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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노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개발국가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3. 4. 26.

[러시아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와 통찰력을 보여 온 박노자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서 시작된 전쟁에 대해서 분석하고 전망하는 글들이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차이

이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곳은 보통 어디에 있는가요? 정답은 "가정집"입니다. 특히 살인, 강간, 성폭력 등 여러 중범죄들이 저질러지는 상황들을 보면 대다수 경우에는 "이미 아는 사이", 많은 경우에는 바로 ""에서 일어납니다. "가족"은 아주 단란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실상 폭력이 가장 일어나기 쉬운 곳이기도 하죠. 그리고 소송을 많이 맡아본 변호사 분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바대로, 가장 치열한 소송전은 대개 "친척" 사이에 일어나는 겁니다.

피는 물보다 짙다고 하지만, 또 그만큼은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피붙이 사이의 싸움 역시 가장 치열합니다. 하기사, 6.25와 지금까지 이어져온 남북한의 대립을 보면 아마도 이 부분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겁니다. 남북한만인가요? 저는 대만 사람들 중에서는 중국 치하에 사느니 이민이나 극단적인 경우에 죽음을 택하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게 봤습니다. "같은 중국인"이라 하지만, "중국인"이라는 동일한 범주에 귀속되는, 그러나 실제로 이미 너무나 이질화된 집단인 만큼 그 거부도 비상하지요.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들을 종종 "형제 민족"이라고 지칭합니다. 우크라이나인들의 약 80%가 러어 구사자들인데,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구사하는 러어는 원어민급이며 원어민들의 러어와 구분이 불가능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들은 (푸틴의 말과 달리) "같은 민족"은 절대 아닙니다. 서로 역사적 기원을 달리 하는 것이죠.

현재 우크라이나의 중핵은 리투아니아 대공국, 그리고 그 뒤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경계선 안에서 14-17세기에 형성됐으며, 그 구성원 중에는 일정한 자치권 등 "권리"를 보유하고 있었던 도시민과 무장하고 전투 능력이 구비된 소농인 카자크 등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회 구성은, 사실 일군만민 (一君萬民) 체제의 모스크바의 관료주의적인 중앙집권 왕권과 완전히 다르죠.

, 17세기 중후반부터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제국에의 편입이 시작되어, 사실 1991년까지 거의 300년 가까이 (서부 지역을 제외한) 다수의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들이 같은 정치적 공간에서 같이 살아온 겁니다. 그 사이에 특히 서부의 르비우 등 일부 도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우크라이나 도심 지역에서는 제국의 언어인 러어가 우크라이나어를 제쳐 "일상 언어"의 위치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1991년 이전의 기간 동안 언어, 문화적으로 상당한 "동화"가 이루어졌지만, 그렇다고 특히 세계관이나 정치 의식 차원에서는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 사이의 "차이"는 계속 확인돼 왔습니다. , 아무리 러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해도, 대다수의 우크라이나인들로서는 러시아라는 국가의 "신민"으로서 산다는 게 부자연스럽고 억압적일 뿐입니다.

한국인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한 서라벌/경주와 개성, 한양 본위의 "중심의 역사", 즉 중앙집권적 국가의 제도사, 정치사 위주의 역사인 것처럼, 러시아인들이 외우고 당연시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삼는 역사란 모스크바/페테르부르그 중심의 "국가사"입니다. 러시아인들에게 "가장 위대한 역사 인물"을 물으면 틀림 없이 "국가 지도자" (스탈린, 피터 1, 알렉산드르 네브스키 대공 등)나 국가가 인정한 "문호" (푸쉬킨)를 들 것입니다.

80-82% 정도 되는 현재 푸틴의 지지율 역시, 그가 중앙집권적인 전지전능한 "대국""재건"한 것과 직결돼 있습니다. 반대로 우크라이나인들은 - 아무리 러어를 잘 해도 - 이와 같은 러시아적인 대국의 신화에 대부분 무관심합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아는 우크라이나 역사란 국가가 아닌 "고향"의 역사, 그리고 타라스 세브첸코 같은 민족 시인 등의 국가 권력과 무관한 민족 독립 운동가들의 역사입니다.

러시아 사회나 개인 의식은 심하게 국가화돼 있지만, 우크라이나는 개인들과 개인 사이의 횡적 연결의 사회죠. 현재 러시아의 국가 수반이란 평생 보안 기관에서 국가에 복무해온 국가 공무원이라면, 우크라이나의 국가 수반은 중소 규모의 연예계 비즈니스멘 출신입니다 (거기에다 종족적 소수자 출신이죠). 두 사회 사이의 "차이"를 아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죠.

