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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혁신

민주집중주의 조직에서 토론의 역할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5. 6. 11.

데이비드 홀링스

번역: 박상우

 

[이 글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내에서 2013년 내부 논쟁 과정에서 나온 글이다. 기간이나 범위를 제한하면서 규율 위반이라고 징계할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토론과 논쟁, 비판과 이견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다루고 있다. 논쟁의 구체적 맥락이 있기는 하지만, 민주집중제와 레닌주의에 대한 재평가와 혁신을 위한 고민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라서 번역 소개한다.]

 

출처:http://prisonersofwant.tumblr.com/post/54626496551/the-role-of-debate-in-a-democratic-centralist

 

몇몇 신성한 공식을 아무 생각 없이 되풀이하는 것이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종파는 스탈린주의자들뿐 아니라 트로츠키주의자들 사이에도 많다. 그러나 진정으로 전통을 구현한다는 것은 끊임없는 창조적 혁신을 필요로 한다.”

 

우리의 민주집중주의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충분히 토론한 후에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일단 다수결로 결정을 하면 그것은 모든 당원에게 구속력을 가져야 한다. 이는 우리 생각을 실천에서 검증하고자 한다면 꼭 필요한 것이다.”[각주:1]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글, ‘레닌주의는 끝났는가?’(Socialist Review, February, 2013)에서 가져 온 위의 문장들은 레닌주의 조직에 대한 두 가지 다른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첫 번째 문단은, 사회주의 전통이 계속 유의미하려면, 그것은 무언가 정적이고, 돌에 새겨져 바꿀 수 없는 것일 수 없다고 올바르게 얘기한다. 즉 우리가 그 속에 살면서 바꾸려고 노력하는 객관적 조건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두 번째 문단은 이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 문단은, 민주집중제 모델이 토론, 투표, 행동 통일이라는 3단계 공식으로 축소될 수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 생각을 실천에서 검증하려면, 이 공식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이는 참 과감한 주장인데, 왜냐하면 어느 사회주의 조직이든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서 검증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이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모든 사회주의 조직은 자신들의 생각을 실천에서 검증하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변혁활동가들인 것이고, 자본주의 변혁을 위해 실제적 전략을 짜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모든 사회주의 조직이 반드시 위의 모델을 사용해야 한다는 뜻인가? 유감스럽게도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무 생각 없이 신성한 공식을 되풀이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어떻게 서로 모순돼 보이는 이 두 가지 생각이 나타난 것일까? 민주집중제란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되풀이해야할 신성한 공식인가, 아니면 우리는 객관적 조건의 변화에 조응하며 끊임없이 이를 조정해야 하는가?


만일 위와 같은 민주집중제 모델이 우리의 생각을 실천에서 검증할 유일한 방법이라면, 분명 이 모델은 믿을만한 모든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에서 사용됐어야만 하며, 최소한 국제사회주의자들(IS)과 사회주의노동자당(SWP)에서는 창립 이래 계속 적용되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들이 진정으로 영향력있는 혁명가들이 아니었으며, 진정한 혁명 운동은 단 한가지 올바른 민주집중제 모델과 함께, 이제 겨우 시작됐다는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토니 클리프의 <레닌: 당 건설을 향하여>의 인용구에서, 레닌은 민주집중제에 대해 조금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하는 것이 문제될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훈련의 중요성과 이 개념이 노동계급 정당에서 어떻게 이해되어야할 지에 관한 이론적 관점을 이미 여러 번 밝혔다. 우리는 이를 행동의 통일, 토론과 비판의 자유로 정의했다.”[각주:2]


이 개념은 캘리니코스의 공식과 동일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 둘 간의 차이를 알아채기란 별로 어렵지 않다. 둘 다 토론의 자유를 말하고, 행동의 통일을 말한다. 그러나, 비슷한 점은 거기까지다. 캘리니코스에게 토론은 투표와 함께 끝난다. 레닌에게, 토론은 행동(실천)과 병행된다. 토론과 행동은 상호 작용하기 때문에, 그 둘은 구분되지 않는다


투표로 결정이 났다고 토론의 필요성이 사라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봉기와 같이 즉각적이고 규율잡힌 행동에 직면하지 않는 한, 행동 방침을 다수결로 정하자마자 토론 의무가 종결될 수는 없다. 그러한 상황(봉기)에서조차 즉각적 상황이 지나가면, 곧바로 그 전략에 대한 총체적이고 솔직한 평가가 있어야만 한다. 그 상황에 가장 적절한 전략을 택했었는지 확실히 밝힐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토론을 통해서다.


