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론의 혁신

생태사회주의적 탈성장의 필요성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2. 11. 4.

폴 머피와 제스 스피어Paul Murphy and Jess Spear

번역: 두 견

 

최근 몇 년 동안 탈성장의 개념은 전 세계 생태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토론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기사는 이러한 논쟁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기후와 생물다양성 위기에 맞서는 생태사회주의적 탈성장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 글의 필자인 폴 머피는 아일랜드의 사회주의자로서 유럽의회 의원으로도 활동했다. 제스 스피어는 미국과 영국에서 활동하는 기후과학자이자 사회주의자이다.

출처: http://www.globalecosocialistnetwork.net/2022/06/04/the-necessity-of-ecosocialist-degrowth/

자본주의적 성장은 우리의 생명 유지 시스템을 파괴하고 있다. 그것과 자연(인간 및 비인간 모두)과의 기생적 관계는 마르크스가 "흡혈귀와 같다"고 쓴 것처럼 "근육, 신경, 착취할 피 한 방울이 있는 한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이윤에 대한 만족할 줄 모르는 자본주의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구에서 빼앗아가는 물질은 매년 점점 더 커지고 대기, 육지, , 바다로 뿜어져 나오는 쓰레기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인류를 위한 안전한 작업 공간"을 함께 설명해주는 확인된 9개의 행성적 경계 중 4개가 넘었다.

최신 IPCC 보고서는 "모두를 위한 살기 좋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의 창""급속히 닫히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인류세의 첫 번째 지질학적 시대인 자본세Capitalinian는 생태사회주의 혁명으로 막을 내리거나 인류를 새로운 암흑기로 이끌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신속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가 점점 더 쉬워지고 있다. 더 많은 기근, 홍수, 가뭄, 슈퍼 폭풍, 새로운 유행병; 제국주의 국가들과 그 동맹국들이 줄어들고 있는 자원에 대한 접근을 놓고 충돌하는 전쟁; 그리고 당장은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둘러싼 위기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려 함에 따라 권위주의가 심화된다. 우리가 사회주의와 야만 사이의 선택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이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해졌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이 말하는 '사회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기후 비상 사태에 대한 기술적 해결책을 강조하는 "에코모더니스트""완전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부터, 배출과 생태계 파괴를 긴급하게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생태사회주의와 "생태사회주의적 탈성장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우리는 "안전하고 정의롭고 공정한 방법을 통해서 경제를 살아있는 세계와 균형적으로 되돌리기 위한 계획된 에너지 및 자원 사용의 축소"인 생태사회주의적 탈성장의 사례를 만들고자 한다. 오늘날의 혁명적 좌파를 위한 지침적 개념으로서 생태사회주의적 탈성장은 앞으로 생태학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로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한 마디로 무엇인가?

우리가 보기에 탈성장에 대한 많은 논쟁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정의를 사용하여 논쟁하면서 비생산적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탈성장은 GDP의 감소를 의미하는가? 경제 활동의 모든 측면에서 후퇴를 수반하는가? 그것은 세계 모든 지역에서 경제 활동의 축소를 요구하는가?

너무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탈성장 옹호자들에 대해서 진정한 계급투쟁은 노동과 자본 사이가 아니라 지리적 지역, 즉 북쪽과 남쪽 사이에 있다고 주장한다는 허수아비를 내세운다. 또는 "탈성장은 그 자체로 진보의 종지부를 찍을 것" 또는 "대부분의 인류에 대한 대량 죽음의 처방"과 같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내세운다.

탈성장 비판 스펙트럼의 더 동정적인 쪽에서 우리는 "생산력의 다양한 부문에서 성장과 탈성장 모두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듣는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많은 탈성장 옹호자들이 주장하는 바이다. 우리는 군사비와 광고에서부터 패스트 패션과 화석 연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에서 탈성장과 함께 배출량의 15%를 해치우고 있는 상위 1%의 소비를 극적으로 줄여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의료, 교육, 대중 교통, 재생 에너지, 보육 등(목록은 계속될 수 있음)과 같은 공공 서비스의 성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이 응답은, 인류가 에너지 소비와 물질의 처리량을 전반적으로 줄여야 하는 것인가라는, 탈성장이 해결하고자 하는 더 큰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하게 대답한다 그렇다.

