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읽기

[박노자] 통일 희망의 종말?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2. 9. 18.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최근 접한 소식입니다. 북한이 이제 <핵무력 정책법>까지 공식적으로 제정해 통과, 발표시켰다는 소식이지요. 이 법은 "위협"이 될 경우 비핵 국가에 대한 사실상의 선제 공격까지 허용하는 등 핵 사용의 범위를 상당히 넓게 설정합니다. 국내외에 공포된 이런 법의 존재로 봐서는, 북한 지도자들에게는 이제 "비핵화"의 의향이라고 없습니다. 추호도 없습니다.

아마도 4-5년전 트럼프와의 협상은 그야말로 "마지막의 기회"이었는데, 그 협상은 미국 안보주의적 보수의 반대로 결렬되고, 그 뒤에는 핵을 포기한 우크라이나가 당한 침공을 본 북한은 "핵 포기는 곧 피침"이라는 사고의 틀을 굳힌 듯합니다. 그런데 핵 포기가 이제 영원히 없다면 북미 수교 내지 북일 수교의 가능성도 극도로 희미해집니다.

물론 이론적으로 친중 국가 하나를 자기 편에 끌어들이려는 셈으로 미국이 "파격적 조건"을 제시하고 북의 핵까지 사실상 인정하면서 수교로 나아가는 것을 상상해보려면 상상해 볼 수 있는데... 미국에 대한 신뢰를 전혀 갖지 않는 북한이 이렇게 중국에 대해 "불가역적인" 관계 단절 내지 근본적 조절을 한다는 게 아무래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시나리오입니다. 그러니 일단 앞으로 몇년, 몇십년간 "친중 북한, 친미 남한"의 구도는 큰 변화가 없으리라고 봐야 합니다.

문제는, 그렇다면 "통일"을 향한 움직임들이 이 구도 속에서 과연 어디까지 가능하겠느냐입니다. 사실 이 구도는 1950-60년대 "친소/중 북한, 친미 남한" 구도의 현대적인 "재현"으로 보이는데, 기억들 하시겠지만 1950-60년대에 남한 당국 쪽에서는 실질적인 통일로의 움직임이라고 사실상 없었습니다. 그 당시 "명분"의 차원에서는 남한의 통일론이란 "북진 통일" 아니면 "유엔 감독 하에서의 한반도 총선거"처럼 전혀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이었습니다.

명분이 아닌 실질의 차원에서는 남한은 그냥 분단 상황을 이용해 최대한의 미국 원조 등을 받아내려 했던 것이죠. 원조는 옛 이야기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정학적 갈등이 첨예화된 세계에서는 주변국들의 그 후견국가에 대한 종속이 사실 크게 강화됐습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우크라이나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의 논리를 "노골적으로" 거역할 수 없는 독일의 상황을 보면 무슨 말씀인지 아실 겁니다.

북한에 대해서는, 유엔 제재까지 발동된 상황에서는 사실 미국과 같이 하지 않는 이상 남한만의 통일을 향한 움직임이란 현재의 구도 속에서는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통일부 장관이 "이산 가족" 관련의 제안을 하고, 대통령이 "경제 원조"를 골간으로 한 대북 제안을 했다가 북한 당국자들에게 욕을 듣는 등 이런저런 촌극들이 연출될 수 있지만, 사실상 통일 사업은 "무기한 보류"돼 재개의 시기를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1950-60년대, 냉전 상황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은 바로 "통일"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눈입니다. 분단 초기인 전후 시대에는 분단은 부자연스럽고 통일이란 "사필귀정"으로 인식되곤 했습니다. 상당수 남한 주민들이 북한에 가족이나 친척, 친지 등을 두고 있었고, 특히 재야나 진보 쪽에서는 "통일" 없는 민주화란 불가능하다, 분단의 틀 안에서는 양쪽에서 독재만이 재생산된다는 사고가 일반적이었습니다. 나중에 "햇볕 정책"으로 표현된 김대중의 통일관 역시 이런 분위기에서 형성이 된 것이죠.

그 때만 해도 북한은 여러 면에서 남한과 대단히 닮아 보이기도 했죠. 북한의 공업화 등 근대 산업/민족 국가 형성 과정이 남한보다 더 빨랐기에 남한이 북한을 은근슬쩍 "벤치마킹"하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북한의 사회과학원에 남한에서 "정신문화연구원" 설립으로 맞대응하고, 소련의 두브나(Dubna) 원자력 연구 센터에서의 북한 학자 참여 등에 남한은 1970년대의 원자력 개발 계획으로 맞대응했습니다. 그러나까 여도 야도 북한을 어쨌든 나름 "중시"하고 "우리"까지 포함돼 있는 어떤 전체의 일부분으로 간주한 것이죠.

그러나 지금 그 때와 같은 북한과의 나름의 "일체감"을 남한에서 더 이상 찾기가 힘듭니다. 남북한의 자의식이 결정적으로 갈라지고 만 것이죠. 남한인들의 정체성은 "산업화/민주화 성공, 선진국 진입" 등을 골자로 한다면, 북한인들의 정체성은 "미군이 없는 국토, 태양민족의 자주성, 복지 국가 건설" 등을 그 키포인트로 합니다. 남한의 긍지가 그 ""라면 북한의 긍지는 그 "완전한 주권"입니다.

70년 이상의 분단에 자의식뿐만 아니라 언어까지 상당히 이원화됐습니다. 남한인들이 "모서리주기"가 뭔지 도저히 알 수 없겠지만, 북한인들에게는 "왕따"란 이해할 수 없는 단어일 것입니다. 사실 각종 용어 차이를 감안하면 북한인들이 남한에 오면 "우리 말"을 다시 새롭게 외국어처럼 배워야 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다 소비재 수출 위주의 한국 경제와 군수 공업/광물 자원 수출 위주의 북한 경제 사이의 "근본적 차이"까지 염두에 둔다면... 정치적 의지가 만약 있다면 이미 이원화되어버린 경제, 언어, 생활 양식, 자의식 등을 억지로라도 다시 일원화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의지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는 앞으로는 아마도 그 이원화의 속도만이 자꾸 더 빨라질 겁니다.

"통일"은 본래 "하나로 합친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예측이 가능한 기간 동안 이미 ""이 되어버린 남과 북이 다시 "하나"가 되리라고는 예상하기가 다소 힘듭니다. 그러니까 저처럼 통일을 그래도 지향하는 것이 옳다고 보는 사람들의 과제는 아마도 이 "" 사이의 평화롭고 원만한, 서로의 장점을 학습할 수 있는 "보완적 관계"의 설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뭔가를 "합치기"에 앞서 남북한이 서로를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모르는 것은 그렇다 치고, 관심이 너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특히나 남에서 북에 대한 관심이 너무 없어서 가끔 절망감을 느낄 지경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과제는, "합친다"는 데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북맹" (北盲) 탈피를 위한 "시민적 계몽"을 하는 것입니다. 일단 서로를 정확히 알아야 무지에 기반한 적대심을 버리고 서로의 접점부터 다시 모색할 수 있게 됩니다. 통일 희망이 없어진 이 시대에, 여기부터 그나마 "희망"을 찾아 낼 수 있지요.

(기사 등록 2022.9.18) 

*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저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 후원 계좌: 우리은행 전지윤 1002 - 452 - 402383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행동합시다.

newactorg@gmail.com/ 010 - 8230 - 3097 / http://www.anotherworld.kr/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