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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윤석열 시대/우크라이나/장애인 투쟁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2. 3. 27.

전지윤

여기서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아직 취임하려면 두 달이 남았지만 벌써부터 다양한 반동의 신호탄을 쏘아올리고 있는 윤석열 정부와 윤석열 시대의 중요한 특징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들은 대선 전후에 방송한 3개의 시사다큐들을 볼 필요가 있다. 시간 순으로 보자면 대선 직전에 방송한 <시사기획 창>끈질긴 친일’, 대선 직후에 방송한 <그것이 알고 싶다>쩐과 혐오의 전쟁’, 그리고 며칠 전 방송된 <PD수첩>젠더 갈등과 여성가족부가 그것이다.

소재와 강조점이 조금씩 다르지만 3편 모두 극단적 비방, 조롱, 낙인찍기, 조리돌림을 통해서 편견과 혐오를 불러일으키고, 거기서 사회경제적 이익을 얻어가는 집단과 방식의 실체에 대해서 탐사 취재해서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중요하게 추적해서 다루고 있는 것은 '사이버 렉카'이다. 뭔가 사회적 이슈가 발생하면 이들이 제일 먼저 현장에 도착해서 판을 벌이기에 붙여진 이름이고, ‘이슈 유튜버라고도 한다. 이들은 먼저 누군가에게 좌표를 찍고, 이어서 저격하는 방송을 만들어서 희생자를 난도질한다.

희생자는 몇 가지 단편적 정보와 짜 맞추어진 프레임 속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인간쓰레기, 역겨운 인물, 더러운 악녀가 돼 버린다. 이어서 시청자들이 어마어마한 댓글과 악플들로 조리돌림을 하고, 그러면 결국 표적이 된 사람은 만신창이가 돼서 낭떠러지로 몰린다. 그 중에 일부는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너무 많은 사례가 있지만, 이번 방송들 중에서는 그 중의 일부 최근 사례들만 다루고 있다.

희생자가 심지어 죽어서도 악플과 혐오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 영상, 댓글들도 사라지지 않는다. 윤서인, 뻑가, 윾튜브 등 세 방송 대부분에 계속 언급되는 공통적인 '사이버 렉카'도 있다. 이들은 모두 인터뷰 요청을 회피하거나 나는 이미 생겨난 이슈를 뒤에서 정리한 것이지 잘못한 게 없다는 식의 간단한 답을 보냈다.

다만 대표적 청년극우 유튜버 중에 하나인 성제준은 <그알>과 직접 인터뷰를 자처해 물타기하고 자신을 변호하는 영악스러운 전술을 택했다.(이들 중에서 윤서인과 성제준은 진중권이 이들을 칭찬하며 추천해 준 공통점도 있다. 진중권은 성제준TV에는 직접 출연도 했다.) 성제준은 인터뷰에서 자신이 매달 2~3천만 원은 번다고 자랑한다. <PD수첩>은 뻑가가 그동안 번 돈이 수십 억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혐오는 돈이 되는 장사이다.

이 세 편을 모두 보면 친일적 뿌리를 가진 기득권 우파를 옹호하는 것, 좌표를 찍고 누군가를 조리돌리고 인간사냥하는 것, 반페미니즘 혐오선동에 앞장서는 것이 주도자들만 겹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연결된 문제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가수 핫펠트가 사이버 렉카들에게 당해 온 공격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알>에서는 사이버 렉카 지망생에게 컨설팅을 해주는 전문업체까지 등장하는 데, 이들은 나의 교양과 양심이라는 방해물만 버리고 대중의 속성을 잘 이용하면 돈벌기는 최고라고 자문을 해 준다. 이들에게는 또 표현의 자유라는 방패가 있다. 이 나라 사법체계는 그것에 아주 관대하고 많은 지식인들도 그것을 돕는다. 누군가를 북한의 개라고 낙인찍어도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다.

