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읽기

세상읽기 – 윤석열/브라질/김경율/MBC/신당역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2. 10. 11.

전지윤 

거짓과 폭력으로 권력을 유지하려는 세력은 어디서든 붕괴해야 한다

윤석열 시대가 어떨지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정말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인 것 같다. 목사 전광훈이 알박기로 보상금 500억을 얻어내고, 김학의가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아내는 시대이다. 전광훈이 이 과정에서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는 최근 <시사직격><PD수첩>에 잘 나와있다.

, 약물강간과 불법촬영 등이 다 등장하는 김학의 사건이 무죄라니. 검사 시절 윤석열이 이미 그 밑밥을 깔았고, 특히 일부 진보인사들이 절차정의를 말하고, ‘믿을 수 없는 성매매 여성들이라는 프레임을 만들더니 결국 이렇게 됐다.(최근 <PD수첩> 김학의 편은 훌륭했지만 이 뒷부분이 생략돼서 아쉬웠다.)

그리고 이제 절대 비속어같은 것은 할 리가 없는 무오류의 지도자윤석열의 날리면사태가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사태는 이제 동맹과 국익을 훼손한 천하역적 불순분자들에 대한 대대적 사냥으로 전환됐다. MBC 기자 개개인에 대한 신상털기와 좌표찍기가 한창이다. ‘검찰공화국의 질주는 항상 반복되던 패턴을 선보이며 윤석열 정치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다.

정권과 집권여당을 검사동일체 방식으로 일체화하고, 폭탄주를 같이 나누며 형님러더십을 형성하고, 친검기자와 친검언론을 통해 프레임을 형성하고, 가로막는 것이 생기면 압수수색과 소환조사, 표적수사와 별건수사로 조지고, 증거를 조작해서라도 없는 죄를 만들어내고, 판사를 사찰하고 압박해 판결에 압력을 넣고, 진중권과 김경율같은 친검 진보지식인들이 바람을 잡아주고, 검찰의 비리가 드러나도 절대 인정이나 징계는 없고...

이런 특수수사 기법과 관행들이 국정을 운영하는데 그대로 도입되고 있다. 문제는 지배권력 카르텔 내부에서도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한국 자본주의가 갈수록 심상치 않은 상황으로 밀려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강달러 속에서 환율위기와 주가 폭락과 인플레, 30년 만에 최초의 연속적 대중 무역적자, 고환율이 수출 증가로 이어지지도 않고, 금리를 올리자니 엄청난 가계부채가 부담이 되는 상황에 상층부도 위기의식을 느낄 것이다.

이런 위기가 압수수색과 소환조사라는 특수수사기법으로 해결될 리는 없는데, 며칠 전에 한 말도 기억이 안 난다는 윤석열은 날리면사태로 시간만 날리고 있는 이런 상황에 지배권력 카르텔 내부에서도 불만이 부글거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진보의 대안이다.

아무리 기득권 우파가 무능하고 부패하고 사고를 쳐도, 진보좌파가 연대하여 대안을 건설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더 극단적 반동이 위기를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최근 이탈리아 선거에서도 다시 드러났다. 기술관료들이 주도한 이탈리아의 전임 마리오 드라기 정부는 한국의 검피아-모피아연합과 비슷한 점이 있었다.

문제는 이 정부에 중도우파만이 아니라 중도좌파들도 참여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선거에서 좌파 출신들이 함께하던 민주당, 정체성이 혼란스러운 오성운동등은 모두 득표가 줄었고, 많은 전통적 좌파 지지자들이 선거에 기권했다. 그리고 정치권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분노를 가져간 것은 극우 신나치 세력이다.

무솔리니의 후예라는 조르자 멜로니의 이탈리아 형제당4년 전의 4%에서 이번에 26%라는 급성장을 하며 총리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 조국, 가족을 내걸고 호모포비아, 트랜스포비아, 반이민과 난민을 선동하며 얻은 성과라는 점이 더욱 불길하다. 더 우울한 것은 진보좌파적 대안은 선거에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나마 요즘 희망을 볼 수 있는 곳은 이란이다. 히잡을 쓰지 않았다고 끌려간 20대 쿠르드족 여성 아미니의 의문사 이후에 폭발한 시위가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노출된 옷을 입었다고 직장에서 해고되고 도덕경찰에 기소되는 억압을 겪어온 이란 여성들은 이 죽음을 자신들의 문제로 보고 있다.

