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읽기

세상읽기 - 대선/마녀사냥/우크라이나와 반전평화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2. 3. 12.

전지윤

윤석열 당선 - 왜 이런 망할 일이 벌어졌는가

인종적 젠더적 혐오를 부추기는 극우세력이 성장하고 권력을 잡는 현상에서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문재인 5년 이후 윤석열이 등장한 것은 여러모로 오바마 8년 이후에 트럼프가 당선된 것과 비슷하다.

2016년에 트럼프가 당선된 날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본 여성들이 서로 부둥켜 앉고 울었다거나, 저녁에 마트에 갔더니 울면서 술을 고르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소식을 보고 가슴 아팠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 그 심정이 너무 생생하게 다가온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정치검찰-족벌언론들의 사냥감이 돼서 지독한 몰이를 당하던 사람들의 심정이다. 나를 괴롭히던 집단이 최고권력을 잡는 것을 목격할 때의 심정은 상상하기 어렵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누구와 함께 슬퍼해야 할 것인지는 분명하다.

윤석열(과 이준석)의 승리에 대해서 위협과 공포를 느끼는 여성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심정이 지금 우리의 심정이다. 이제 여성가족부로 상징되는 성평등 사업과 정책, 예산, 인력들은 모두 공격에 직면할 것이다. 중국인이나 재중동포에 대한 배척과 혐오는 더 심해질 것이다.

노동조합과 시민단체에 대한 편견과 낙인도 더 강화될 것이고, 특히 작고 힘없는 노조나 단체일수록 더 힘들어질 것이다. 어디서든 차별과 혐오와 폭력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더 자신감을 얻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윤석열과 반대 편에 있던 정치인 등은 지금, 검찰청 캐비넷 깊숙한 곳의 어떤 자료가 어떤 식으로 족벌언론의 지면으로 터져나올지 떨고 있을 것이다. 박근혜 당선 이후에 이정희 구속과 통합진보당 해산을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았듯이, 벌써부터 <뉴스타파>, 임은정, 서지현 검사 등 윤석열 블랙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들이 돌고 있다. ‘대장동의 몸통은 이재명이라던 자신들의 말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저들은 이재명을 구속하려 할 것이다.

‘2016년 촛불이 만든 변화가 모두 무너지는 것 같은 지금, 이야기는 결국 5년 전 촛불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촛불은 위대한 아래로부터 민중행동이었다. 촛불을 쥐고서 추위를 몇 시간이나 견디던 어린 아이, 그 아이를 꼭 껴안고 있던 엄마, 강원도에서 매주 올라온다던 노부부, 눈비를 맞으면서도 자리를 지키던 한 가족 등이 기억난다. 그들이 주역이었다.

그들이 모두 급진적 정치의식을 가지고 민주당을 넘어서는 정치적 노선과 정책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었다고 기억한다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민주당보다 오른쪽이었던 사람들도 포괄한 것이 촛불광장이었다. 그 공통분모는 그렇게 급진적이지 않았다.

거듭 말해왔지만 촛불이 낳은 것은 정권교체였지, 사회경제적 주류의 교체는 아니었다. 최근에 유출된 녹취록에서 윤석열도 그것을 지적한다. “어차피 버리는 카드이니까 뇌물로 엮어서 박근혜를 조짐으로써 국민들을 달래며 박근혜와 보수세력을 분리한 거지.” 그래서 정치검찰과 족벌언론들도 촛불의 일부이거나 주역이었던 것처럼 행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문재인의 실패한 5이 있었다. 윤석열의 탄생과 집권을 낳았기에 이것은 실패가 맞다. 그러나 나는 문재인 정부가 모든 걸 배신했고 실패했다는 좌파의 일반적 담론은 거부할 것이다. 이 평가에는 4가지 공정함이 필요하다.

첫째, 문재인 정부는 처음부터 급진좌파 정부가 아니라 중도개혁 정부였고, 이 정부를 지지하거나 선출한 대중들도 그들에게 급진개혁을 기대하진 않았다. 둘째, 이 정부는 진공 속에서가 아니라 국제적 과잉 유동성과 코로나 팬데믹 등의 악조건 속에서 움직였다.

