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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서평 -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를 읽고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5. 8. 19.

오명근



장하준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하는 작업 - 그래프와 각종 도식과 숫자들의 조합을 통한 경제학에 무언가 과학적 권위를 부여하려는 여러 번잡한 작업들 - 에 대해서 일침을 가해 왔다. 장하준은 경제학의 95퍼센트는 상식에 불과한데, 단지 전문용어와 수학을 동원해서 어렵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라고 일갈한다.


이는 나같은 어줍잖은 경영학부 전공생들이 듣기에도 참 시원한 발언이다. 그동안 경제학자들은 한마디로 너무도 쓸데없는 그래프와 방정식을 만들고 소위 폼을 잡는짓을 너무 많이 했다. 그러나 장하준은 경제학은 결코 한 가지 정답만이 존재하지 않는 열린 토론의 장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양한 경제학적 논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특정 경제상황과 특정 도덕적 가치 및 정치적 목표 하에서는 어떤 경제학적 시각이 가장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비판적 시각을 갖출 수 있도록 경제학을 배우는 일이다.”(15)

 

장하준은 케임브리지대 교수라는 엘리트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주장을 하며 일반 대중뿐 아니라, 진보개혁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준다. 나는 그가 제시하는 수많은 해외사례와 심지어 드라마에서도 현실에 걸 맞는 대사를 끄집어내는 것을 보며 무릎을 칠 때가 많았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는 그가 케인주의자이며 발전주의자이며 재벌경제에 타협한다는 비판을 할 수 있겠지만, 그가 제시하는 논점과 사례는 그리 쉽게 버릴 수 없다.


그는 주식, 파생상품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금융경제학이 각광을 받고 있지만, 자본주의 경제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임금과 노동환경이 훨씬 더 사활적이 문제이며 이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너무 도외시했다고 지적한다


임금과 노동환경은 정치적 결정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고 이에 관한 좀 더 심도 있는 고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소비분야관해 많은 연구업적으로 내놓고 있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소비를 제공하는 생산에 있다고도 강조한다.


진정한 경제학자라면 생산노동 및 임금 등에 대해서 대안을 내놓아야 하며 이것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영역이라 정치적 논쟁을 수반할 것인데, 이것을 맞닥뜨리며 그 논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경제학자들은 정치적 논쟁을 피하거나 새로운 변화를 망설였으며 이는 정치적인 보수성과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어떻게 여기에 도달했는가?

 

특히 장하준은 이 책의 자본주의 역사를 살펴보는 부분에서 신자유주의 경제학 이론이 얼마나 허술한가를 보여 준다. 예컨대 싱가포르가 자유무역정책을 시행하고 외국인의 투자를 환영하는 분위기 때문에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다고 주류 경제지들이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싱가포르 땅은 거의 모두 정부 소유이고, 주택의 85퍼센트가 정부가 소유한 주택개발위원회를 통해 공급된다. 싱가포르 총생산량의 22퍼센트를 국영기업이 담당하고 있다. 이런 사실 앞에서 신자유주의 이론은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서유럽 특히 영국과 벨기에, 네덜란드에서 16~17세기경에 탄생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시기에 식민지 확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탄생이 결코 과학의 발전, 새로운 기계의 도입으로 이루어지는 부드러운 과정이 아니었고, 엄청난 학살과 반인간적인 과정이었다는 것을 저자는 폭로한다.


대략 1,200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노예로 팔려 나갔고, 강대국이 임의로 그어놓은 국경선 때문에 지금까지도 내전과 국제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영국은 1700년 자국의 면방직 산업을 양성하기 위해 인도에서 생산된 면직물의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1835년 동인도 회사 총독 벤팅크는 면방직 장인들의 뼈가 인도의 대지를 하얗게 덮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1820~1870년 산업혁명 시기에 가혹한 노동환경 때문에 영국의 맨체스터 노동자들의 평균수명은 17세였고, 주당 80시간 노동을 해야만 했다. 이런 환경에서 반자본주의 운동의 발흥은 너무도 당연했다. 여기에서 소개하는 반자본주의 운동의 두 가지 큰 줄기를 저자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와 베른슈타인, 카우츠키등의 이른바 수정주의로 보고 있다.


