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왜 '아래로부터 사회변혁'이 그토록 중요한가

댄 스와인(Dan Swain)

번역: 전지윤



[rs21 활동가인 댄 스와인이 왜 '아래로부터 사회주의'가 그토록 중요한 사회변혁 운동의 핵심 원칙인지 설명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원칙을 간과하고 있거나, 말로만 중요하다고 하면서 엉뚱하게 해석하고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우리가 정말로 자유롭고 해방된 세상을 원하다면 '위로부터'의 요소를 철저히 배격하고, 이 원칙으로 돌아가서 깊이있게 고민해 봐야만 한다. 이 글은 2015년 여름 rs21(Revolutionary Socialism in the 21st Century) 잡지에 처음으로 실렸다. 이 글을 꼼꼼히 교정봐 준 남수경 동지에게 감사한다.]


출처: http://rs21.org.uk/2015/07/11/socialism-from-below/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이 참가했던 이라크 반전 운동


사회주의 운동과 사상의 역사를 통틀어서, 근본적인 것은 '아래로부터 사회주의''위로부터 사회주의'의 대립이었다이것은 할 드레이퍼[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1966년에 소책자 <사회주의의 두 가지 정신>에서 주장한 것이다


여기서 그는 사회주의 운동에서 두 가지 서로 다른 넓은 경향을 구분한다. 위로부터의 사회주의는 20세기에 동유럽에서는 스탈린주의, 서유럽에서는 사회민주주의라는 형태로 지배적이었고, 앞으로도 지배적일 것이다


이 둘은 모두 그 분명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은 믿음을 공유했다. 사회주의는 대중의 활동적인 참여가 없이도 제대로 된 정부에 의해서 선사될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드레이퍼는 여기에, 아마도 약간 부당한듯 하지만, 당시 미국 대학가에 영향력이 있던 무정부주의 운동을 추가했다. 그들은 잘 조직된 소수가 전투적 직접 행동을 통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식의 반란 정치에 헌신했다.


이 모든 것에 맞서서 드레이퍼는 마르크스로 거슬러 올라가서 아래로부터 사회주의의 신념을 옹호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주의는 오로지 운동 속에서, 활기있는 대중 스스로의 자기해방을 통해서만 현실화될 수 있다. 그들은 스스로의 운명을 책임지려는 투쟁 속에서 아래로부터 만들어진 스스로의 힘으로 자유를 쟁취하려 한다. 한낱 대상이 아니라 역사의 무대 위에 있는 주인공으로서.”


21세기에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드레이퍼의 소책자는 이렇게 선언하며 시작된다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아마도 인류의 다수가 이런 저런 의미로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고통스럽지만 오늘날 사실이 아니다


스탈린주의는 거의 사라졌고,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라는 목표 자체를 아예 포기해 버렸다. 현재 유서깊은 사회민주당들이 내놓는 목표는 기껏해야 제대로 관리되는 자본주의이다.


게다가 위로부터아래로부터를 구별하는 것은 점점 더 오늘날 정치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스페인, 그리스와 스코틀랜드에서 '아래로부터' 사회운동은 위로부터의 개혁을 약속하는 정당으로 바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쉴 새 없이 주장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나는 정치적 실천의 방법으로서 아래로부터 사회주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여전히 가능하고 가치가 있는 세 가지 맥락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나는 이것이 딱딱하고 뒤쳐진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실천의 방법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것이 모든 상황에서 당신에게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행동의 가이드를 제공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이것은 또 그 반대가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것을 도와줄 것이다.


위로부터의 정치는 흔히 우리가 정치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정치는 주로 대중에 대한 관리와 운영의 문제로 이해된다. 아마도 선의의 관리이겠지만, 그것은 여전히 관리인 것이다. 우리가 보통 사회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의 일부인 것이다


, 사회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일단의 전문가들 만이 이해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가디언> 웹사이트에는 이런 광고 배너가 걸렸다. ‘빌 게이츠 씨. 기후변화에 맞선 투쟁에서 우리를 이끌어줄래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기본적 설정이고 쉽다. 반면에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는 어려운 것이다. 여러가지 문제와 어려움들이 있는데, 그것은 만약에 사회주의가 살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이라면 그것은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참가하는 집단적 투쟁의 결과물이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은 보통의 정치보다 정말 많이 어렵다.