단일한 노선으로 어떻게 전망을 검증하는가?


액면 그대로다. 이 질문은 통일된 방식으로 우리의 전망을 검증해야 한다는 생각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조직 내부에서 토론과 반대의견을 금지한다면, 결정된 노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공공연히 이야기하면서 그 결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물론 반대의견을 가로막지 않으면,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를 공공연히 피력할 것이며, 다수의 결정에 반대해 적극 활동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동지들을 이보다 훨씬 더 높이 평가하며, 이견을 대담하게 말하면서도 동의하지 않는 결정의 실천에는 동참하리라고 믿는다.


많은 경우 자유롭게 반대할 수 있는 환경이 단결된 행동을 더 많이 보장한다. 이안 버철이 지적했듯이, 만일 어떤 동지가 다수 결정에 동의하지 않고, 계속 설득되지 않은 채로 있다면, 그는 다수 결정에 맞서기 보다, 그 결정의 실행에 힘을 싣지 않을 것이다.


변혁적 정치는 확신에 달려있다. 동지들은 단지 투표로 결정했다고 해서 새벽 6시에 비가 오는 와중에 신문을 팔러 나가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 신문의 내용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그리고 신문과 조직에 대한 자부심이 있을 때 비로소 그렇게 한다.”[각주:3]


, 만일 지도부가 단결된 행동을 원한다면 시간을 정해서 개표와 함께 토론을 막아버릴 게 아니라, 충분한 토론 시간을 보장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표결에서 이기길 원하는 지도부는 협의회에 가능한 더 많은 지도부 친화적 인물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조직할 것이고, 반대파의 논쟁할 권리를 제한할 것이다. 그래서 많은 당원들이 [괜시리] 혼란스러워할 필요가 없게끔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반면,] 토론에서 이기길 원하는 지도부는 협의회에서 가능한 많은 시간과 장소를 반대파의 주장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공할 것이다. 협의회 진행위원들이 중립을 지키도록 할 것이며, 반대파의 가장 뛰어난 논자들이 토론에 나설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것은 어떤 자유주의적 도덕 원리에서 공평성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토론에서 상대를 승복시키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토론에서 이기고자 하는 지도부는 그들의 입장과 소수파를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렇게 할 것이다.”[각주:4]


두 가지 민주주의 모델


사실 최근 몇 달간 SWP에 있었던 동지들이라면 위에 언급된 두 가지 형태의 민주집중제가 다양한 쟁점들에 적용돼왔음을 잘 알것이다. 우리가 UNITE 노동조합 사무총장 선거에서 제리 힉스를 지지하기로 결정하였을 때, 당내 일부는 렌 맥클러스키를 지지하였다


그들 중 다수가 표결 전에 자신들의 견해를 피력했으며, 투표 종료 이후에도 맥클러스키를 지지했어야한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하였다(렌 맥클러스키는 2011년부터 UNITE의 사무총장으로 재직했으며, 2013년 선거에서 144,570표를 얻어 재신임되었다. SWP가 지지했던 제리 힉스는 79,819표를 얻어 당선되지 못하였다.) 


캘리니코스에게 이런 행동은 규율위반이겠지만, 그러나 레닌에게는 그들이 적극적으로 맥클러스키를 위한 선거운동을 했어야만 규율위반이었을 것이다. 내부에서 반대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은 생각을 주고받는 건강한 행동이다


레닌에게 있어서, 드러내놓고 총회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충분히 받아들여질만한 일이고, 규율위반이란 오직 어떤 동지가 적극적으로 결정에 불복해 행동했을 때만 발생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우리가 내린 결정이 틀렸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용인하는 것이 바로 레닌주의 전통인 것이다.


