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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초콜렛도넛' - 미친 세상에서 맛본 짧은 행복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5. 9. 29.

전지윤



이렇게 멋지고 감동적인 영화를 당분간 또 보게 될 수 있을까. 작년 연말에 개봉했다가 금방 내려간 영화 <초콜렛도넛>을 최근에야 보고 나서 든 생각이다. 보는 내내 뭉클함과 따뜻함과 서글픔이 소용돌이쳤다.


이것은 신자유주의가 본격화하던 1970년대말(‘가족의 가치를 강조하던 레이건이 대통령이 된 것이 1981년이다.) 미국을 배경으로 동성애자와 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다. 그리고 최근에 이슈가 된 동성결혼과 가족구성권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게 만드는 영화다.



이 영화를 빛내는 것은 누구보다 주인공 루디이다. 앞 부분에서 루디가 노래로 자기소개를 하는 장면에서 그 매력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누구일까 싶다. 바로 그 매력에 정신없이 빠져드는 또 다른 주인공 이 루디를 칭찬하는 말이 정확하다.


넌 정말 놀라워, 넌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아.” 게이바에서 여장을 한 채 춤과 노래를 부르는 게 직업이고, 월세가 밀린 허름한 방에서 가난하게 살지만 루디는 언제나 당당하고 활기차다. 밀린 월세를 독촉하는 심술궂은 집주인뿐 아니라, 심지어 자신의 머리통을 날리려고 총을 겨누고 있는 경찰 앞에서도.


그래서 루디는 자신의 생각이나 바램을 감추는 것도, 동성 애인인 폴을 사촌이라고 숨겨야 하는 것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폴이 현실이라고 말하는 것을 루디는 차별이라고 말하며, 폴은 루디를 이상주의자라고 부른다


변호사로서 정의를 위해 일할 거라던 꿈이 깨지고 있던 폴에게 루디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었다.(찾아보니 루디 역을 맡은 배우 앨란 커밍은 실제 동성애자였는데, 그 놀랍도록 자연스럽고 깊이있는 연기는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루디는 이 미친 세상에서는 작은 행운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랑스러운 다운증후군 장애아동인 마르코는 바로 루디에게 다가 온 행운이었다. 마르코는 루디와 폴을 연결시켜 준 고리이기도 했다. 그는 이 행운을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마르코를 입양하기 위해 게이바 일도 관두고, 그토록 싫어하는 양복까지 입고 법정에 나간다


하지만, 루디의 타협에도 차별의 벽은 두텁고 높기만 했다. 루디와 폴은 아이를 키울 자격이 없는 비정상이란 것이었다. 마르코 앞에서 루디와 폴이 키스한 것도, 할로윈 축제 때 루디가 여장을 한 것도 비정상의 증거가 됐다. 보는 사람도 행복하게 만드는 자연스러운 사랑의 표현을 이 사회는 혐오의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루디와 폴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마르코가 명백히 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장했다는 특수학교 교사의 증언도 소용이 없다. ‘누구도 입양하려 하지 않는, 키가 작고 뚱뚱하고 장애가 있는 아이를 우리는 사랑하고 원하는데 왜 부모가 될 수 없다는 것이냐는 폴의 절규는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다. 이 잔인한 세상에서 차별과 버림받는 소수자들은 서로 사랑하고 연대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영화는 이 세상과 법정, 어디에도 정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며 끝난다. 그 밖에도 인상적인 장면은 많다. 루디가 노래하는 장면은 매번 환상적이며, 게이바에서 루디 옆에서 춤추는 덩치 큰 흑인 게이는 앙증맞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편견에 찬 폭력적인 경찰 모습도 전형적이다.


물론 루디 못지않게 이 영화의 인상적인 주인공은 마르코다. 폴이 편지에서 쓰듯이 마르코는 따뜻하고 똑똑하고 재미있는, 방을 환하게 밝히는 미소를 가진 아이였다. 사실 마르코의 미소는 단지 밝다고 하긴 어렵다. 그것은 뭔가 아픔이 담긴 미소이기도 하다.


마르코에게 많은 상처를 준 세상과 어른들이 그런 슬픈 미소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래서 마르코는 슬픔을 잊게 해줄 달콤한 초콜렛도넛을 좋아했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마술소년 이야기듣기를 좋아했다


루디가 선물한 다양한 인형들도 좋아했지만, ‘아쉬레이’(히브리어로 행복’)라는 이름의 여자아이 인형을 항상 안고 다녔다. 법정에서는 남자아이인 마르코가 여자아이 인형을 갖고 다니는 것이, 루디 커플이 제공한 성적 혼란의 증거가 되버린다. 루디를 만나기 전부터 안고 다닌 마르코의 보물 1호인데 말이다. 


영화의 처음과 끝 장면은 모두 아쉬레이를 안고 혼자 쓸쓸이 밤거리를 헤매는 마르코의 뒷모습을 보여 준다. 마르코가 잃어버린 아쉬레이를 루디가 찾아주고, 루디와 폴이 마르코의 손을 잡고 함께 걷는 장면이 영화의 안에서든 밖에서든 이뤄졌으면. 마르코가 잠들기 전에 루디가 들려주던 마술소년 이야기의 주인공 이름도 바로 마르코였다. 그리고 마르코는 해피엔딩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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