하지만 십여년간 이미 몇차례나 살인진압으로 저항을 짓밟아 온 이란 정권은 또다시 폭력 진압에 의존하고 있다. (윤석열이 MBC를 탄압하듯이) 언론인들을 잡아가고, 인터넷을 차단하고, 쿠르드 반군기지를 폭격하고, 시위대에 총기를 발사해 벌써 80여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저항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여성들이 앞장서지만 이미 시위는 젠더, 계층, 민족, 종교를 넘어선 전방위적 반정부 투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히잡을 쓴 여성들도 함께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히잡이 아니라, 히잡을 입을지 말지 선택할 권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의 저항을 친미왕정의 복권에 이용하려는 시도도, 이란이 '반미국가'라는 이유로 저항을 지지하지 않는 태도도 모두 잘못된 것이다. 민중의 삶과 자유를 짓누르고, 눈을 가리고 입을 막으며, 거짓과 폭력으로 권력을 유지하려는 세력은 어디서든 마침내 붕괴해야 마땅하다.

#JusticeforMahsaAmini #iran #IranProtests2022 

 

브라질 대선 1차투표가 보여 준 위험과 가능성

며칠 전 브라질 대선 1차 투표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노동자당과 룰라는 간신히 1위를 했고, 무엇보다 같이 진행된 상하원 선거에서 사실상 패배했다. 보우소나루와 자유당은 지난 5년 동안 그토록 깽판을 치고도 43%를 득표했다. 이것은 윤석열이 지금처럼 매일 사고치고 난장판을 만들고도 5년을 버티고 다음 대선에서 재선될 뻔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보우소나루 5년 동안 브라질의 정치, 경제, 사회, 복지, 인권 등은 모두 엄청나게 후퇴했다. 특히 코로나로 거의 70만 명이 사망한 것은 최악이었다. 이미 임기 상반기부터 그를 탄핵해야 한다는 여론이 매우 높았다고 한다. 그래도 보우소나루는 여성, 소수자, 좌파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선동과 살기어린 막말을 하면서 지지층을 결집했다.

대지주, 금융자본, 군부라는 그의 핵심기반은 여전히 강력했고, 이 전통적인 브라질의 기득권 세력은 결코 쉽게 물러날 자들이 아니었다. 더구나 보우소나루는 보수적 가치를 신봉하는 복음주의 개신교라는 중요한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룰라와 노동자당을 부패한 범죄집단으로 악마화하면서 최악의 비호감 선거 구도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마치 지난 한국 대선에서 기득권 우파가 윤석열에 대한 호감보다 이재명과 민주당에 대한 비호감과 혐오를 부추기는 데 성공했던 것처럼 말이다.

어떤 보우소나루 지지자가 술집에 가서 룰라 지지자 나와라고 한 다음에 그 사람을 살해한 사건은, 이런 혐오 선동이 얼마나 극단적이었는지 보여주는 것 같다. 한국에서 민주당이 그렇듯이 브라질에서는 룰라와 노동자당에게 부패라는 낙인이 깊게 새겨져 있다. 그것이 전대통령 호세프의 탄핵과 룰라의 구속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여기에는 물론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거대언론, 검찰, 사법부의 더러운 공조가 있었다. 이것은 나중에 이것을 저지른 책임자들의 텔레그램 비밀대화가 드러나면서 밝혀진 바가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기득권 우파가 만들어낸 가짜뉴스와 마녀사냥과 탄핵의 흐름에 중도좌우파 정치세력과 지식인 등이 대거 동참했기에 그것이 가능했다고 봐야 한다. 이것 역시 문재인 시절에 검언카르텔이 만들어낸 반동적 시도와 흐름에 많은 중도좌우파 세력과 지식인들이 동조하고 결국 윤석열 시대로 이어진 것과 비슷하다.

