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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검찰개혁/ 윤석열의 반동/ 우크라이나 침공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2. 4. 15.

전지윤

검찰개혁도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 당장이어야

검찰개혁은 국가보안법 폐지, 차별금지법 제정 등과 함께 한국사회의 진보와 개혁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아주 오랜 과제 중 하나였다. 짧게 보면 876월항쟁, 길게 보면 4.19때부터 시작된 요구였다. 역사적으로 검찰은 한국 자본주의의 폭압적 국가기구 중에서도 핵심적 위치와 구실을 형성해 왔고 수많은 고통과 피해를 쌓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찰개혁의 핵심에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고, 검찰을 기소 전문기관으로 축소하는 것이 있다는 것에는 이 문제를 파헤쳐 온 사람들 속에서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검찰이 그동안 보여 온 여러 가지 문제의 핵심에는 바로 수사권, 영장청구권, 수사종결권, 기소권, 기소편의주의와 기소독점 등이 있다는 것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인권유린, 사건조작, 표적수사, 별건수사, 피의자 자살, 검사부패, 전관예우, 정치검찰, 검찰공화국 현상 등의 배경에는 검사 개개인의 인성이나 특정 개인들의 야망이 아니라 무엇보다 이런 구조와 제도가 있었다. 따라서 이 심각하고 위험한 권력 독점 구조를 바꾸는 것, 특히 검찰에게서 수사권을 분리해내는 것은 검찰개혁의 핵심 과제 중 하나였다.

역대 모든 개혁정권과 심지어 보수정치인까지 이것을 약속했지만, 별 진전이 없었고, 문재인 정부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검찰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절대 놓으려 하지 않으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그것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회해체나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보다도 더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게 거듭 드러나 왔다.

그나마 2016년 촛불과 2019년 검찰개혁 촛불이라는 아래로부터 힘이 없었다면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립마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6대 주요범죄를 남겨두면서 검찰의 격렬한 반발에 굴복하고 타협했다. 그러나 검찰지상주의자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고, ‘검찰공화국을 넘어 검찰왕국을 추진하면서, 그것이 낳은 위기의식이 역설적으로 검찰개혁에 채찍을 가하게 됐다.

지난 일주일 동안 검찰과 주류언론이 주도한 대대적인 여론전을 보면서 다시 한번 우리는 검찰의 힘과 그 막강한 인적 네트워크, (법조기자를 고리로 한) 검언 유착과 강력한 프레임 설정 능력을 목격하게 된다. 족벌언론들뿐 아니라 개혁언론들마저도 대부분 반발하는 검사들과 반대 목소리와 논리만을 크게 주목하고 실어주고 있다.

용어부터 하나같이 검수완박이라고 고집하면서 마치 검찰이 부당하게 뭔가를 빼앗긴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검찰에게 유리하게 해석될 수밖에 없는 경험을 이야기하고 논리와 주장을 펴는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마이크가 주어지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동훈 검사는 최근 공론장에서 이런 식의 만장일치 반대가 있었냐면서 의기양양해 했다.

검찰의 수사 기소 독점 때문에 나타난 온갖 부조리와 문제점들을 파헤치고, 그것이 낳은 수많은 피해자들을 찾아가서 목소리를 듣는 시도같은 것은 찾아보기도 어렵다. 그 속에서 검찰개혁과 수사권 분리는 오래된 민주개혁의 과제가 아니라 개혁과는 무관한 정치놀음이며 민주당의 부패 덮기사회적 약자를 고통받게 하면서 힘있는 범죄자들을 돕는 일로 둔갑했다.

수많은 역사적 경험과 사건들을 통해서 대중적 공감대가 있었던 개혁과제가 아니라 민주당 지지자 중에서도 일부 편협한 강성 팬덤들만이 요구하는 이상한 요구가 돼 있다. 다른 개혁들과 연결된 요구가 아니라 대립하고 배치되는 잘못된 요구가 돼 있다. 그것을 지지하면 뭔가 생각이 모자라고 떳떳하지 못한 일이 됐고, 반대하는 게 당당하고 소신있고 용기있는 목소리가 돼 있다.

