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라 보츠(Dan La Botz)
번역: 두 견
댄 라 보츠가 지난 4월 25일 <링크스 국제 사회주의 혁신 저널>(LINKS International Journal of Socialist Renewal)에 레닌과 레닌주의를 비판적으로 재평가하는 글을 실었다. 우리도 이 글을 번역 소개한 적이 있다. 그 후 좌파 활동가와 지식인들 속에서 이 글에 대한 다양한 비판과 평가 글이 제기되었고, 댄 라 보츠가 다시 이런 글들에서 제기된 논점에 대해서 답변하고 있다. 이 논쟁과 관련한 글들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이 글의 필자인 댄 라 보츠는 미국의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저술가이자 1960년대부터 활동해 온 미국 급진 좌파의 대표적인 현장 노동운동가다. 1970년대 미 트럭운송노조(Teamsters) 내 상부 관료제와 부패에 맞서 현장 노동자 중심의 민주화를 이끈 혁신 조직 'TDU'의 창립 멤버이며, 독립 좌파 조직 '연대(Solidarity)'와 계간지 <새로운 정치> 편집위원을 거쳐, 현재는 미국 최대 좌파 조직인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DSA)'에서 활동 중이다.
출처: https://links.org.au/lenin-versus-democracy-reply-critics-goodbye-lenin-and-leninism

폴 르 블랑(Paul Le Blanc), 앤서니 테소(Anthony Teso), 그리고 존 마롯(John Marot)이 시간을 내어 나의 에세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준 것에 대해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좌파들은 종종 블라디미르 레닌의 역할에 무비판적으로 집착하곤 한다. 게다가 그의 이론이 좌파의 모델이라는 관념은 심각한 문제다. 따라서 정보가 풍부한 이 세 명의 사회주의자 동지들이 이 토론에 참여해 준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세 사람 모두 이 사안들에 대해 해박하며 흥미로운 지점들을 짚어낸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견해와 방법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의 에세이 초반부에서 나는 레닌이 마르크스주의 및 민주적 사회주의의 전통과 자신을 단절시키는 결정을 내렸다고 판단되는 열한 가지의 서로 다른 순간들을 나열했다. 나는 레닌의 결정들을 하나의 정형화된 패턴이자 누적적인 과정으로 보았으며, 각각의 결정이 그다음의 잘못된 결정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보았다. 독자들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내가 레닌의 핵심적인 정치적 결정으로 보았던 것들은 다음과 같다.
* 후일 볼셰비키당이 되고, 그 후 러시아 공산당이 된 볼셰비키 분파의 조직화.
*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을 폭발시킨 볼셰비키 쿠데타의 조직과 실행.
* 1918년 1월 민주적으로 선출된 제헌의회의 강제 해산.
* 곧 단순히 볼셰비키만의 정부가 되어버린, 볼셰비키가 주도하는 연정 소비에트 정부의 수립.
* 소련 산업 내 ‘1인 지배 지휘권’의 확립.
* 정치경찰인 체카(Cheka)의 창설과 적색 테러의 자행.
* 내전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시 공산주의 수립과 사회의 군사화.
* 패배로 끝난 러시아의 폴란드 전쟁.
* 크론슈타트 반란의 진압.
* 공산당 내 분파 형성 금지.
* 레닌의 이오시프 스탈린 권력 강화.
나의 주장은 레닌의 결정들이 민주적 사회주의 혁명을 수호하고 발전시키는 데 무능함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 결정들은 혁명의 좌절과 실패에 기여했으며, 그 결과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물론 객관적 조건들은 끔찍했고, 억압적이었으며, 실질적으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맥락 안에서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레닌의 전략적 결정 외에 대안은 없었는가? 다른 접근법들이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보장은 없지만, 그랬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질문은 토론해 볼 가치가 있다.
폴 르 블랑Paul Le Blanc
나는 내 이목을 끈 순서대로 에세이들을 다룰 것이며, 폴 르 블랑의 글 <레닌에게 작별을 고하는가?>부터 시작하겠다. 폴은 레닌에 대해 읽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읽은 레닌 연구가이며, 풍부한 정보와 방대한 인용구를 보유하고 있다. 그는 에세이의 많은 부분을 레닌이 권위주의적이었다는 나의 주장, 즉 내가 썼듯이 “당에 대한 레닌의 구상은 처음부터 권위주의적이었으며, 당의 지도부를 지배한 인물로서 그가 최종적인 권위였다”라는 주장을 반박하는 데 할애한다. 나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폴은 모든 사회 계급, 각계각층, 그리고 온갖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말을 인용한다. 폴이 쓴 글의 몇 가지 예는 다음과 같다.
