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 제무엘Zara Jemuel
유럽와 아메리카에서 식민지화의 역사를 통해서 인종과 계급의 기원을 분석하는 이 글의 필자인 자라 제뮤엘은 보건의료와 공공부문에서 조직 활동을 해온 미국의 노동운동가이다.(번역: 두 견)
출처: https://links.org.au/colonization-and-surplus-origins-race-and-class
"억압은 착취로부터 논리적으로 따르게 되어 후자를 보장한다." — 월터 로드니Walter Rodney, 유럽이 아프리카를 어떻게 저개발하였는가
<점령의 의식>에서 패트리샤 시드Patricia Seed는 다양한 식민지배 국가들이 원주민들에게 어떻게 그들 자신을 소개했는지를 묘사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공식적인 선언문을 큰 소리로 읽음으로써 전쟁을 선포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요란하게 염색된 보석이 박힌 옷을 화려하게 차려입은 정착민들과 정교한 행렬을 벌였다. 서열 순서대로 걸으면서, 그들은 커다란 나무 십자가를 들고 다니면서 원주민들에게 신과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라고 요구했다.
영국인들은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며, 벽과 담장, 울타리 같은 물리적 장벽을 세웠다. 또한 그들은 종종 강제와 강압을 통해서 토지에 많은 사람들을 유입했다. 대부분의 초기 영국 정착민들은 계약에 서명한 노예와 죄수들이었고,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그들은 1000년 또는 그 이상 된 곳에서, 고향의 마을과 다르지 않게 살았다. 영국의 엘리트들은 공동 농경사회라는 형태의 사회생활을 통해 문화적 헤게모니를 확립함으로써 북미 해안에서 성공적으로 자신들의 사회를 재생산했다.
다른 유럽인들처럼 돌기둥을 심는 것은 주로 다른 식민지 개척자들과 더 작게는 원주민들에게 법적으로 이 땅이 이 군주국이나 저 군주국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표시였다. 그러나 영국은 대륙을 진정으로 식민지로 만든 최초의 국가였다. 다른 나라들은 무역을 하거나 전쟁을 벌이려고 했지만 영국은 빼앗은 땅에 뿌리를 내렸다. 이러한 이유로 영국은 수 세기 동안 북미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주의 강국이 되었다.
예를 들어 브라질의 투피족 중에서 개종자를 발견했지만, 프랑스와 스페인이 배운 것처럼 종교만으로는 문화적 헤게모니를 얻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은 토지를 점령하고 보유했다. 그들은 농업 생산수단의 첫 번째 주인이 되었다. 봉건제도를 통해 유럽에서 오래된 노예 사회의 마지막 잔재가 사라지고 있었던 가운데, 식민지에서는 농업 생산물의 시장 가치 상승에 힘입어 새로운 형태가 등장하고 있었다.
초기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항해는 무역과 외교를 목적으로 경쟁 군주국들과 동맹을 맺기 위한 것이었지만, 식민지의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주식회사를 위한 이윤 추구와 함께 노동력의 필요성도 커졌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노예제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백인 우월주의적인 거짓말을 먼저 시작했다. 아프리카 사회에서 노예가 된다는 것은 보통 전쟁에서 포로가 된 것을 의미하며 유전되는 것이 아니었다.
유럽인들은 인간 사냥 방법을 도입하여 산업적 규모로 발전시켰다. 대서양 무역으로 알려진 유럽인들의 노예에 대한 게걸스러운 탐욕의 배후에는 설탕, 담배, 면화가 있었다. 토지와 노동력은 이전의 모든 생산 방식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부의 원천이었다.
토지 절도와 노동력 착취는 많은 인류 사회가 정착형 농경 사회가 되면서 잉여 생산이 출현한 약 1만 년 전부터 인간 억압의 근원이기도 했다. 노예와 여성의 비하와 함께 정신적 지도자와 전사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계급과 가부장제가 거의 동시에 등장했다. 인종은 1500년경 노예화된 아프리카인들을 정복하기 위한 명분으로 등장했으며 베이컨의 반란(1676~1677) 이후 법적으로 성문화되었다.