검찰공화국을 개혁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우리 사회가 검찰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검찰의 입에만 귀를 기울이는 검찰공화국이 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회가 된 역설이다. 이것은 얼마 전 조국 교수의 딸이 입학취소를 통해 인생 전체가 삭제당하고, 원래 뇌질환이 있던 감옥의 그 어머니가 충격으로 쓰러져 뇌출혈 증상을 보이는 상황에서도 드러났다.

그 상황에서도 주류사회의 공론장에서는 그 가족의 불행과 고통을 걱정하고 동정하는 주장은 찾기 어려웠다. 오히려 정치평론가라는 이들이 나와서 타인의 고통을 자업자득이라고 조롱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검찰과 언론의 표적이 돼서 낙인찍힌 사람들은 비인간화되고, 그들의 고통에 관심갖거나 감정이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한 사회적 압력이 형성돼 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이번에 검찰개혁(언론개혁) 법안이 민주당 당론으로 채택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제 뜻밖의 결과가 전해졌다. 이것은 오랫동안 검찰공화국에 고통받아 삶이 송두리째 파괴되고 목숨까지 잃었던 수많은 피해자들(차마 그 이름을 나열하기도 고통스럽다)의 눈물과 희생, 검찰개혁을 요구하며 촛불을 들었던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헌신 덕분이다. 더구나 이제 한 고비를 넘었을 뿐이고 갈 길은 아직 멀다.

어제부터 다시 주요언론들은 정치적 성향을 뛰어넘어서 하나같이 수사권 분리를 가로막는 기사와 논설들을 쏟아내고 있다.(같이 통과된 언론개혁 법안들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완전 삭제하고 있다. 때로 말하지 않는 것에 본질이 있다) 이 수많은 온갖 논리들을 일일이 다루기는 어렵다. 다만 두드러지는 몇 가지 모순과 의문들만은 말하고 싶다.

검찰이 지금처럼 수사권과 기소권을 비롯한 국가의 강제적 형벌권과 관한 대부분의 권력을 독점해 가지고 있는 것이 (검찰 전관 변호사들의 돈벌이에 유리하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지만) 도대체 왜 힘없고 돈없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역사적 사실과 경험적 증거들은 모두 그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지 않은가?

문재인 정부가 6대 범죄를 남겨두면서 검경수사권 조정에 그치는 것마저 반대할 때는, ‘수사권-기소권 분리가 정답인데 왜 꼼수를 쓰냐며 반대 논리를 펴던 사람들이, 막상 수사권-기소권 분리가 다가오니 왜 그때 안하고 지금 하냐고 반대하는 (대표적으로 금태섭) 이 모순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결국 어떻게든 검찰의 수사권을 지켜주려는 게 목적 아니었나?

공무원과 교사 노동자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과 노동조합 활동을 불법 집단 행동이라고 기소하고 탄압했던 검사들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 거침없이 집단 행동과 발언을 해도 그 이중성을 지적하는 언론은 별로 없고 모두 검사들의 주장과 입장을 받아쓰기 바쁜 이 모순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검사들의 범죄와 비리가 드러날 때는 아무런 성찰과 자기 반성의 말도 없던 검사들의 내부게시판(댓글창?) ‘이프로스에 이럴 때마다 득달같이 선배들은 뭐하고 있냐’, ‘세월호 진상규명 말라는 것이냐?’(감히 세월호를 언급하다니!)는 낯부끄러운 글들이 줄줄이 올라오는 것의 모순을 따끔하게 지적하는 언론은 왜 보기 힘든 것인가?

또 웃픈 것은 문재인과 민주당의 비리에 대한 수사를 막으려는 것이라는 논리다. 이것은 문재인 5년 내내 강력했던 살권수’(살아있는 권력 수사)의 연장이다. 그런데 이제 정권이 교체돼서 집권세력과 여당은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됐다. 그런데도 검찰과 언론은 민주당 타령만 한다. 결국 이 논리가 성립하려면 대한민국의 모든 비리는 민주당이 다 저지른다거나, 검찰은 원래 민주당만 수사하는 특별기구라고 전제해야만 한다. 조금만 생각해도 명백한 이 모순을 누구도 지적하지 않는 이 모순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 똑같은 모순은 언론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난 5년 내내 주로 민주당만 물어뜯는 것의 명분으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감시를 내세웠던 주류언론들은 이제 윤석열 당선자와 대통령까지 배출한 검찰이라는 진짜 살아있는 권력의 애완견으로 변신하면서도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윤석열 목욕탕김건희 후드티가 국민의 알 권리라면서 인수위가 <뉴스타파><미디어오늘>의 출입을 거부해 권력 감시를 막아도 모르쇠한다.)