사이버 렉카들에게 시달려 온 방송인 곽정은 씨는 <그알> 인터뷰에서 누가 이런 공격에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혐오가 보편의 정서가 됐다”, “더 이상 죽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다만 이 방송들을 보면서 몇 가지 아쉬운 점들이 있었다. 먼저 사이버 렉카 중 최고라고 할만한 가로세로연구소와 반페미니즘 혐오선동의 최고라고 할 신남성연대등을 별로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둘째로 사이버렉카가 사고가 나면 달려오는 자들이라면, 사고를 내고 중계방송을 하는 자들이 먼저 있었다는 것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이 바로 족벌, 거대 언론들의 구실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가장 먼저 더 강력하게 좌표를 찍고, 낙인을 찍고, 편견과 혐오를 부추기며 사냥을 시작하는 것은 그들이다. 그것을 통해서 클릭수를 높이고 정치적 이득을 챙긴다. 사이버렉카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판에 달려들어서 조회수를 높이며 떡고물을 주워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족벌, 거대언론들이 차마 드러내놓고 하지 못하는 것을 사이버렉카들은 한다.

미디어 렉카들에 대해서는 <PD수첩>말고는 별 언급과 분석이 없는 것이 아쉬운 점이었다. 나아가 정치적 렉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표적으로 사이버 렉카들이 밑도 끝도 없이 누군가를 극렬 페미니스트라고 낙인찍은 다음에 조리돌리고 사냥하는 구조가 만들어 진 것에는 반페미니즘 혐오선동을 우파의 재결집과 부활의 중심축으로 삼은 정치세력의 구실이 결정적이었다.

이준석, 윤석열로 대표되는 이들을 마치 사이버렉카들이 만들어놓은 구조에 뒤늦게 올라탄 사람들처럼 묘사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고 책임을 크게 덜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알>은 오히려 윤석열의 새정부에게 국민 통합을 부탁하고 당부하며 방송을 마무리해 버렸고, 그나마 역시 <PD수첩>이 어느 정도는 이들의 책임을 물었다.

또 세 방송 모두에서 지금과 같은 혐오, 낙인, 편견, 조리돌림이 구조화되고 일상화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던 사안들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느낌도 받았다. 예컨대 누군가의 흠을 샅샅이 찾아내서 끝없이 비난하고 조롱하고 조리돌리고 악플을 달고 하는 현상이 극심해진 것은 바로 2019년 검언대란(조국몰이) 때였다. 지금 악명을 떨치는 사이버 렉카와 극우유튜버들이 본격 등장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또 윤서인 등이 “7199(친일극우) 친구들아하면서 친일극우를 정당한 브랜드로 삼고, ‘윤미향과 정의연에게 국민 세금을 퍼준 여가부라는 프레임으로 반페미니즘 선동과 여가부 해체 주장을 뒷받침한 것은 2020년 족벌언론들의 윤미향 마녀사냥 때부터였다. 이명박근혜 시대의 종북몰이가 변형 발전된 이 두 사건은 혐오정치성장의 주요 계기였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을 다루는 어떤 방송을 봐도 이 문제들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거나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 버린다. 조국 가족이나 윤미향 의원은 그 이름만 들어도 자동반사적으로 구역질이 올라오는 게 당연한 최고의 위선자와 사기꾼들이라는 프레임은 그냥 반박불가능한 정답이 돼 있다. 이것을 의심하거나 이견을 제시하면 괴상한 펜덤무리가 돼서 같이 사회적 왕따를 당한다.

그래서 혐오, 낙인, 편견, 조리돌림은 잘못이고 반대한다는 사람들도 이 사람들이 표적이 되면 그건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다른 문제인 것처럼 넘어가 버린다. 미디어 렉카와 사이버 렉카들이 이 사람들과 그 가족에 대한 기사나 영상을 올릴 때마다 순식간에 수백 수천개의 차마 읽기도 괴로운 막말, 조롱, 저주의 악플들이 달리지만 문제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번 대선이 끝난 후 윤서인의 윤튜브에 들어가 봤다. 그는 승리의 감격에 겨워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문재인 공산당 정권이 드디어 끝났다. 그래도 아직도 *신같은 뇌없는 자들이 47%나 된다. 전라도 봐라. 이제 막 칼을 휘두르고 다 조져야 한다. 공산세력과 미친 노조들을 다 칼질하고 밟아야 한다. 빨갱이들과는 절대 대화하고 타협하고 동정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도 후퇴시키면서 때려 잡아야 한다.’

