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포스트
번역: 박상우
경제는 변하고 있고 일자리는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있다. 급진적 활동가는 새로운 환경에서 어떻게 조직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글(http://rreload.tistory.com/179)에 이어서 불안정 노동과 노동운동에 대한 고민에 도움이 될 글을 추가 번역했다.
이 글의 필자인 찰리 포스트(Charlie Post)는 오랫동안 사회주의 활동가로 일해왔으며 뉴욕시립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출처:
https://www.jacobinmag.com/2015/04/precarious-labor-strategies-union-precariat-standing/
신자유주의는 더이상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탈산업화’와 더불어,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으로1970년대 이후 발생한 핵심적인 변화들을 설명하는 것은 진부할 정도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활동가들은 이 신자유주의 체제가 계급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근본적으로 다르고 새로운 무언가가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노동의 불안정성과 파편화라는 조건이 노동운동에 대한 급진적 시각을 변화시키는 걸까? 노동조합주의와 개혁이라는 전략을 무효화하면서?
몇몇 사람들이 ‘프레카리아트’라고 부르기 시작한 개념은 이런 느낌과 이론을 한데 엮은 것으로, 많은 좌파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있는 용어이다.
<American road to Capitalism>의 저자인 찰리 포스트는 ‘프레카리아트’가 오늘날의 노동자들이 대면한 변화를 오해하게 만드는 범주라고 주장한다. Black Sheep Radio에서 Tessa Echeverria와 Andrew Sernatinger가 진행한 이 인터뷰에서 그는 급진적 활동가들이 오늘날의 노동운동에 어떻게 접근해야하는지, 그리고 새로운 상황에 맞추어 우리의 전략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일단 배경부터 좀 살펴보죠. 왜 전통적으로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 그외 급진적 활동가들은 조직 노동자들에 관심을 가져왔던 건가요?
그 질문은 몇 가지로 나눠서 대답을 하죠. 역사적으로 사회주의/공산주의 좌파는 작업장과 산업 노동계급: 제조업, 운송업 등의 노동자에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이는 이 노동자들이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분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들의 작업과 파업은 상점이나 더 작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 비해 자본주의 작동에 더 큰 지장을 줄 수 있죠.
산업 노동자들은 또한, 생산에서 그들이 갖는 위치 때문에, 민주적이고 공동체주의적인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공통의 이해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여러 맑스주의적 사회주의자들과 아나코-생디칼리스트[무정부적 노동조합주의자] 등이 작업장에 집중해온 이유죠. 그런 식으로 작업장 조직화의 중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프롤레타리아’와 일반적인 노동 계급을 구분하시는 건가요?
할 드레이퍼(Hal Draper)가 그런 구분을 했었죠. 대체로 산업 노동자, 즉 제조업이나 운송, 건설, 전기 통신 등과 같은 분야의 노동자들과 그 밖의 다른 사회 분야에 있는 노동자들을 구분한다고 이야기하고 싶군요. 역사적으로, 맑스주의자들과 아나코-생디칼리스트 좌파들은 산업 분야 노동자들에게 전략적으로 집중 했습니다. 물론 언제나 교사, 병원 노동자와 같은 다른 사람들도 포함시키긴 했지만 말이지요.
사회적인 잠재력을 가진 대규모 작업장의 노동자들도 조직되지 않으면 계급적 방식으로 행동하거나 계급적 인식을 갖기 어려울 거라는 것이죠.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들은 이중적 존재인데, 한편으로는 집단적 생산자로서 작업장 통제권과 노동 시간, 임금을 위해 자본에 대항해 투쟁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력의 판매자로서 서로 경쟁하는 관계이죠.
이것은 20세기 초 맑스주의자들이 “부문적 이해”라고 불렀던 경향을 낳았습니다. 인종, 시민권, 국적, 성, 섹슈얼리티 등에 따라 분열하는 것이죠. 그래서 전투적이면서 민주적인 노조로 작업장을 조직하는 문제는 다른 무엇보다 역사적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작업장에서 조직하고 계급의식을 건설하려 했던 급진적 혁명가들이 주로 토론했던 것은, 바로 “현재 존재하고 있는 노조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였습니다. 왜냐하면 20세기 초 이래로 노동운동은 상명하복식 관료체제에 의해 지배되어왔는데, 이 관료적 노조지도부는 진정으로 사측에 대항해 투쟁하기보다는 사측과 흥정하는데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보통 그런 흥정은 조합원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것이었죠.