셋째, 이 정부는 재벌, 거대언론, (검찰과 기재부 등) 관료권력의 포위와 방해라는 벽에 거듭 부닥쳤다. 넷째, 그 속에서도 지난 5년간 저임금 노동자 비중 축소, 노동소득분배율의 개선, 노인빈곤율의 하락, 코로나 선방 등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걸 감안해도 이 정부는 재벌, 거대언론, 관료권력 등에 거듭 타협하고 굴복하면서 문제 해결에 실패했다. 그 결과는 부동산 폭등 속에 더 확대된 자산격차, 청년실업, 양극화, 늘어난 좌절과 박탈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우파의 러스트벨트가 됐다.

트럼프가 쇠락한 공업지역’(러스트벨트)의 가난한 저학력 백인(남성)노동계급의 분노와 불만을 권력 장악의 자양분으로 삼았듯이 말이다. 계급적 분노와 불만은 우파적 대안과 연결됐다. 박근혜를 잘라내며 위기를 벗어난 우파는 새로운 의제와 세력으로 재구성됐다.

여기서 몇 가지 오해가 있다. 갈라치기는 기득권 우파의 전통적 전략이었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역과 이념(, 두 가지의 결합) 갈라치기가 대표적이고 그것은 지금도 버려진 카드가 아니다. 새로 결합된 것은 젠더 갈라치기인데, 이것이 실패했다는 평가도 일면적이다.

갈라치기는 원래 한쪽을 버려서 한 쪽을 얻고 무엇보다 승리하는 것이다. 트럼프도 백인과 남성의 표를 얻으면서 유색인과 여성의 표는 버렸다. 그리고 전체 득표에서는 오히려 힐러리보다 부족했다. 그러나 이겼다. 무엇보다 그는 열성적 행동부대를 얻었다.

이 나라 우파도 비슷하다. 그들의 전략은 첫째, ‘정권연장이냐 정권교체냐는 프레임으로2016년 촛불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이었다. 둘째, 586엘리트 정서를 이용해 문재인 정부를 좌파 운동권 출신의 이권집단이라고 낙인찍는 것이었다. 셋째, 온갖 가짜뉴스로 이재명을 차마 지지할 수 없는 괴물로 악마화하는 것이었다. 넷째, 60대 이상 세대와 영남 지지층, 청년남성들의 협공으로 민주당 지지자들을 포위하는 것이었다.

족벌 거대언론들과 대형포털, 종편들의 협조가 이것을 더욱 효과적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윤석열과 트럼프의 차이점이다. 트럼프는 주류언론들과 여론조사를 뒤엎고 승리했다. 반면에 윤석열이 넉넉히 이기고 있다는 주류언론들과 여론조사들은 승리를 만들어냈다. 철저한 아웃사이더였던 트럼프와 정치신인이긴 하지만 검언정 카르텔의 오랜 일부였던 윤석열의 차이다. 우리는 이 차이가 낳는 위험과 한계를 같이 봐야 한다.

아무튼 우파의 전략은 성공했다. 이 결과는 촛불 이후 심각한 위기와 분열로 빠져들던 기득권 우파의 재결집과 부활을 뜻한다. 더구나 윤석열은 핏발이 선 눈으로 온갖 막말과 혐오선동을 하고도 당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그는 여성, 환경, 인권, 노동 단체들이 보낸 모든 질의에 전부 철저한 답변 거부와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한국 정치권의 대표적 아웃사이더였던 이재명은 사실, 계급적 분노와 불만을 우파적 혐오정치가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다. 그러나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되는 과정에서 억강부약을 말하던 아웃사이더 이재명은 사라졌다. 그렇게 실용주의를 말하며 주류화되던 이재명을 막판에 변화시킨 것은 아래로부터 압력이었다.

그것은 반페미니즘 여성혐오 선동에 몰리던 청년여성들의 대대적 반격이었다. 그 과정은 매우 드라마틱했다. 대선 초반에 이재명 캠프에서는 이대남들의 눈치를 보며 페미니즘과 거리를 두자는 목소리가 강했고 권인숙, 정춘숙을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재명의 돌파구는 신천지무속줄리도 아니라 바로 청년여성들의 힘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재명은 TV토론에서 지자체장 성폭력 사건들을 사과했고, ‘구조적 성차별이 왜 없냐고 윤석열을 몰아붙였다. 윤석열은 페미니즘도 휴머니즘의 하나라고 얼버무렸다. 특히 인상적 장면은 대선 직전의 김어준 <다스뵈이다>였다. 거기서 김어준은 이대남 프레임을 이번남 프레임으로 바꿔버린 여성들의 힘을 감탄하며 찬양했다.