열광적으로 동조하면서 증오와 처단을 외치는 댓글들이 달리고 있었다. 가세연, ‘신의 한수등에서 보여주는 살기등등한 승리감은 물론 이 정도도 애교로 보이게 할 정도이다. 이제 이런 미디어 렉카와 사이버 렉카들이 더 자신감과 힘을 얻으면서 혐오의 시대는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것이다. ‘여기서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여기서는 모든 머뭇거림을 버려야 한다.’(단테 <신곡> 지옥편)

* 사족: SNS에서 정치적 입장과 견해 차이를 기준으로 누군가와 관계를 맺거나 끊는 것은 항상 별로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정해진 정답이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열린 자세로 이견을 존중하며 토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적 스펙트럼의 어느 위치에 있던 누군가를 혐오하고 조롱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언제나 그렇듯이, 무엇보다 내 자신이 힘들고 괴롭기 때문에 그런 분들과는 관계를 지속하기 어렵다.

* <시사기획 창>끈질긴 친일’,

https://www.youtube.com/watch?v=HvaGzGRldnA

* <PD수첩>젠더 갈등과 여성가족부

https://www.youtube.com/watch?v=Ox4Fn3qyDjM

 

국제적 반전 평화 운동만이 희망이다

모든 전쟁의 제일 첫 번째 희생자는 진실이라는 말이 떠오를 수 밖에 없는 나날들이다. 한편에서는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의 프로파간다가, 다른 한편에서는 전쟁을 이용하려는 서방과 미국의 프로파간다가 진실을 가리고 있다. 먼저 푸틴과 러시아는 자신들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폭격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온갖 왜곡된 논리와 가짜뉴스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대표적인 논리가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후세인의 독재와 민간인 학살을 해결하기 하기 위해 침략이 필요하다는 과거 미국의 논리와 판박이다. 후세인이 독재자라는 것은 사실이기도 했지만, 젤렌스키 정부는 친서방 중도우파였지 나치도 아니었다.

신나치 세력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아직 힘이 크지 않았다. 오히려 푸틴 정부야말로 여성 차별, 동성애 억압, 인종주의, 군국주의를 통해서 국제적인 신나치와 극우세력들에게 백인의 구세자라며 지지를 받았었다. 트럼프도 푸틴을 좋아했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민스크 협정을 지키지 않아서 전쟁이 불가피했다는 논리도 구차한 변명이다. 그렇게 따지면 러시아도 부다페스트 협정을 지키지 않았고, 무엇보다 베르사이유 조약이 문제가 있었다고 히틀러의 폴란드 침략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일이다.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인민공화국에 대한 이야기도 과장돼 있다. 이 곳의 정부들은 단지 일방적 피해자가 아니라 러시아를 등에 업고 노조 등 기층운동을 탄압하고 인권을 유린해 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소련 몰락 후 국민투표에서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서도 러시아로부터 독립에 80%가 넘는 찬성표가 나왔었다.

따라서 지금 러시아가 이 지역 등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를 사실상 분단시키려는 것은 정당성이 없다. 특히 미국과 소련에 의해 강제 분단된 경험이 있는 우리에게 이것은 우크라이나 민중의 걱정과 울분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지금 러시아의 프로파간다를 받아들이는 일부 좌파들은 자신들의 반제국주의 민족해방 원칙이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돌아봐야 한다. 스스로 떠 받들어 온 레닌 등의 입장과도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다. 레닌은 영국에게 아일랜드가 있었다면 러시아에게는 우크라이나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약소민족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말했다.