러시아인들의 대외관은 자기 중심적입니다. 대부분은 - 현재 러시아 정권과 같은 방식으로 - 러시아를 자기완결적, 자기중심적 "하나의 문명"이라고 생각하고, 서쪽의 브레스트부터 남쪽의 타슈켄트, 동쪽의 해삼위까지 과거의 "제국 영토"는 영구적으로 모스크바의 관리를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인들이 서방의 기술이나 중국의 경제력을 "이용"하는 데에 반대 없지만, 일단 그 이용의 목적은 모스크바 중심의 자기완결적 정치-문화 공간의 "위대한 굴기"입니다. 서방과 자신들을 어느 정도 동일시하는 약 15% 안팎의 자유주의자 (주로 대도시 중상층 이상) 이외에는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에게는 서방이란 이용 대상이 아니면 경쟁자, 아니면 적에 불과합니다.

러시아가 서방세계의 하위 파트너가 되는 순간 다수의 러시아인들의 정체성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미 14-17세기의 형성기에 서구 세계의 "주변부"로 살아본 우크라이나에서는, 다시 주변부가 되더라도 유럽에의 편입을 당연한 귀결로 생각하는 이들은 다수입니다.

우크라이나인들에게는 통치자 한 사람이 만백성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러시아식 제국은 "두려움"의 대상이고, 그들은 - 주변부 주민으로 전락되는 한이 있더라도 - 다원주의적이고 법치가 존재한다고 여기는 유럽을 훨씬 더 지향합니다. 그들이 목숨을 내놓더라도 다시 모스크바 제국의 신민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 시도는 지금 이처럼 치열하고 양보 없는 싸움이 된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어쩌면 "친척 민족"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겁니다. 한데, 친척 사이의 폭력이란 본래 "" 사이의 폭력 이상으로 무서운 것처럼, 스스로를 "본가"라고 생각하고 우크라이나를 저들 나라의 "방계"로 치부해 재정복하려는 러시아 국가와 군의 폭력이란 역시 상상 이상입니다. 러시아 점령 지구에서는 러시아 군 방첩부대에 의해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로 지목되는 주민들을 기다리는 건 고문실과 죽음이죠.

그래서 우크라이나인들은 바흐무트에서처럼 죽을 힘을 다해서 "필사적 저항"을 벌이는 겁니다. 이건 미국의 이라크 침략처럼 제국주의 전쟁인데, 미국의 목표가 이라크에서 괴뢰 정부를 세우고 떠나는 것이었다면 러시아의 목표는 우크라이나인들의 머리에서 별도의 민족 의식을 지우고 그들을 다시 "러시아 제국의 순량한 신민"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절대 원하지 않는 수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은 지금 저항과 전투에서의 전사를 택하고 있는 겁니다.

러시아는 왜 성공한 개발 국가가 되지 못하는가?

12년 전의 일입니다. 2011, 유럽의 한국학 학회 (AKSE) 역사상 최초로 그 격년 학술 대회를 모스크바에서 진행하게 됐습니다. 장소는 제가 한 때에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던 모스크바 국립대의 아시아 및 아프리카 연구부이었습니다. 그 연구부란 19세기의, 이미 많이 허름해진 건물이었습니다. 외면도 허름하지만, 그 안에서도 공간이 태부족했습니다. 한국이나 예컨대 중국의 대학마다 늘 보이는, 삐까뻔쩍하는 신축 건물이란 교정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 외에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게 차라리 더 많았습니다. 월급이 하도 박봉인지라 외국인 교원 역시 그다지 만나 볼 수 없었고, 한국에서 이미 흔해진 영문 학술지 같은 것도 발행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모스크바의 유서 깊은 학교의 이런 안타까운 사정을 목격하면서, 그 학회에 온 한국의 한 유명한 중진 연구자는 제게 물어봤습니다.

이미 중국보다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후진화된 러시아에서는, 1989-91년에 중국과 달리 당-국가를 그대로 보존하지 못해 초고속 개발의 기회를 놓친 데에 대해서 지식인들이 아쉬워하지 않느냐고, 라고 물어본 것이죠. 아마도 중국의 발전상을 본 뒤에 모스크바의 대학 세계를 보면 이런 질문이 절로 나오게 돼 있었을 겁니다.

물론, 중국이 러시아의 시니어 (상위) 파트너가 된 지금에 와서는, 1989-91년의 선택의 기로에서 러시아가 당-국가 모델을 과감히 버린 데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은, 러시아 안에서는 2011년보다 더 많죠. 이미 2011년에도 적지 않았지만요. 한데, 가령 러시아에서는 공산당 체제가 남았을 경우에도, 과연 러시아는 중국이나 그 전의 한국 내지 대만과 같은 "성공의 궤도"를 밟을 수 있었을까요? 저는, 어려웠으리라고 봅니다.

