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사회재생산 이론이 여성억압을 잘 설명하는가?

낸시 린디스판 (Nancy Lindisfarne), 조너선 닐 (Jonathan Neale)

번역: 박상우 


사회재생산(또는 사회적 재생산) 이론은 여성 억압과 차별을 설명하기 위한 마르크스주의의 혁신 시도중 하나다. 하지만 낸시 린디스판 (Nancy Lindisfarne)과 조너선 닐 (Jonathan Neale)은 사회재생산 이론 (Social Reproduction Theory)의 단점을 비판하며 , 성별 간의 생물학적 차이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글이 관련 논의의 심화 발전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사회재생산 이론이 무엇인지 궁금한 분은 황정규 동지가 참고삼아 번역해 놓은 글을 참고해 볼 수 있다.(링크) 링크를 허락해 준 황정규 동지에게 감사드린다. 

출처: http://rs21.org.uk/2014/03/20/the-trouble-with-social-reproduction-theory/


지난해 우리는 계급과 젠더에 대한 긴 논문을 작성하였다. 그 논문의 일부가 <국제사회주의>(International Socialism) 저널에 실렸고, 그 전문은 Revolutionary Socialism in the 21st Century 사이트에 실렸다.(Lindisfarne and Neale, 계급, 젠더 그리고 신자유주의(Class, Gender and Neoliberalism)를 보시오


그 논문에서 우리는 사회재생산 이론에 근본적으로 반대하였다. 사회재생산 이론은 린지 저먼 (Lindsay German), 크리스 하먼 (Chris Harman), 샤론 스미스 (Sharon Smith)등 여러 사람들이 국제사회주의자 (International Socialist - IS) 전통 내에서 발전시켜온 분석법이다. [그들은 1970년대 가사노동 논쟁에서 여성주의자들이 한 말을 기초로 이론을 발전시켰다.]


IS 전통 내의 어느 누구도 우리의 비판에 대응하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의 글을 읽지 않았거나, 혹은 우리가 차이점에 대해 충분히 분명하고 간단명료하게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짧은 글에서 보충하려 한다.


이 글에서 우리는 왜 사회재생산 이론이 유용하지 않은지 그 주된 이유들을 설명하는 데 촛점을 맞추겠다. 좀더 상세한 주장을 보기 원하는 사람은, (위에 언급된) 긴 논문을 보길 바란다.


사회재생산이론은 다음의 문제를 설명하려는 이론이다. 그것은 바로, “왜 남녀 간의 불평등은 모든 계급 사회를 막론하고 뚜렷하게 존재하는가?”


사회재생산 이론은 이 문제를 선진 자본주의의 도시 지역에서 일하는 여성과 남성 노동자들의 측면에서 설명한다. 그 핵심 내용은 가정에서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남자들을 돌보는 부담을 여성들이 대부분 지고 있고, 가장 생산적인 일은 집 밖에서 남성들이 한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집안일을 거의 다 하고 아이를 돌보는 이유가 그들이 남성들과는 생물학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 ,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 모유 수유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노동 분업이 자본가 계급에게 엄청난 비용 절감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이런 (성별)분업을 지속시키려 모든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의 문제점은 자본주의가 계급 사회의 여러 형태 중 하나이고, 자본주의는 매우 최근에 생겨났다는 데 있다. 자본주의의 측면에서 성불평등이나 성차별주의를 설명하는 건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앞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지난 수 천년간의 모든 계급 사회에 다 적용되는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현존해 온 대부분의 계급 사회에서 사회재생산 이론의 전제는 그리 간단히 적용되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 모두 집 안과 밖에서 일을 한다. 갓난 아기에게 모유수유하는 것은 여성들의 몫이지만 그들은 들에서 일하면서 모유수유를 한다



아이가 한 살이 넘으면, 주로 낮 동안에는 다른 아이들 - 형제자매나 사촌들 - 이 어린 아이들을 돌본다. 아이들이 더 어린 아이들을 돌봤던 것은 생산을 위해 들에서 성인 여성의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모든 성인들이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빠들도 자녀와 많은 시간을 보낸다


만일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성인이 집에 있어야 한다면, 주로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은 들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나이든 남성과 여성들이었다.


아이들을 양육하는 게 훨씬 수월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네다섯살부터 어른들을 따라 일을 하기도 하고, 서로 알아서 놀았다. 자동차가 없었고, 마을 어른들이 항상 아이들을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하였다.


이러한 계급 사회에서는, 간혹 몇몇 사람들이 집 밖에서 임금 노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그런 사람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었다. 지주들이 있었지만 자본가는 아니었고, 따라서 고용주도 없었다. 인도에서처럼 마을에 고용주가 있는 경우에는 여성 농업노동자들도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고용되었다.


노예 12(12 Years a Slave)이라는 영화를 떠올려 보자. 들에서 일하는 여성 노예들이 있었던가? 고전 유럽 미술 작품에 등장하는 농부들과 시골의 풍경을 떠올려봐라. 밭에 있는 여성들을 발견할 수 있는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중,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시골에서 살아본 사람이 있다면, 밭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본 적이 있는가?