이는 캘리니코스의 글이 겨냥했던 악명 높아진 어느 징계 사건와 대조된다. 이 사건에서는, 총회가 끝나자마자 바로 토론을 종결하려 했다. 일단 표결로 결정이 내려지면, 그 결정은 옳은 것이고 더는 논쟁할 수 없으며 이제는 단결해서 앞으로 나아가야한다고 했었다.


이것은 사실 더 나약한 형태의 민주집중제이다. 어느 행동 방침이 최선인가를 찾기보다 어느 행동 방침을 따라야하는가를 표로 결정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수결로 행동 방침을 결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투표가 올바른 답을 정해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투표로 A를 결정하는 것은, A가 꼭 정답이라는 게 아니라, 단순히 A가 이제 우리의 할 일이라고 말하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A에 투표하였다고 다른 대안들을 토론할 수 없다는 것은 터무니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올바른 답을 찾으려는 우리의 능력을 되려 제한한다. 투표는 행동 방침을 결정할 수는 있어도, 정답을 알려주진 않기 때문에, 지속적인 논쟁과 그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재평가하는 시도가 있어야만 한다.


자신의 관점을 검증하길 원하는 사회변혁 활동가들이 이용하는 민주집중제에는 결코 한가지 형태만이 아니라 두 가지 버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버전이 우리가 처한 객관적 조건에서 최선인지 토론할 수 있다.


총회 결정의 권위를 유지하는 법


민주집중제의 어떤 버전도 총회의 결정이 반대 의견그룹에 의해 번복되는 것을 허용하지는 않는다. 일단 내려진 결정은 모든 회원에게 구속력을 가질 것이다. , 결정이 이루어진 후에도 토론이 허용되고, 그 결정에 동의할 의무를 강제하진 말아야 한다.


이는 결정을 따를 의무가 없다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가 보았듯이 제리 힉스를 위한 선거운동을 하라는 의무는 있었지만(아니면 최소한 맥클러스키를 위한 선거운동을 하지 말라는), 동지들 간에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토론하는 것을 금지하지는 않는다.


분쟁조정위원회 보고서에 있던 협의 내용은, 총회에서 인정된 보고서가 다음 총회에서 표결로만 번복될 수 있는 건 문제라는 것이었다. 이는 보고서를 채택한 총회 결정을 지지하면서도, 보고서의 성격과 절차에 대해서 더 많은 논쟁이 필요하고 또 이후 총회에서 보고서의 승인이 번복되도록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어떤 모델이 가장 효과적인가?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의 성격에 대한 철저한 분석없이 현재 상황에서 어떤 형태의 민주집중제가 가장 적절한가를 정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예를 들어 노동자 투쟁의 하강기에 중앙집권적 지도부는 조직 결집을 위해 필요할 수 있다


계급투쟁의 고양기에는, 노동계급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지도부가 혁명적 투쟁의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기에 개별 단위와 작업장에 더 많은 자율성이 필요할 수 있다. 나는 현재 오늘날 영국의 계급세력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제공할만한 위치에 있지 못하므로 일반적인 논점을 유지하겠다.


현재 우리는 우리 편의 투쟁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고 지배계급으로부터의 공격은 폭압적인 시기에 살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계급투쟁의 수준이 낮지만, 그럼에도 특정 사안들, 예를 들면 침실세 반대(침실세는 영국에서 공공임대주택 등에 살며 주택보조금을 받는 서민층에 부과되는 것으로, 가족수에 견줘 집에 남는 침실이 있으면 주택보조금을 14~25% 삭감한다는 내용이다), NHS(국민의료제도) 매각 시도 반대에서는 국지적 저항이 있어왔다