이어서 유시민은 내가 19년 전에 조개와 해일 발언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취지가 왜곡된 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사과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여성들의 행동이 해일을 막는 것이었고 정작 조개를 줍는 건 나였던 것 같다며 머리를 숙였다. 방청석 앞에서 그 말을 듣는 여성들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민주당이 다시 전통적 주류(윤석열은 민주당에도 좋은 분들이 있다고 말한다)이 통제하는 기득권 정당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왼쪽의 비주류들이 힘을 키우며 청년여성들로 지지기반을 확대해갈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사실 더 걱정하며 지켜봐야 할 것은 민주당 왼쪽의 진보좌파의 현실이다.

이번에 패배한 것은 민주당일 뿐이고, 반우파적 대안으로서 진보좌파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결과이기 때문이다. 진보좌파에게 언제나 필요한 것은 정직하게 현실을 직시하며 스스로부터 성찰하는 것이다. 그래야 당장은 어려워도, 앞으로는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그 점에서 어차피 윤석열이 되든 이재명이 되든 달라질 것은 없었다면서, 애써 위안을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마치 무노조 경영을 하면서 구사대를 동원하는 자본가나, 노조를 인정하고 마지못해 임단협에 응하는 자본가나 어차피 다 자본주의이고 자본가라고 말하는 것처럼 구체성과 맥락이 없는 말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지금 윤석열의 당선이 마치 정의당 등 진보정당과 후보들 때문이라는 식으로 책임을 돌리고 탓하고 욕하는 민주당 일부 지지자들의 태도는 명백히 잘못이다. 이것은 책임 떠넘기기이며 도저히 정당화될 수 없는 엉뚱한 화풀이일 뿐이다. 지금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 극심한 양강구도 속에서도 나온 진보정당과 후보들에 대한 작지만 소중한 지지가 보여준 가치를 인정하고 그 의미를 고민해 보는 것이다.

물론 윤석열 시대에 대한 걱정 때문에 이재명을 찍었다는 사람들을 향해서 조롱, 경멸, 비난, 징계 요구로 대응하는 진보좌파 일부의 태도도 바람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심정을 이해하면서 토론하고 협력하며 거리를 좁히는 게 아니라, 경직된 대응으로 등을 돌리게 만드는 것은 진보좌파의 기반 확장에 도움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경험은 우리에게도 보여주는 것이 많다. 브라질의 검찰과 언론이 부패 척결을 명분으로 룰라와 노동자당을 공격했을 때, 노동자당 밖의 주요 급진좌파들은 그것을 방관하고 노동자당을 같이 공격하기도 했다. 그 결과는 단지 우파의 룰라 구속을 가능하게 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 다가오는 대선에서 또다시 룰라와 노동자당만이 우파의 대안으로 여겨지도록 만들었다.

어느 쪽에서든 생각과 노선이 다른 사람들은 무시와 모욕을 통해서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어떻게 윤석열같은 멍청하고 무식한 자를 지지할 수 있냐고 우파 지지층을 무시하고 모욕하던 민주당 리더들의 엘리트적 태도나 오만한 실수와 비슷하다.

2019년을 돌아보며 느끼는 아쉬움도 그것이다. 당시에 진보좌파는 서초동에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을 외치며 모여서 촛불을 든 사람들을 무시하고 모욕했다. 검언카르텔 인간사냥의 표적이 된 사람들을 같이 공격하고 조롱했다. 그것은 마치 어떻게 신자유주의적 유럽연합을 지지하냐며 브렉시트 반대 시위를 비난하던 유럽 급진좌파 태도와 비슷했다.