“그를 개인적으로 알았고 1916년 스위스 망명 시절에 그와 그의 동반자 나데즈다 크룹스카야(Nadezhda Krupskaya)를 방문하여 시간을 보냈던 저명한 멘셰비키 라파엘 아브라모비치(Raphael Abramovitch)처럼 날카로운 정치적 라이벌에 따르면, ‘가정에서의 레닌보다 더 단순하고 친절하며 가식 없는 사람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막심 고리키(Maxim Gorky)는 ‘나는 블라디미르 일리치만큼 타인에게 전염되도록 웃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라며 ‘…자본주의 세계에 대한 증오에 있어서는 냉혹했으나, 그토록 순진하게 웃을 수 있었고, 눈물이 날 정도로 웃었으며,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였다’라고 언급했다.”
이것들은 흥미로운 일화들이기는 하지만 나의 주장을 다루지는 못한다. 레닌의 권위주의에 대해 쓸 때, 나는 그의 사교적 품격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레닌은 즐거운 저녁 식사 자리의 손님이었을 수 있고, 훌륭한 대화가였을 수 있으며, 호탕한 웃음을 즐기는 사람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성격이 아니라 그의 정치적 성격과 정신 상태다. 질문은 레닌이 사교적인 상황에서 좋은 사람이었는가가 아니라, 그의 정치적 결정들, 특히 내가 나열한 열한 가지 결정들이 권위주의적인 성격을 띠었고 위험할 정도로 반민주적인 영향을 미쳤는가이다.
폴은 레닌이 민주주의의 중요성에 대해 쓴 여러 문건들을 인용한다. 레닌은 민주주의의 의의에 대해 자주 썼지만, 투박하게 말해서 말은 쉬운 법이다. 혹은 스탈린이 한때 말했듯이(그리고 그 전후의 다른 이들이 말했듯이) “종이는 그 위에 적힌 어떤 것이든 견뎌낸다.” 문제는 레닌이 무엇을 말했거나 썼는가가 아니라, 그가 무엇을 했는가이다.
내가 제시한 열한 가지 사례에서 그는 민주적인 입장 대신 권위주의적인 입장을 선택했다. 하나의 반대 사례로서, 만약 레닌이 처음부터 타협과 연대 구축을 포함하는 다른 정치적 접근법을 취했다면, 그는 소비에트 내의 여러 노동계급 정당들과 함께 진정한 다당제 집권 연합을 형성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동맹이었다면 혁명의 첫 한두 해 동안의 도전들을 견뎌낼 수 있었을 것이다.
앤서니 테소Anthony Teso
자신의 답변서인 <레닌, 민주주의, 그리고 반레닌주의적 지름길>에서 테소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라 보츠의 주장은 그것의 역사적 틀 짜기로 인해 약화된다. 그는 혁명의 퇴행을 구체적인 물질적 맥락, 즉 내전, 외세의 침략, 경제적 붕괴, 기근, 사회적 파편화, 그리고 국제적 고립에서 상당 부분 추상화하여, 주로 레닌의 도덕적 실패의 산물로 해석한다. 레닌은 객관적 힘에 의해 형성된 역사적 행위자라기보다 도덕적 비극의 주인공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접근법은 구체적 조건에 기초한 역사유물론적 분석을 도덕적 비난으로 대체한다.”
