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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혁신

자본주의 국가, 국가 형태, 신자유주의적 변형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2. 9. 2.

파나르 베디르하놀루Pınar Bedirhanoğlu

번역: 두견

자본주의 국가와 현대 국가의 형태, 신자유주의와 금융화에 의해 변형된 계급관계, 국가-시장-사회의 삼각관계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인터뷰이다. 한국의 구체적 상황에도 적용하고 해석할 여지가 많은 지적과 분석들을 제시하고 있다. 터키 출신의 좌파 학자인 파나르 베디르하놀루는 안보적 국가 기구의 신자유주의적 변형을 연구해 왔고, 마르크스주의 국가 이론, 금융화와 신자유주의 정책이 국가에 미친 영향 등 광범위한 연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 왔다. 2019~2020학년도 동안 요크대 정치학과 초빙교수로 연구를 수행하고 현재는 중동기술대학 국제관계학과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이 인터뷰에서 터키의 구체적 상황을 설명하고 분석하는 부분은 가능한 제외하고, 자본주의와 국가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내용을 위주로 번역했다.

출처: https://www.historicalmaterialism.org/interviews/neoliberalism-and-state

* 당신이 말하는 "현대적 국가 형태"의 개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마르크스주의 국가 이론의 틀 안에서 이야기한다면, 이 개념은 주로 자유주의적 존재론의 경계 안에 국한된 것을 넘어서는 분석을 제공하는가? 더욱이 오늘날의 국가에 대한 투쟁에서 "현대적 국가 형태"의 개념은 우리에게 어떤 전략적 중요성을 가질 수 있는가?

내가 말하는 '현대적 국가 형태'는 계급 중립적인 제도 속에서 스스로를 재생산하고 정기적 총선거를 통해서 대중 주권에 대한 주장을 충족시키려는 자본주의 국가의 의회적 형태이다. 나는, 역사적으로 유럽의 봉건군주제가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복잡하고 다층적인 계급투쟁과 국가간 투쟁을 통해 출현한 이 국가 형태에 대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충분히 논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한 가지 주목할만한 예외는 하이데 게르스텐베르거Heide Gerstenberger2007년 저서 <비인격적 권력: 부르주아 국가의 역사와 이론>이다. 게르스텐베르거는 마르크스주의 국가 이론의 틀 안에서 현대 부르주아 국가의 개념을 재고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이 특정한 국가 형태가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와 현대 부르주아 국가 형태는 필수 불가결한 쌍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 국가 이론에서 자본주의 국가와 현대 부르주아 국가의 개념은 종종 동의어로 사용된다. 이것은 아마도 매우 사변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러나 현대 국가 형태가 법 앞에 만인의 평등이라는 주장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서 법의 지배만을 신성시하는 영국 입헌군주제 전통의 사례에서만 정의되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기본적인 봉건정치 제도의 일부를 보존하거나 수정한 자본주의 국가의 형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세계에서 자본주의 국가의 보편화된 역사적 형태는, 유럽 자본주의의 장기적인 발전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모든 시민이 법 앞에 평등한 것으로 간주되고 선거의 방식을 통해 그것의 행정에 참여하도록 규정된 국가 모델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지금까지 정당하게도, 명백히 계급중립적 방식으로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계급적 내용을 드러내는 것을 정치적 목표로 여겼고, 국가와 자본이 상호 연결되는 매개를 확인하려고 시도했다. 나는 이 중요한 정치적 노력의 근본적인 결함은 계급적 기반과 역사적 분석 속에서 그것을 다루지 못함으로써 현대 부르주아 국가에 대한 분석을 베버주의적 이론에 맡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 부르주아국가 형태는 부르주아지 단독으로 만들어낸 국가 형태가 아니다. 그와 반대로 우리는 역사적 조사를 통해 현대 부르주아 국가가 19세기의 사회적 투쟁이 낳은 필요에 대한 부르주아 계급의 대응이며 그러한 투쟁들의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 혁명과 함께 처음 등장한 이 국가 형태는 매우 구체적인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다. 1815년 비엔나 협정의 본질적인 의도는 혁명 이후의 정치 및 계급 관계를 유럽 지배계급의 통제 하에 되돌리는 것이었음을 잊지 말자.