수정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완전 폐기보다는 의회민주주의를 통해 노동자를 위한 복지정책과 복지국가 모델을 강조했다. 여기서 중요한 논쟁점이 나오는 데, 장하준은 결국 수정주의자들의 모델이 맞았고, 마르크스는 틀렸다고 말한다.


일반 세계사 교과서나 책에서는 19세기 서유럽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한 것은 자유무역과 자유시장의 확산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정말 경제학사를 조금만 살펴보면 완전히 틀린 내용이라고 장하준은 지적한다. 예컨대 영국 헨리 7세와 튜더왕조 군주들은 모방직 산업을 장려하기 위해 관세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보호무역을 실시했고, 총리였던 월폴은 전략적 산업에 대한 수출보조금 정책을 실시했다.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도 유명한 유치산업론을 주장한다. 유아기 단계에 있는 산업이 성장할 때까지 관세부과, 보조금 지급, 공적투자 등을 통해 육성하자는 것이었다. 자유무역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건 사실 자유가 아니었다. 포함(砲艦)외교가 불평등 조약을 강요했고,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편전쟁에서 진 중국이 맺은 1842년 난징조약이다.


노동자들의 불만과 투쟁이 제기되면서 1870년대에 들어 산업재해보험, 건강보험, 노령연금, 실업보험 등 복지 및 노동관련 법들이 제정되었다. 이런 노동, 복지관련 정책은 서구에서 100년도 훨씬 전에 도입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를 강하게 주장하면 좌파니, ‘종북이니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형편이다. 하지만 이 시기는 또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엄청난 식민지 쟁탈전이 존재했던 시절이었다.

 

양차 대전과 자본주의 황금기

 

1914년 발발한 1차 대전은 자본주의 한 시대가 끝났음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1872~1896년의 장기침체 속에 경제적 문제가 켜켜이 쌓여오고 있었다. 자본주의 세계화가 시장의 힘이 아니라 무력의 힘으로 진행된 탓에 언제든지 무력을 동반한 갈등이 터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장하준은 레닌의 <제국주의: 자본주의 최고 단계>의 내용을 대부분 수용한다. 그러면서 장하준은 자본주의 모든 작동원리를 거부한 거대한 경제적 실험이었다며 러시아 혁명을 일면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특히 소련의 초기 산업화의 큰 성공은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장하준은 이러한 성장은 정치적 탄압과 수백만 명이 기아로 목숨을 잃으면서 얻은 대가라고 주장한다.


1차 세계대전, 러시아 혁명에 이어 커다란 충격은 1929년 대공황이었다. 장하준은 핵심 자본주의 국가들이 균형재정에 집착하면서 국제적 수요가 급락한 것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금융위기가 벌어지면 민간부문 지출이 줄어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정부가 과감히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 수요 진작에 나서야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하준은 뉴딜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19731차 오일쇼크가 오기 전까지 흔히들 자본주의의 황금기라고 칭하며 이는 우파든, 좌파든 다 받아들이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 요인을 둘러싼 설명이며 장하준은 이 부분에서 다소 불명확한 태도를 취한다.


먼저 그는 2차 세계대전의 효과를 지적한다. 군용으로 개발된 수많은 신기술 등이 민간용도로 사용되면서 막대한 경제적 잠재성장을 견인했다는 것이다. 또한 전후 재건을 통한 막대한 토건사업, 전쟁 중 내핍생활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수요 폭증 등을 말한다. 무엇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혼합경제체제라는 측면이다. 한마디로 시장을 방임하지 않고 정부가 과감히 개입하여 황금기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1971년 달러화에 대한 금 태환을 폐지하면서, 자국 화폐를 자동적으로 달러화에 고정환율로 연동하던 관행도 폐기했다. 환율시장에는 차익을 노리려는 환투기 세력이 등장했고, 금융시장은 불안정해졌다. 또한 19731차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소위 스태그플레이션(경기는 불황인데, 물가는 상승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19792차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자본주의 황금기는 막을 내린다.