어느 것이 먼저 터질지는 불확실하더라도 여전히 반격할 수 있는 많은 사안들이 있다. 이와 같은 시기에는, 당이 신속하게 방향을 전환할 수 있어야만 한다. 사람들이 반격에 나서는 특정 사안을 중심으로 에너지를 모으면서, 다른 쟁점에 대한 투쟁이 벌어질 때 초점을 바꿀 수 있는 전술적 유연함을 유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침실세 사안에 모든 관심을 쏟고 있었더라도, 사회보장급여 상한제에 대한 저항이 더 크다면 우리가 이쪽으로 초점을 변경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할 것이다. 그러려면, 조직의 결정을 실행하면서 동시에 내부에서 대안적 견해를 발전시키고 주장하는 민주적 구조와 목소리들이 지속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레닌 없는 레닌주의


그렇다면 이러한 대안적 견해들은 어디에서 오는가? 지도부에서 나와서 당에 제시되는가? 처음부터 완전히 형태가 갖추어져서 시행되기 전에 투표만 하면 되는 식으로? 당연히 그렇지 않다. 이에 대한 교훈은 볼셰비키 지도부 안에서 왜 그렇게 잦은 교체가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토니 클리프의 글에서 얻을 수 있다.


어떻게 지도부 내에 이런 신속한 교체가 있었던 걸까? 당의 지도적 인사를 선정하는 절차 자체에 위험요소들이 내재돼 있었다. 상층 지도부까지 접근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그들의 작업, 사고, 행동 방식을 특정한 당면 요구에 맞춰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 러시아 혁명운동은 계급투쟁에서의 변화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었으며, 한 단계에서의 당면 요구에 적응했던 지도자는 다음 단계에서는 맞지 않았다. 예를 들어 보그다노프, 루나차르스키, 크라신은 1905년 혁명의 폭풍기에 적절했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후 반동과 더딘 발전의 시기에는 잘 맞지 않았다. 지노비에프, 카메네프는 즉각적인 혁명의 가능성을 과장하는 것이 실수라는 교훈을 고생하면서 배웠고, 반동과 이후 소소한 행동들 - 두마 활동, 보험 운동 등 - 의 시기에 더디고 체계적인 조직화와 시위의 일을 맡은 사람들이었다. 1917년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시기에 와서는, 지노비에프, 카메네프는 역량이 부족한 지도자가 되었다.”[각주:5]


레닌은 볼셰비키 지도부에서 혁명의 전반적인 전략과 투쟁의 당면한 요구 사이의 균형을 지속적으로 잘 잡던 사람이었다. 레닌은 모든 상황에 적응할 수 있었고, 자신의 주장을, 주로 소수의 위치에서, 피력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 중앙위원회 멤버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레닌과 같은 정치적 식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가장 중대한 이단 행위가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이 점을 고려는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레닌은 분명 러시아 혁명 배후의 유일한 원동력이 아니었지만, 그의 전술적 이해와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는 능력이 혁명의 성격을 그런 방식으로 형성하였고 그가 없었다면 혁명은 성공적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레닌이 역사상 위대한 혁명가 중 한 명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오늘날 혁명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그러한 인물이 지도부에 없더라도 기능할 수 있는 혁명조직을 건설하는 것이다.


언급했다시피, 현재 시기는 전반적으로 투쟁 수준이 낮으면서도 어느 것이라도 일촉즉발할 수 있는 많은 잠재적 쟁점들이 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는 필요하다면 곧바로 방침을 신속히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1월 협의회에서 표결로 결정한 전망이 다음 협의회 사전토론이 시작되는 9월까지 우리의 대안을 제한한다면 충분히 신속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어떤 전망이 현실과 맞지 않음을 깨닫고도 중앙위원회가 허가를 내줄 때까지 그것을 교체하지 못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가능한 모든 토론과 논쟁은 언제나 필요하다. 이것은 단결된 행동의 가능성을 방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만일 어떤 행동 방침이 적절하지 않았음이 드러나면, 새로운 전망을 개발하고 설명하는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동지들은 이미 새로운 주장들을 들었고 그것들을 실행하기 전부터 잘 알고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오직 우리의 전술적 유연함을 증진시키고 레닌과 같은 인물을 지도부에 갖고 있지 않은 문제를 극복하게 도와줄 뿐이다.