또다른 공통점은 여기에는 룰라와 노동자당의 한계와 오류들이 실제 존재했고, 그것이 낳은 실망과 분노가 그런 반작용을 더욱 용이하게 했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에서 많은 이들이 룰라와 노동자당을 상당한 좌파처럼 말하는데 그것은 수십년 전의 이야기이고, 지금은 한국의 민주당과도 유사한 중도개혁 정당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변화는 특히 두 차례의 집권기를 거치면서 분명해졌다. 집권 과정에서 룰라와 노동자당의 급진적 성격은 상당부분 사라졌고, 통치 기간 동안에는 더욱 더 브라질 자본주의를 관리하는 구실을 맡게 되면서 여러 가지 타협과 후퇴가 이루어졌다.

특히 노동자당이 월드컵에 돈을 쏟아 부으며 공공요금을 인상하고 그것에 맞선 저항을 폭력 탄압하던 2013년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결국, 중도개혁 정권의 한계와 오류가 대중의 실망과 분노를 낳고, 그것을 이용해 강경우파가 반동을 시도하고, 기회주의적이고 믿지못할 중도세력들이 그런 우파의 부활을 돕는 구도가 반복된 셈이다.

따라서 브라질에서 노동자당을 왼쪽에서 비판하던 급진좌파인 사회주의해방당이 이번 대선에서 룰라 지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내부적 논란과 균열이 있었을지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그럼에도 탄핵에 반대했었고, 이번에는 룰라를 지지한 사회주의해방당의 선택이 옳았다고 본다. 정치는 구체적 상황에서 구체적 전술을 통해 원칙을 실현해나가는 것이지, 원칙에서 곧바로 전술을 가져오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룰라와 노동자당은 보우소나루에 맞선 분노와 불만을 투쟁으로 확대하며 급진적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기보다, 선거에서 더 많은 세력의 연합으로 정권을 교체한다는 계획에 충실했다. 더 많은 세력의 연합을 위해 노동자당의 정치는 더욱 보수화했다. 그 절정은 부통령 후보로 알크민을 받아들인 것이다.

알크민은 호세프 탄핵과 룰라 구속을 지지했던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중도우파 세력의 대표적 리더다. 이로써 룰라는 상당부분의 주류언론과 대기업들의 지지도 얻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는 단순한 산수가 아니기 때문에, 솔직히 이것이 이번에 득표 확대를 낳은 것인지는 상당히 의문스럽고,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우리에게 표를 줄 사람이 누구이고, 표를 더 얻으려면 무엇이 필요하고이런 것만을 기준으로 사고하는 진보정치인들이 너무 많아서 우울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거공학이 아니다. 알크민과 그의 세력은 이번에 노동자당이 재집권해서 만약 급진적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다면, 언제든지 다시 기득권 우파와 손을 잡고 탄핵을 시도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큰 이변이 없다면 결선에서는 룰라가 당선할 확률이 크다고 하고, 그것을 절실히 기대한다. 그리고 이미 사법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경험이 있는 보우소나루와 그 세력이 이번에는 군사쿠데타를 시도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브라질 대선은 후발자본주의에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하고 엉금엉금 기어서 그나마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는지 다시 보여줬다. 또 트럼프, 푸틴, 모디, 보우소나루 등으로 연결된 국제적 신극우 세력이 얼마나 강고한 기반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 보여 줬다. 이것은 대표적인 후발자본주의이고 윤석열 시대에 고통받고 있는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김경율 회계사와 운동권훈장

가능한 특정한 개인을 직접 지목하면서 비판하는 것은 피하려고 하는 게 방향이다. 그것은 생산적 토론보다는 감정적 대립을 낳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존재하는 법이다. 오늘은 김경율 회계사에 대해서 한마디하고 싶다.

좀 지나긴 했지만 지지난주 쯤에 <조선일보>에 그의 새책을 소개하고 홍보해주는 기사가 큼지막하게 실린 것을 봤다. 김경율 회계사에 대한 <조선일보>의 애정과 그의 새책을 많이 팔리게 하겠다는 의지가 충분히 느껴지는 그 기사를 보면서 몇 가지 느낀 게 있다.