그렇게 해서 2016년 촛불은 2019년 촛불로 이어지는 듯하다가 사그라들었고,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있다. 2016년 촛불의 정신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던 대중과 진보좌파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고, 그들은 민주당 지지자가 되거나 흩어져 버렸다. ‘자기 존재의 정당성과 명예를 계급대중과 자신을 구별해 주는 특수한 표지에서 찾지 말고, 계급대중과의 공통점에서 찾아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조언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윤석열 당선에 좌절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에 공감하고, 그들과 함께 투쟁하고 연대할 기회를 늘려가는 것이다. 겨우 민주당이나 지지하고 체제 자체에 도전하지도 않는다고 다른 이들을 한심하고 멍청하다고 모욕해서는 안 된다. 기꺼이 그런 사람들과 함께 투쟁하고 연대하면서 우리의 대안을 설득해야 한다. 결국, 체제 자체를 바꾸는 것도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한 압도 다수 대중의 직접행동일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5년 전 그 촛불 광장을 떠올린다. https://www.youtube.com/watch?v=W-mv0LpgawA

대선 이후에도 공감과 연대를 잃지 않길

사실 안철수의 사퇴와 단일화는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이번 대선 기간 동안 안철수와 윤석열의 정책과 노선의 동일성이 거듭 확인됐기 때문이다. 같은 방향으로 걷는데 합쳐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안철수 사퇴 하루 전에 <조선일보> 김대중의 논설도 인상적이었다.

거기서 한국 수구우파의 정신적 지주인 김대중은 자신이 얼마 전 안철수를 직접 만났다고 썼다. “안 후보는 등을 의자에 대지도 않은 채 반듯이 앉고 두 손을 상 위에 올린 자세로로 공손하게, 자신에게 걱정말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더 놀랐던 것은 윤석열 캠프에서 윤서인을 언론특보로 임명했다는 소식이었다. 윤서인은 극단적 혐오주의자로서 청년극우 유튜버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윤서인 채널에 가보니 노회찬과 노무현의 죽음을 조롱하면서 문재인도 자살할 것이라고 암시하면서 그러니 그 전에 잡아가둬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비록 의도치 않게 임명 사실이 공개되면서, 당황하며 바로 해촉하기는 했지만 이런 그를 언론특보로 임명한 윤석열 캠프의 방향성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던 것이다. 사실 윤석열의 여성가족부 해체는 나에게 실질적 타격으로 다가오는 문제다. 내가 도와 온 성폭력 피해자도 여성가족부의 간접적 지원을 받으며 상담치료 등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무고죄 강화도 마찬가지다. 내가 도와 온 성폭력 피해자들은 모두 거짓 성폭력을 지어내서 죄없는 남성들을 가해자로 몰아 다른 목적을 추구한다는 공격을 받아왔다. 나는 그런 여성들을 사주해서 거짓 피해를 조작했다는 논리로 지금 3년째 소송에 시달리고 있는 처지이기도 하다.

그러니 윤석열의 공약과 정책을 보면서 위협과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고 눈물흘리는 박지현 씨의 영상을 보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간단한 것이 아니다. 아마도 변영주 감독님이 이번에 세상이 순식간에 좋아지면 좋겠는데, 그래도 두 걸음 뒤로 가는 것보다 반걸음 앞으로 가는 게 더 나은 방법이라고 말한 이유도 비슷할 것 같다.

물론 나는 이런 수구반동 정치세력과 극단적 혐오정치에 가장 일관되게 맞서왔고 맞설 것은 진보좌파 정당과 후보들이라고 생각하고, 따라서 그들에게 표를 주겠다고 했다. 최악이 싫다고 차악(또는 차선)에 투표한다면 언제 대안을 만들 수 있겠냐는 정당한 고민이고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러면 오히려 표가 분산돼서 당신이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최악의 후보가 당선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현재의 정치 제도와 구조 속에서 분명, 실제로 존재하는 모순이고 부정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딜레마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각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기준에 따라서 투표할 수밖에 없다. 서로 비난하고 매도하기보다 그 결정을 존중하고 토론하면서... 또 그 결정이 낳을 결과를 감당하고 받아들이면서... 무엇보다 이후에도 연대와 협력을 기약하면서.

최근에 막을 내린 <공작도시>는 꽤 좋은 드라마였다. 비록 너무 길어서 건너뛰면서 마지막 몇 편만 집중해서 봤지만,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한 여성주의적 미러링이 분명한 장면들이 있었다. 또 명백히 용산참사와 김학의 성범죄를 주요 줄기로 삼고 있었다.