프랑스 혁명으로 촉발된 이 과정은 아직 강력한 시장 규율로 길들여지지 않은 상황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거리로 나서서 구체제에 반대하는 요구로 맞서던 하층 계급의 파괴적 분노에 대한 반응으로 형성되었다. 우리는 그 시대의 지배계급을 공개적으로 위협했던 무서운 파괴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러한 성난 대중이 그들을 강탈하려는 자본에 대항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 투쟁했던 역사적 시기에 근대적 국가 형태가 수립되었다. 이 국가 형태는 자본주의의 기능적 필요요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역사의 과정에서 투쟁을 통해 부수적으로 형성된 국가의 한 형태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배계급이 그들이 지배하려고 애쓰는 계급들에게, 법 앞에서만이라도 자발적으로 평등을 제공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프랑스 혁명의 자코뱅 시대부터 현재까지 현대 부르주아 국가 형태의 역사적 발전을 추적한다. 여기서 정치적 발전의 전 과정을 제대로 논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은 국가 간 관계, 계급 투쟁, 정치적 투쟁 등의 시행착오를 거쳐 결정된 오랜 과정이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이 논의에서 두 가지 중요한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첫째, 현대 부르주아 국가는 18세기와 19세기에 유럽을 특징짓는 강력한 사회적 투쟁에 대한 대응으로 등장했다. 둘째, 이 국가 형태의 보편화는 1945년 이후에 유럽 열강으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얻은 구식민지들에서 그것을 모델로 채택함으로써 가능했다.

이 역사적 독해는 부르주아지뿐만 아니라 세계의 노동 대중과 피착취 인민의 투쟁에 의해 근대적 국가 형태가 확립되었음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물론, 이 국가 형태는 또한 이러한 투쟁을 흡수하거나 또는 진정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던 민족주의와 얽힌 형태이기도 하다.

그러나 계급중립적 겉모습과 근대 부르주아 국가 형태의 계급적 내용 사이의 해소할 수 없는 긴장이 해방적 사회 투쟁을 위해 열어 놓은 비판적 공간은 오늘날 쉽게 버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세계 여러 나라에서 관찰되는 권위주의화의 과정이 이러한 국가 형태와 동일시되는 정치 제도를 표적으로 삼고 있는 오늘날에는 이것을 기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권위주의화의 과정은 1980년대 이후, 자본에 유리하도록 국가를 신자유주의적으로 변형시킨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날 심화되고 있는 현대적 의회주의 국가 관행에 대한 공격이 역사적 관점에서 자본에 대해 이미 노동의 힘이 극도로 약화된 시기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변형적 경향은 터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주된 비판의 대상이 되어온 근대 부르주아 국가의 기본 제도들이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파괴되고 있다.

노동이 현대 부르주아 국가에 새겨진 계급적 모순을 급진화하는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현대 국가 형태가 제공한 역사적 성과를 보존할 힘이 거의 없는 시대에, 새로운 친노동 국가의 발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 보인다.

국가의 형태가 역사적으로 계급투쟁에 의해 결정된다면, 오늘날 만들어지고 있는 형태는 노동의 형태라기보다는 자본의 도장을 찍을 가능성이 더 높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역사적 변화 과정에서 현대 부르주아 국가를 고찰하는 것은 국가를 둘러싼 정치적 투쟁에서 친노동 전략을 식별하는 새로운 비전을 제공할 수 있다.

* 당신은 현대 국가를 계급중립성을 제도적 형태에 새기고 그 과정을 통해서 보편화한 국가 형태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그 성격은 어떻게 변할까? 계급중립적인 형태가 돋보이는 현대적 국가 형태가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위협받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우선 계급중립적 국가 형태와 계급투쟁은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 변형, 경험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계급중립적 국가 형태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사이의 긴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다양한 추상 수준에서 검토해야 한다.