먼저 제목부터 참 모순이고 아이러니했다. “운동권이여, 젊은 시절 투쟁을 훈장으로 삼지 말라.” 이 제목을 달면서 <조선일보>나 김경율이 스스로 모순을 느끼지 못했다면 참 둔감하거나 뻔뻔한 것이다. 지난 몇 년간 한국사회에서 운동권 경력을 가장 잘 팔아먹어 온 사람이 바로 김경율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기사에도 그가 젊은 시절 화염병을 던졌고, 수배자였고, 위장 취업했고, 참여연대에 있었고, 삼성재벌과 싸웠고이런 것을 줄줄이 강조해서 나열하고 있다. 이런 운동권 훈장 과시의 효과는 분명하고 대단했다. ‘이런 사람도 진보진영을 비판하고 윤석열을 지지하고 검찰을 편들고, <조선일보>와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은 여론을 움직였다.

비슷한 주장을 보수우파 쪽의 지식인이나 명망가가 아무리 반복해도 도저히 얻을 수 없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예컨대 경총 관계자가 백날 장기투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비난하는 것보다 김경율같은 사람이 고공농성이라는 돈벌이같은 칼럼을 써서 이런 게 사실은 재벌을 협박해 돈 뜯어내는 방법이라고 내부고발’(?)하도록 만드는 게 더 효과적이다.

조중동같은 족벌언론들이 운동권출신이면서 이제는 운동권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최고의 값어치를 매겨서 모셔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검찰권력과 족벌언론이 지난 몇 년간 공정과 상식이라는 기막힌 프레임을 만들어내고 결국 윤석열 집권이라는 결실을 맺기까지 이들의 구실을 과소평가하기 어렵다.

대표적으로 진중권, 서민, 권경애, 금태섭 등의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요즘 서로 많이 갈라지기는 했지만 대부분 현재 윤석열 정권이 매일같이 터트리는 몰상식과 불공정과 반동적 퇴행에 대체로 침묵하거나 선택적으로만 마지못해 모기같은 목소리를 낸다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몇 년전까지 그들이 강조한 엄격한 (선택적) 잣대와 기준으로 보면, 참을 수 없는 정의감으로 분기탱천해서 온갖 막말과 조롱을 쏟아내는 게 당연해 보이는데도 말이다. 확인해보니 그 중에 진중권은 날리면 사태에 대해서도 자막을 잘못 단 MBC가 문제라는 입장이었다.

아무튼 위의 <조선일보> 기사에서 앞으로도 운동권으로 남겠다는 김경율의 언급을 보면서 어처구니없었다. 수십년간 이름없이 묵묵히 투쟁했고 지금도 신념을 잃지 않고 있는 운동권들은 저것을 보고 무엇을 느낄까. 윤석열과 검찰권력과 족벌언론을 위해 봉사하면서도 스스로가 운동권이라는 자부심은 도대체 무엇일까?

하긴 여전히 운동권’, ‘진보라는 타이틀을 쓰고 있어야 자기가 효용가치가 있다는 것을 김경율도 잘 알 것이다. 아니면 업계에서도 최고의 원고료와 광고 효과로 유명한 <조선일보>가 그와 인터뷰를 하고 칼럼을 실어주고 책 광고도 해주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덧붙여, <조선일보>는 역시 대단하다. 아무리 우리같은 사람이 욕을 해도 한국에서 <조선일보>의 사회, 정치, 경제적 영향력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다. <조선일보>가 펜을 칼처럼 휘둘러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와 수많은 사람들에게 끔찍한 피해와 고통을 가했어도 말이다. 예컨대 최근에도 <조선일보>윤석열차를 그린 학생이 어느 지역 어느 학교라는 것을 대놓고 기사에 적시해 좌표찍기와 집단 괴롭힘을 부추겼다.

하지만 안티조선운동 이런 것은 사라진지 오래다. 대표적 안티조선 지식인 진중권의 현재를 보라. 그리고 이제는 조금만 유명해지기 시작한 진보적 지식인, 청년 정치인들은 모두 줄줄이 <조선일보>에 기사를 기고하고 인터뷰를 한다. 자신들이 말하는 진보적 가치와 <조선일보>가 정면으로 충돌하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조선일보> 지면에 등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주류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인정받을 기회이고 몸값이 엄청나게 올라갈 기회라는 것을 너무 잘 알테니까. 오늘도 또 기대했던 청년 정치인이 <조선일보>와 인터뷰해서 그들이 교묘하게 만들어놓은 프레임 속에서 이야기하는게 커다랗게 실린 것을 보면서 아침부터 기분이 우울해졌다.