결론


그럼 어떻게 내부 토론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가? 그 답을 나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다음 두 가지 제안을 하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첫번째로,


협의회에서 통과된 노선은 최종 결정안이다. 재고되거나 (논의가) 재개되거나 후속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라는 문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용되어선 안 된다. 보안 유지에 대한 요구가 있을 때는 논의 대상과 정보 공개 대상을 제한할 수도 있지만 토론에 기간 제한을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1월에 토론을 할 수 있다면, 동일한 주제에 대해 2월에도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로, 당의 출판물에 게재할 수 있는 글들에는 분명한 제한이 있다. 시간과 공간(매년 단 4권의 ISJ[계간 이론지]가 출간되며 그 사이의 토론은 너무 더뎌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보안의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집중적 토론 기간에 우리는 어느 동지라도 자신의 견해를 발표할 수 있는 월간 내부 회보라는 아이디어를 고려해봐야 한다


당의 여러 편집부가 검토한 후에야 글의 게재를 허용하는 것은 잠재적으로 유용할 수 있는 주장들을 억압할 위험이 있다. 공식적인 당 이론지를 갖는 것이 중요하지만 자유롭고 공개적인 논쟁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결국, 우리의 이론은 지도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노동계급과 다수 회원인 노동자, 그 자신들에 의해 좌우되어야 한다. 던컨 핼러스가 말했듯이 (약간 다른 맥락에서 말하긴 하였지만),


지도부/배신 신드롬의 부정적인 특징 중 하나는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이 이미 있다고 전제하는것이다. 그것들은 최종적이고 확정적인 프로그램 안에 담겨있다. 프로그램의 순수성을 지켜내는 것은 선택받은 소수의 주요 업무 중 하나로 보인다. 새로운 해법을 요하는 새로운 문제들이 존재한다는 것, 동료 노동자들을 가르칠 뿐 아니라 그들로부터 배워야한다는 생각 등은 환영받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 문제다. 개인뿐 아니라 조직도 전지전능할 수는 없다. 겸손함과 유연함,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각주:6]


만일 모두에게 (견해를 피력할) 공간이 제공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개진하기 위해 지도부에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면 새로운 이론은 발전할 틈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정책은 정체기를 맞이할 것이다. 이론의 지속적이고 창의적인 발전없이 사회변혁 조직이 계급 투쟁의 발전과 변화에 맞추어나가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그러한 발전을 위해서는, 내부 토론의 자유를 발전시키는 것이 필수적이고, 동지들이 단결된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는 한 쟁점과 전망에 대한 토론을 언제 얼마까지만 허용한다는 제한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마지막으로 핼러스의 말을 빌려 글을 마치겠다.


그러한 혁명적 정당은 철저하게 민주적인 토대없이는 절대 생겨날 수 없다. 만일 그 내부에 활발한 논쟁이 일반적이지 않고 다양한 경향과 각양각색의 의견이 나타나지 않으면, 사회주의 정당은 분파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 내부 민주주의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그것은 당원과 그들의 운동간 관계의 본질이다.”[각주:7] 


변혁재장전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http://rreload.tistory.com/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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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 Callinicos, “Is Leninism Finished?,” Socialist Review, pp. 17-31, February 2013. [본문으로]
  2. Lenin, Collected Works, vol. 11, p. 230. [본문으로]
  3. I. Birchall, “What Does It Mean To Be A Leninist?,” Socialist Review, pp. 22-24, 06 2013. [본문으로]
  4. I. Birchall, “What Does It Mean To Be A Leninist?,” Socialist Review, pp. 22-24, 06 2013. [본문으로]
  5. T. Cliff, Lenin: Building the Party 1893-1914, Bookmarks Publications, 1975. [본문으로]
  6. D. Hallas, “Towards a Revolutionary Socialist Party,” in Party and Class, London, Bookmarks Publications, 1971. [본문으로]
  7. D. Hallas, “Towards a Revolutionary Socialist Party,” in Party and Class, London, Bookmarks Publications, 197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