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균
1. 정준영이란 가수의 열렬한 팬이었고, 이후 TV 예능에도 정준영과 함께 출연할 정도로 "성공한 덕후"였던 감독이 이후 2019년 3월 정준영이 성관계 불법 촬영 영상을 제작하여 카카오톡 단체방에 공유하는 등의 성범죄 사건이 발생하면서 "실패한 덕후"가 되고, 이후 자신처럼 어떤 남자 가수(아이돌)을 좋아했다가 이런 유사한 문제 등으로 탈덕하게 된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이 영화의 골격이다.
영화 간간히 나오는 기차길은 마치 어떤 연예인을 덕질했던 자신의 인생을 톺아보고, 그 연예인에게 온갖 슬프고 화나고 속상한 마음을 가지게 된 자신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쓰리지만 덤덤한 여행담처럼 느끼게 해 주었다.
2. 그동안 미디어에선 사생팬 같은 이미지를 강조하며 특히 남성 아이돌과 남성 연예인을 좋아하는 여성 팬들에 대한 혐오적인 이미지를 부추겼다면, 영화 성덕은 감독 자신이 남성가수를 좋아했던 덕후였던 만큼 일상에서 특정 연예인을 좋아하는 일상의 여성은 어떻게 살았는지 최대한 그대로 보여 주려고 애쓴다.
그래서인지 한 번은 남성 연예인을 열렬히 좋아했던 사람들이 특히나 많이 공감했던 영화다. 감독 자신이 그 OPPA에게 편지를 보내고, 사인회를 통해 만나고, TV 를 통해 만나는 등 과정에서 다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해 살았던 옛 일을 이야기하는 등 연예인의 팬이라는 것이 그 힘들었던 청소년 시기를 잘 버티게 만들었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보여 줬다.
3. 그러나 그렇게 아끼고 사랑했던 "남성 연예인"이 성범죄를 비롯한 사고에 휘말려서 생긴 소위 "손절"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는 씁쓸한 느낌이 밀려왔다. 비단 정준영이 아니더라도 승리, 정바비 등 계속해서 남성 연예인의 못된 짓이 지뢰처럼 터져 나왔고, 좋아했기에 굿즈를 사고 음반을 사고 콘서트를 가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허탈감, 상실감 그리고 분노는 스크린을 뚫고 나와 쿡쿡 찌르는 느낌이었다.
특히, 인터뷰어 중 한명은 "그렇다면 그 사람은 평상시에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일까?"라고 말하는 장면에선 이 사회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과 못된 행위들이 어떻게 여성의 일상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투영되는 듯하다.
4. 동시에 소위 팬들 중엔 여전히 그 못된 짓을 하고 처벌을 받고 있는 그 연예인을 옹호하는 것에 대한 내용을 담았고, 온갖 질문을 하다 감독이 "박근혜 석방 집회"에 가서 그 집회에서 절절하게 박근혜 석방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 좋아하는 방법이 너무나 잘못되었지만 이해는 하게 되었다는 부분도 기억에 남았다.
연예계 문제가 아니라 정치.사회 등 다른 일상의 한 축에서도 누군가를 향한 팬심은 작동될 수 있고, 그 팬심은 온전히 판단하지 못하게 되고 오직 그 사람만을 맹목적으로 좋아하면서 그 사람으로 인해 피해 받은 사람을 더 상처 받게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5.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측면이 있어서 질문-대답이 얼추 비슷해서 좀 반복된다는 느낌을 줄 수 있고, 감독 자신의 기준을 중심으로 여성 아이돌 팬에 대한 이야기는 다뤘는데 한편으로는 여성 아이돌을 좋아하는 남성에 대한 이야기를 더 보고 싶다는 갈증이 생기기도 했다.
전자에 비해 후자는 여성 아이돌을 유사연애화 하여 여성 아이돌의 언행이나 누군가와의 연애를 가지고 혐오 공격 및 비난을 퍼붓기도 해서 여성 아이돌이 오히려 피해자가 되는 상황을 종종 본다. 어쩌면 이 사회에서 남성-여성의 왜곡된 차별과 배제는 아이돌-팬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만큼, 남성-여성의 성차별 및 성폭력 문제와도 연결된 이 영화 주제에 잘 섞었으면 그야말로 더 많은 생각할 거리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6. 그럼에도 결국 또 살아가고, 살아가는 동안 다른 사람을 또 덕질하며 행복해 하고, 또 그 일상을 이어갈 수 있음으로 마무리 된 것에서 사람들은 다시 살 희망을 얻어 갈 거라 생각한다. 동시에 한 때는 좋아했지만 지금은 죄인이 된 그 연예인에겐 맨 마지막엔 "당신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남김으로서 관련 문제를 저질렀을 때 자살로서 도망가지 않고 어쨋든 죗값을 제대로 치루길 바라는 메시지도 의미심장했다. 성폭력 문제는 직접적인 피해자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연결 돼 있음을 다시 실감했다.
7. 부디 영화감독을 비롯하여 영화에 나왔던 수많은 강제탈덕한 사람들이 영화에서 비춰지는 우울함, 슬픔, 화남의 감정을 넘어 계속 사람을 생각하고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나아가고 더 잘 되길 기도한다.
(기사 등록 2022.10.17)
*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저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 후원 계좌: 우리은행 전지윤 1002 - 452 - 402383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행동합시다.
newactorg@gmail.com/ 010 - 8230 - 3097 / http://www.anotherworld.kr/608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교가 폭력과 비극이 되는 순환을 멈추기 위해 - <나는 신이다: 신이 배반한 사람들> (0) | 2023.03.08 |
---|---|
장점과 단점이 분명한 <아바타: 물의 길> (0) | 2022.12.28 |
경계에서 성찰하며 머뭇거리는 마르크스주의? (0) | 2022.04.29 |
새책 소개) 연속성과 교차성 (0) | 2022.03.30 |
영화: 스파이의 아내 (0) | 2022.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