스포일러이지만, 이 드라마의 마지막은 참담하다. 뻔한 권선징악은 전혀 없다. 여성 주인공들은 죽거나 감옥에 가거나 영혼까지 털리고 철저히 짓밟힌다. 반면 대부분 남성인 뻔뻔하고 역겨운 자들은 대통령 후보, 검찰총장, 유력 언론인이 되고, 재벌 경영권을 잡는다.

여성들을 잔인하게 유린하고 대통령 후보가 된 자는 출마 선언을 하며 차별없는 공정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한다. 한 톨의 희망도 찾기 힘든 결말은 함부로 덤비지 마라. 소용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엔딩을 보고서 먹먹한 마음으로 생각해보니, 당연했다.

지금 현실에서 용산참사의 주범들은 어떻게 됐는가? 한 명(김석기)은 국회의원을 했고, 한 명(오세훈)은 다시 서울시장이 됐다. 김학의 성범죄는 어떻게 됐는가? 김학의는 무죄가 됐고, 피해여성들은 지워졌고, 김학의를 처벌하려던 사람들만 벌 받고 있다. 검찰과 족벌언론에 덤볐던 사람들은? 무간지옥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그럼에도 <공작도시>의 마지막 장면에서 한 가지 불씨는 남았다. 두 여성은 철거촌을 그린 그림을 보면서 저 안에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라고 말하며 서로를 바라보며 그 아픔을 떠올린다. 다음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던, 설사 윤석열이 되더라도, 그 공감과 연대를 잃지 않고 살아갈 각오를 한다.

* 사족: 윤석열의 하드코어 버전같은 군소 우익 후보들의 선거공보물을 찬찬히 보면서 떠올린 생각이 있다. 이들이 왜 큰 비용이 드는 대선 출마까지 했을까 궁금해서 뒤져보다가, 대부분 중년 남성이고, 재산이 어마어마하게 많거나, 학벌이 짱짱한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돈 좀 있고 서울대 쯤 나오면 대선 출마 정도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그 보다는 그런 재산을 사회로 환원하는 게 세상에 더 이바지하는 길 아닐까.

https://alook.so/posts/latKb2

두 번 죽고 세 번 죽고 끝없이 죽게 하는 무서운 구조

분노를 참을 수 없다. 이번 선거에서 윤석열과 국민의힘과 족벌언론과 대부분의 언론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혐오와 낙인과 편견과 마녀사냥에만 의존하고 있다. 선거 초반에는 여당의 공동선대위원장인 한 여성을 온갖 끔찍한 방법으로 마녀사냥해서 몰아내더니, 이제 선거 막판에는 또 윤미향 의원을 화형대에 올려 세웠다.

산불로 처참한 피해가 발생한 상황에서 윤미향 의원이 그런 상황을 기뻐하고 긍정하는 듯한 글을 올렸다는 것이다. 물론 완전한 거짓이고 가짜뉴스일뿐 아니라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도대체가 말도 안 된다.

이것은 마치, 관동대지진이 벌어졌을 때 일제와 일본 언론들이 조선인들이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탓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린 것과 비슷하다. 조선인들을 같은 인간으로 봤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논리이지만 문제는 그것이 먹혔다는 것이다.

그게 과연 먼 과거만의 일인가? 이번에도 악질적 거짓선동은 먹혔다. ? 첫째, 거대정당과 거대언론과 거대포털이 그것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고 퍼나르고 했기 때문이다. 어제 동네 시장에 갔다오다가 그런 종편 뉴스를 보고 있는 사람들, 그런 내용이 주요뉴스로 떠 있는 광고 전광판을 봤다. 휴대폰으로 들어가보니 포털에도 상단에 올라가 있었다.

둘째, 이미 지난 2년간 저들이 온갖 악랄한 방법을 통해 윤미향 의원에게 지독한 편견과 낙인의 주홍글씨를 찍어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의 사람이라면 절대 할 리가 없을 언행을 윤미향 의원은 했을 거라는 인식이 여기저기에 퍼져 있는 것이다. 편견과 낙인은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한번 그 올가미에 걸리면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그 앞에서는 상식도 정의도 펙트체크도 다 소용이 없다. 혐오와 차별을 반대한다는 사람들도 방관하고 침묵하게 만들어버린다. 심지어, 일부는 그것에 동조한다. 그리고 국민의힘과 족벌언론들은 그것을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자기들에게 필요할 때만 되면 마치 목줄을 걸어둔 노예처럼 그 피해자를 다시 끌고나와서 화형대에 세운다. 피해자와 서로 사랑하는 이들은 두 번 죽고 세 번 죽고 끝없이 죽는다. 이 무서운 구조를 없애는 것이 대선에서 누가 권력을 잡느냐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고 거듭 확신한다.