GDP를 물질 사용과 "분리"하려는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의 전체 역사에서 GDP의 증가는 항상 에너지 소비 및 물질 처리량의 확장과 함께 왔다. 이것은 기술 혁신이 효율성을 증가시킬 수 있고 실제로 증가했다는 것, 또는 이윤이 아닌 필요에 따라 생산하는 데 중점을 둔 노동자 국가의 통제 하에 물질적 에너지 사용의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제본스 역설’(Jevons Paradox)는 꽤 확고하다. 효율성은 재료 및 에너지 사용의 감소가 아니라 증가로 이어진다. 따라서 확실히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 에너지 사용량과 물질 처리량의 필요한 수축은 글로벌 수준에서 GDP의 감소를 초래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목적이 아니라 결과이다. 그러나 논쟁의 목적을 위해서는 그것에 대해 미리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체로서 "인류"의 에너지 사용과 GDP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것은 물론 - '인류세'라는 용어에 반대하는 주장과 비슷하게 - 다른 사회주의자들로부터 '당신은 우리가 처한 위기에 대한 자본가 계급의 책임을 없애고 있다'는 즉각적인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또는 인류의 상위 10%가 하위 10%보다 20배 더 많은 총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흐리게 한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아래 그림 1 참조). 

현재의 기후 변화가 인간 활동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대부분의 언론과 너무 많은 과학자들이 부자와 가난한 자, 노동자들과 사장들, 북반구와 남반구 내의 국가들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개인 제트기를 소유한 억만장자이든 우간다의 생계형 농부이든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에 대한 책임은 "인류" 전체의 어깨에 너무 자주 놓여진다. 이러한 틀은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도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노동계급 사람들을 내쳐버린다. 또한 이 시스템에 맞서는 원주민들의 수세기 동안의 투쟁을 무시한다.

그러나 우리의 관점에서는 인류의 모든 것이 문제가 있다는 혼동을 추가하기보다 지침적 개념으로서 탈성장을 채택하는 것이 실제로 생태사회주의자들이 위기의 자본주의적 뿌리를 더 잘 폭로할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정해진 진부화와 광고에서부터 생산되는 막대한 폐기물과 계속해서 증가하는 에너지에 대한 필요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에 내재된 성장 명령과 그에 수반되는 모든 것에 대해 매우 필요한 주의를 환기시킨다.

탈성장은 사람들을 전체적으로 비난하는 대신 부유한 국가 내에서 소비의 계급 구분을 강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하게는 소위 선진국과 저개발 국가(, 북반구와 남반구) 사이의 계급 구분을 강조할 수 있다. 생산에 대한 자본가 계급의 결정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것은 또한 재생 에너지까지 포함해서, 추가적 성장을 위해 필요한 폭력적인 추출주의와 "희생 지역"에 큰 관심을 집중시킨다.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소비와 물질적 처리량을 크게 줄여야 한다는 과학적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수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이것이 지구상의 거의 모든 사람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수행될 수 있고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지만,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생산 계획에 기초해서만 수행되어야 한다고 즉시 추가해야 한다.

자본가 계급의 모든 해롭고 낭비적인 활동과 그 계급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사치성 소비는 급속하게 무(, 탈성장)로 환원되어야 한다. 또한 남반구를 포함한 대다수의 노동자, 소농, 실업자, 젊은이들이 삶의 질을 극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 필요하고 가능하다.

이데올로기로서 성장

생태사회주의자들을 위한 개념으로서 탈성장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지금까지 탈성장론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제이슨 힉켈Jason Hickel은 성장 명령의 핵심이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오해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진술을 반복한다.