“우크라이나 국가가 러시아와 합병해야 하는지 아니면 독립 공화국을 구성해야 하는지 여부는 우크라이나의 노동자 농민들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롭게 선택한 국가 간의 연합,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게 가하는 폭력을 용납하지 않는 연합, 자유로운 마음에 기반을 둔 연합을 원한다.”(다만, 레닌의 이런 입장은 시행착오와 비판,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민중 투쟁의 압력 속에서 변화한 것이다.)

지금, 푸틴은 이런 과거 레닌의 노선을 정면 부정하면서 그것을 바로잡겠다고 나서고 있다. 언론에 전쟁이란 단어도 사용을 금지시키고 특수 작전이라는 중립적 용어를 강요하고 있다. 반전 시위대를 대거 체포하고 구속하고 있다. 결국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은 푸틴과 러시아 프로파간다들이 말하는 구차한 명분 때문이 아니라, 대러시아 국수주의와 패권적 제국주의가 진정한 이유이다.

물론 이런 러시아의 잘못과 문제점이 그 반대편에서, 일방적으로 푸틴과 러시아만을 악마화하면서 편 가르기와 줄서기를 강요하는 미국과 서방의 지배자들과 그들의 프로파간다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지금 서방 제국주의와 나토 확장에 대한 어떤 비판도 친러시아라고 낙인찍으면서 침묵과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 예컨대 영국 노동당의 좌파 의원들은 나토를 비판하면 제명될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사실대로 말하자면 지난 반세기 동안 침략, 폭격, 전쟁, 무고한 제3세계 민중 학살을 더 많이 해 온 것은 미국과 서방 제국주의이다.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이미 베트남전 때부터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큰 폭력의 제공자"라고 했다. 독일 좌파당의 창립자인 오스카 라퐁텐은 세상에는 많은 갱단이 있지만 그들이 초래한 죽음을 계산하면 워싱턴의 범죄 갱단이 최악이라고 했다.

푸틴은 정상이 아니고 어떤 짓을 할지 모르는 비합리적, 비이성적인 지도자라는 서방 언론들의 호들갑도 뒤집어 봐야 한다. 그러면 9.11 이후에 아프간 침공과 이라크 전쟁을 시작했던 조지 부시는 이성적이었나? 지금, 러시아 유학생들까지 추방하고, 푸틴을 암살하고,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하자는 미국 정치인들의 주장은 합리적인가?

이번을 기회삼아서 핵무기를 보유하고 군비를 증강해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가자는 독일과 일본 정치인들을 주장은 이성적인가? 선제타격과 사드배치를 말하는 윤석열은 정상인 것인가? 그것은 모두 경쟁하는 자본들, 대결하는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이다. 손 놓고 있거나 뒤처지면 패배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경쟁 속에서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별 자본가과 개별 국가 지배자들의 입장에서는 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 전체로서의 이 세계를 더욱 위험하고 파괴적인 곳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메카니즘이 낳는 결과이다.

지금 정말 합리적인 것은 지금 당장 이 침략과 폭격을 중단하고 러시아 군대를 철수시키는 것이다. 나토의 확장과 군비증강도 중단돼야 한다. 러시아와 미국 모두 당장 핵확산 방지 조약에 가입해야 한다. 가장 많은 핵무기를 가진 나라들이 여기서 빠져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모든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오커스와 쿼드 등 상대방을 군사적으로 포위하려는 시도를 폐기해야 한다.

지금 러시아를 비난하는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의 입장이 진실이라면, 앞으로 자신들도 다시는 군사력으로 다른 나라를 압박하고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무엇보다 난민에게 닫았던 국경을 열고 모든 난민들을 수용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등 제3세계에 강요하던 부채도 탕감해줘야 한다. 더 이상 석유와 화석연료로 인한 패권 다툼과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생에너지로의 녹색 전환을 앞당겨야 한다.