정의에 따르면, 자본주의 국가는 정치적 영역과 경제적 영역의 분리에 의해 규정되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속에서 스스로 재생산되는 국가이다. 자본주의 국가를 그러한 것으로 정의할 때 사이먼 클라크Simon Clarke는 실제로 이 국가의 제도적 내용이나 계급 중립성에 대해 어떤 것도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정의는 자본주의 국가가 생산의 자본주의적 관계, 즉 이러한 관계의 모든 모순 안에서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사회적 관계로서 등장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자본주의 국가가 역사적으로 계급투쟁을 통해 취해온 다양한 형태들은 서로 다른 제도적 구성으로 그것의 재생산을 가져온다.

자본주의 국가가 여러 나라의 역사적으로 특수한 계급적 동역학 내에서 지금까지 취한 다양한 정치적 형태는 이미 국가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논쟁에서 중요한 분석 대상이다. 현대 부르주아 국가는 또 다른 장기적인 역사적 계급 형태이며, 나는 이것을 이 논쟁에 포함시킬 것을 제안한다. 내 생각에는, 자본주의 국가의 장기적이고 일반화된 역사적 형태에 의해 그려지는 정치적 경계 내에서 다양한 나라의 서로 다른 국가 형태가 고려될 필요가 있다.

계급투쟁에 의해 결정된 제도적 형태로서의 터키의 현대 부르주아 국가의 발전은 사법적 부문에서의 변화를 추적함으로써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 [터키에서] 우리가 사법 분야에서 직면한 어려움은 대량 고문과 처형으로 악명 높은 1980년 쿠데타 기간 동안의 어려움을 능가한다는 사실이 종종 강조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고문이 자행되는 1980년 쿠데타와 같은 혹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계급적 중립을 주장하는 현대 부르주아 국가의 제도적 체제 내에서 당시에도 법원으로부터 공정한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법이 사유화된 현대 터키에서 급속히 사라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가능성이다.

이에 대한 반론, 즉 법의 지배가 자본의 필수품이라는 주장은 오늘날 점차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실제로, 특히 글로벌 자본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많은 문제는 오랫동안 국제법원에서 해결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법 앞의 평등이 터키의 개개인들에 대해 명백하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단계를 통과하고 있다. 우리는 이 상황이 합법화될 수 없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이것이 일시적인 기간일 뿐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현대 부르주아 역사적 형태의 맥락에서 가정하는 국가의 공적 성격과 법적 영역에서의 반영은 1980년대 이후 심각한 수정, 심지어 변형을 겪었다. 나는 많이 논의된 사유화나 민관협력을 넘어선 변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가 안보 기구들은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사유화되고 있다.

이러한 역동성은 자본 축적에 대한 안보 공간들의 개방을 의미할 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자본이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의 안전한 재생산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이 질문은 펀다 휘라귀Funda Hülagü와 카라르 돌렉Çağlar Dölek의 작업에서 광범위하게 논의되었으며, 나는 그들과 함께 현대 부르주아 국가에 대해 작업했다.

오늘날 경찰과 지역 권력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친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국가의 공공적 조직을 분명히 우회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가의 보안 구조들이 세계적 규모로 동시에 변형되고 있다. 당신의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을 하자면, 안보와 사법과 같은 분야에서 국가의 공적 기관 내에서 형성되는 계급중립적인 모습은 수세기 동안 지속된 과정의 산물이다.

게다가, 이 국가 형태는 또한 이 과정 내내 그들만의 정치를 만들었다. 따라서 이 형태가 하루아침에 쉽게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펀다 및 카라르와 함께 우리의 학문적 연구에서 우리는 현대 부르주아적 형태의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오늘날 계급투쟁의 차원에 초점을 맞추고 이러한 투쟁 내에서 발생하는 계급적 긴장과 모순에 주의를 기울인다.

나는 또한 계급중립적인 자본주의 국가의 현대 부르주아적 형태는 역사적이며 그것들 사이에 필연적인 중첩이 없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 국가 이론의 사각지대에 주목하고자 한다.