물론 동아시아 발전 국가들의 초고속 발전은, 공산당이나 한국과 같은, 고시 등으로 걸러지고 단련된, 자율성이 강한 관료 국가 시스템 등의 덕을 많이 본 것은 사살이고, 중국 공산당 관료나 한국의 관료 집단에 비해 고시가 아닌 정실, 인맥으로 선발되고 승진되는 러시아 관료들의 질이 형편 없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데, 동아시아의 초고속 발전을, 관료들만이 가져다준 게 아니었습니다. 이외에 3 가지 다른 요인들이 있었는데, 그 중의 그 어느 요인도 러시아에 해당 사항이 없었습니다:

외자: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 투자된 외자의 누적 총액은 무려 1400억 달러 정도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전세계 해외 투재 총액의 약 10%의 투자들이 중국을 향해 간 것이죠. 러시아로 1991년 이후에 흘러들어온 외자는 그 금액의 3분의 1에 불과한데다, 대부분은 매장 자원, 특히 석유와 천연가스 채굴 등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러시아 GDP26%나 제조업에 해당되고 그 종사자의 총수도 약 11백만 명에 달하지만, 그 쪽의 가장 큰 기업들은 여전히 소련 시대 때부터 존재해온 AvtoVAZ (자가용), KAMAZ (트럭), Sukhoi (전투기), Russian Helicopters (헬기) 등입니다.

일부 신기술도 도입됐지만, 절반 이상의 생산 기계, 라인들은 소련 시대 때에 만들어진 것이죠. 제조업의 생산 총액 역시 여전히 소련의 마지막 해인 1991년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부 시장을 위한 수출용 생산을 하려고 대대적인 외국 투자가 들어오거나, 한국의 1960-80년대처럼 외국 경화 차관 등을 관치금융 시스템을 통해 재벌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다면 한국이나 중국과 같은 발전의 궤도를 따라가기가 힘들죠. 그래서 공산당이 그 자리에 남았다면 러시아의 개발 속도는 중국을 따라가기 힘들었을 겁니다.

임금: 초고속 개발이 한참이었던 1980년 그 당시, 한국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약 미 120달러 정도이었습니다. 초고속 개발이 한참이었던 2000년 그 당시, 중국 노동자의 전국 평균 노임 역시 미 120불 정도로 집계됐습니다. 한데 같은 해에는 러시아에서는 숙련공의 평균 임금은 그것보다 약 40-50% 높았습니다. 저임금 노동이라는 게 마찬가지었지만, 중국만큼의 저임금은 아니었습니다.

거기에다 러시아에서는 고용주는 각종 사회 보험 (노후 연금 등)에 해당되는 세금을 부담해야 했지만, 중국에서나 한국에서는 초고속 개발 그 당시에는 전국민/인민적 사회 보험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외자는 러시아에 들어가도 제조업보다 마진이 컸던 석유나 천연가스, 자원 채굴, 소매업 등으로 주로 들어간 것이죠.

시장: 한국이나 중국은 애당초부터 수출 주도 개발을 지향했지만, 러시아 제조업 업자들에게는 수요의 수준이 비교적 높은 내수 시장이 있었습니다. 자가용이나 트럭, 철도차량, 헬기, 여객기 등 러시아의 전통적 제조업은, 일차적으로 러시아나 구소련의 시장 수요에 맞추어져 있으며, 무기 생산 이외에는 구소련 국경 밖에서의 경쟁 경험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이런 공업의 내수 지향적 구조는 19세기 이후부터 굳어져 온것으로, 중국이나 한국과 같은 수출 지향으로 짧은 시간 내에 바꾸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결국, 1989-91년 때의 선택과 무관하게, 아마도 러시아는 중국의 초고속 개발을 어차피 따라잡지 못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로는, 러시아의 차후 개발의 방향은, 수출 주도와 정반대의 방향, 즉 국가의 투자, 국영 기업 주도, 무기 생산과 내수 주도, 수출 대체 위주로 정해진 것입니다.

앞으로 러시아 개발의 목표는, 한국이나 중국과 같은 "세계의 공장"이라기보다는 기계 등에 대한 가급적인 자급자족의 달성, 그리고 일차적으로 무기 산업의 선진화 등일 겁니다. 이와 같은 제조업의 발전 궤도는, 또 역으로 생산될 무기를 사용할 '전쟁'의 가능성을 보다 많이 열어줄 것이죠. 앞으로 수십년간 러시아는 그다지 평화로운 상태가 아닐 것이라고, 유감스럽게도 내다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사 등록 202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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