 

민주주의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가 중요한 첫 번째 영역은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이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어느 정도는 여전히, 사회주의를 우선적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물질적 풍요와 부와 자원의 공평한 분배에 관한 것으로 얘기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여기에 부합하는 한 종종 민주주의는 추가적 옵션에 불과한, 좋은 일이지만 절대적 일부는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는 이런 관점을 거부한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사회주의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재천명한다.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는 다음과 같이 사회주의에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에서 비롯된다:


당신의 목표가 단지 물질적 풍요이거나 자원의 더 나은 분배라면, 대중의 참여가 필요없을 것이다. 사람들을 관여시키고 끌어들이고 운동을 건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설사 그렇게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으로 요구와 정책을 뒷받침하고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압력을 가하기 위해서만 필요 할 것이다


반대로 당신의 목표가 압도적 다수가 사회 운영에 참가할 수 있는 역량이 되는 사회라면, 당신은 대중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고무해야 하고, 이런 대중 역량의 향상을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이처럼 민주주의는 단지 사회주의라는 목표의 필수적 일부일뿐 아니라,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다.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는 사람들을 고무하는 활동과 조직에 관심을 갖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사람들이 사회를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데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자신감, 아이디어,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먼저 변해야 한다거나 또는 생산의 민주적 통제라는 법칙이 자본론 읽기 모임이나 주택 켐페인에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만약 사회운동과 정치조직이 그 참가자들에게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이 어떤 모습일까 하는 맛뵈기조차 보여줄 수 없다면, 그런 운동과 조직들이 사회주의에 기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가

 

두 번째 차원은 국가이다. 드레이퍼의 설명에서, 위로부터 사회주의의 특징 중 하나는 국가에 대한 나이브한 접근, 즉 국가를 장악할 수만 있으면, 국가 권력은 사회주의에 이르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아마도 이런 접근법이 현재 반자본주의자들의 마음 속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평가 절하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국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배신과 독재로 이어진다고 믿고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피해야 하고 국가와 거리를 유지하며 자본주의의 틈 새에서 독립적인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사회주의가 단지 기존 국가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는 것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의심을 하는 것은 이해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는 이와는 다르게 접근한다.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는 국가기구가 대중적 통제를 가능하지 않게 조직되었다고 주장한다. 국가의 공식적인 민주적기구들의 존재와 더불어 위계적으로 조직된 기구들, 즉 경찰, 군대, 사법부, 행정부 등이 민주주의의 공간을 제약한다.


이것들은 사회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가능성을 차단한다. 이 기구들은 제거되거나 대체되어야 한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파리 꼬뮌에서 배웠던 교훈이다. “노동계급은 단순히 이미 만들어진 국가기구들을 장악해서, 이것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이용할 수 없다.” 대신에 노동계급은 현대 국가의 일부 긍정적 기능을 수행할 그들 자신의,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국가를 만들어야만 한다.


그러나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는 국가가 사회주의를 가져올 수 없다고 믿기도 하지만, 국가를 무시할 수 있다고 믿는 것도 아니다. 먼저 경찰과 군대같은 조직을 보자면, 우리가 그것을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지만, 그 국가기구들이 우리를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리어 현존 질서에 도전하는 어떤 운동이든 이런 억압적 기구들과 충돌하게 될 것이고, 그것들을 패퇴시킬 수 있게 조직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사회주의자는 기존 국가에 개혁과 삶의 질 개선을 요구하는 운동에 동참하고 지지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이런 개혁이 합쳐지면 사회주의가 된다고 우리가 믿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은 집단행동을 통해 자신감을 발전시키고, 조직화되고, 사회가 다른 식으로 조직될 가능성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개혁을 요구하거나 방어하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한 투쟁은 사람들이 드레이퍼가 말한 역사의 무대의 주인공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준다. 이것은 선거운동을 포함할 수도 있지만, 그럴 때라도 우리의 목표는 아래로부터 투쟁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점을 항상 이해하면서 선거에 임해야 한다.

 

지도력

 

나는 마지막으로 리더쉽의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여기서 리더쉽이란 단지 조직의 공식 지도부를 말하는 게 아니라, 운동과 조직들 안에서 모든 관계들의 총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누군가는 이끌고, 다른 사람들을 따라오게 하려는 시도 말이다.