테소의 주장은 고전적인 트로츠키주의적 주장이다. 즉, 그가 나열한 요인들 때문에 혁명이 좌절되고 퇴행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한 압도적인 요인들은 엄청나게 중요했으며, 나 역시 나의 글에서 그 모두를 언급했다. 그러나 나의 질문은 여전히 이것이다. 그러한 요인들이 주어졌을 때, 레닌과 볼셰비키는 매 전환점마다 어떤 결정들을 내렸는가? 테소는 매우 옳게도 다음과 같이 쓴다. “혁명은 기계적인 연속이 아니다. 볼셰비키의 각 결정은 전쟁, 기근, 사보타주, 사회적 해체라는 유동적이고 강제적인 압박에 의해 형성되었다.” 나는 테소의 설명에 거의 전혀 반대하지 않으며, 그 역시 나의 비판에 상당 부분 동의하며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레닌은 엄격하게 비판받아야 한다. 분파 금지, 크론슈타트 진압, 일당 지배, 노조의 종속, 그리고 대리주의의 뿌리는 모두 진지한 복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그 비판은 혁명 역사의 폭력성과 복잡성에 깜짝 놀란 환멸에 찬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자의 관점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적 틀 내부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비판을 역사적 맥락 속에 두는 것에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역사라 할지라도, 그것이 아무리 무자비하고 냉혹했을지언정, 레닌과 볼셰비키에게서 그들의 자유 의지를 박탈하지는 않았다.
상황은 복잡했고 마르크스주의적 틀은 이를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그러나 나는 전쟁, 외세의 침략, 흉작, 그리고 기아가 레닌과 볼셰비키의 행동을 결정지었다고 믿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자유 의지를 행사했고 궁극적으로 혁명의 경로를 결정짓는 중대한 결정들을 내렸다. 테소가 나열한 각각의 전환점마다 레닌이 권위주의적인 대응을 선택한 것은 사실이 아닌가? 그리고 그러한 결정들이 누적되어 더욱더 권위주의적인 문화, 당, 그리고 체제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테소가 제기한 한 가지 주장에는 강력히 반대한다. 그는 “볼셰비키는 오직 기망이나 조직적 중앙집권주의만을 통해 권력을 확보한 것이 아니다”라고 쓴다. 그렇다, 오직 그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조직적 중앙집권주의와 기망은 그들의 방법론에 있어 근본적이었다. 볼셰비키는 노동계급의 여론을 조사하지도 않고, 다른 노동자 정당들과 협의하지도 않은 채 국가 권력을 장악했으며, 그 정당들은 단지 의회가 해산되었고 소비에트가 이제 국가라는 통보만을 받았다. 볼셰비키는 또한 자신들이 진압한 크론슈타트 반란에 대해 대중을 오도했다. 중앙집권주의와 기망은 볼셰비키 혁명의 핵심이었다.
존 마롯John Marot
러시아 혁명에 대한 예리한 역사의식을 가진 사학자 마롯은 레닌과 볼셰비키가 내린 결정들에 대한 나의 질문에서 시선을 돌려, 우리가 오직 ‘제정 러시아 말기의 사회적 소유 관계’라는 관점에서만 이 문제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의 글에 대한 그의 답변서인 <‘레닌주의’의 흥망성쇠>에서 마롯은 다음과 같이 쓴다. “우리는 지주 귀족과 그들의 반전제주의적인 봉건 국가가 파괴된 이후 볼셰비키당, 농민, 프롤레타리아트, 그리고 소부르주아가 직면했던 역사적 행동에 대한 제약과 기회들을 무시할 수 없다.”
이것은 테소의 주장에 대한 또 다른, 더 복잡하고 미묘한 버전이다. 즉, 러시아 혁명가들이 직면했던 조건들이 혁명의 결과를 결정지었다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질문은 여전히 이것이다. 그러한 ‘제약과 기회들’이 주어졌을 때 레닌과 볼셰비키는 무엇을 했는가? 마롯의 접근법은 테소의 접근법처럼(비록 그들이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지라도) 레닌의 결정들을 설명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우리에게 거시적인 그림, 즉 역사적 맥락을 볼 것을 요구한다.
