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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볼티모어 시위 – 저항인가, 폭력인가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5. 5. 3.

박상우


미국에 처음 이주한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주변의 한인들로부터 여기 살면서 특히 조심해야 할 대상들에 대해 듣게 될 것이다. 그 첫 번째 대상은 바로 경찰이다. 도로에서 운전을 하다가 경찰의 지시로 차를 세우게 되었을 때는, 두 손을 반드시 핸들 위에 두어서 잘 보이게 하고, 절대로 차 밖으로 나가거나 움직여서는 안 된다.


또한 경찰이 접근해서 자동차 보험증서를 요구할 때는, ‘보험증서가 글로브 박스 안에 있습니다라고 말한 후 허락을 받고 열어야지, 말도 없이 갑자기 글로브 박스를 열어서는 안 된다. 보통 그 안에 권총을 보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경찰이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곧바로 운전자에게 총을 겨눌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의 질문에 답을 할 때는 “yes, sir”라고 sir를 붙여 공손하게 답하고, 절대 되묻거나 항의하지 말아라 등이 그 내용이다.


과장이 심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모두 오랜기간 축적된 한인들의 경험에서부터 비롯된 교훈들이다. 실제로 경찰에게 말하지 않고 손을 자켓 안쪽으로 가져갔다는 이유로 벌집이 될 정도로 수십 발의 총알을 맞고 죽임을 당한 한인 교포 2세가 있었다. 내 친구는 경찰의 단속에 걸렸을 때, 부당하다며 이유를 말해달라고 항변했다가 도로 한복판에서 순식간에 무릎을 꿇린 채 뒤로 수갑이 채워져 압박을 당하는 일을 겪었다.


운전을 하다가도 갑자기 몇 대의 경찰차가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빠른 속도로 차를 몰아세우고는 16세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흑인 소년을 건장한 경찰 네 명이 잡아 바닥에 패대기치고 수갑을 채워 체포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 역시도 고속도로에서 속도위반으로 경찰에 의해 정차를 당한 적이 있었는데, 무슨 오해를 받아 재수없이 총을 맞게 될까 긴장을 해서 핸들 위에 올려둔 두 손을 덜덜 떨었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서는 경찰을 무서워하지 않고 살았는데, 미국에 온 이후로는 경찰이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그가 바지춤에 차고 있는 권총이 다만 장식이 아니라는 것과 그 총이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언제든지 발사될 수 있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지난 월요일 미국 메릴랜드 주의 볼티모어에서는 경찰차가 불에 타는 일이 발생하였다. 경찰차 여러 대가 파손되고, 최소 15명의 경찰이 부상을 입었다. 미국에서 두려움의 대상인 경찰이 이런 공격을 당하는 일은 절대 흔하지 않다. 대체 볼티모어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프레디 그레이(Freddie Gray)25세의 흑인 청년으로, 2015412일에 길을 가다 경찰과 눈이 마주친 후에 도망가기 시작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었다. 뒤로 수갑을 채운 채 청년을 강제로 경찰차에 태우는 과정에서, 청년의 목 부분 척추가 부러지는 부상이 발생하였고, 이후 가족들의 대변인을 통해 밝혀진 바로는 그 당시 이미 척추의 80%가 끊어진 상태였다고 한다. 이로부터 2주 정도가 지난 427일에 프레디 그레이는 결국 사망하였다.


프레디 그레이는 2011년 이후 볼티모어에서 경찰에 의해 사망한 111번째 사례이다. 퍼거슨에서 비무장 상태의 흑인 소년,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관에 의해 최소 6회의 사격을 받은 후 사망한 지 불과 일년도 지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존 크로포드라는 흑인 남성이 월마트에 BB총을 들고갔다가 경찰에 의해 총격을 받고 사망한 일도 있었다. 타미어 라이스라는 12세 흑인 소년 역시 BB총을 들고 있다가 클리블랜드 공원에서 경찰의 총격으로 숨졌다


아카이 걸리라는 흑인 청년은 뉴욕 브룩클린에서 어두운 계단을 내려오다 경찰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 이 청년에게 왜 총격이 가해졌는지, 어느 경찰이 왜 처음 총을 쏘기 시작했는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우발적총격으로 숨진 것이다


에릭 가너라는 43세 흑인 남성은 담배를 한 개피씩 상점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판다는 혐의를 받아 체포되는 과정에서 경찰에 의해 목 졸려 숨졌다. 모두 작년 퍼거슨 사태와 올해 볼티모어 사태 사이에 발생한 일이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고 보도되지 않은 사례들까지 언급하면 한참을 써내려 갈 수 있을 것이다. 피해자들은 모두 비무장 상태였다.