월터 로드니Walter Rodney는 유럽인들이 인종주의가 아니라 경제적 이유, 즉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아프리카인을 노예로 삼았다고 말한다. 원주민이 몰살된 상황에서 식민지 개척자들은 정복한 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다. 인종과 백인 우월주의는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와 동의어이다. 초기 산업화와 금융화를 이끈 동산 노예제chattel slavery라는 인종적 질서를 뒷받침하는 백인 우월주의가 없었다면 자본주의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계급이 인종보다 먼저 존재했다고 말하는 것은 인류가 존재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둘 다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또한 인종을 계급과 비교하여 타임라인에 넣는 것은 두 가지 모두의 역사적 중요성을 전혀 측정하지 못한다. 계급은 마치 불이 태양보다 먼저 나타난 것처럼 인종보다 먼저 있었다.
매닝 매러블Manning Marable은 계급과 마찬가지로 인종도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사회 집단 간의 불평등한 관계이며, 역사적으로도 구체적"이라고 설명한다. 인종은 자연스럽지도, 내재적이지도 않으며, 이를 강제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노력에서 알 수 있듯이 불가피하지도 않다. 시대를 초월하지도 않는다. 이 차원에서는 시작이 있는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계급은 잉여 또는 생산에 대한 개인의 근접성을 나타내는 스펙트럼이다. 둘 중 하나에 대한 근접성은 상대적 계급 위치를 측정한다. 소수의 엘리트는 스펙트럼에서 잉여의 끝을 소유하고 노동자는 생산의 끝으로 내몰린다. 노동의 사회적 분업으로서 인종에 따라서 흑인은 잉여의 끝에서 멀어지고 백인은 가까워지지만, 그들 대부분은 생산의 끝에 위치한다. 잉여의 끝에서 생산의 끝으로 갈수록 법적, 정치적, 사회적 이점은 감소하지만 백인의 경우 어느 정도의 특권 등이 관계없이 지속된다.
한편, 잉여의 끝에 가까워진다고 해서 흑인 중간 계층이 다양한 사회적 불이익과 차별에서 보호받지는 못한다. 노동계급 백인은 여전히 잉여의 끝에 뿌리를 두면서 특권을 누리고 있다. 중상류층과 중산층 흑인은 여전히 생산 쪽에 뿌리를 두면서 억압을 받고 있다. 흑인이 경제적 엘리트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반드시 인종적 진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흑인 억만장자가 8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백인 우월주의의 반영이다.
잉여 또는 생산에 대한 사람의 근접성은 인종적으로 병치된 것이다. 수세기에 걸친 노예제도의 폐해는 현재의 미국 상황으로 이어졌다. 동산 노예제는 노동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 절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를 옹호하고 있지만 백인 노동자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흑인과 백인 노동자의 착취의 근원은 동일하지만, 백인 노동자에게는 역으로, 그리고 기만적으로도 특권의 근원이기도 하다.
인종은 사회적으로 정의되고, 정치적으로 강제되며, 경제적으로 실행된다. 흑인 미국인 및 기타 인종화된 집단은 "권력의 지렛대로부터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매러블이 지적하듯이 그들의 "상품 생산 능력"은 "주로 비정상적으로 낮은 임금을 통해 체계적으로 착취"당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흑인들이 "주요 생산 수단에 대한 소유권을 부정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종적인 부의 격차는 자원 접근성의 역사적 불균형이다.