“이제 [신자유주의 시대의] 목표는 성장이라는 목적을 위해 이윤에 대한 장벽을 허물고 인간과 자연을 더 저렴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는 성장과 이윤의 관계를 잘못 알고 있다. 각 자본가와 시스템 전체의 최종 목표는 이윤 극대화이다. 성장은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그러나 힉켈이 성장주의의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쓸 때 그는 중요한 요점을 말하고 있다. 경제 성장이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 길이라는 생각, "밀물이 모든 배를 들어올린다"는 생각은 지배계급의 지배적 생각의 만연한 부분이다.

그것은 단순한 '상식'으로 여겨질 정도로 너무 헤게모니적인 사상 중 하나이며, 이해할 수 있게도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탈성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경계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성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일랜드의 IBEC와 같은 기업 단체나 우익 논평가뿐만이 아니고, 노동조합과 사회주의자들도 성장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느 정도까지는 분명히 이 생각에 진실이 있다. 만약 우리가 양질의 주거, 음식 그리고 여가 활동에 대한 접근을 제공할 충분한 물질적 생산이 없는 사회에서 살았다면, 이러한 분야의 성장은 사람들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할 것이다. 세계 인구의 많은 부분이 이것을 보여주는 지구 남반구에 있는 국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 세계에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질 좋고 의미 있는 삶을 제공하기 위한 적절한 수준 이상의 상품 생산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 부와 소득이 어떻게 분배되고 생산이 어떻게 우선시되고 조직화 되는가 하는 것이다.

슬로건이 아닌 개념

탈성장 사상에 대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가장 일반적인 반대는 존 몰리뉴(John Molyneux)가 최근 기사에서 간결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을 동원하는 측면에서 그들이 로스앤젤레스에 있든, 리버풀에 있든, 상파울루에 있든, 소웨토에 있든 탈성장의 개념이나 슬로건은 출발점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장에는 두 가지 아이디어가 포함되어 있다. 첫 번째는 탈성장이라는 슬로건이 다수의 노동계급을 동원하는 데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우리는 동의한다. 그것은 너무 추상적이며 성장의 '상식'적 이데올로기와 너무 날카롭게 충돌한다. 그러나 우리는 생태사회주의적 탈성장의 개념이 우리의 슬로건을 도출하는 곳으로 출발할 수 있게 하는 강력한 기반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견고한 생태적 토대 위에서 강력한 사회주의 운동을 건설하는 방법을 재고하도록 우리에게 도전한다.

부정확하지만 유사한 것은 레닌의 "국가 분쇄" 개념일 것이다. <국가와 혁명>에서 레닌은 마르크스가 이미 1871년 파리 코뮌 이후에 쓴 것과 같이,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국가기구가 자신들에게 봉사하도록 만들어서 그것을 소유할 수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그것을 부수고 그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가 분쇄"는 다수의 노동계급을 동원하기 위한 슬로건이 아니었으며, 앞으로도 그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주의자들이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며 대중에게 다가가고 특정 상황에서는 대중을 동원할 잠재력이 있는 요구와 구호를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그 본질적인 개념은 인기 있는 볼셰비키의 슬로건인 "모든 권력은 소비에트로"를 낳았다.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이 그들의 산업을 성장시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지만, 우리는 노동계급 전체의 필요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 자동차로 교체하는 데 기반을 둘 수 없다. 우리는 자가용 공장을 대중교통 기반시설로 전환하는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주장해야 한다.

전체 산업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군비, 화석 연료, 대규모 농업, 항공 여행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당연히 기존 일자리 상실에 저항할 것이다. 그것을 되풀이하는 대신, 우리는 성장이라는 패권적 이데올로기에 도전하고 이러한 산업이 모든 노동자에게 보장된 일자리와 개선된 조건을 갖춘 사회적으로 유용한 생산으로 전환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위해 노동조합 운동 내에서 투쟁해야 한다.

게다가, 탈성장이 노동계급 사람들에게 출발점이 될 수 없다는 명제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받지 못하고 있다. <적을수록 풍요롭다Less is More>에서 힉켈은 "사람들이 환경 보호와 성장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때 '대부분의 설문 조사와 국가들에서 환경 보호가 우선시된다'"라고 설명한다.

