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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혁신

6차 정치혁신 세미나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5. 1. 17.

이상수


[이 글은 닐 데이비슨의 ‘영국의 신자유주의 시대: 신자유주의의 역사적 전개와 오늘날의 전망’과 이 글에 대한 반론인 조셉 추나라의 ‘신자유주의와 영국의 노동계급’을 읽고 토론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발제와 제기된 논점을 중심으로 정리하였고, 발제자의 생각 위주로 정리되었다는 한계가 있다.]


닐 데이비슨은 이 글에서 IST가 신자유주의가 가져 온 영향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과소평가해 왔다는 자신의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금융화와 부채문제로 설명하는 입장은 거부해야 하지만, ‘우리가 맞서 싸워야하는 변화된 환경’에 대해서는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신자유주의의 토대가 되었던 세계화의 진전과 영국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었던 신자유주의의 구체적 전개 과정을 설명한 후, 신자유주의의 대차대조표를 보여준다.


자본주의가 불황을 극복하는 가장 주된 메카니즘은 자본 파괴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 자본 파괴가 호황을 만들만큼 충분치 못해 4가지 다른 요소가 중요해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첫째는 착취율 증대인데, 미국처럼 실질임금 하락이 주된 요소일수도 영국처럼 생산성 증대가 핵심일수도 있다. 두 번째는 저임금 효과를 상쇄하여 소비수준을 유지하게 하고 민영화로 높아진 의료/등록금/주택 비용을 감당할 수 있게 하는 소비자 부채의 급증이다. 세 번째는 민영화로 대표되는 ‘약탈에 의한 축적’ 과정이다. 네 번째는 투자의 저하로 인한 금융의 활성화이다.


또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그렇게 강력하게 추진된 요인은 이윤율 회복보다 훨씬 두드러진 ‘부의 이전’ 효과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가 자본주의의 위기를 구하는 데는 덜 효과적이었을지라도, 지배계급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에는 매우 효과적이었다는 것이다.


대안으로 세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 째는 국가의 여러 층위의 기관들에서 벌어지는 억압에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는 노동당과 사회당, 사민당 같은 전통적인 좌파정당들의 우경화로 생긴 왼 쪽 공백을 메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조직률이 매우 낮은 사적 부문에서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조셉 추나라는 신자유주의와 관련된 몇 가지 논의들에 대한 기존의 SWP의 견해를 되풀이한다. 신자유주의를 자본주의의 한 유형으로 보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는 점과 제조업의 쇠퇴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증가한 것의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임을 강조한다. 노동의 불안정성이 증가했다는 주장의 반대근거들이 많다며, 이런 주장이 노동계급의 자신감을 떨어뜨릴 뿐이라고 지적한다.


먼저 닐 데이비슨이 제시하는 대안이 토론되었다. 그의 첫 번째 대안은 신자유주의 시대 국가가 감시와 억압 기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누가 선출되는지와 상관없이 이러한 기능이 유지될 수 있도록 국가는 하급 행정단위로 이런 기능을 이양해왔다며, 이런 일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전국적 쟁점 외의 지역적 쟁점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준비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대체로 영국적 현실의 과도한 일반화이거나 적어도 한국에 바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이 토론되었다.


두 번째 대안은 우경화한 사민주의 정당 왼쪽에 정치적 대안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공감이 컸다. 집권한 사민주의 정당이 존재하는 유럽과 남미, 남아프리카 공화국에까지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과제라 할 수 있고, 한국에서는 민주당 왼쪽의 진보정당 건설 과제로 볼 수 있겠다. 진보정당의 사분오열이 노동계급의 자신감을 깍아내리고 저항을 효과적으로 건설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이 부분에 대한 공백이 지배계급의 공세를 막는데 큰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대안에 대해서 토론이 길었는데, 공공부문보다 사적부문을 강조한 것이 SWP의 노동정책에 대한 불필요한 반대편 강조가 아닌가하는 지적이 있었다. SWP의 경우, 최근에 증가하는 서비스 부문에서는 조직율이 낮고, 기존의 조직된 노동부문에서 제조업은 산업자체가 축소되어 노조조직도 큰 타격을 받은 반면 공공부문은 조직적으로 거의 타격을 받지 않았다는 점과 정부의 긴축정책이 주로 공공부문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


그러나, 굳이 공공과 사적 부문으로 구분하지 않는다면 최근의 증가하는 불안정 노동에서의 조직화 필요성을 강조한 것에서는 공감하는 의견이 컸다. 30년대 영국과 미국의 공산당이 저임금과 안정된 노동조건에서 배제된 부문의 불만을 잘 조직하며 성공적으로 투쟁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었는데, 최근 몇 년의 한국 노동운동 상황을 보면 이 점은 더욱 분명해 보인다.