이런 방식의 아이 양육과 여성들이 가정 밖에서 일하는 패턴은 자본주의 이전의 많은 계급 사회에서 볼 수 있다. 20세기 자본주의 사회의 시골에서도 아이들을 흔히 그런 방식으로 양육하였다.

사회재생산 이론은 인류 역사에 존재해온 대부분의 계급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주가 착취하는 자작농 형태에 적용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계급 사회에서 존재해 온 젠더 관계의 역사를 수정되고 좀 더 세련된 사회재생산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면 다음과 같은 용어들은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집 안에서”, “자본주의”, “고용주”, “집 밖에서 일하는 것”, “고용”, “노동자”, “노동계급”, 또는 임금이런 말들은 자본주의 사회에만 적용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주의가 아닌 계급 사회에서도 집 밖에서 임금을 받고 일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17세기 벵갈, 고대 로마 그리고 더 많은 예들이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런 경우는 소수였고, 그 소수에 기반해 그 사회에 있던 성차별주의를 설명할 수는 없다.


노동 분업과 젠더 관계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상업도 이루어 졌다. 이런 곳에서는 주로 집에서 작업을 했지만 뚜렷한 성별 노동분업이 존재했다 대장장이, 목수, 수레바퀴 제조인 등과 같은 경우이다. 가내수공업의 영역 중 남성과 여성이 같이 일을 하거나 또는 여성이 대부분의 일을 했던 부문도 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전문적으로 상업에 종사하는 가내수공업들은 당시 사회의 소수였다. 최근까지도 모든 계급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잉여 가치가 농업에서 발생되었고 들에서 여성들과 남성들은 함께 일을 하였다.


가정의 내부와 외부에서 노동 분업을 변화시킨 방식이 젠더 관계와 사회 전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정교한 분석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는 논문에서 미국에서 신자유주의가 미국인들의 삶과 젠더를 이해하는 방식에 변화를 끼쳤던 복잡한 방식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사회재생산 이론은 다음의 핵심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무계급사회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대체로 평등하였다. 계급 사회가 도래하자, 또는 계급 사회가 그렇지 않은 다른 사회를 정복하자, 남성과 여성은 불평등해졌다. 왜 그런가?”


<젠더, 계급 그리고 신자유주의(Gender, Class and Neoliberalism)>에서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하는 이론을 제안하였다. 그 논문에서 우리는 지배계급이 불평등을 자연 세계에 주어진 일부처럼 보이게 하길 원한다고 주장하였다. 젠더 불평등은 이 역할을 매우 잘 수행한다. 젠더 불평등과 차이는 사회적으로 만들어 졌다


사회적으로 구성된 불평등을 우리가 말을 시작하기 전부터 배우고, 불평등을 우리의 일부로, 성적 자아의 일부로, 친밀한 자아의 일부로 경험한다. 우리 몸 안에서 우리가 움직이고 살아가는 방식의 일부로 경험한다. 불평등은 자연의 일부이고 생물학적인 것처럼 여겨진다.


지배계급은 이를 원한다. 그래서 지배자들과 그 지지자들과 대리인들은 젠더 불평등을 조장하고 감시한다. 이것이 바로 지배 계급이 있는 모든 사회에 젠더 불평등이 있는 이유이다. 생산 관계의 형태가 바뀔 때, 지배 계급은 새로운 경제 현실에 맞도록 성 이데올로기를 바꾼다.


우리의 이론은 계급을 중심으로 놓고, 계급 관계를 사회 변화의 동력으로 둔다. 이는 계급 관계에서의 변화가 어떻게 젠더 관계를 변화시키는지 설명한다. 우리는 또한 젠더에 관한 투쟁이 계급 투쟁보다 덜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젠더에 대한 투쟁은 핵심적인 계급 투쟁이다.


진실로 우리는 왜 젠더 투쟁과 성폭력에 대한 투쟁이 급속히 경영자들, 지배 계급 그리고 국가에 맞선 투쟁이 되는지를 설명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성폭력에 대한 투쟁이 어떻게 계급 투쟁에서 핵심적 순간이 되는지를 설명한다.


우리의 이론은 여성과 남성 사이의 생물학적 차이가 사실이지만,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것 역시 사회재생산 이론과의 큰 차이이다. 사회재생산 이론의 핵심에는 남성과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구별된 영역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항상 남성과 여성이 본질적으로, 신체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이런 생물학적 주장은 더 많은 문제를 낳는데, 특히 재생산과 섹슈얼리티가 이성애 규범에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더욱 그렇다.


또 다른 정치적인 문제도 있다. 어떤 [지배] 이데올로기의 핵심 주장을 받아들여서는 그 이데올로기를 제대로 간파할 수 없다. 그러면 방향을 잃게 된다. 바로 사회재생산 이론가들이 이렇게 하고 있다.


사회재생산 이론에는 두 가지 핵심적인 개념이 있다. 하나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생물학적 차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두 개의 구분된 영역이 존재하는데, 임금 노동의 남성 영역과 집과 가족이라는 여성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두 가지 핵심 개념은 또한 젠더에 대한 우파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다. 그럼에도 사회재생산 이론가들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 아이디어를 가지고 자본주의의 젠더 관계를 설명하려고 한다. 이는 순환논리이고 동어반복이다. 이런 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우리의 이론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재생산 이론은 분명히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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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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