그 거시적인 그림의 가장 큰 요소들은 러시아의 낙후성, 거대한 농민 인구, 반동적인 차르 봉건 지배자들, 그리고 지체되고 저발전된 부르주아지다. 그러한 맥락 안에서 러시아의 혁명가들은 내전, 외세의 침략, 흉작, 기아에 직면했고, 이는 새로운 혁명 정부에 대항하는 반란들로 이어졌다. 마롯은 다음과 같이 쓴다. “만약 제2인터내셔널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확언했듯이 사회적 소유 관계가 정치적 사안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유의미하다면, 신경제정책(NEP) 시기의 러시아에서는 어떤 정책을 추구했든 간에 사회주의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만약 댄 라 보츠가 주장하듯 볼셰비키가 ‘민주적인’ 정책들을 채택했더라면 사회주의가 가능했을 것이라면, 사회주의적 진보에 있어서 사회적 소유 관계는 극복 불가능한 장애물이 아니었던 셈이다. 즉, 민주적인 의지가 있었다면 민주적인 방법이 있었다는 뜻이 된다. 두 가지 입장을 모두 고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의 에세이에서 나는 레닌이 더 민주적인 구조를 위해 싸우는 것을 선택했더라면 러시아 혁명이 구원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결코 주장하지 않았다. 나는 민주적인 결정들이 혁명을 그 끔찍한 운명으로부터 구출할 수 있는 민주적인 경로를 열어주었을지 알지 못하며,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마롯이 제기한 사례를 살펴보자. 그는 러시아 인구의 과반을 차지하는 농민들이 잘못된 방식으로 투표했고 잘못된 정당에 투표했다는 근거를 바탕으로, 국가의 첫 민주적 선거에 의해 선출된 제헌의회를 레닌이 해산한 것을 분석하고 정당화한다. 마롯은 우파(및 좌파) 사회혁명당(SR)의 지도자들과 간부들이 거의 예외 없이 ‘젬스트보[지방 정부] 행정 인력, 즉 측량사, 교사, 간호사, 농학자, 수의사, 변호사, 의사 및 기타 전문가들’에서 충원되었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우파 사회혁명당은 농민들에게 토지를 분배하는 것에 반대했고, 따라서 반혁명 분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제헌의회 의석의 25%와 소비에트 내 과반을 차지하고 있던 레닌과 볼셰비키가 의회를 해산하는 대신, 의회와 소비에트, 그리고 사회 내에서 캠페인을 벌여 농민 다수를 볼셰비키의 토지령 쪽으로 끌어올 수는 없었을지 의문이 든다. 그 토지령은 사적 토지 소유권을 폐지하고, 귀족, 교회, 수도원의 토지를 보상 없이 몰수하며, 농민들 사이의 토지 재분배를 승인하는 내용이었다. 대조적으로 볼셰비키는 힘을 사용해 의회를 해산했고, 자신들이 지배하는 소비에트의 통치를 선포했다.
농민들은 토지를 장악하고 분배했으나, 몇 년 후 내전이 한창일 때 볼셰비키는 군대와 도시를 위해 곡물 징발을 조직했다. 그러고 나서 마롯이 설명하듯, 불과 10여 년 만에 “2,500만 농가가 몇 천 개의 집단 농장인 콜호스(kolkhoz)로 강제 전환되었다.” 농민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토지를 소유하지 못했고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했다. 레닌의 경로가 진정 유일한 선택지였는가? 르 블랑, 테소, 그리고 마롯은 모두 더 큰 역사적 맥락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옳다. 카를 마르크스는 자신의 유명한 팸플릿인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지만, 자신들이 마음대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 선택한 환경 속에서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과거로부터 주어지고 물려받은 환경 속에서 역사를 만든다.” 그러한 환경을 바탕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결정을 내리며, 대개는 선택될 수도 있었을 대안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내 견해로는 1920년 러시아에서 완전한 사회주의는 불가능했으나, 다른 결정들이 있었다면 민주적인 국가로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이고, 이는 미래에 사회주의 사회로 이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레닌은 다른 더 민주적인 옵션들을 거부하면서 권력을 자신의 손에 쥐고 사건들에 대한 볼셰비키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대안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다. 만약 레닌이 더 민주적인 결정들을 내렸더라면 혁명이 구원받았을까?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내린 결정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소련이라는 관료적 집단주의이자 전체주의적인 국가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나의 원래 에세이를 끝맺었던 것과 똑같은 말로 끝을 맺고자 한다.
“사회주의자나 혁명가가 되기 위해 레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 조직을 만들기 위해 레닌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오직 사회주의적 원칙, 민주적인 토론, 그리고 구성원들의 헌신과 자기 규율만이 필요할 뿐이다. 우리의 사회주의 조직들은 노동운동 및 사회운동과의 관계를 포함하여 진정으로 그리고 철저하게 민주적이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주의의 핵심에 있다.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의 말이 옳았다.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는 없으며, 사회주의 없는 민주주의도 없다.”
(기사 등록 2026.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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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행동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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