 마초적 남성성을 멋있게 묘사하는 <진짜사나이>, <가짜사나이>같은 프로들이 인기끌던 것보다 훨씬 더 반가운 일이다.

 

<D.P.>는 내용도 알차고 완성도가 높아서 군대와 군대문화를 폭로하는 대표적 영화들인 <풀 메탈 자켓>, <용서받지 못한 자> 등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원작, 각본, 연출, 연기 모두 별로 나무랄 데가 없어 보인다. 배우 정해인과 구교환도 다시 보게 됐다.

 

특히 이번에 구교환을 보면서 그가 바로 <꿈의 제인>에 트랜스젠더 제인으로 나왔던 바로 그 배우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끝없는 불행 속에서 가끔 찾아드는 행복을 위해 서로의 곁을 떠나지 말고 함께 목숨을 붙잡고 있자던 제인의 메시지는 <D.P.>에서도 다시 느낄 수 있다.

 

부산 탈영병 에피소드는 약간 갸웃거리게 되는 면이 있었고, 군대에서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그 원인과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려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6편짜리 대중적 드라마에 그런 것을 요구하는 건 기계적이고 과할 것이다. 그래도 그것이 시즌2에 대한 기대와 요구로 연결되면 좋겠다.

 

몇몇 인물들은 너무 전형적이라고 보일 수도 있지만, 군대가 바로 그런 전형적 인물들을 만들어내는 곳이니 당연하기도 하다. 특히 막바지로 가면서 ‘방관자’라는 화두를 던지는 것이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비인간적인 폭력과 괴롭힘이 벌어지는 것을 지켜보거나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못 본 척하면서 방관하는 나와 너와 우리들.

 

여기서 이 드라마를 만든 한준희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이것을 “군대에 국한되지 않은 보편적 이야기”라고 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6년전에 쓴 아래 글에서도 인용했지만 “군대는 사회가 앓고 있는 온갖 질병을 훨씬 고열로 앓고 있다.” 즉, <D.P.>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것은 군대 밖의 사회에서도 모두 나타나고 있는 일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를 오히려 청년남성들이 더 역차별받고 있다는 뒤틀린 피해의식을 정당화하는 서사로 가져가려 한다면 헛될 것이다. 집단 안에서 가장 약하거나 튀거나 약간의 결함이나 문제가 있는 사람을 표적으로 정해서, 끝없이 따돌리고 괴롭히고, 인간적인 모멸감을 가하고, 조리돌리고, 물리적 언어적 폭력을 가하고, 가족까지 끌고와서 모독하고, 도저히 버틸 수 없는 벼랑 끝으로 내모는...

 

이것은 단지 군대만이 아니라 학교에서, 사회에서, 크고 작은 공동체에서, 우리 사회 전체에서 항상 볼 수 있는 일이다. 주류언론과 검찰같은 국가기구가 그것을 주도하고, 그것을 가장 잔인하게 잘하는 사람은 언론이 자주 인용하는 논객이 되고 대선 후보가 된다. 그래서 주류언론이 가끔 학교 폭력이나 왕따 등을 ‘어떻게 이런 잔인한 일이’ 식으로 호들갑스럽게 보도하는 것을 보면 항상 어색하다.

 

언론과 사회에서 항상 벌어지는 일이 누군가를 표적으로 정해서 괴롭히고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것인데 학생들이 그것을 보고 따라하는 것이 그렇게 놀라운 일일까. 그리고 우리 모두는 대개 방관하고 침묵한다. 내가 당하는 것은 아니니까. 괜히 나서면 나도 엮이니까, 뭔가 잘못이 있어서 당하는 걸테니까. 이런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은 과연 ‘군대가 바뀔 수 있다’는 말처럼 공허한 말로 남을까?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왜 사병들은 서로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악의적 관습을 그토록 끈질기게 지속할까? 왜 선임병들은 자신들이 졸병 때 당했던 그 악행을 고스란히 후임병에게 돌려줄까? 어떤 구조와 제도가 사병들이 서로 억압하고 억압당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 핵심 국가기구인 군대가 만들어낸 억압 구조다...

 

“특히 한국 군대는 일제 황국군대를 모태삼았기에 더 심했다. 한국 군대 초기 형성 과정에서 장교의 많은 수가 일본군, 만주군 출신이었다. 이들은 일본군에서 배운 엄격한 위계 질서, 억압적 내무반 제도, 구타와 가혹행위 등을 그대로 가져 왔다...

 

“누군가는 가혹행위를 하고 누군가는 그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고문관’이 되고, 누군가는 그를 따돌리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구조적 억압과 폭력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게 되고, 누군가는 다른 동료들에게 총부리를 돌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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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의 저격과 류호정 의원의 동참

 

기본으로 돈과 권력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대변하고 스스로도 주류사회에서 소외돼 있는 진보정당과 의원들을 지지한다. 따라서 진보정당과 의원들의 실수나 잘못에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잘 걸렸다'식으로 비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더불어서 같은 진보좌파 운동 안에서도 서로 노선이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의 실수나 잘못에는 방어적이면서 다른 편의 실수와 잘못에는 지나치게 가혹한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것을 모두 감안해도 이번에 류호정 의원의 잘못은 매우 아쉽다. 특히 정의당이 과거에 종북몰이에 맞서서 동지들을 제대로 방어하지 않은 것에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들에게, 정의당의 새세대들이 그와 선을 긋는 모습을 보이면서 새로운 출발을 가져오길 바랬던 점에서도 더 아쉽다. 하필 민주노총 위원장이 수배와 구속 위험에 놓인 상황에서 중앙일보 ‘저격’에 동참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정말 몰랐을까?

 

추가해서 가장 이해가 안되는 것은 류호정 의원이 조문 거부 선언 등을 통해 피해자와 연대하는 것의 중요성을 가장 강조했던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에 따르면 조중동과 인터뷰나 협력은 더욱 이해될 수가 없다. 단지 고 장자연 씨 사건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조중동은 온갖 마녀사냥과 조작 기사 등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가하고 그들의 삶을 파괴한 대표적 족벌언론이다.

 

기대했던 진보정당의 의원이 조중동과 인터뷰하고 협력하는 것을 볼 때 그 피해자들의 마음은 실망과 좌절 속에 찢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발 조중동과만은 인터뷰하거나 협력하지 말아달라고 그동안 수차례 글을 써 왔다. 물론 나같은 사람의 글이 가닿진 않았겠지만, 이에 대한 수많은 목소리들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류호정 의원이 지난주 조선일보 주말판에 두면에 걸쳐 인터뷰한 것을 보고 쓰디쓴 마음이 들었었다. 그런데 어제 또 중앙일보의 ‘저격’에 동참한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이것으로 류호정 의원의 그동안의 기여와 지지와 칭찬받아 마땅한 모든 활동이 사라질 수는 없다, 그러나 큰 실망을 준 것도 사실이다. 부디 이번에 나오는 서운함과 아쉬움의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이고 어떤 관행이나 격식도 벗어나 과감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대응을 기대한다.  

 

(기사 등록 202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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