1차 세계대전 전에는, 혁명적 좌파가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할 일이 ‘혁명적 적색 노조’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했죠. 이것이 미국의 IWW(세계산업노동자연맹: 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에 있던 아나코-생디칼리스트들의 대응이었습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노조 안에서 관료적 지도부에 대한 반대를 건설해야한다고 했습니다. 관료적 지도부와 노조 간부들을 더 진보적인 방향으로 어떻게든 설득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었습니다.
아마도 1920년대 이래로, 혁명적 좌파는 대부분 두 번째 입장(기존 노조 안에서 반대)을 취해왔던 것 같습니다. 미조직된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조직하고 사측에 맞서 투쟁하려 할 때, 기존 노조를 찾아가 자신들을 조직하고 투쟁을 이끌어달라고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혁명가들과 급진적 활동가들은 이미 존재하는 노조에 관여할 필요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들이 어떤 행동을 취하려고 할 때 그로부터 소외되겠죠.
급진적 활동가들은 노동자들을 급진화시키거나 사회주의 조직화를 위해 조직 노동자들 사이에서 어떤 전략을 사용했었나요? 지난 5년간 노동 구조의 변화가 이런 전략에도 변화를 가져왔다고 보시나요? 1920년대 이래로 다양한 노동 관계들이 있어왔고 노동력의 성격도 변해왔는데요.
맞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1920년대와 오늘날은 좀 닮아있죠. 노동력의 작은 부분 - 대체로 숙련 노동자 - 만 조직화되어있고 그마저 급격한 감소 추세에 있습니다. 그리고 관료들이 여기저기서 흥정을 벌이고 있고요.
1930년대까지 혁명가들은, 대부분 (노조) 내부에서 반대를 건설하는 전략으로 옮겨갔습니다. 노조가 있는 곳에 접근하고, 조합원이 되고, 산업 노조주의에 찬성하는 등등의 주장을 했습니다. 미조직 작업장에서는, 즉각적 고충을 해결하기 위한 소수 노조를 만들려고 했죠. 이런 노조의 활동가와 조직자는 대부분그 작업장의 급진적 활동가들이었습니다.
1930년대 후반과 40년대 초에, 공산당은 노조가 파산하고 관료적이 되는 만큼, 현재 존재하는 노조에만 관련맺을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지지하는 진보적 지도자들을 찾아야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부터 미국의 사회주의 좌파 대부분은 노동운동에서 이 입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90년대 초에 AFL-CIO(미국노동총동맹산별노조회의: American Federation of Labor and Congress of Industrial Organizations) 대표로 존 스위니(John Sweeney)가 당선된 것에 사회주의자들이 대단히 열광했던 것이죠. 그들은 그가 새로운 노동자 그룹과 이민자들을 조직하며 노동운동에 새 활력을 가져다 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후에, 많은 급진파들은 Andy Stern이 대표였을 때 북미서비스노조(Service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가 제안한 모델에 관심을 가졌는데, 왜냐면 새로운 노동자 그룹을 조직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시(市)의 노동 의회를 통해 지역의 진보적 노조 간부들에게 접근하려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마찬가지 이유인 것이죠.
불행히도, 이 사람들은 이라크 전쟁이나 건강보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옳은 이야기를 하지만, 작업장에서는 더 보수적 노조와 마찬가지로 고용주들과 협력 정책을 수행합니다. 오직 미국 좌파 중 소수만이, 지난 삼사십 년 동안, 아래로부터 투쟁을 재건하는 데 헌신해왔습니다.
개혁 운동 단위를 건설하는 데, 가장 성공적 사례는 Teamsters for a Democratic Union(민주적 조합을 위한 팀스터회)입니다. 또는 노조가 없는 작업장 - 미국 대부분의 작업장이 그러한데 - 에서는 ‘소수 노조’를 건설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소수 노조’란 노조처럼 활동하는 작은 조직인데 National Labor Relations Board(전국노동관계위원회: NLRB)의 선출 과정을 통하지 않아도 됩니다.