지금 가장 큰 희망은 러시아 국내에서 극심한 탄압과 위험을 무릅쓰고 1만여 명이 잡혀가면서도 계속되고 있다는 반전운동이다. 또 우크라이나 민중의 굴하지 않는 저항이다. 작고 가난한 나라였던 베트남이 최강대국 미국을 물리친 힘도 베트남 민중의 전국적 저항, 미국과 전세계에서의 반전운동, 미군 병사들의 탈영과 명령 거부였다.

그런 힘들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지금은 핵을 가진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하고, 그것에 또 다른 핵을 가진 강대국이 군사적 대응을 경고하고 있는 위험천만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3차 세계대전에서 인류가 어떤 무기를 사용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4차 세계대전에서는 돌멩이와 막대기를 들고 싸울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나는 이 세상에 독재자, 과두 정치인, 전쟁광들보다 우리가 더 많다는 것을 상기한다. 한 깡패 집단에 대한 우리의 유일한 보호 수단이 다른 깡패집단의 전쟁기계일뿐인 세상에는 희망이 없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세계적 운동에 있다. 평화의 세계로 가려면 우리 모두는 모든 곳에서 전쟁에 맞서야 하고, 그 단결은 국제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최근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일이 앞으로 전 세계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우크라이나 여성 예술가의 목소리)

 

인간의 복합성과 도덕정치의 역설

넷플릭스에는 좋은 다큐멘터리가 많은데, 특히 음악에 대한 것도 많다. 그 중에서 지난해에 인상적으로 본 것들에는 <마일스 데이비스 쿨의 탄생>, <니나 시몬 영혼의 노래>가 있다. 재즈와 소울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값진 시간이 될 것이다. <쿨의 탄생>은 재즈 음악의 전설이라고 할만한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적 유산에 대한 격찬 속에서 주옥같은 노래들을 계속 들려준다.

더구나 재즈나 소울 음악에 대해서 평가할 때는 미국의 인종차별과 민권운동의 역사가 분리되기가 어렵다. 실제로 <쿨의 탄생>을 보면 마일스 데비이스가 저명한 대중예술가가 된 이후에도 흑인이라는 이유로 경찰에게 인종차별적 폭행을 당했던 사건이 소개된다.

단순히 예술가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민권운동의 적극적 투사였던 나나 시몬의 경우는 더욱 직접적이다. 시몬은 말콤 X와 긴밀히 교류했고 마르크스를 학습하기도 했다고 나온다. 한참 시절의 시몬이 투쟁의 현장에서 노래를 부르며 내 공연을 보고 사람들이 뒤흔들리고 세상이 산산조각나길 원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자면 놀랍기도 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음악만을 알고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약간 다른 이야기도 접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어쩌면 실망할 수도 있고, 인간의 양면성과 복합성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가 될 수 있다. 데이비스의 경우는 꽤 알려져 있는 사실이기도 하지만, 많은 여성들을 성적 대상화하고 부인에게 지독한 가정폭력을 휘둘렀던 것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고, 단지 그를 위대한 예술가였다고만 기억하기는 힘들 것이다.

시몬의 경우는 더욱 복잡하다. 일단 다큐는 그녀가 경찰 출신의 매니저겸 남편에게서 지속적인 구타와 학대를 당했던 피해자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 나중에 그녀가 겪은 우울증, 자살충동 등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더 나아가 그녀가 나중에 바로 자신의 딸을 학대하고 구타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구조적 인종차별과 젠더폭력의 피해자였던 사람이 또 다른 폭력의 가해자였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렇게 놀라운 일도 단지 실망할 일도 아닐 것이다. 현실의 구체적 인간은 누구나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고, 어떤 상황과 위치에서는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어떤 상황과 위치에서는 가해자일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모두의 잠재적인 피해자성과 가해자성을 받아들이고 끝없이 경계하고 성찰하며 나아지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특히 백인, 남성, 시스젠더, 기성세대 등 더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 그래야 할 것이다. 누군가를 단순히 타고난 영웅이라고 숭배할 것도 아니고, 타고난 악마라고 증오할 것도 아니다.