지금은 수십 년만에 다시 찾아온 검찰개혁의 소중한 기회이다. 검찰과 언론은 또 사회적 논의와 공감대가 충분치 못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모든 개혁 시도가 항상 부닥치는 장벽일 뿐이다. 그리고 모든 경우에 그러하듯이 개혁을 반대하는 세력이 말하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의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나중에를 말할 뿐이다.

지금 아래로부터 압력에 떠밀려 총대를 멜 수밖에 없게 된 민주당은 또 후퇴하고 타협할 기회를 찾지 말아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검찰과 언론개혁을 다당제 정치개혁, 차별금지법 제정, 민생개혁, 더 나아가 국가보안법 폐지 등과 결합해서 진정성있게 추진하는 것이다. 그래야 지금 민주당에 대한 불신 때문에 충분한 지지를 보내지 않는 시민단체와 진보정당들까지 설득할 수 있다.

우선 검찰개혁에 힘을 집중하고 다른 개혁 과제들은 나중에 하겠다는 핑계는 용납될 수 없다. ‘개혁을 할 수 있는 힘의 총량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런 개혁을 하기 위해서 저런 개혁을 미룰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비겁한 허구적 변명일 뿐이다. 당장 민주당이 다당제 정치개혁을 뒤로 미루기 시작한 것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는 배신적 태도이고 밥그릇 챙기기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개혁들이 먼저이니 검찰개혁은 나중에 하라는 주장도 동의하기 어렵다. 검찰권력의 피해자들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상상해 보면 답이 나온다. 개혁의 과제는 서로 연결돼 있고, 요구와 투쟁은 결합될수록 힘이 커질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서로의 투쟁과 요구를 지지하면서 기득권 카르텔이 두려워하는 더 큰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 다른 모든 개혁과 마찬가지로 검찰개혁도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 당장이어야 한다.

조민, 고졸됐다는 제목 뒤에 보이는 만족스러운 미소

윤석열 당선 이후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났다. 윤석열은 아직 취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한 달 사이에 벌써 많은 역주행이 벌어졌다. 이것은 분단과 전쟁과 냉전과 독재를 거치며 형성된 이 나라의 기득권 체제와 국가기구가 가진 강고한 힘과 복원력을 보여주고 있다.

2016년 촛불 이후에 잠시 숨을 죽이고 뒤로 물러섰던 모든 세력이 곳곳에서 다시 존재를 과시하며 촛불 이전의 기득권 질서로의 복귀를 요구하고 나서고 있다. 부동산 규제완화와 감세, 최저임금 차등화, 노동시장 유연화, 외고와 자사고 부활, 초중고 학력평가 부활...

주류언론은 벌써 문재인과 그의 부인을 물어뜯으며, 윤석열에 대한 온갖 낯 간지러운 아부성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검찰이 흘리고 언론이 쏟아내고 관변단체들이 등장하며 분위기를 조성하던 패턴도 부활하고 있다.

그러면서 검찰과 경찰은 이미 윤석열 반대편에 있던 이들에 대한 수사와 기소에 들어갔고, 한동훈에게는 일사천리로 무혐의가 내려졌다. 이것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것인지를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만큼 잘 보여줄 것은 없을 것이다.

“우선하는 것은 좌파 5년을 바로잡고 헌법에 따른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자유·민주적 신념을 저해해온 각종 사회 권력을 정리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민노총·전교조·참여연대 등... 문재인 5년을 ‘청소’하라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또 다른 필자인 류근일은 훨씬 더 노골적이다. “주사파를 박멸할 '자유민주 시민혁명' 전투대형을 짜야 한다... 군과 정보기관을 다시 자유대한민국 수호의 튼튼한 보루로 되돌려놓아야 한다.”