경찰로 인한 사망자수를 기록하는 KilledByPolice.net 에 따르면, 2014년에만 미국에서 모두 1,099명이 경찰에 의한 총격이나 폭력으로 사망하였다. 이는 2014년에 매일 3~4명의 사람들이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뜻이다


참고로 2011년 기준으로 경찰에 의한 사망자수는 독일의 경우에 6, 영국 2, 호주 6, 일본 0명이었다. 미국은 올해 들어서만 42일까지 거의 300명이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이 중 115건의 사례는 3월 한달동안에 발생하였다


이는 미국 경찰의 군대화와 관련이 있는데, 예를 들면 군대에 상당하는 경화기로 무장한 경찰특공대(SWAT)의 경우 1980년대에는 매년 거의 3,000회 정도 현장에 투입되던 것이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해마다 45,000회의 현장 투입으로 급속히 증가하였다. 2014년 퍼거슨에서 시위가 발생하였을 때도 현장에서 조준 사격 대기중이던 스나이퍼가 사진에 찍혔었다.

 

 

지난 월요일 볼티모어에서 경찰차가 불에 타는 영상은 미국 언론들을 통해 반복적으로 방송되었다. 일단의 무리들이 CVS(편의점)와 한 이탈리아 상점에서 감자칩, 도리토스 같은 과자 봉지와 식료품들을 훔쳐서 가지고 나오는 장면도 보여주었다


수십 명의 흑인 청년들이 경찰차 유리창을 깨트리고, 위로 올라가 차를 부수고, 보도블럭을 깨트려 곤봉과 방패를 든 경찰에게 집어던지고 있었다. 건물 유리벽을 깨트리려고 힘껏 쓰레기통을 날리고 불에 타는 드럼통을 경찰들을 향해 집어던지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언론은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나와 같은 타도시 주민들에게, 대낮에 상점을 약탈하고 리포터들을 폭행하는 시위자들의 혐오스러운 행동을 집중 보도함으로써 사태의 심각성이 폭력에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였다


사람들을 이렇게 비분강개하게 만든 잔인하고 폭압적이며 비상식적인 경찰의 폭력과 그 모든 억울한 죽음들은 불에 타는 경찰차의 영상 뒤에 가려 점차 잊혀지는 듯 했다그러나 성난 시위대나 깨진 유리창은 현재 발생 중인 볼티모어 사건을 구성하는 요소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문제의 장본인은 따로 있다. 그리고 이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수십 년간 볼티모어의 불평등과 차별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지역사회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볼티모어는 실제적으로 두 개의 완전히 다른 구역으로 나뉘어있는데, 존스 홉킨스 대학과 같은 명문대와 각종 박물관, 수십 개의 사립학교가 위치한 북 볼티모어(North Baltimore)와 오랫동안 흑인들이 모여살던 서 볼티모어(West Baltimore) 지역으로 구분된다. 프레디 그레이가 사망한 곳은 서 볼티모어 지역이다.


볼티모어 시민의 4분의 1은 최저생계비 이하 수준으로 살고 있는데 이들 중 대부분은 물론 서 볼티모어 지역에 거주하는 흑인들이다. 볼티모어 거주민의 연평균 가계 소득을 비교하자면, 흑인 가정의 경우 $33,601인데 반해 백인 가정의 경우 $60,550으로 두 배 가까운 차이를 보인다. 불평등 문제는 특히 고용 부문에서 심각하게 나타나는데, 볼티모어에 거주하는 20~24세 남성의 실업률은 흑인의 경우 37%, 백인의 경우 10%로 거의 4배 차이가 난다.


이 지역의 고등학교 졸업률은 60% 이하로 미국에서 가장 낮은 수치이다. 볼티모어에서 흑인 영아 사망률은 같은 지역에서의 백인 영아 사망률보다 9배나 더 높다. AIDS와 같은 질병은 흑인 거주지역에서 거의 5배 더 많이 발병한다. 의료 혜택으로부터 배제되어있기 때문이다


의료보험이 민영화되어있는 미국에서는 병원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다. 단적인 예로 무릎이 아파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가 약 15분간 진찰하고 별 문제가 없어 환자를 집으로 돌려보냈는데, 이후 청구된 금액은 437달러(45만원)였다. 의료보험 적용 후 환자가 지불해야 할 금액은 98달러(10만원)였다. 따라서 아무리 아파도 의료보험이 없는 개인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또한 비싼 의료비 때문에 의료보험료도 높아져서 정규적인 일자리에 고용되지 않는 한 개인이 의료보험을 갖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발생한 의료 혜택의 유무로, 북 볼티모어 지역과 서 볼티모어 지역은 불과 10km 정도밖에 떨어져있지 않은데도, 두 지역의 평균 수명은 20년의 차이가 난다.