가능한 누군가의 장점과 기여, 단점과 과오를 같이 봐야 할 것이다. 여성폭력을 삭제하고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에 열광할 수만은 없지만, 그렇다고 그의 음악을 더 이상 듣지 않을 것인가는 쉽지 않은 문제다. 무엇보다 우리는 새로운 피해자와 가해자들을 낳을 수밖에 없는 구조, 규범, 문화 등을 봐야하고, 그것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주력해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단지 개별적인 가해자와 피해자에만 주목하고, 가해자를 사회에서 영구히 도려내는 것을 통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관점(‘무관용 원칙’)이 강해지는 것 같다. 가해자도 반성과 거듭남을 통해서 다시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고, 공동체가 같이 책임지면서 구조와 사회를 함께 바꿔나간다는 관점은 많지 않다.

물론 사회구조가 문제이고 누구나 가해와 피해의 양면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구체적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논리가 될 수는 없다. 가해자는 분명 비판받아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 특히 반성과 사과가 아니라 오히려 가해를 확대하는 경우에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가해자에게 권위를 부여하면서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태도는 정당화될 수 없다. 근거도 없이 무조건 피해를 불신하고 부정하는 것도 문제이다.

그러나, 그것이 한번 가해자가 되면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고, 죽어서도 끝없이 저주받아야 하고, 어떤 힘든 일을 겪어도 위로나 동정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반성폭력 운동 속에서 만들어지고 사용돼 왔던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 자체가 금기어가 된 상황도 당혹스럽다. 모든 피해와 가해 규정과 판단은 어떤 의문, 검증, 토론도 없이 즉각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은 피해자 중심주의에 반대해 온 이들의 곡해라고 봐왔기 때문이다.

현실의 인간은 누구든 완벽하지 않고 결함이 있고 잘못을 한다. 더구나 불평등과 차별이 구조화된 사회는 끝없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누구든 피해자도 가해자도 될 수 있다. 문제는 피해자를 보상하고 치유하는 것이고, 가해자는 반성하고 거듭나는 것이다. 무엇보다 구조적 차별과 폭력을 함께 개선하고 제거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개별적 결함과 잘못만을 단죄하고 도려내는데 주력하는 도덕정치는 여기에 방해가 된다. 사회와 구조는 사라지고 개인의 인격적, 도덕적 결함만 남는다. 문제가 된 개인은 도려내지지만 문제를 만든 사회와 구조는 끄덕이 없다. 개인적 결함과 오류를 찾아내거나 부풀리고 왜곡해서 상대 진영을 공격하려는 기득권 세력의 정치적 수단이 되기도 한다.

최근 한 청년 진보정치인의 잘못과 그 파장들을 보면서도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 진보정치인이 바로 도덕정치의 잣대로 상대방을 쉽게 단정하고 공격하던 것을 생각해 봐도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여기서도 기본으로 피해를 호소한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신뢰를 보낸다. 다만, 사실의 규명과 소명은 필요하고, 문제도 단지 개인적 결함에서 찾지 말아야 한다.

또 그런 잘못과 약점이 그 진보정치인의 장점과 그동안 기여까지 무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이 진보정당과 진보정치를 싸잡아서 공격하며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세력에게 악용돼서도 안 된다. 하지만 도덕정치의 강화 속에서 그런 현상은 나타나 왔다. 검찰-언론-정치의 기득권 카르텔은 개혁적이거나 진보적인 인사의 개인적 결함과 잘못들을 끄집어내거나 부풀려서 내로남불과 위선자프레임을 최고의 무기로 만들어 왔다.

도덕정치의 경기장에서 기본적으로 기득권 우파는 더 유리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누군가의 도덕적 결함과 잘못을 파헤치고 수집할 수 있는 검찰권력, 원하는 때 터트리고 부풀릴 수 있는 언론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힘을 이용해서 자신들 진영의 문제는 적당히 덮어버릴 수도 있고, 필요할 때는 신속히 꼬리 자를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결함과 잘못, 피해와 가해를 낳는 사회구조 자체는 전혀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불평등과 차별과 폭력의 구조를 더 강화해 나가는 것이 기득권 우파에게는 가장 유리하고 필요한 일이 된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가해자를 단죄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려던 개념과 도구들을 오히려 기득권 보호의 무기로 만들어 버린다.