이것은 특히 곳곳에서 선출되거나 통제돼지 않는 특권 엘리트들의 힘과 목소리가 커지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각종 국가기구에서 서울대나 김앤장 출신의 중년 남성 기술관료와 로비스트들이 득세할 것이다.

이제 시민단체 활동가나 노동인권 변호사 출신(예컨대 김선수)이 국가기구로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고, 가장 시장주의적이고 기득권 질서와 보수적 가치를 옹호하는 이들이 다시 권력의 모든 주요한 진지에 자리잡을 것이다. 윤석열은 임기 5년 동안 대법관 14명중 13명과 헌법재판관 전원을 교체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이러한 반동이 낳을 반작용을 억누르기 위한 다양한 마녀사냥을 수반할 것이다. 특히 문재인이나 이재명 등 민주당 정치인들과 친민주당 성향의 지식인들도 그 주요 표적이 될 것이다. 물론, ‘개혁언론의 많은 구성원들도 기득권 엘리트들의 일부이듯이, 민주당 의원들도 대부분 기득권 체제의 일부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에 기반한 독자적 진보정당이 실패해 온 한국사회에서 몇 가지 역사적 이유와 과정 때문에 민주당은 반기득권 저항이 표출되는 구심점 노릇을 해 왔다. 이것이 광주항쟁 때 전두환이 김대중을 사형선고한 이유였다. 김대중이 광주항쟁에서 실제 어떤 구실을 했는지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기득권 우파와 권력자들은 그런 마녀사냥을 통해서, 기존체제에 대한 저항이 폭발하는 것을 차단하고 기층대중의 투지에 찬물을 끼얹으려 해 왔다. 이것은 2008광우병 촛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민주당 지도부와 노전대통령은 촛불항쟁을 지지하거나 고무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청와대로 행진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을 망신주고 마녀사냥하는 것이 저항의 열기를 가라앉히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라고 봤다. 당시에도 검찰과 언론이 앞장섰다. ‘개혁언론도 그 분위기에 휩쓸렸다. 당시 개혁언론들에도 노무현을 재임 때 푼돈이나 먹은 잡범이라고 비난하는 칼럼이 실렸다. 강준만은 당시에도 노무현과 그 일당위선과 기만을 질타했다.

같은 메카니즘이 2019년 검언대란 때도 반복됐다. 당시에 벌어진 일이 그저 순전한 우연일 뿐이고, 조국 교수가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에 적극적 목소리를 내고 역할을 맡으려 한 것과는 아무 상관없다고 보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순진하거나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더구나 이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된 일이다. 지난해 부분공개된 국정원의 2011년 사찰 문건을 보면 조국 교수의 딸이 외고 국제반에 재학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심리전 전개", "불순한 실체 폭로 공략", "이중성 공박에 주력", "전방위 특수활동 지속 전개" 등을 주문하고 있다.

그리고 2019년에 펼쳐진 것은 우리 모두가 목격한 바와 같다. 검찰이 흘리고 언론이 쏟아내고 우파단체들이 분위기를 잡으면서 곧 100군데 압수수색과 수십 명의 소환조사, 조국 가족의 모든 컴퓨터와 휴대폰 수십대에 대한 포렌식이 진행됐다. 그야말로 그 가족의 인생 전체를 엑스레이로 찍어보고 포렌식한 것이다.

검찰과 언론은 사모펀드를 뒤지고, 웅동학원을 파헤치다가 꼬투리를 잡아내지 못하자 결국 딸의 15년전 생기부와 인턴, 체험 활동에서 몇 가지 불일치를 찾아내고 유레카를 외쳤다. ‘체험활동을 5일 해놓고 10일했다고 부풀렸고, 연구에 사소한 기여를 해놓고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포장했다엄청난범죄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검찰에게 나와 내 가족이 사냥감이었다면, 기자들에게는 동물원의 원숭이였다”(<조국의 시간>) 이 가족이 검찰과 언론에게 당한 것은 그야말로 사생활 침해, 인격살해, 인권침해, 사적린치, 집단적 괴롭힘과 스토킹이었다.