 

 

또한 서 볼티모어 지역에는 약 18,000개의 빈 집과 공터가 방치되어 거리 풍경을 흉물스럽게 만들고 있는데, 이렇게 된 이유는 그 유명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문이다.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에게까지 공격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남발한 은행들은, 미국 부동산 버블이 꺼진 후에 몇몇은 파산하고 몇몇은 정부에 의해 구제되었다


그러나 원리금을 제대로 갚지 못한 저소득 대출자들은 모두 길 밖으로 쫓겨나야 했다. 결국 이 지역에 수많은 집이 비어있는 채로 방치된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 정부의 잘못된 경기부양책 때문인 것이다.


흑인들을 향한 경찰의 폭력, 낮은 교육 수준, 높은 실업률, 극심한 빈곤 상황은 서 볼티모어 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과를 갖게 되는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미국에서 전과가 있는 사람은 투표를 할 수 없다. 또한 전과가 있는 사람은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상호작용하며 문제를 악화시켜온 것이 벌써 수십 년이다. 그동안 무엇이 달라졌는가.


많은 언론과 사람들은 폭력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뿐이라며 경찰차와 건물에 불을 지른 흑인 청년들을 비난한다. 폭력 충돌이 장려할만한 일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묻고 싶다. 2년 전에 볼티모어에서 300여명의 흑인들이 불평등 문제를 호소하며 평화적 행진을 하였을 때 왜 그들은 보도하지 않았는가


수십 년간 끈질기게 이어져온 이 빈곤과 차별의 고통을 양산하는 정책의 오류와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 그간 왜 강력하게 고발하지 않았는가. 퍼거슨에서 마이클 브라운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관에 대해 대배심에서 결국 불기소 결정이 났을 때, 문제를 제기하며 시위하던 흑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언론은 어디에 있었는가왜 그동안 흑인들이 겪어온 차별과 불평등에 대해서 관심갖지 않다가 경찰차가 불에 타고 나서야 카메라를 들고 뛰어와서는, 흑인들이 상점을 약탈하고 경찰을 폭행한다고만 보도하는가


폭력은 나쁘다는 뻔한 이야기를 하면서, 폭력 소요에만 초점을 맞추어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사건의 원인을 은폐하는 언론들의 기만적인 행태는 날카롭게 비판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몇 좌파 성향의 언론에서는 사건의 근본적 원인으로 불평등 문제를 명확히 지적하였고 CNN도 일부 그런 보도를 했다.)


지금 볼티모어에는 장갑차와 기관총, 연막탄과 최류탄, 섬광탄, 소총 등으로 무장한 주방위군이 투입되었다. 국내 사건에 방위군을 투입한 것은 지난 퍼거슨 사태 이후 두 번째다. 한 사람의 흑인 청년 운동가와 대치하는 장갑차와 수십 명의 무장한 경찰을 보면 주방위군은 볼티모어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투입된 것이 아니라, 흑인들로부터 경찰들을 보호하기 위해 투입된 것처럼 보인다.


현재 볼티모어 사태의 본질은 불법 폭력 시위에 있는 게 아니라, 미 동부 대도시 안에 빈곤과 고통으로 이루어진 섬을 만들어내고 또한 방치한 고질적인 구조적 위기에 있다. 따라서, 이 사태를 해결할 실마리는 기관총을 든 방위군의 투입에서 찾을 게 아니라, 이 비참한 불평등을 개선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과 제도에서 찾아야만 한다


그런데도 이 와중에 미 공화당은 집과 대중 교통 등의 공공재를 위한 도시 재개발 예산 중 5530억 달러를 삭감하고 대신 펜타곤 국방 예산을 380억달러 증가시키는 2016년도 예산 합의안을 제출하였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불평등 해결은, 주택난과 고용 문제의 개선이 아니라 더 많은 기관총과 더 강력한 주방위군의 투입임을 그들의 예산안이 말해준다.


미국에서 흑인들이 노예신분으로 고통받으며 교육, 공공시설, 식당, 교통시설, 의료, 직업선택에서 차별을 받았던 때는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 로자 파크스라는 흑인 여성이 버스에서 백인 남성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고 경찰에 연행당한 사건을 계기로 흑인 해방 운동이 일어나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워싱턴 대행진 때 링컨 기념관 앞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한 것이 불과 50년 전이다. 그 시절보다 많은 것이 달라졌음은 사실이다. 그리고 많은 것이 그대로라는 것도 사실이다.


민주주의와 자유 사상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미국이 법적으로는 인종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심각한 불평등과 차별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이번 볼티모어 사태는 드러내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몇몇 폭력적 충돌에도 불구하고, 볼티모어 사태를 구조적 불평등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그렇지않으면, 클리블랜드에서 또는 디트로이트에서 심지어 워싱턴 DC에서 볼티모어는 반복될 것이다.   


변혁재장전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http://rreload.tistory.com/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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