현재 조직된 노동자의 비율은 National Labor Relations Act(전국노동관계법)을 통해 교섭권을 쟁취했을 때보다도 낮습니다. 제가 볼 때는 노동을 미국에서의 사회주의 활동이나 투쟁 건설에 중요한 부분으로 보는 젊은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은 경제에 상당한 변화가 있어왔고, 그래서 산업에 집중하는 전략이 더는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이것을 ‘프레카리아트’라고 부릅니다. 이 개념에 대해 소개해주시고, 왜 이 개념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지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새로운 사회 계급이 출현했다거나 노동계급의 새로운 층이 형성됐다는 개념은 1970년대 후반이나 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신자유주의 공세가 시작되던 때였죠. 새로운 부류의 사람들이 형성되었다는 생각이었는데, 이들 삶의 특징은 단기간의 임시적 시간제 노동, 사회적 보호막이나 보험이 없는 저임금 등이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까지 불안정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랑스 사회학자들이 많았습니다. 영어권에서는,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이 이 주장을 더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The Precariat>라는 책을 냈었습니다. 그의 주장은 프레카리아트가 노동계급과는 구분되는 사회계급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노동계급을 산업화된 세계에 있는 1950년대와 60년대의 조직화된 노동계급으로 정의하였습니다. 그 때는 고용이 정규직이었고, 일자리가 보장되었으며, 20~30년씩 한 곳에서 일하던 때였습니다. 마음대로 고용되거나 해고될 수 없는 때였죠.
그에 따르면 프레카리아트는 계속 증가추세에 있으며, 특히 젊은이들과 유색인종에게 많고, 노조가 없는 작업장에 더 많이 고용되어 있으며, 시간제로 일하고 가장 중요하게는 불안정한 단기직이라는 겁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일자리를 바꿔야 하고, 이 직업에서 저 직업으로 옮겨다니죠. 그 주장의 핵심은 이 프레카리아트라는 계층이 더 많은 급진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내가 느끼는 의문점은, 일단 프레카리아트를 하나의 구별되는, 노동계급 중에서 불안정 고용된 부분, 또는 아예 다른 계급으로 정의하는 것이 실증적으로 과연 정확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케빈 두건(Kevin Doogan)의 <New Capitalism?>이라는 좋은 책이 있는데, 이 불안정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대부분의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분명히 시간제 일자리가 증가하였습니다. 의료 복지 분야와 상점, 월마트같은 대형 마트에서 그렇죠. 그러나 그가 지적하는 것은, 시간제 일자리는 연금이나 의료 보험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고용주들이 많이 선호하지만, 반면에 일자리 자체는 매우 안정적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몇 달만 일하지 않아요. 대신 어떤 때는 같은 곳에서 10년이나 15년씩 일합니다. 다만 풀타임이 되지 못할 뿐이에요.
두건은 프레카리아트라는 개념이 그렇게 많은 호응을 얻은 이유가 고용이 불안정해진 사람들의 수가 늘어났기 때문이거나, 그들이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이어서가 아니라, 지난 30년간의 패배와 신자유주의의 부상, 복지국가의 해체가 2차 세계대전 후보다 오늘날의 노동자에게 실업을 훨씬 더 심각한 문제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십대 후반이나 20대였을 때 - 1970년대에 급진화되었던 세대죠 -, 내 친구들 중에는 우체국이나 뉴욕 브루클린 해군 공창에서 일자리를 얻은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만일 정치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일시 해고당하거나 짤리면, 실업수당을 받고 푸드스탬프(식품 구입권)를 얻고 메디케이드(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장 제도)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면 다른 일자리를 빨리 찾을 수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신자유주의의 성공적 공세로, 사회복지를 제공하는 풀타임 일자리를 찾기란 훨씬 더 어려워졌고, 전반적으로 복지 혜택이 감축되거나 사라졌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회사에서 해고당하는 것의 결과는 몇십 년 전에 비해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낳습니다. 이때문에 ‘모든’ 노동자들 사이에서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풀타임 일자리를 가진 소위 ‘특권층’ 노동자들로부터 풀타임 직업을 얻을 전망이라곤 없는 월마트에서 시간제로 일하는 사람에게까지 예외가 없습니다.