<조선일보>선택적 반전평화를 성찰할 것인가?

정파적 프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다양한 매체들을 교차 확인해보자는 취지로 아주 오랜 전부터 <조선일보>를 항상 열심히 읽어오던 독자로서, 요즘 <조선일보>를 보면 러시아의 침공과 전쟁에 맞서서 가장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누구보다 우크라이나 민중의 고통에 공감하면서 그들의 안전을 걱정하고 반러시아 저항을 지지하고 소식을 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보도에서 나름 유익한 정보도 얻고 있는 처지에서 이것의 진정성을 무조건 의심하거나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렇다면 아래와 같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그것을 민주화해방이라고 포장해주고, 미국의 막강한 첨단무기와 그것의 사용을 경외감 가득한 눈으로 찬양하고, 파병을 통한 지원을 주장하고 했던 것을 스스로 반성하고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https://alook.so/posts/rDtqqo

내가 이 이야기를 반복하는 이유는 과거를 끄집어내서 <조선일보>나 친미우파 세력에게 시비걸고 꼬투리를 잡고 싶어서가 아니다. 강대국의 일방적 군사행동과 약소국 주권 유린을 지지했던 과거와 오류를 제대로 반성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그것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약소국을 군사적으로 침공하고 주권을 유린하는 주체가 미국과 서방 국가이면 지지하고, 러시아나 중국이면 규탄하는 선택적 반전평화’, 또 폭격당하고 유린당하는 대상이 친서방 진영에 있으면 그 고통에 주목하고, 반서방 진영에 있으면 그 고통을 외면하는 선택적 공감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서방언론은 지금, ‘탈레반이나 지지하며 무슬림인 야만적인 아랍인들과 문명화된 유럽의 일부이고 크리스천이고 백인인 우크라이나인을 구별하면서 자신들의 선택적 이중잣대를 정당화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과 서방의 제국주의적 침탈에 맞서서 약소국의 주권을 옹호하던 이들이, 러시아와 중국의 약소국과 소수민족에 대한 패권적 횡포와 억압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처럼 잘못된 것이다.(미국의 폭격과 침략을 비판하다가 지금 러시아의 폭격과 침략을 지지하는 좌파들을 보는 것도 정말 괴로운 일이다.)

이런 태도들은 자신들이 평화와 인권에 대한 보편적 가치와 진정성을 가진 게 아니라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상황과 사실을 취사선택하고 이용하고 있다는 고백일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누구보다 격렬히 내로남불을 비판하던 <조선일보>가 이제 또다시 스스로의 극단적 내로남불을 모른 척하고 넘어갈 것인지 계속 지켜볼 것이다.

모든 전쟁과 침략에 반대하는 반전평화 국제연대로

지금, 우크라이나 민중은 러시아의 야만적 침공에 굴하지 않고 저항하고 있다. 러시아의 전쟁을 규탄하면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안전을 걱정하면서 연대하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강력하다. 반전평화 운동진영만이 아니라, 정치적 지향이나 진영을 넘어서 이런 목소리가 넓게 퍼져나가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이 중에서 국민의힘과 족벌언론들의 주장과 태도는 몇 가지 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이들은 러시아의 패권적이고 팽창주의적 시도를 강력 비판하며 반대하고 있다. 갑자기 반제국주의자들로 변신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럼에도, 이것은 전적으로 타당하고 공감할 주장들이다. 지나치게 러시아만 악마화하는 점은 있지만 말이다.