매러블은 "인종적 의미에서 '백인'이 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신용, 자본, 양질의 주택, 의료, 정치적 영향력, 형사 사법 시스템에서의 공평한 대우에 대한 접근성 측면에서 백인이 아닌 사람들보다 삶의 기회가 극적으로 향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인종의 억압적인 정치, 사회, 경제적 조건은 계급의 조건이기도 하며, 지배 계급의 사회경제적 기반인 백인 자본에 대한 권력의 불균형에 해당한다. 그러나 인종에 따라 자원에 대한 접근성은 잉여 생산 스펙트럼의 한쪽 끝 또는 다른 쪽 끝을 반영한다. 백인이라는 것은 소유권자가 축적한 잉여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흑인이라는 것은 박탈과 노예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종화는 자본주의의 핵심에서 벌어지는 패권적 과정이다. 유럽의 엘리트들은 아프리카를 침략하기 훨씬 전부터 그들 대륙의 이웃 국가들을 침탈하면서 문화적 우월성을 개념화했다. 반유대인 대학살, 무슬림에 대한 십자군 전쟁, 영국의 아일랜드 정복은 모두 자본주의의 인종적 핵심을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스페인의 레콘키스타Reconquista(이베리아반도에서 가톨릭 왕국들이 이슬람 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벌인 활동)로 알려진 13세기의 범유럽 강도질은 주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추방하기 위해 무슬림과 유대인을 표적으로 삼았다. 이는 부분적으로 인종이라는 정치적 구성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사회적, 경제적 요소는 그 후로 수백 년 동안 완전히 통합되지 못했다.
즉, 유럽에서 반유대주의적 폭력은 레콘키스타보다 몇 세기나 앞서 있었고 종종 경제적인 동기에 의해 발생했다. 이전의 십자군 전쟁과 마찬가지로 레콘키스타도 재산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십자군은 백인 기독교 우월주의에 근거하여 땅을 차지할 권리를 주장했다.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침공에 곧바로 이어서 스페인이 피비린내를 풍기며 서반구에 진출하면서 인종은 전 세계를 지배하는 힘이 되었다. 재산, 계급, 성별에 대한 유럽의 관념은 피정복자들에게 그대로 적용되었다. 유럽의 식민지 개척자들은 식민지 노동에 대한 독점적 우월성의 표시로 백인성을 발명했다.
오늘날 사업체를 소유하면 계급적 지위가 상승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는 생산적 자산인 토지를 소유하면 식민지 시대의 경제적 지위가 백인으로 상승했다. 지금의 아이티에서 유럽인과 아프리카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은 토지를 구입하면 백인으로서 사회적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누군가의 재산인 노예로 살다가 재산을 소유하거나 노예였던 부모를 둔 경우, 흑인 노예에서 백인 소유주가 될 수 있었다. 식민지 착취자와 피착취자의 관계는 영구적인 착색이었지만, 자본을 통해 주기적으로 회피할 수 있었다.
유럽인들이 지배하는 국제 약탈 시장은 더욱 경쟁적이고 수익성이 높으며 노동 집약적이었다. 유럽인들이 정복한 땅에서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광물과 농업적 부를 발견하자, 납치된 아프리카인들은 제국의 노동력이 되어 그 부를 추출했다. 동산 노예제는 국내의 이윤을 위해 해외 자원을 착취하는 식민지 시대의 사업이었다.
사장이 노동력뿐만 아니라 노동자 자체를 살 수 있는 전문화된 노동 시장이 발달하면서 착취가 엄청나게 가속화되었다. 설탕, 면화, 담배는 노예 노동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상품이 되었다. 임금, 휴식,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지 않고 노동력을 노예로 만들면 하루의 노동으로 생산된 모든 가치가 노예 소유주에게 직접 돌아갈 수 있었다.
플랜테이션은 자유 노동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혹독한 환경에서도 수출 규모의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노예로 부려진 아프리카인이 열사병으로 쓰러져도 주인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새 노예를 구입하는 데 따른 재정적 손실은 하루 노동으로 충분히 만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농장주들은 생산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예를 육체적, 정신적으로 잔인하게 학대했고, 가난한 백인과 중위층 백인을 가장 잔혹한 노동에 동원했다. 감독관들은 생산 현장에서 극도로 착취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노예 순찰대는 주인의 제국을 순찰하며 농장주의 이익을 위해 백인 지배를 시행했다.