2016년 촛불 때 일단 박근혜와 최순실을 꼬리자르며 일보후퇴했던 검언정 카르텔은 이제 조국 교수의 딸을 2의 정유라로 만들기 위한 냉소적 미러링에 전력을 다했다. 이처럼 그것은 원래 2016년 촛불에 대한 보복과 지우기에서 시작했지만, 2019년 검찰개혁 촛불이 시작되면서 그 의미가 더 추가됐다.

“조국 수사를 이렇게 크게 펼칠 게 아닌데... 너무 많이 이렇게 공격을 했지, 검찰을. 그래서 검찰하고 이렇게 싸움이 된 거지...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구속 안 되고, 좀 이렇게 넘어갈 수 있었거든? 조용히만 좀 넘어가면,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김건희 녹취록)

그리고 이제 최근에 부산대와 고려대의 결정은 검언정 카르텔의 승리선언이고 확인사살이다. ‘이것 봐라. 역시 우리가 옳았다. 감히 다시는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을 요구하면서 촛불을 들고 그러지 말라,’ 어제 조민, 고졸됐다는 제목으로 쏟아진 기사들 뒤에는 상대방을 조롱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이들이 그려진다.

그리고 괴상한 팬덤무리로 낙인찍힌 사람들 말고는 대부분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는 거대한 침묵을 볼 수 있다. 한 가족과 한 청년 여성의 삶이 송두리째 찢어발겨지고 파괴되고, 그 당사자가 송곳으로 심장을 찌르고 채칼로 살갗을 벗겨내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고 하는데도 모른 체하고 동정하지 말라는 압력이 존재한다.

그리고 윤석열이 취임하려면 아직 한 달이나 남은 상황에서 이것은 시작일 뿐일 것이다. 이제 시민단체 불법이익 전액 환수라는 윤석열의 외마디 공약을 지키기 위한 작업도 시작될 것이다. 시민단체들이 어떻게 위선적으로 겉으로는 정의를 말하면서 뒤로는 불법이익을 챙겼는지입증하려 할 것이다. 이미 전장연에 대한 그런 공격은 시작됐다.

크게 보면 부정부패 잡아내는 검사와 빨갱이 잡는 검사가 있다는 윤석열의 말처럼 이제 국가보안법 공안 탄압과 종북몰이 마녀사냥도 다시 본격화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 때 종북몰이의 희생양이었던 황선 씨는 윤석열이 당선된 직후에 새벽 두 시 쯤 딸은 울었습니다. 우리 가족 어떻게 해, 또 감옥 가면 어떻게 해?”라는 글을 올렸다.

친중국적이고 중국인의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공격받는 가수 헨리처럼 연예인들도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헨리가 사과와 해명을 하자 <조선일보>헨리가 악플을 삭제하고 일부러 오타를 쳐서 사람들을 조롱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클릭장사와 공격을 이어갔다.

이렇게 손발을 묶고 입을 막으면서 윤석열 정부는 기득권 체제와 질서의 복원을 위한 역주행에 속도를 높일 것이다. 이것은 지정학적 불안정이 커지고, 팬데믹 이후의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3고 현상속에서 우리의 안전과 평화를 위협할 것이고, 더욱 많은 이들을 고통받게 할 것이다.

30년 검사를 한 윤석열과 그 주변의 닳고 닳은 엘리트 관료들이 이것이 아래로부터 분노와 불만의 폭발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따라서 청와대 용산 이전의 핵심도 주술과 미신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래로부터 다양한 저항의 분출은 특정한 계기와 조건 속에서 최고 권력인 청와대를 겨냥하면서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 나라에서 그것은 여러 차례의 촛불항쟁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그러한 저항은 역사적으로 대통령 퇴진 요구와 청와대를 향한 행진으로 나타났다.

2003년 촛불이 시청을, 2008년 촛불이 더 나아가 광화문을 해방구로 만들었다면, 2016년 촛불은 청와대 코앞까지 행진해 갔다. 저항의 수준이 어느 선을 넘으면 경찰력만으로는 진압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당시에 박근혜 정권은 계엄령까지 검토했지만, 더 큰 역풍이 두려워 헌재 판결에 기대를 걸었다. 다음번 폭발은 거기서 다시 시작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저항의 표적이라는 청와대를 벗어나서 국방부로 가자는 구상에 2016년에 계엄령 검토를 지시한 전 국방부 장관(겸 청와대 안보실장) 김관진의 조언이 있었고, 지금 이전을 주도하는 게 김용현 전 합참 작전본부장이라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김용현은 계엄령 문건 책임자로서 해외도피한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의 동기이다.