이것은, 작업장 조직화가 연이어 실패하고 조직이 축소되는 현상과 함께,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던 사회적 힘이 사라졌다고 느끼게 했습니다. 이는 또한 많은 좌파들이 산업 노동계급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감소한 것이 뭔가 새로운 현상이라고 믿는 경향을 낳았습니다. 그들은 자본주의에 역사적 변화가 생겼다고 주장합니다.
진실은 산업 분야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비율이 이미 1880년대와 1890년대부터 감소해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본이 지역적으로 이동한 결과보다는 기계화의 결과입니다. 기계화와 생산속도 촉진 또는 린 생산방식(lean production)은 급격히 증가해왔습니다.
린 생산방식은 굉장히 과학적 경영방식인데, 일을 아주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으로 잘게 쪼개서, 사람들을 더 열심히 빠르게 일하게 만듭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지난 백 년 동안의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차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의 수는 훨씬 적죠. 그리고 고용주들의 공세 때문에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의 비율도 적습니다.
따라서 불안정성이라는 개념은 탈산업화(제조업의 쇠퇴화)라는 개념과 함께 가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는 노조 간부들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노조 운동이 이처럼 형편없게 되어버린 이유가 2차 세계대전 이후로 고용주들이 사회계약을 파기해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더 이상 우리를 정규직으로 고용하지 않고, 복지를 제공하지 않고, 중국으로 공장을 옮겨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관료주의적 실리적 조합주의 - 노조 조직율을 유지하려고 NLRB에 의존하는 것 - 의 실패를 인정하는 대신, 그런 변명을 합니다.
사람들을 행동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이런 생각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그들이 ‘프레카리아트’라는 생각을 갖게 한 이런 시간제와 서비스 일자리를 어떻게 조직할 수 있을까요?
이 개념을 활용하는 가장 유용한 방법은 리차드 세이무어(Richard Seymour) – ‘레닌의 무덤’(Lenin’s Tomb) 블로그 운영자 - 가 말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불안정 노동자다.” 노동조합의 해체와 신자유주의의 공세는 모든 노동계급이 다들 이런 저런 방식으로 불안정한 상황에 처하게 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조직화밖에 없습니다. 불안정 노동자들이 많은 투쟁을 통해 정규직이 되고, 풀타임 일자리, 일자리 안정성, 복지 혜택을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을 확대해가면서요.
이는 우리와 같은 급진적 활동가들이 전략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상점인 월마트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주 많은 토론이 있었습니다. 이를 시도했던 많은 노조들은 상점 별로 조직화를 시도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볼 때, 그러한 방법은 중요하고 포기해서도 안 되지만, 이는 핵심적 전략이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상점에 있는 어느 노동자 집단도, 심지어 정규직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영업을 마비시키고 월마트에게 뭔가를 내놓으라고 압박할 사회적 힘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죠.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사례는 미국 전기 노조(United Electrical Workers)입니다. 여기는 가장 많은 소수파를 조직한 노조이고, 그러면서이들은 상점보다 유통센터에 집중했죠. 유통센터에는 적시재고시스템(just-in-time inventory systems)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물건이 다 들어왔다가 나가잖아요.