노예들은 노동의 결실에 대한 권리가 없었다. 노동 조건에 대해 교섭할 권리도 없었다. 주인에게서 공정하게 대우받거나 존중받을 권리도 없었다. 직장을 선택할 권리도 없었다. 양질의 주택, 영양가 있는 음식, 깨끗한 물을 누릴 권리가 없었다. 표현의 자유나 공적 업무에 대해 발언할 권리가 없었다. 결정할 권리가 없었다.
주인의 조건을 벗어나서는 생존할 권리가 없었다. 미국의 흑인들은 300년 이상 합법적인 비인간화에 따른 100%의 착취율 아래서 땀과 피를 흘려왔다. 현재 미국 흑인들은 백인보다 연방 빈곤선 아래로 떨어질 확률이 2배 높고, 주택을 소유할 가능성은 30% 낮으며, 평균적으로 연간 소득이 30% 적다.
식민주의는 유럽인을 정점으로 하는 인종적 노동계급에 기반한 전 세계적인 착취 체제였다. 식민지 생산 방식은 이를 기반으로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발전했다. 식민주의는 자본주의가 공고히 한 사회적으로 구성된 분업의 요소들을 하나로 묶었다. 자본주의의 백인 우월주의적 뿌리는 식민지배의 기원만큼이나 깊다.
식민지 시대부터 인종은 젠더와 함께 노동의 계층화를 공동으로 규정해 왔다. 식민지 시대의 노동의 인종화는 봉건제를 자본주의로 전환시키는 매개체였다. 식민주의의 인종적 노동의 계층 구조는 이제 자본주의적 축적에 기여하고 있다.
제국의 확장 과정에서 사회 통제 시스템은 성장했고, 민간 부문 엘리트들은 자본주의적 규모로 생산을 늘리는 데 필요한 토지와 원자재를 장악했다. 수 세기에 걸친 원시적 축적 과정이 오늘날 자본가들의 초기 재산을 모았다. 정착민 식민주의는 미국을 설립한 원시적 축적 과정이다. 유럽인들은 대량 학살을 통해 원주민의 토지를 빼앗고, 자결권을 박탈하고, 자원을 강탈했다.
그 피비린내 나는 개척은 노예를 기반으로 한 농업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산업은 광산, 인프라, 상업 시장과 함께 서부를 초토화했다. 기계화된 농업 생산은 산업 착취와 봉건적 노예제 사이의 병든 공생 관계를 형성했다. 토지와 노동력의 절도는 지배 계급이 뒤틀린 미국 왕국을 건설하는 데 필요한 벽돌을 공급했다.
노예제도는 미국 남부에서 영구적인 토양을 찾았다. 남부의 노예적 상태는 400년 동안 미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모태가 되었다. 흑인은 묶여있지만, 백인은 자유를 누리는 부조리한 미국의 노동 상황은 1965년까지 다인종 다수로서의 집단적 권력 행사가 잠시 중단되고 끊임없이 후퇴하는 것을 전제로 했다.
노예 노동력은 대량 생산을 위해 공장에서 준비된 상품을 북쪽으로 공급했다. 강도 남작들은 이윤을 투자하여 산업뿐만 아니라 금융의 주인이 되어 새로운 제국 확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미국 자본가들은 전 세계에 눈을 돌리기 전에 미국의 지배자로 자리 잡았다.
기존 군주제가 꿈꿔왔던 것 이상의 과두 정치인으로 성장한 이들은 새로운 유형의 지배 계급이 되었고, 자본의 법령에 의해 왕족 지위를 부여받았다. 오늘날 그들은 민간 부문의 독재자들로 구성된 권위주의적 파벌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선거 민주주의를 양보했지만 전제주의를 선호한다. 왕들이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이유는 그들이 기업 권력의 고삐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 등록 202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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