기득권 우파와 관료엘리트들은 되찾은 권력을 유지하고, 이것을 이용해 구질서를 다시 복원하는데 사활적이고 결코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사람들, 비정규직 차별에 맞서고 노동자의 권리를 바라는 사람들, 다당제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사람들, 여가부 폐지에 반대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원하는 사람들, 양심수와 사면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바라는 사람들이 서로의 요구와 투쟁을 지지하고 더 큰 투쟁으로 연결되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할 것이다. 지난 한 달이 벌써 1년같이 느껴진다.

푸틴은 러시아 제국의 무덤을 판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 반전운동의 방향과 전술 논쟁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침공과 전쟁, 학살이 계속되고 있다. 푸틴 정부는 전쟁에 대한 비판에 물타기를 하기 위해서 가짜뉴스도 쏟아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인 우크라이나에 미국이 사주한 생물학 실험실이 있었고 러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세균무기를 개발하고 있었다는 러시아 국방부의 주장이었다. 근거없음이 드러난 이 주장은 후세인 정부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며 이라크 침공의 명분으로 삼았던 조지 부시 정부를 생각나게 한다.

실제로 요즘 푸틴 정부의 언행을 보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미국의 네오콘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의 새로운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를 말했던 네오콘의 논리는 이런 것이었다. ‘냉전 해체 속에서 테러리리스트와 깡패국가 등 새로운 안보 위협들이 등장했다. 중국 등의 도전 속에서 미국은 경제적으로 쇠퇴하고 있지만, 강력한 군사력으로 그것을 만회할 수 있다.’

첨단 공군력을 이용하면 적은 지상군을 가지고도 중동에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고, 독재에 시달리던 아랍 시민들은 우리를 해방군으로 환영할 것이다. 그러면 미국은 불량정권을 교체하고 민주주의를 전파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서 끝없는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

이 논리가 지금, 세계 2위의 군사력으로 주변지역을 강탈해서 경제력 부진을 상쇄하려고 하면서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우리를 해방군으로 환영할 것이기에 금방 탈나치화를 수행하고 철수할 수 있다던 푸틴 정부의 구상과 아주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푸틴의 기대와 달리 러시아의 침공이 오히려 동서지역의 갈등도 뛰어넘어 우크라이나의 민족적 단합을 만들어내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강대국의 패권과 억압이 존재하는 한 저항적 민족주의는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우려스러운 또 다른 역설은 우크라이나에서 비중이 작았던 극우세력이 이 속에서 오히려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푸틴 정부는 나토가 우리의 안보를 위협했다며 전쟁의 명분으로 삼았지만, 이제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고 중립화하겠다고 의사를 밝힌 상황에서도 영토 강탈과 강제 분단을 노리며 전쟁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 물론 이것이 나토의 확장으로 지금의 상황을 부추긴 서방 강대국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나토 확대가 전쟁의 불씨라는 것은 냉전의 설계자로 불렸던 조지 케넌조차 경고했던 바였다. 그는 이미 1997년에 나토를 확대하는 것은 탈냉전 시대 전체에서 미국 정책의 가장 치명적인 오류가 될 것이다. 러시아의 군국주의적 경향에 불을 붙이며 냉전의 종식으로 인해 생겨난 모든 희망적인 가능성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또 서방 강대국과 서방 언론들은 러시아 탱크에 화염병을 던지는 우크라이나인은 영웅으로 추앙하지만,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탱크에 화염병을 던지는 팔레스타인인은 테러리스트로 비난하는 모순에 대해 답해야 한다. 또 자신들이 얼마 전까지 중동에서 러시아와 함께 아랍 혁명을 무너뜨리는데 협력했던 것도 해명해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젤렌스키의 얼마 전 이스라엘 의회 연설도 아쉬운 점은 있다. 그가 코미디언 출신인 것은 아무 문제도 아니고 검찰총장 출신보다 백배는 나은 경력이고, 그가 러시아에 맞선 저항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도 지지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가 지금 우크라이나 상황을 (과거의 홀로코스트를 넘어서서 지금의) 이스라엘의 상황과 비교한 것은 공감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점령과 학살에 맞서는 팔레스타인의 상황과 더 공통점이 많을 것이다.