비판에 대한 어떤 반응을 보며

어제 김경율 회계사에 대한 비판글을 올리고 저녁쯤에 보니 김경율 씨 본인이 온갖 막말과 욕설을 담아서 나를 공격하는 글을 올리고 연달아서 나를 강제태그하고 있었다. 그런 글에는 <조선일보>에 기고하고 인터뷰하던 진보’, ‘청년지식인들이 서로 공감해주고 있었다.

그동안에도 간간히 진중권, 김경율같은 이들을 비판하는 글을 올려왔기에 약간은 뜻밖이었다. 그동안 해 왔던 비판에는 이런 반응이 없었는데 왜 어제 그 글에만 김경율 씨같은 저명한 자칭 운동권이 왜 나같은 듣보잡운동권에게 관심을 보이며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

동시에 약간의 미안함과 연민의 감정이 든 것도 사실이다. 누구든 자신에 대한 비판이 기분좋게 받아들여지진 않을 것이다. 당연히 불쾌하고 마음이 아플 수 있다. 다만 김경율이 그런 감정을 배설만 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자신이 전사회적 마녀사냥에 동참해서 온갖 조롱과 막말과 욕설을 담아서 비난하고 괴롭혔던 사람들의 심정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조롱과 막말과 욕설을 담지 않은 정제된 비판에도 자신이 그토록 기분이 상했다면, 본인이 그렇게 마구잡이로 공격했던 상대방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를 말이다. 물론 그런 역지사지와 자기성찰이 가능했다면 김경율, 진중권같은 이들이 이렇게까지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런 분들의 몇가지 특징은 첫째, 언제나 자신이 가장 옳고 모든 것을 다 안다는 것이다. 둘째, 타인을 가차없이 비난하고 모욕하지만 자신에 대한 작은 비판조차도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셋째, 정치적 비판과 감정적 비난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넷째, 검찰과 언론의 표적이 된 희생양은 신나게 두들기지만, 정말 힘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다소곳하다는 것이다.

정말로 궁금한 것이, 이분들이 그토록 강조하던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감시, 비판, 수사’, ‘진영을 구분하지 않는 모두까기’, ‘내 편일수록 더 철저히 비판하기는 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아양, 안마, 솜사탕같은 비판으로 변화했냐는 것이다. 아니면 지금 윤석열, 김건희, 한동훈이 살아있는 권력이라는 내 생각이 틀려먹은 것인가?

, 어제 밤 김경율 씨가 나를 강제태그해서 퍼붓는 글들을 보면서 윤석열을 옹립한 사람들은 태도도 닮아가거나 원래 비슷한 것인지 하는 의문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욕을 자연스럽고 찰지게 하시는지. 특히 등*, *, *, 조삐*, 쓰레*, 버러*같은 욕들을 페이스북 관리정책에 어긋나지 않게 비슷한 발음의 다른 단어로 바꿔내는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동안 내가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했을 때 감히 우리를 명예훼손하다니하면서 다양한 거친 막말성 표현으로 반응하던 어떤 '좌파'라는 분들도 떠오른 것이 사실이다. 더불어 청년진보 논객이라던 한윤형 씨가 나에게 쏟아부었던 심각한 막말과 욕설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 강한 표현이 논쟁에서 승리를 가져오는 것처럼 착각하는, 이것을 단지 김경율같은 분들만의 문제로 보고 넘어갈 일은 아닌 것이다.