소매점과 오늘날 가장 많은 사람들이 근무하고 있는 산업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 고민하는 우리는, 또 자동차, 고무, 운송과 같은 전통적 산업 분야도 재조직하길 원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만일 월마트를 조직하려고 생각하는 젊은 급진파들이 있다면, 상점에서 일자리를 얻는 것이 좋을지 유통센터에서 일자리를 얻는 게 좋을지 생각해야 합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소규모의 단결된 급진파들이 회사 업무에 지장을 주고 사측을 굴복시키는 힘을 단기간에 형성할 수 있고, 더욱 많은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단순작업화, 파편화, 생산속도 촉진, 더 많은 불안정성이 모든 노동자들을 위축시킨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특히 린 생산방식과 적시재고시스템이 전략적 위치에 있는 노동자 조직에 더 많은 영향력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
만일 사람들이 진지하게 월마트를 조직하려고 한다면, 유통망의 핵심 고리에 집중했던 UEW의 사례를 따라야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고리를 폐쇄시키면 하나의 상점이 아니라 수십 개의 상점을 폐쇄시킬 수 있기 때문이죠. 자동차의 경우, 특정 부품의 핵심 공급처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운송의 경우에는, 운송망의 요소들을 살펴보면 되겠죠.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내에서 노동자들은 반(半)불안정 상태에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불안정성이란 어떤 구분되는 분류나 새로운 국면이 아니고요. 그리고 이런 불안정성에 대항해 싸우고 사람들의 삶에 안정성을 가져오는 건 평범한 노동자들을 의식적으로 조직하는 것이라는 말씀이시고요.
정확합니다. 1차 세계대전 이전 노동자들의 상태를 생각해보면, 예를 들면 1890년이라고 하죠, 절대 다수의 일하는 사람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저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일하던 숙련 노동자들 - 흔히 ‘노동귀족’이라고들 하죠 - 에 대한 연구를 좀 했었는데요. 그 사람들 중 대부분이 1년 중 반만 일했습니다. 나머지 기간 동안에는 오랜 실업 상태에 있었죠. 그 사람들이 일이 없을 때는, 집을 잃을 수도 있었어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규직 풀타임 노동을 하는 노동계급이란 부분도 소수 있었지만, 많지 않았지요.
오늘날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표준”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사실 역사적으로 예외에 속합니다. 194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는, 산업 국가의 노동계급에게 예외적인 기간이었어요.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노동자들은 주요한 정치적 압박을 가해서, 자본으로 하여금 대대적 개혁을 할 수 밖에 없게끔 만들었죠. 그 후에 경쟁과 이윤율의 압력이 자본을 여기저기에서 압박하고 (노동자들로부터의) 저항이 사라지자, 우리는 다시 1880년대와 1890년대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기존에 노조들이 시(市)정부나 국가 기관에 노동 개혁을 수용하도록 어떻게 압박을 가했는지 좀 얘기해주시겠어요? 작업장이 너무 작거나, 또는 충분한 힘이 없으니까 정부를 통해 압력을 가한 것이잖아요. 자본을 압박하는 것과 국가 기관을 압박하는 것에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일단은 지역 정부에 압력을 가해서 더 좋은 노동 기준을 마련하게 하는 것이 조직화 방식의 한 통로라는 점을 밝혀야겠네요. 그것은 조직 노동자들이 그들 지역의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의 노조 간부들 특히 전미식품상업노조(United Food and Commercial Workers)와 북미서비스노조(Service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가 이것으로 작업장 조직화를 대체하려 해왔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작업장에서는 너무 약하니까, 정부를 끌어들여 규제하게 만들자라는 생각인 것이죠. 이는 노조 간부들이 가진 세계관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굳이 연좌농성하며 공장점거할 필요는 없다. 노동위원회를 이용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죠.
현실은 노동자들이 어느 정도라도 실제 사회적 힘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정부 관료들이 그들의 선거 캠페인에 돈을 대고, 지역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람들에게 맞설 이유가 없다는 점입니다. 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의 사회적 힘을 발휘하지 않으면, 정부 규제를 강제하는 지역 캠페인을 성취할 능력도 매우 제한된다는 것이지요.
최저임금 캠페인들을 살펴보면, 단결된 작업장 행동을 동반하지 않은 곳에서의 운동은, 성공적이지 못했거나, 법제가 지극히 제한적이거나, 실행 자체가 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좌파에서는 국가와의 협력에 의존하는 것이 문제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들은 태프트-하틀리 법(Taft-Hartley: 1947년에 제정된 미국의 노사관계법으로 노동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파업권 제한, 노동조합의 ‘부당노동행위’ 금지 등을 골자로 한다)과 NLRB로는 성공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봅니다. 그들의 모델은 IWW와 단결된 불법 행위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입장은 이 둘 사이 어디쯤인 것 같은데, 어떤 입장인지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사람들이 “이제까지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나. 그러니까 다 집어치워”라고 말하는 것도 이해가 가거든요.