이것은 나토 가입과 서방 강대국과의 동맹을 추구하던 젤렌스키 정부의 한계를 보여 준다. 그러나 이것이 러시아의 침공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저항을 지지할 수 없는 이유는 될 수 없다. 강자의 부당한 억압과 폭력에 맞서는 약자의 저항은 언제나 지지받아야 한다.

그 저항을 반제국주의 좌파가 주도할 때만 지지할 수 있다는 태도는, 홍콩 저항을 친미 자유주의자들이 주도한다는 이유로 지지하지 않거나, 검찰개혁 촛불시위를 친민주당적 인물들이 주도했다는 이유로 깎아내리는 것처럼 잘못된 태도일 것이다.

실제로 요즘 (극히 일부이겠지만) 몇몇 반제국주의 좌파 동지들의 주장들은 동의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 동지들은 친미냐 반미냐라는 단순 이분법으로 접근하면서, 러시아에 대한 반대와 비판은 곧 친미라는 뒤틀린 비약으로 나아간다. 그런 혼동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는 돈바스에 대한 우크라이나 군의 공격에 반대했지, 러시아의 키이우 폭격을 찬성한 것이 아니다는 우크라이나 좌파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또 자신들이 그토록 추앙하는 레닌의 지적도 되 돌이켜 봐야 한다. ‘한 제국주의 열강에 맞선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이 특정 상황에서 또 다른 제국주의 강대국에 의해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사회주의자들이 민족자결권에 대한 인정을 포기하도록 유도해서는 안 된다.’ (레닌 - ‘민족자결권에 대해)

이 동지들이 서방 강대국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서방 언론을 불신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푸틴의 이해를 대변하는 러시아 관영언론을 신뢰하는 것으로 나갈 이유는 하나도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침공과 폭격에 죽어가면서도 그것에 저항하는 우크라이나 민중의 눈과 목소리로 지금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침공과 전쟁을 방관하는 일부 좌파는 자신들의 반제국주의 민족해방 정치가 과연 어디로 간 것인지 돌아봐야 한다. 강대국이 군사력으로 주변국을 침공하고 학살을 자행하는데 침묵하고, 저항하는 피억압 민족을 지지하지 않는 선택적 반제국주의 민족해방 정치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그러한 좌파 동지들이 국제정치는 도덕과 윤리로 접근할 수 없다, 이 전쟁이 낳을 지정학적 변화에 대한 냉정한 분석에 몰두하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 반제 민족해방 정치의 핵심은 강대국의 불의와 폭력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 억압받는 피억압 민중에 대한 강력한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노, 공감, 연대의식이 빠진 반제 민족해방의 정치란 얼마나 공허한가.

물론, 미국의 헤게모니가 쇠퇴하고, 새로운 도전자들의 등장으로 제국주의 세계질서의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제국주의와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 속에서 다양한 견해 차이와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일이다. 이번 러시아의 침공은 특히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먼저 과연 서방 강대국들이 주도하는 러시아 경제제재를 지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 그동안 이란, 쿠바 등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이 나라의 가난한 민중에게만 더 큰 피해를 가하며 정부의 입지만 강화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동시에, 모든 제재를 찬성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의 과두지배집단에 대한 표적 제재는 정당하다는 지적도 많다.