제조업 고용의 감소에 대해서도 토론이 있었다. 제조업 고용의 감소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높아짐에 따른 것임은 분명히 가장 주된 요인이지만, 신자유주의의 과격한 정책을 추진하던 국가가 이를 막는 노동계급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의도적인 개입이 있었음을 함께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 토론되었다. 고실업을 방기했던 국가의 정책이 주효했고, 이후에도 노조의 조직력이 강한 지역을 탈피해 새로운 지역에 산업벨트를 구축하기도 했다.


영국 탄광노조의 패배의 교훈으로 ‘노조 관료주의’를 꼽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가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노조관료주의의 문제는 늘 있는 것이라면, 왜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동계급이 노조관료를 넘어서 나아가지 못했는가라고 물어야 할 것이다. 노동계급의 자신감을 갉아먹는 실업율의 증가, 경쟁의 격화와 노동의 분절 및 원자화, 개인부채의 증가 등의 문제에 대한 저항을 건설할 필요가 있음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노동의 불안정성 증대를 부정하는 추나라의 주장에 대해서는 대부분 반대의견이었다. 추나라가 제시한 근거인 2002년 이전의 장기근속자 비중이 근거로 부적절하다는 점과 함께 훨씬 더 풍부한 반대근거가 많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특히 엄청난 규모의 중국의 농민공이 증가해 온 최근의 현상을 볼 때 전세계적인 불안정 노동의 증대는 무시할 수 없다. 현실에서 불안정 노동이 증대하는지 아닌지가 노동계급의 자신감을 좌우하지, 불안정노동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고 노동계급의 자신감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IMF 이후 한국에서 정규직이 하던 일을 비정규 노동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압축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과, 이러한 과정이 역전된 적이 없고 이제는 어느 정도 안착되었다는 점을 봐야한다. 이렇게 비정규직화가 급진전된 부문에서 ‘노동의 분절’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 노동운동의 약점으로 작용해왔다는 점이 토론되었다.


국가의 역할이 축소되지 않았다는 SWP의 주장에 대한 닐 데이비슨의 비판적 의견에 공감하는 의견이 많았다.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여 억압과 통제를 하는 국가의 역할은 전혀 축소되지 않고 강화되었지만, 완전고용과 복지를 보장하던 국가의 사회복지적 측면이 대폭 축소된 면을 함께 말해야 한다는 점이 토론되었다. 최근 OECD 자료에서도 GDP대비 정부지출 이 40%대에서 30%대까지 계속 감소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SWP가 국가의 역할이 확대되었다고 일반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닐 데이비슨이 신자유주의의 직접적 토대로 꼽는 기업규모의 증가와 세계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자국 자본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노력은 바로 20세기 전후 제국주의 시대를 열었던 요인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주요 제국주의 국가들은 예전처럼 직접적으로 식민지를 건설하여 착취와 수탈을 행하지는 않지만, 자국 자본이 제 3세계에서 효과적으로 착취와 수탈을 할 수 있도록 외채와 국제기구를 활용해왔다. 이런 결과로 선진국과 제 3세계간의 격차가 벌어지기도 했다는 점에서 하비가 지적하는 ‘약탈에 의한 축적’과정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이외에 추나라의 데이비슨 비판이 정확하지 않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포드주의와 포스트 포드주의 같은 데이비슨이 사용하지도 않은 사례를 들어 자본주의 내 시기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식의 비판은 엇나간 비판이다. 실제로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변화를 들어 레닌과 부하린은 제국주의라는 말로 당시의 자본주의를 묘사했고, SWP도 냉전 시기를 기존의 제국주의 시대와 구분하여 설명해왔다. 전후 호황이 종식된 후 시작된 시기를 신자유주의로 묘사하는 것은 변화된 현실을 설명하고 대응하기 위해 효과적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신자유주의 시기에 있었던 노동운동의 손실과 불안정 노동의 증대를 설명하는 것이 노동계급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다는 비판도 동의할 수 없다. 생산에서 차지하는 노동계급의 중요성과 노동계급이 세상을 바꿀 힘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닐 데이비슨의 주장을 곡해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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