이 때 등장한 인물이 마거릿 대처이고 그는 혼합경제체제를 과감히 허물기 시작한다. 우선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을 낮추고, 정부지출을 삭감하고 노동조합 권한을 줄였다. 자본통제를 폐지했고 국영기업을 민영화했다. 물가를 잡기 위해 이자율을 올려 경기를 위축시키고, 수요를 줄이는 정책을 썼다.


두 번째 인물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다. 그는 대처의 정책과 거의 유사한 정책을 펼쳤으며 특히 부자들이 부를 더욱 많이 축적하면 더 많이 소비하고 이로 인해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이른바 낙수효과’(trickle down)이론을 고수했다.


이런 신자유주의 정책들2008년 금융위기까지 맹위를 떨쳤다. 기업들간의 적대적 인수합병이 늘어나고 단기간에 수익률을 높이는 다운사이징(down-sizing)”이 진행됐는데, 이는 기업마다 외주화를 늘리고 비정규직 비율을 높이는 것을 뜻했다.

 

신자유주의의 재앙과 2008년 세계경제 위기

 

미국의 이자율이 2배로 치솟자 외채상환을 못하는 "3세계 외채위기도 벌어진다. 이런 제3세계 국가들은 울며겨자먹기로 IMF와 세계은행에 손을 벌려야만 했다. 이에 대한 조건은 예산을 삭감하고, 민영화하고, 정부 역할을 줄이는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결과는 재앙 그 자체였다고 장하준은 강력히 주장한다.


그러던 중 1989년 역사적 변화가 찾아왔다. 소련이 와해되기 시작했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소위 사회주의 몰락이 몰려왔다. 이는 자유시장 승리주의가 풍미하는 시대를 열었고, 신자유주의가 더욱 기세를 높였다


그러나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승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1995년 북미자유무역협정 때문에 멕시코가 금융위기를 맞이했다. 또한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한국)가 터지면서 더 큰 충격이 왔다.


장하준은 이것의 근본적인 원인을 금융시장의 개방에서 찾고 있다. 규제가 풀리자 공격적으로 돈을 빌려왔고, 자산가격이 올라가고, 더 많은 대출이 횡행했다. 그러나 거품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돈이 빠져 나가면서 위기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신자유주의 세계화 선봉에 섰던 사람들도 자본의 이동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2000년 이른바 닷컴거품이 붕괴하였고, 이때에는 미국에서 연방준비은행이 신속히 개입해 공격적으로 이자율을 낮추고 하면서 위기감은 금새 잦아들었다. 한편, 중국에서는 눈부신 성장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봉합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닥쳐왔다.


미국 금융회사들이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가정 하에 신용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갚을 능력 이상의 돈을 빌려준 것이 문제였다. 결국 거품이 꺼지면서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가 시작됐다


금융위기에 대해 선진국들의 반응은 대공황 직후와 매우 달랐다. 예산 적자를 과감히 감수하고, 정부지출을 늘려나갔다. 중앙은행이 돈을 새로 찍어서 국채를 매수하는 방법으로 시중에 돈을 푸는 양적완화도 단행하였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구조조정과 긴축을 단행하기 시작했다.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는 처참했고, 아직도 그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다. 2012년말 OECD회원 34개국 중 22개국의 1인당 생산량이 2007년보다 낮았다. 스페인과 그리스에서는 위기전에 8퍼센트였던 실업률이 2013년 여름에 각각 26퍼센트, 28퍼센트로 치솟았다. 청년실업률도 55퍼센트를 웃돌았다


이제 장하준의 의견대로 다시 2차대전 후 혼합경제체제로 돌아가면 이 위기가 해결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의견대로라면 오늘날 북유럽 국가들도 경제위기를 겪고,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고 이를 틈타 극우정치가 지지를 얻어간다는 점을 설명하기 어렵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미국도 정부가 개입하는 정도가 아니라 과감한 국유화와 천문학적인 양적완화를 했음에도 황금기와 같은 경제성장은 커녕, 겨우 성장률 제로만 면하고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장하준의 어깨를 딛고 올라서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면서도, 비판적 관점을 잃지 않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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