실제로 토마스 피케티는 유럽과 미국에 재산을 빼돌린 천만 유로 이상을 소유한 약 2만 명의 러시아 백만장자들의 자산 동결과 압수를 제안한 바 있다. 그것이 이 전쟁을 즉각 중단시킬 가장 효과적 방법이라는 것이다. 반면, 러시아측은 이런 제재가 사유재산권을 부정하는 공산주의적 발상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비행금지구역 설정등을 통해서 미군과 나토 군대가 직접 이 전쟁에 개입하고 러시아군과 충돌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에는 공감대가 크다.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이 전쟁은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직접적 충돌로 성격이 변화할 것이고, 3차 세계대전이라는 대재앙으로 발전할 수 있기에 도저히 지지할 수 없는 일이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이 우크라이나에 첨단 공격무기들을 지원하면, 사실상 대리전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하지만, 당장 우크라이나 민중이 러시아의 전투기의 폭격과 탱크의 포격에 직면해서 죽어가고 있고, 그것에 결사 저항하는 상황에서 방어적 무기 지원은 불가피하고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주적은 국내에 있다면서 계급적 단결로 민족간 전쟁을 계급간의 내전으로 만들자는 좌파의 전통적 구호를 반복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지적도 있다. 이것이 러시아에서는 여전히 매우 타당한 주장과 구호이지만, 우크라이나에서 적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현재 우크라이나 좌파는 젤렌스키의 패배가 더 낫다’(혁명적 패전주의)고 주장할 수가 없다.

지금 우크라이나 민중의 주적은 분명히 푸틴이고, 러시아 민중과 우크라이나 민중의 단결은 러시아 민중이 스스로 푸틴과 같은 편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할 때에 가능해질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민족주의를 버리고 계급적 단결로 나서라는 요구는 당신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과 단결하라는 말처럼 들릴 것이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지금 좌파에게 필요한 것은 이 모든 견해 차이와 논쟁을 넘어서서 전쟁 중단과 러시아군 철수, 난민 환영을 주장하는 광범위한 반전운동을 건설하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베트남전 반대 운동 때도 그 대열 안에는 NLF(베트남민족해방전선)를 반대하는 사람도, 공화당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라크 반전운동 때도 그 대열 안에는 기독교인도, 무슬림도, 나토와 유엔 지지자도 있었다. 그 모든 차이와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전쟁 반대로 모인 사람들 속에서 좌파는 스스로 주장과 활동을 통해서 무엇이 전쟁을 중단시키는데 효과적이고 정확한 분석과 주장인지를 입증하며 지지를 얻어야 했다.

지금 푸틴의 전쟁은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속전속결로 승리할 것이라던 전망은 무너졌고, 경제적 타격과 부작용은 심각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직접 가서 전쟁의 참상과 진실을 목격한 20만명의 병사들이 돌아와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관영언론들이 말하지 않은 진실을 말하기 시작하면 푸틴의 설자리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이것이 이라크 전쟁이 부시의 돌파구에서 무덤으로 변화한 과정이다.

무엇보다 지금 푸틴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이다. 우크라이나 민중은 압도적인 군사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군의 진군을 곳곳에서 막아서고 있다. 젤렌스키 정부가 하는 구실은 오히려 부차적이다. 비무장한 시민들이 인간사슬을 만들어 탱크의 진격을 막아서는 장면들이 나타나고 있다.

수천 개의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서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폭격으로 파괴되고 고립된 지역의 시민들에게 음식, 의약품, 기본 생필품을 전달하고 있다. 피난민들에게 무료로 자신의 차와 집을 제공하는 수평적 연대와 자치가 나타나고 있다. 무정부주의자, 사회주의자, 페미니스트, 보통의 시민들이 모두 여기에 함께하고 있다고 한다.

이라크 침공과 전쟁이 미국의 지정학적 재앙이 되면서 네오콘의 꿈은 악몽으로 변했듯이, 푸틴도 비슷한 길을 향해 가야만 한다. 하나의 제국주의 강대국이 쇠퇴한 틈을, 또 다른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차지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멋대로 전쟁과 침공을 일으킬 수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꿈이 중요하다.

‘제국주의/식민주의에는 양면이 있다. 한 쪽은 제국 간의 경쟁이다. 다른 쪽은 식민지에 대한 지배와 착취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영국, 독일은 아프리카를 지배하기 위해 서로 경쟁했다. 우리는 그것을 분석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프리카인에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프랑스, ​​영국 등이 자신들에게 한 일이었다. 그것이 제국간의 경쟁보다 더 중요한 이유이고 내가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바라는 이유이다.’(생태사회주의자 조나선 닐)

 

(기사 등록 202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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