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균
(주의: 이 글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사실 "브로커"와 "마이코의 행복한 밥상"으로 인해 고레에다 히로카즈에 대한 실망감이 매우 커진 상황이어서 "괴물"에 대한 기대치가 많이 낮았었다. 칸느에서 극본상을 받아도, 여러 평론가(특히, 이동진)의 극찬이 있었음에도 다소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괴물을 봤었다. 그렇게 실망한 만큼 "예전 고레에다 작품 텐션으로 돌아왔다."라고 박수 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2. 소통은 무엇이고 폭력은 무엇인지 그리고 괴물이라 불리는 악함은 무엇인지 영화 전체를 통틀어 내내 질문받는 느낌이었다. 스토리텔링 구성이 주요 인물의 관점(엄마 사오리, 선생님 호리, 아들 미나토)에 따라 같은 일이라도 서로 다르게 판단하거나 오해하고 이로 인해 서로 갈등하거나 상처받거나 하는 상황이 무겁게 느껴졌다.
특히 1, 2장의 진실공방 이후 미나토와 요리 사이의 진짜 진실이 펼쳐지는 3장과의 갭에서 그 먹먹함은 커졌다. 마치 1, 2장에서 진실찾기를 통해 극 중에서 상대방과 갈등하는 어른들이나 진짜 진실이 뭐고 진짜 괴물이 누구인지 흥미진진하게 바라봤던 관객들 모두에게 3장의 진실은 그 어느 하나도 진짜 상처 받고 있는 두 아이에게 귀 기울여 주지 않는다는 엄숙한 팩트 폭행을 안겨 준 영화였다.
3. 우리가 일상을 "평범하게" 살아가자는 것, "보통처럼" 살아가자고 말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웃으면서 따귀를 맞는 듯한" 선량한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상당한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진실 또한 영화에서 느껴진다. 엄마 사오리는 아들에게 "결혼해서 보통의 가정을 가지길 바란다."고 말하고, 호리 선생님은 "남자답지 않게 그게 뭐냐?" "남자답게 사과하라."는 말을 일상에서 계속 얘기한다.
이런 상황은 가장 가까이 있는 엄마는 아들의 고민과 슬픔을 알지 못하게 만들고, 집이든 학교든 "여자같다며" 남자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요리가 담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지 않는 계기가 된다. 그 불통은 저마다의 오해를 안고 서로 반목하고 상처를 준다. 미나토는 요리와의 관계를 통한 행복이 밝혀지면 그 행복이 사라질까봐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 속에 어른들은 우왕좌왕한다. 이런 총체적인 상황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 사람들이 모두 괴물처럼 되는 파국으로 퍼져 나간다 생각한다.
4. 결국 이 영화는 "괴물이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 사실은 "어떻게 괴물이 만들어지는가?"의 의미임을 알려 준다. 다른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돼지 뇌를 가졌다'고 혐오 받고 엄마가 떠난 것마저 아들 탓을 하며 가스라이팅을 하는 요리의 아버지를 통해, 여자처럼 말한다는 이유로 몰래카메라를 빙자한 괴롭힘을 저지르는 남자 반친구를 통해 요리는 괴물이 된다.
일상적인 남자다움과 보통의 사랑을 강요하는 사회가 사실은 자신이 괴물인 것을 가린 채 그저 다른 사람을 괴물로 모는 사회에서 누구나 요리처럼 괴물로 취급받고 고독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괴로웠다. "여자같다"며 저학년 땐 남자 동창들과 담임에게 괴물 취급 받았던 나의 저학년, "더럽다." "이상한 애다"라며 고학년 땐 여자 동창들에게 집단 왕따 대상이 됐던 나의 고학년이 생각나서 괴로웠고, "삐뚤어진 강자"라고 괴물 취급받으며 침묵시위마저 온갖 폭언과 폭력적 수단을 동원해 역사에서 쫓겨나는 한국 사회 "주요 괴물 단체"가 된 전장연이 생각나서 괴로웠다.
5. 그래서 미나토와 요리가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아무도 찾지 않는 "폐터널 넘어 폐전차"인 점은 그 두 아이의 행복함이 보여서 기쁘면서도, 결국 숨지 않으면 이 기쁨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 슬프게 다가왔다. 그래서 태풍이 몰아치던 때 둘이 패전차로 달려가서 출발을 외치는 것도 요리가 말한 "탄생의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말대로 이 모든 차별과 배제의 사회가 다 뒤엎어지길 바라는 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6. 맨 마지막에 미나토와 요리가 폐전차를 나와 어둡고 좁고 어찌 보면 더러운 하수도를 지나 햇볕이 쨍쨍 찌는 수풀을 소리지르며 평상시엔 닫혀 있었지만, 이제는 활짝 열려있는 폐철교를 향해 달려가는 장면은 2023년 영화 중 가장 강렬한 라스트 씬이 될 것 같다.
영화를 봤을 때는 결국 두 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할 수록 이것은 환상도 아니고 천국도 아니고 미나토가 말한 것처럼 전혀 우리와 우리 주변의 환경은 변함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 있는 그대로 살아가겠다는 현실의 상황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어 간다. (고레에다 감독도 두 아이가 이후 죽은 꿈을 꿨다는 아역의 말에 "그 결말은 그렇지 않고, 우리는 있는 그대로 살면 된다는 긍정하는 의미의 결말이다."라고 설명했다.)
첫 부분은 사람의 방화로 생긴 불의 재난, 절정 부분은 자연이 만들어내는 태풍이란 물의 재난의 상황이고 그 사이를 비집고 사람 사이에서 겪는 차별과 배제, 괴물처럼 취급받는 혐오의 일상 재난 상황을 겪지만, 그럼에도 두 아이 존재 그대로 살아남길 바라는 건지도 모른다.
다만, 이런 결말은 여전히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고 둘이 뛰쳐나가는 곳 너머 현실은 여전히 두사람에게 악랄한 괴물 취급을 하며 힘겹게 할 것이고 두 사람을 계속 소외시킬 거란 슬픈 메시지도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마냥 절망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마냥 희망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7. 그렇다면 이제 남는 몫은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 하나하나의 몫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사회 곳곳에서 괴물 취급 받지만 사실은 가장 소외받고 삶과 일상을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 하고 연대하는 일, 단순히 그 사람들을 외롭게 하고 그들만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가장 괴물같은 이 사회와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활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8. 수풀을 뛰쳐나가 철다리를 넘어 나아간 두 아이가 부디 행복하길 바란다. 그리고 실제로 행복해 질 수 있도록 이 괴물의 사회를 함께 박살내자.
(기사 등록 20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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