둘째, 이들은 책임과 원인이 러시아에 있으므로 우크라이나 정부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것도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 러시아의 침공을 분명히 비판하지 않으면서 젤린스키 정부만 탓한다면, 침략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우크라이나 민중의 고통을 무시하는 것처럼 오해받을 여지가 있다. 물론, 그런 의도에서 젤린스키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겠지만 말이다.(러시아를 해방군이라고 부르는 일부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셋째, 이들은 이번 사태에서 나름의 교훈을 끌어낸다. ‘평화협정과 종전선언에 매달려서는 안 되고, 더 강력한 군사력으로 무장하면서 전쟁과 선제타격까지 준비해야만 평화를 지킬 수 있고, NATO 가입처럼 미국과 군사적 동맹을 확실히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내가 가장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들이 젤린스키 정부의 정책과 대응에 대한 어떤 비판적 지적에도 거부감을 보이며 ‘NATO 가입과 군비증강을 추진한 젤린스키에 대한 비판은 곧 러시아 푸틴 옹호와 전쟁의 정당화라는 왜곡되고 과장된 프레임을 짜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의 비일관성과 이중규범이다.

만약 위의 세 가지 입장과 태도가 전부 다 적절하다고 가정하고 그것을 다른 비슷한 경우에 그대로 대입해 보자. 패권을 추구하는 힘있는 강대국이 힘없는 작은 나라의 주권을 무시하고 온갖 그럴듯한 명분으로 침공을 해서 전쟁을 벌이고 정권을 교체하겠다고 나섰던 가장 최근의 사례로 돌아가서 말이다. 바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다.

이 경우에 국민의힘과 족벌언론들이 일관성이 있다면 첫째, 미국의 패권적인 시도를 강력 비판하고 반대해야 했다. 둘째, 이라크 후세인 정부와 아프간 탈레반 정부에 대한 비판을 우선 뒤로 미뤄야 했다. 셋째, 군사적 무장과 군비증강을 통해서 미국의 침공에 대비하려던 이 나라들의 시도를 지지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떠했을까? 우리 모두 알다시피 우파 정치세력과 족벌언론들은 미군을 해방군이라고 부르며 침략과 전쟁을 지지했고(지금 러시아를 해방군이라고 부르는 일부의 태도와 똑 닮았다), 이라크와 아프간 정부의 잘못과 문제만을 폭로하고 비판했고, 이 나라 정부들의 문제점과 무기 개발을 전쟁의 명분으로 삼은 미국의 주장을 옹호했다.

나아가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레짐체인지가 필요하다는 미국의 주장에 동조했고, 심지어 이 전쟁에 우리나라가 파병해야 한다고 앞장서 주장했다. 당시 민주당 정부가 머뭇거리거나 전투병 파병은 피할 때조차 더 강력한 대규모 파병과 전쟁 지원을 주장했다.

만약, 지금 우리나라가 우크라이나 정부를 교체해야 한다는 푸틴의 주장에 동조하면서 러시아를 돕기 위해 파병한다면 어떨까? 우크라이나 민중은 엄청난 분노와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이것이 당시에 이라크와 아프간에 파병한 한국을 보면서 중동의 민중들이 느꼈을 심정이다. 여기에 지금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도 큰 책임을 느껴야 한다.

국민의힘과 족벌언론들이 지금부터라도 일관성을 보였으면 좋겠다. 이번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폭격을 비판했듯이, 앞으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약소국 폭격과 침공을 반대하고 규탄했으면 한다. 실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그 날에 미국은 소말리아를 폭격했고, 미국의 동맹인 사우디와 이스라엘은 각각 예멘과 시리아를 폭격했다.

또 일관성이 있다면 북한 정권의 잘못과 문제점보다는 미국의 군사적 위협과 압박을 우선 비판해야 옳다. 나아가 군사적 힘을 키우고 전쟁을 준비할 때만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자신들의 논리를 가장 잘 따르고 있는 것이 바로 북한이라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바로 다음날, 북한이 미사일 시험에 나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이런 이중잣대와 눈에는 눈논리를 지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것이 러시아든 미국이든, 강대국들이 힘없고 작은 나라를 폭격하고 침공하는 것을 반대해야 하고, 그 나라 정부들의 잘못과 문제점보다는 강대국의 책임을 우선 지적하고 비판해야 하고, 무엇보다 전쟁 준비와 군비증강이 아니라 반전평화와 국제적 연대만이 대안이라고 분명히 말해야 한다.

#StopRussianaggression #NoToWar #нетвойне #StandWithUkraine

(기사 등록 2022.3.12)

*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저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 후원 계좌: 우리은행 전지윤 1002 - 452 - 402383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행동합시다.

newactorg@gmail.com/ 010 - 8230 - 3097 / http://www.anotherworld.kr/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