일단 그런 반응은 건강한 겁니다. 하지만 그런 반응이 실제적인 전략을 대체할 수는 없어요. 문제는 그런 생각이 각자 고립된 작업장에서 우리가 자본에 대항할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되돌아가게 한다는 점입니다. 그 다음엔 뭐 어떻게 할 건가요? 작업장들 간에 행동을 어떻게 조정해낼 것인가요?
IWW 회원들 중 일부는 1980년대에 아주 강력한 조직을 가지고 있었던 스페인 항만노동자들의 사례를 지목했었죠. 조직은 아주 강력했지만 그들은 생디칼리스트적인 영향 때문에 전국적 교섭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고용주들이 더 공격적이 되면서, 한 전투적인 항만 노동자 집단을 다른 집단과 이간질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항구로 옮기겠다고 협박하면서요. 그런 식으로 더 낮은 임금과 처참한 노동 규칙에 동의하게 했습니다.
즉, 문제는 ‘현장에서 강력한 투쟁과 조직을 건설하는 것’과 ‘국가와 협상 속에서 그것을 제도화하는 것’을 아래로부터의 민주적인 방식으로 어떻게 조율해낼 것인가 입니다. 노동자들이 역사적으로 성취해낸 권리들을 제도적 측면에서 어떻게 더 진전시켜낼 수 있을까요?
더 나은 노동운동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읽어야할 좋은 책이 있습니다. 조 번(Joe Burns)이 쓴 <Reviving the Strike: 부활하는 파업>라는 책입니다. 전국노동관계법 체제에 대해 매우 균형잡힌 이론적 틀로 설명했고, 그것이 어떻게 1950년대와 60년대의 호황 시기에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는지 설명합니다. 그러나 호황이 끝나고나서 고용주들은 더 공격적이 되었고 그 법은 조직 노동자들이 반격하는 데 있어 더 많은 제한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이제 NLRB를 무시해야 한다고는 말하지 않아요. 다만 그는 노조가 더 체계적 방식으로 법을 극복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파업을 연장하고, 확대하고, 불법도 불사하며 사법적 테두리를 벗어나라고요.
그는 ‘소수파’ 활동을 해온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노조처럼 실천할 조직을 건설한다.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조직하고, 비슷한 산업의 다른 노동자 집단과 연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사용자들이 이를 인정하도록 어떻게 압박할 것인가? 거기서 질문이 발생합니다.
실제적 힘과 아래로부터의 압박을 유지하는 문제, 그리고 NLRB 선거에 참가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출 것인가하는 질문이죠. 이 지점이 노동운동 좌파가 돌아가야 할 곳입니다. 왜냐하면 노동운동 좌파는 “NLRB 선거를 이길 전략을 알아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다 집어치워라. 각자 조직화할 거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양극화돼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프레카리아트라는 개념이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대답해주시겠습니까? 어째서 프레카리아트라는 분류가 드러내는 사실보다 감추는 사실이 더 많은지, 노동계급 전체가 더 많은 불안을 경험하고 있고 그것이 전반적으로 다 불안정성을 느끼게 한다는 설득력있는 주장들을 펴주셨는데요. 하지만 서비스나 상점 판매직 자리을 떠날 수 없거나 떠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일반적으로 얘기해서, 우리 모두가 다 불안정하다는 주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이 현재 속한 곳에서 조직화하는 경험을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계에 대해 말하기보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현재 우리가 속한 작업장에서 우리가 무슨 영향력을 가지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의 잠재력과 한계 속에서 어떻게 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합니다.
그건 어떻게 월마트와 다른 대형마트, 가정 건강 관리 보조, 비노조 병원같은 곳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는 것입니다. 직접 부딪히면서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세요.
자신의 작업장을 조직화하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절대로 그것이 시간 낭비라고 말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 말은 극좌파에 오명을 안겨준 일종의 보수주의고, 그런 말을 했다면 오명을 얻을만도 합니다.
* ‘변혁재장전’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 http://rreload.tistory.com/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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