솔직히 윤석열의 이번 막말과 욕설 사태를 보면서도, 그동안 진보 활동가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막말을 수시로 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정치적 선명함인 것처럼 포장하던 일부 분들도 떠올랐다. 윤석열이나 김경율을 보면서 혀를 차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나부터도 언제나 우리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코끼리에게 창을 던졌다가 혼자 밟히는 사람들

작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억지를 부리고 우기다가 갈수록 큰 잘못들을 키우면서 사태를 산으로 끌고 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고 그런 사람들에게 질리도록 당한 일도 있었다. 그래서 그 메카니즘을 어느 정도는 안다. 그런 사람이나 집단의 특징은 먼저 핵심 지도자의 잘못이 아니라 밑의 사람의 잘못이면 언제든지 잘라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무관용원칙을 지킨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핵심 지도부에서 누군가가 잘못을 저지르거나 책임이 있으면 사태는 달라진다.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누구도 쓴소리를 하지 못한다. 그러면 이제 화살은 잘못을 지적한 사람에게 향하게 된다. 잘못을 한 자신이 아니라 그것을 지적한 사람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잘못을 지적한 사람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음모론으로 발전한다. 저 사람이 음해와 모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거나 믿지 못하도록 상대방을 인신공격하는 것으로 나아가게 된다. 저 사람은 원래 믿지 못할 파렴치한 사람이고, 의도가 수상하고, 행실이 문제가 있고, 누구의 사주를 받았고...

그러면 이제 문제는 처음에 저지른 작은 잘못이 아니라, 그것을 덮기 위해 저지른 훨씬 더 큰 잘못들로 확대된다. 이제는 도저히 간단히 잘못을 인정하면서 사과해서 풀릴 수 없는 문제가 돼버린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더 상대방에 대한 가혹한 인신공격, 신상털기, 불링 등이 벌어지고, 이제 소송과 역고소 등 법적대응으로 나아가게 된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법은 보수적이고 힘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해석될 수 있고 돈과 힘으로 법기술자들을 많이 거느린 쪽에게 유리한 운동장이니까.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는 잘못한 게 없고 저 사람이 문제다라는 논리를 무한 반복하고 강화한 결과로, 이제 본인 자신도 그것을 믿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지금 날리면사태에서 윤석열과 집권세력이 보이는 문제의 본질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윤석열 본인도 나는 욕을 하면서 바이든을 언급한 적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 500원을 걸겠다. 그리고 이런 행태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표적수사를 하면서 정치에 개입하다가, 최고권력까지 차지한 정치검사 집단들에게서 가장 잘 나타난다.

여기에는 중요한 조력자들이 있다. 바로 법조기자들과 족벌언론들을 중심으로 한 언론권력이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이 당선된 것에는 많은 복잡한 요인들이 작용했지만 언론권력의 구실을 빼놓고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지금도 대부분의 주류언론들은 윤석열과 검피아-모피아연합 정권에게 그렇게 날카로운 잣대를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전임 정권에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비판을 그토록 외치더니 말이다. 여기서 예외적인 경우가 <뉴스타파>MBC의 일부 정도였다고 볼 수 있다. 얼마 전 <뉴스타파>가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관한 재판에서 제시된 중요한 증언과 증거들을 보도한 것은 그것을 보여 준다.

일단 재판에서 검찰이, 윤석열과 김건희에게 불리하고 치명적일 수 있는 이런 증거를 제시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점이 있다. 이것은 올해초 대선 결과를 아직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검찰 내부에서 일부 균열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만든다. 만약 윤석열이 떨어지면 같이 덤터기를 쓸 수 있다는 부담이 작용한 것이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더 철저한 수사라는 가짜논리가 스스로 발목을 잡은 면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곧이 곧대로 믿은 하위 검사가 검찰 수뇌부의 암묵적 지시를 눈치채지 못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핵심은 이것을 발견하고 보도한 <뉴스타파>의 존재다.

