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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K-피해자탓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2. 3. 1.

박철균

포옹하고 있는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

1.

3부터 고2까지 끈질기게 나를 괴롭히고 학대했던 그 사람은 항상 이런 얘기를 했다.

"네가 잘난 척을 해서 내가 이러는 거야"

"네가 사람에게 대하는 것이 차별적이라서 이러는 거야"

"네가 나를 보고 떨고 무서워 하는 것이 짜증나서 이러는 거야"

항상 그 사람은 내가 문제가 많고 폭력을 유발하기에 자신이 숱하게 찾아와서 나를 괴롭히는 것을 정당화했다. 그런 것을 계속 당하다 보니 나는 당시엔 어쩔 때는 이 괴로운 상황이 내가 남들과는 달라서 이 모양이구나 생각하면서 자책을 심하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세월이 들어서야 나는 깨닫게 되었다.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괴롭히고 폭력을 휘두르고 학대하는 그 사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그 사람이 얘기하는 그 말들은 모두 가스라이팅이라는 것을....

2.

우크라이나 전쟁이 나서 수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가고 폭격으로 목숨을 잃고 있는 상황이다. 그 와중에도 러시아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도 목숨을 잃는 상황이다. 여타부타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 이야기는 많지만, 지금 보이는 것은 하나다. 미국 다음으로 군사적 패권을 자랑하는 나라가 자기 패권을 위해 자기보다 약한 나라를 공격하고 학살하고 있다는 것.

거기에 어떤 대통령 후보는 "대통령을 잘못 뽑아서 그렇게 된 거다"고 조롱했고, 그 대통령 후보의 지지자나 국회의원 또한 덩달아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코미디언이라서 그렇다" 우크라이나가 문제이고,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우리 후보를 뽑아야 한다며 우크라이나를 조롱하고 있다.

한국 방송국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아마추어다." 식으로 보도했다가 한국 거주 우크라이나인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부랴부랴 삭제했다.

나는 거기서 중고등학교 때 그 사람이 생각나서 소름이 끼쳤다. 어쩜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비아냥하는 방식, 모든 것이 피해자 때문이라는 방식.... 어떻게 그 사람이랑 지금의 정치권이나 방송국이랑 다를 게 하나도 없냐...

3.

비단 정치권이 아니더라도 이 사회에서 피해자탓을 안 한 것이 뭐가 있을까.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땐 그 가해자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나 피해자를 지원하는 사람이 문제라고 몰아세우고 2차 가해를 하기 바쁘다. 군대나 회사 같은 문제가 있는 조직을 폭로하면 그 군대나 회사를 바꾸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폭로한 사람이 문제인 것처럼 얘기하며 그 한사람을 매장하기 바쁘다.

이런 K-피해자탓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선이 맞물러서 최악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마음은 이 사회에서 피해자로서 온갖 모욕과 비난을 감수해야 했던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느낄 것 같다. 이렇게 지긋지긋하게 상처 받고 배제 받은 사람이 문제이고 상처를 주고 가해 해 온 다수는 아무 잘못 없는 듯이 얘기하는 이 한국이란 나라가 매우 지긋지긋하게 느껴진다.

4.

지원은 물론 위로조차 하기 어렵다면 그럼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 좋겠다. 대통령의 자질이나 직업을 운운하며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는 복합적 혐오와 차별,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고 그 당이 여당이 된 들 나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문제를 언급하며 나라망신이라고 하는 상대 정당도 오랜 세월동안 사회적 문제가 있을 때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에게 온갖 레드컴플렉스의 낙인을 씌우고 탄압하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빼앗으며 입을 틀어 막았던 K-피해자탓의 선두주자기 때문에 역시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피해자가 피해의 목소리를 낼 때 "네 탓이 아니야."를 함께 외치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지금 당장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지지하고 연대하고 기도하는 것부터 하려고 한다.

(기사 등록 20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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