* 우리는, 자본주의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서로 다른 권력 집단의 동맹과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적 투쟁의 상태에 대한 반영이,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는가?

이것은 한편으로는 사실이다. 서로 다른 권력 동맹들의 투쟁, 심지어 국가를 사이에 두고 싸우는 노동 투쟁은 현대 부르주아 국가의 계급중립적인 모습을 재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투쟁은 또한 재생산의 조건들을 긴장시킬 수 있다.

결국 역사적으로 계급투쟁에 의해 결정된 자본주의 국가의 현대 부르주아적 형태는 계급투쟁을 통해 변화하고 또 변형될 수 있다. 이 형태의 민주주의적 가능성이 급진화될 수도 있고 이 형태의 민주주의적 요구들이 완전히 포기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은 국가 내에서 획득한 지위를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것은 또한 자유주의적 버전에서든 권위주의적 버전에서든 자본주의 국가의 현대 부르주아적 의회 형태를 당연시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정당하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자본주의 국가의 계급적 본질을 성공적으로 은폐해 온 현대 부르주아적 국가 형태가 그것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와 함께 소멸한다면 해방적 사회 투쟁을 위한 더 많은 공간을 열어주지 않을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할 때 고려해야 할 중요한 점에 주의를 기울이겠다. 자본주의는 계급 불평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인류 역사에서 아주 짧은 기간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이전에는 모든 계급의 적대감을 맨얼굴로 극도로 가혹하게 대면하는 사회 질서가 있었다.

착취의 대상은 알려져 있었고 폭력은 명백했다. 이것에 대한 반대가 평등에 대한 일반화된 요구로 발전한 것은 18세기에 이르러서였다. 그러므로 불평등의 노골적 표현이 좋은 결과를 낳고, 불평등 심화로 인한 위기에서 해방 투쟁이 일어나며, 더 평등한 체제가 확립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반면에 18세기 이전의 적나라한 계급 불평등이 공공연한 폭력과 종교적 억압을 통해 어떻게 관리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적 사례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본주의의 짧은 역사에서 민족국가 형태로서 현대 부르주아적 국가의 보편화도 매우 최근의 발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이에크Hayek나 뷰캐넌Buchanan과 같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그들이 민주주의에 대해서 드러내는 불만을 이런 문제의 연장선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이고 계급적인 맥락에서 볼 때 다수의 폭정에 대한 하이에크의 우려와 헌법에 의해 강화되지 않는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보다 위협할 것이라는 뷰캐넌의 경고 - 그리고 물론, 누가 이 헌법을 제정할 것인지에 대한 그의 의미심장한 침묵 - 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유일한 관심사가 1945년 이후의 복지국가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본펠트Bonefeld가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처럼 권위주의적 자유주의 국가에 대한 독일의 질서자유주의Ordoliberal의 열망은 이러한 맥락에서 재평가되어야 한다. 사실 신자유주의 시대의 금융화 과정은 하이에크, 뷰캐넌, 독일 질서자유주의자들이 제기한 이러한 우려에 효과적인 친자본주의적 해결책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자본의 자유라고 해석해야 하는 '개인의 자유', 국가가 위협하는 것을 막는 가장 근본적인 계급적 역학 중 하나가 금융화이다. 금융화는 어떤 자유를 제한되거나, 무시하거나, 심지어 침해하는 게 더 바람직한지에 대해서 그 자체의 언어로 조언함으로써, 국가가 다양한 조건들에서 발생하는 위기를 관리하는 데 있어서 창의적인 해법을 찾도록 자극한다.

자본이 늘 동경하던 '권위주의적 자유주의 국가'를 향한 추구가 신자유주의적 금융화로 인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국가가 어떻게 제도화될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실험은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에서 금융화 과정의 국제적 공통 압력에 의해 결정되는 조건들 속에서 수행된다. 뷰캐넌이 요구한 견고한 헌정체제는 자본의 관점에서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기사 등록 202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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