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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노자] 한국의 강경우파 정권, 무능과 부패의 계보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4. 12. 10.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윤석열씨 탄핵 표결을 기다리고 있으면서, 저는 한국이 최근 30년간 걸어온 역사를 생각해 봅니다. 그 동안 우리는 강경우파/극우 정권을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4번 경험했습니다. 윤석열 정권의 몰락 과정을 우리가 지금 지켜보고 있는데,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여태까지는 "좋게" 끝난 강경우파/극우 정권은 민주화 이후의 대한민국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윤은 좀 심한 편이긴 하지만, 유일한 건 결코 아닙니다. 차라리 모종의 패턴에 거의 그대로 맞는 것입니다.

경제에 대한 기본 지식도 없으며 부자나라 클럽인 OECD 가입하기 위해 금융 규제를 푼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는지 전혀 이해를 못했던 김영삼의 각종 "세계화 정책"이 외환 위기 사태를 불러온 측면은 컸습니다. 아마도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은 궁극적으로 불가피했을 것이지만, 김영삼의 극적인 무능 덕분에(?) 이 전환은 극적인 외환 위기, 대량 정리 해고 등 엄청나게 잔혹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김영삼 정권 말기에는 그의 아들 김현철의 비리 때문에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던 김영삼의 그 담화가 라디오에서 나왔을 때에 제가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어딜 가고 있었습니다. 김영삼의 담화를 들었던 기사님은 ", 이것도 어른이냐? 이게 대통령 맞아?"라는 짤막한 평을 내린 게 지금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이게 최연소 국회의원 출신의 대통령에 대한 민심의 판결이었습니다.

그다음에 이명박 정권의 시절을 상기해봅시다. 그가 결국 350억원대의 다스 자금 횡령과 110억원대 뇌물수수 등 혐의로 기소됐다는 사실을 다들 기억하시죠? 도둑질은 기록적이었지만, 도둑질 이외에는 이명박 정권 시절에 이야기할 만한 "실적"이란 있기나 했나요? 4대강 죽이기 등 반환경적인 토건족 배불리기 프로젝트 말고 기억나는 게 별로 없습니다. 거기에다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대북 관계의 악화로 연평도 포격 등 노무현 정권 때에 없었던 남북 무장 충돌 사건들까지 그 때 터진 겁니다.

그 다음 박근혜 시절을 생각해도 "업적" 내지 "실적"을 이야기하기가 힘듭니다. GDP대비 복지지출비율은 그 때에 약 1% 정도로, 소폭으로 늘어나긴 했지만, 그건 고령화 등의 상황에서는 대통령의 성향과 무관하게 불가피한 조치였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세월호 사건 때의 태도 등 극단적 인명 경시와 무능 등이 가장 잘 기억됩니다. 박근혜는 그나마 처음에는 약간 균형 잡힌 대외 정책을 시도했으나, 윤 정권 때에는 그것마자도 버려 극단적 편향 외교로 한국이 처한 외부적 상황을 상당히 악화시킨 것입니다.

윤의 상상을 초월하는 무능과 무상식, 비민주성, 그리고 친인척 부패 의혹 등은, 위의 패턴을 그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윤이 구사하는 수사 ("반국가 세력", "암약", "국가관" 등등)는 거의 1970년대를 방불케 하고, 박근혜는 박정희 향수 현상으로 득표하여 대통령이 되고, 이명박이 대통령 될 수 있었던 배경 역시 "한 때에 건설사 사장으로서 우리 나라 경제 개발에 기여했다"는 보수 쪽의 평이었는데, 한국이 그나마 경제 발전을 이루기라도 했던 1960-70년대와 달리 이들 극우 밑에서는 이렇다 할만한 "발전"을 보기가 힘든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박정희나 그 주위 인물들에 대해 "경제의 관리자로서 나름 유능했다"는 평이 있는데 왜 박정희의 후계자들이 다 이 모양 이 꼴이죠? 일단 신화와 역사를 구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박정희에 대한 "유능했다"는 평은, 역사라기보다는 신화에 가깝습니다. 박정희의 경제 관료인 오원철이나 김학렬 등이 나름 "개발주의"의 차원에서 능력이 있었으나 박정희는 경제에 대해 스스로 명확한 개념이 없었던 것으로 봐야 합니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도 대통령과 그 주위의 권력 남용과 부패 등은 계속 줄을 이었으며, 권력자들이 김영삼이나 윤석열보다 유식하거나 똑똑한 건 전혀 아니었습니다. , 달랐던 것은 내외의 "환경"이었습니다. 냉전 최전선의 한국은 비교적 쉽게 저리의 차관을 얻어 개발을 위한 외자를 유치할 수 있었고, 노동자 임금이 극히 낮았던 만큼 저임금 노동에 의한 세계시장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에는 아예 저달러, 저금리 저유가 등 냉전 막바지의 "호황"을 운좋게 맞이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니 한국을 통치하는 군바리들이 아무리 주색에 빠지고 아무리 부패, 무능해도, 일단 질 괜찮은 경제 관료만 등용하면 "개발" 차원에서는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 시대는 이미 끝났습니다. 한국은 이미 고임금 국가이며, 반도체와 조선 이외에는 최대 경쟁국인 중국에 비해 기술력 우위도 이미 없습니다. 그것마저도 3-4년 내에 거의 무의미화될 전망입니다. 거의에다 탈세계화와 재생산의 정지, 인구 축소, 초고령화 등, 일찍 맛보지 못했던 위기들이 쌓이고 쌓인 겁니다.

그래서 "호황"의 상황에서는 군부 통치자들의 저질성은 큰 문제되지 않아도, 장기화된 불황이라는 현 상황에서는 윤 같은 자들의 저질성은 아예 한국의 앞날을 심각하게 위협할 정도입니다. 일단 불황을 배경으로 해서 그 저질성은 아주 극적으로 부각되기도 하죠. "지도자"들의 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도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1970-80년대에 왼 걸 빼고 머리에 든 게 하나 없는 술꾼 검사가 "대통령"쯤한다는 것은 지금 한국의 경제와 안보를 크게 위협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탄핵되든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 뒤에 결국 물러가든 윤은 이미 끝났습니다. 몰락은 이미 불가역적입니다. 그런데 극우 진영에서는 최소한의 도덕성과 비전, 대중적 설득 능력, 전문 지식 등이 제대로 갖추어진 정치인은 지금으로서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가까운 미래에 극우들의 정권 재창출이 어려울 것 같고, 한국 자본주의 시스템 관리를 당분간 리버럴들이 할 가능성이 훨씬 더 커 보입니다

(기사 등록 202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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