EU에서는 "경제 성장에 피해를 주더라도 환경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55~70%가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성장 지상주의라는] 짐승의 뱃속에 있는' 것 같은 미국에서도 70%“‘환경보호가 성장보다 중요하다는 말에 동의한다.

물론, 여론조사는 사람들의 생각과 기분을 보여주는 스냅샷이며 의심할 여지 없이 여론조사가 실시될 때 경제 상황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사람들이 탈성장을 납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생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탈성장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면 우리의 프로그램, 슬로건 및 요구 사항은 그 반대가 아니라 그 현실에 맞게 형성되어야 한다.

더 이상 없는 희생 구역들

탈성장은 또한 화석 연료를 청정 에너지 기술로 대체하려는 기존 계획을 진지하게 고려하도록 강요한다. 태양 전지판, 풍력 터빈, 전기 버스, 기차 및 배터리를 모두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는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어떤 공동체가 그 광물들을 발굴함으로써 밀려나고 피해를 입을 것인가? 모든 사람들이 좋은 생활 수준을 갖도록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까?

세계 북반구의 사회주의자들은 지배 엘리트들이 배치하기를 거부한 기술적 해결책의 존재뿐만 아니라 그러한 해결책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포함하여 생태적 위기에 대한 인식을 높일 책임이 있다. 탈출구는 지구 북반구에 있는 도시들을 위한 태양광 패널과 풍력 터빈을 건설하면서 콩고민주공화국, 칠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채굴을 늘려 지역 환경과 공동체들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부터 생태사회주의적 미래로 가기 위해 우리가 건설하는 다리는 지구촌 남반구의 노동자, 여성, 농민들의 등을 밟아서 건설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1%의 사치스러운 소비와 불필요한 생산을 시작으로 전체 에너지 수요를 줄이는 동시에 재생 가능한 에너지 생산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야 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후와 생물다양성 위기가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 이 시기에 탈성장의 개념은 방향성을 제시하고 생태사회주의적 프로그램과 슬로건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것은 개혁주의자들뿐만 아니라 혁명가들을 휘감고 있는 성장의 이데올로기에서 탈피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까지 마르크스주의 좌파의 대부분을 지배했던 생산주의와 프로메테우스주의를 배척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더 나아가서 그 앞에 놓인 형용사(: 지속가능한, 사회적, 생태적)에 관계없이, 성장의 언어를 의식적으로 버려야 한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옹호하는 대신,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삶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설명해야 한다. 그 일환으로 우리는 물질적 사유재의 과잉이라는 목표를 거부해야 한다. 유한한 행성에는 무한한 재화가 있을 수 없으며 모든 사람들이 그들이 원하거나 사용할 필요가 있는 모든 물질적 품목을 구매, 소유 및 관리하기를 원한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대신, 사회주의자들은 양질의 공공재의 제공, 공동체와 삶의 모든 측면의 탈상품화,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균열을 치유하는 것을 옹호해야 한다. 그것은 물질적 재화의 양보다는 삶의 질을 중시하는 생태사회주의적 사회의 비전을 내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탈성장을 개념으로 채택한다는 것은 자본의 생명 파괴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노동계급과 억압받는 사람들을 동원하는 데 도움이 되면서 더 나은 삶을 가리키는 슬로건, 요구 및 잠재적 투쟁을 강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선 임금 손실 없는 주당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해야 한다. 임금 손실 없이 주 4일 또는 30시간을 근무하면 에너지 소비가 크게 감소하는 반면 노동자들은 더 많은 여가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기후 위기와 노동자의 생계비 위기를 모두 해결하는 중요한 요구는 주택의 대규모 개조 프로그램에 대한 요구이다. 주택 난방은 국내 에너지 소비의 61% 또는 전체 에너지 소비의 16%를 차지한다.

대대적인 개조를 통해 대부분의 가정은 에너지 소비를 절반 이상으로 줄이는 동시에 화석 연료에서 열 펌프 형태의 전기로 전환할 수 있다. 아일랜드에서 이러한 프로그램은 수만 개의 녹색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또한 보육, 교육 및 의료 분야에서 소위 '돌봄 직업'을 포함하는 녹색 일자리의 개념을 주장해야 한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여성화되고 저평가되고 저임금의 노동력이다. 우리는 아일랜드 국립보건국(Irish National Health Service)과 국립보육서비스(National Childcare Service)의 창설을 통해 이러한 일자리의 대규모 확장을 위한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이들은 탄소 배출을 거의 추가하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의 삶의 질에 상당한 이점을 제공하는 일자리들이다.