김학의 성폭력 사건의 진상규명을 가로막은 검사에게 보호받아야 할 양심적 내부고발자라는 위치를 부여한 족벌언론들, ‘성차별과 성폭력을 막기 위해서 윤석열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던 신지예에 이어서, 이제 대표적 정치검사 한동훈에 대한 비판이 “2차가해라는 이준석을 보면서, 가장 도덕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집단이 가장 큰 이득을 얻는 도덕정치의 역설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전국장애인대회에 다녀와서

지난 324일 청와대 앞에서 전국장애인대회와 420장애인차별철폐 공동투쟁단 출범식이 있었다. 이어서 충무로역에서는 장애해방열사 합동추모제가 있었다. 나는 어제 하루 참가했지만, 전국에서 올라온 장애인 동지들은 노숙을 하고 오늘까지 12일 투쟁을 전개한다.

어제 투쟁은 새로 당선된 윤석열을 향한 많은 규탄과 요구들이 제기됐다. 윤석열은 대선운동 기간 동안 장애인 동지들의 출퇴근길 지하철 타기 투쟁에도 다른 후보들과 달리 끝까지 TV토론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은 후보였다. 장애인 이동권과 생존권의 요구를 외면한 것이다. 그가 추진하는 여성가족부 폐지도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직접적 공격이다.

뿐만 아니라 윤석열은 취임하기도 전부터 벌써 수많은 사고를 치며 사회를 역행시키고 있다. 특히 기가막힌 것은 청와대의 용산 이전이다. 청와대를 옮기고 국방부를 이전하고 군사시설들을 재배치하고 하는데 한 달이면 충분하다고? 그러한 큰 사업과 공사에 시간도 많이 안 들고 돈도 충분히 있다고?

그러면 도대체 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엘리베이터 설치와 저상버스 도입과 각종 편의시설 정비는 10년이 넘도록 이토록 거북이 걸음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인가? 장애인 동지들이 지하철을 멈추고 절규를 해야 듣는 시늉을 하고, 아주 조금씩 진척된 것인가?

윤석열은 엊그제 전경련을 만나서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바로 연락하라며 핫라인을 만들었다는데, 왜 장애인 동지들은 만날 생각도 들을 생각도 하지 않는가? 그리고 기성언론들은 왜 이런 윤석열이 목욕탕에 갔네, 피부가 어떻네, 뭘 요리해서 뭘 먹었네 이런 것을 뉴스라고 내보내고 있는가?

윤석열이 또 무슨 사고를 치고 또 어떻게 시민들을 불편하게 했는가를 말하지 않는다. 반면 장애인 동지들이 지하철을 타고 내리면 사고를 치고 시민들을 불편하게 했다고 보도한다. 그러니 일부 시민들은 이동권을 요구하는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듣기보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존재로 바라보고 증오한다.

어제 장애인 동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특히 윤석열 당선 이후에 경찰과 교통공사와 주변 시민들의 반응이 더 적대적으로 변한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럴만도 하다. 사회적 소수자들을 대놓고 비난하고 혐오하도록 부추긴 것이 윤석열이고 이준석이니까.

그러나 장애인 동지들이 윤석열에게 기죽고 물러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윤석열이 그동안 장애인 동지들이 투쟁으로 만들어온 성과를 되돌리고, 그들의 요구를 무시하려고 한다면 상대를 잘못 봤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욱 많은 시민들이 지하철을 천천히 타고 내리는 장애인들의 행동만으로 내가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장애인들의 책임인가 아니면 그들을 배제하고 만들어진 이 사회와 그들의 요구를 무시하는 정부 때문인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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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 202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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