이미 이것이 관련 재판에서 제시된 것은 몇 달 전이지만 어떤 언론도 이것을 주목하거나 보도하지 않았다. 그렇게 묻힐 뻔했던 진실을 보도한 것은 이번에도 <뉴스타파>였다. 이러니 윤석열 정권이 <뉴스타파>를 얼마나 증오할지는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일이다. <뉴스타파>의 보도 이후에도 주류언론들은 정파를 떠나서 어디에서도 이 폭발성 뇌관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 거대한 침묵과 외면의 카르텔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고립감 속에서 <뉴스타파> 심인보 기자는 어떤 인터뷰에서 우리는 법정 취재를 갔다가 들은 것을 그대로 썼을 뿐이다. 다른 언론들도 다 취재했을텐데 같이 보도해주면 좋겠다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코끼리 사냥을 한다고 생각해보자고요. 누군가 먼저 창을 던졌습니다. 코끼리가 엄청 화를 내면서 창 던진 놈에게 달려들겠죠. 그때 옆에서 창을 든 사람들이 구경만 하고 있으면 처음 창을 던진 사람은 밟혀 죽을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 두 번째 창을 던지고, 또 다른 이가 창을 던지면 결국 코끼리는 쓰러집니다.”

그리고 이제 날리면사태에서 표적이 된 MBC도 비슷한 고립감을 느낄 것 같다. 다같이 윤석열의 욕설과 바이든 언급을 자막 달아서 보도했던 주류 거대언론들은 지금, 대부분 중립 모드로 돌아서 양쪽의 공방과 진실게임으로 보도하기 시작했고, <조선일보>같은 최악의 경우는 MBC 공격에 앞장서고 있다. 이것을 보면, 지난 대선에서 이런 사람과 세력이 어떻게 권력을 잡을 수 있었지? 궁금할 것이 별로 없어진다.

신당역에서 살해당한 여성노동자 추모 집회에 다녀와

어제 저녁에 신당역에서 여성노동자 추모 집회에 갔다 왔다. 신당역 10번 출구에서 2주째 계속되는 추모의 발길과 집회는 스토킹 끝에 이어진 이 죽음이 우리에게 결코 우연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는커녕 스토킹은 이 사회의 문화이고 작동방식이다. 이 사회에서 주류질서를 거부하는, 진실을 말하는, 폭력을 고발하는, 권력에 맞서는 여성과 소수자들에게 가해지는 것은 바로 스토킹이다. 그런 사람들은 주류언론에 의해, 황색언론에 의해, 억압적 국가기구에 의해, 극우막장 유튜버들에 의해서 스토킹과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고 설리 씨와 구하라 씨가 황색언론들에게 당한 것이 스토킹이었다. 변희수 하사가 군지휘부에게 당한 괴롭힘이 스토킹이었다. 지난 대선 때 조동연 씨가 가세연에게 당한 것이 스토킹이었다, 임은정 검사, 박은정 검사가 검찰과 친검언론에게 당한 것이 스토킹이었다. ‘위안부피해자와 윤미향 의원이 극우막장 유튜버들에게 지금도 당하고 있는 게 스토킹이었다.

또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어떤 일을 겪는지 우리는 지켜봐 왔다. 그들은 거짓말쟁이로,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내몰리고, 사생활과 신상정보가 유출되고, 거꾸로 명예훼손의 가해자가 돼서 역고소 당하고 포기할 때까지 괴롭힘을 당한다. 이것이 바로 스토킹이다.

이번 신당역 사건의 범인은 갑자기 나타난 괴물이 아니고, 바로 이런 구조, 문화, 작동방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미투에 나섰던 서지현 검사를 괴롭혔던 검찰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거라고 믿기 어렵다. 표적수사와 스토킹수사로 권력을 잡더니, 이제는 국민들의 귀를 고문하고 있는 윤석열 정권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거라고 믿기 어렵다.

지금 이란에서는 히잡을 입지 않았다고 끌려간 여성의 의문사에 항의해 거대한 저항이 벌어지고 있다. 이란의 민중은 여성의 복장을 검열하고 삶을 옥죄는 도덕경찰정조법에 맞서서 젠더, 계층, 지역을 뛰어넘어서 분노를 폭발시키고 있다. “여성, , 자유을 외치고 있다.

저항의 거리에서 여성들은 외치고 있다. “우리가 함께 일어서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씩 죽어갈 것이다이것은 지금 여기의 우리의 가슴에도 와 닿는 이야기이다.  

(기사 등록 2022.10.11) 

*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저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 후원 계좌: 우리은행 전지윤 1002 - 452 - 402383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행동합시다.

newactorg@gmail.com/ 010 - 8230 - 3097 / http://www.anotherworld.kr/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