유사하게, 무료이고 친환경적이고 수시로 제공되는 대중 교통에 대한 요구는 탈성장 개념과 일치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 자동차 사용에서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네트워크의 달성은 특히 아일랜드에서 운송이 두 번째로 큰 배출 부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배출량을 크게 줄일 것이다.

공공 서비스의 확대는 고된 가사노동의 시간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서비스의 창출과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하루 세 끼의 건강한 식사를 제공하는 무료 공공식당과 개인 세탁기를 구매, 유지 관리 및 교체하는 것을 대체할 세탁소가 있다.

생태주의자들은 또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상품의 질을 향상시키면서 소비와 낭비의 순환을 깨뜨릴 요구를 옹호해야 한다. 예를 들어, 휴대폰과 같은 품목의 의도적인 빠른 노후화와 교체를 금지하면서 제품에 대한 필수 연장 보증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것을 연결하면 모든 소비재를 저렴한 비용으로 수리할 수 있는 '수리할 권리'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그리고 더 많이 나열될 수 있는) 긍정적인 요구는 자본가 계급의 배출과 부자들의 사치성 소비를 제거하기 위한 부정적인 요구와 결합되어야 한다. ‘이윤보다 인간을단체가 데이터 센터와 화석 연료 인프라의 미래를 위한 개발을 금지하기 위해 제안한 법안이 이에 대한 완벽한 사례이다.

2028년까지 전력의 29%를 사용할 예정인 이러한 데이터 센터는 대체로 대다수의 관점에서 유용한 작업을 수행하지 않는다. 대신 광고로 사람들을 타겟팅하는 알고리즘을 실행하고 있다. 광고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광고도 대폭 줄여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광고를 싫어하기 때문에 이것은 사회주의자들에게 열린 목표이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을 때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자본주의는 그것을 절대적으로 요구한다. 마이클 뢰비Michael Löwy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추상적이고 단순한 정량적 접근법, 즉 개인들이 ‘생활 수준을 낮추거나, 소비를 줄이도록’ 강요하기 보다는, 사람들이 그들의 진정한 필요를 조금씩 발견하고 질적으로 소비 방식을 바꿀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새로운 기기나 유용성이 떨어지는 새로운 상품을 사는 것보다 더 많은 문화, 교육, 보건 또는 주택 개량을 선택함으로써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광고를 통한 구매 강요의 괴롭힘을 억제하는 게 필수 조건이다.”

군수산업과 군산복합체를 반드시 퇴출시켜야 한다. 화석 연료를 석유 회사에서 몰수하고 땅에 묻어버려야 한다. SUV의 생산과 마찬가지로 개인 제트기의 생산도 도시에서 즉시 금지되어야 한다. 또한 부자에 대한 누진세(법인세, 백만장자 세금, 고소득자를 위한 새로운 소득세율)에 대한 우리의 요구는 탈성장에서 영감을 받은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에너지와 자원을 낭비하는 슈퍼부자들의 손에서 부를 빼내고 공공 서비스에 투자하는 것이 탄소 배출을 줄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물론, 탈성장 개념에 기반한 생태사회주의적 프로그램의 최고 요구 사항은 에너지 사용량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줄이고 재생가능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도록 경제의 주요 부분을 국유화하고 민주적인 공공 소유로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오직 전세계적으로 계획된 시스템에 기초해야만, 모든 사람들의 삶의 질에서 큰 도약을 보장하면서 에너지와 물질 사용의 전체적인 범위를 합리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기사 등록 2022.11.4) 

*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저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 후원 계좌: 우리은행 전지윤 1002 - 452 - 402383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행동합시다.

newactorg@gmail.com/ 010 - 8230 - 3097 / http://www.anotherworld.kr/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