다시 한번, 마찬가지로 다른 방식(위로부터 사회주의)은 쉽지만 이것(아래로부터 사회주의)은 어렵다는 점을 말할 가치가 있다. 위로부터 사회주의에서의 리더는 그 자신이 가장 훌륭하고 사람들에게 무엇을 할지 얘기하고 지시를 내린다. 반면 아래로부터 사회주의의 리더는 사람들이 스스로 힘을 가지게 하고, 궁극적으로 공식적인 리더가 별로 중요하지 않게 하려는 열망으로 움직인다.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는 사람들을 동원하는 것과 스스로 힘을 갖게하는 것 사이의 동역학이다. 행동을 위해 사람들을 동원하는 것은 어떤 리더쉽에서도 필수적인 부분이다. 단지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뿐 아니라 위로부터 사회주의에서도 필수적이다. 만약 사람들이 행동에 나서도록 동기부여되지 않는다면 어떤 대중운동도 성립될 수가 없다.


그러나 단기간에 사람들을 동원하는 최선의 길이 장기적으로 사람들이 스스로 힘을 갖게하는 최선의 길이 아닐 수도 있다. 사람들이 행동에 나서게 되는것은 온갖 방법으로 촉발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을 자기해방의 주체가 되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구체적인 사례를 보자: 시리자 정부가 유럽중앙은행과 합의한 거래는 명백한 패배였다. 그것이 유일한 선택이었다는 주장에 당신이 동의하든 안하든 그것은 그리스 민중이나 조직으로서 시리자에게 분명한 후퇴였다. 그것은 시리자 강령의 핵심 요소들을 안 지킨 것이고, 기존의 협상안에서 단지 주변적인 개선점만을 얻었다. 하지만 치프라스와 시리자 지도부 다수는 이것을 승리라고 선언했다.


그들이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있다. 틀림없이 그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지지자들이 사기저하되고 해체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패배를 승리라 부르고, 그들이 후퇴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그들의 지지기반을 소외시키고 힘을 약화시키는 위험을 낳고, 장기적으로는 어떤 단기적인 동원도 어렵게 만든다.


트로츠키는 사회주의적 도덕(혁명에 기여하는 것은 무엇이든 정당한 것으로 보통 해석되는)에 관한 논쟁에서 이 점을 인식했다:


노동자들의 해방은 오로지 노동자들 자신의 힘을 통해서 올 수 있다. 그러므로 대중을 기만하고, 패배를 승리라고 속이고, 적을 동지라고 속이고, 노동자의 리더를 매수하고, 전설을 날조하고, 거짓 재판을 여는 것보다 더 큰 잘못은 없다. 이것은 오직 한 가지 결말을 제공할 뿐이다: 이미 역사에 버림받은 무리의 지배를 연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대중의 해방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만약 단지 대중을 동원하는 것이 목표라면, 거기에는 적극적으로 대중을 기만하는 것을 포함해서 행할 수 있는 모든 방식의 길이 있다. 반면에, 대중이 자기해방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그들 스스로가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 목표라면, 대중을 기만하는 것은 너무나 나쁜 출발이다. 무엇이든 혁명에 보탬이 된다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그 혁명이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어야 한다면 모든 것이 혁명에 보탬이 되지는 않는다.


이처럼, 대중을 속이고 기만하는 것이 배제된다면, 분명히 허용되고 필요한 다른 것들이 여전히 많이 있다. 멋진 주장, 토론, 고무, 상상, 이 모든 것들은 무엇이 가능한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계속해서 한계를 넘어서도록 하는 행동을 고취시킨다. 하지만, 이것을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무엇이 실제로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지에 대해 면밀하게 관심을 기울어야만 한다. 이것은 이렇게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리더는 세상을 바꾸기를 원하지만, 또한 오로지 (엄청나게 많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야만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대중들은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천 속에서 배워야만 한다.


아래로부터 사회주의가 오늘날 그 어떤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정치적 실천을 관통하는 안내선이고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해방의 주인공이 되도록 고무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여부와 방법을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상기시킨다


이것에 도달하려면 정말로 다른 방식의 정치를 실천해야만 한다. 자본주의 정당, 실패한 사회민주주의, 그리고 슬프지만 많은 혁명적 그룹들이 이전에 갔던 것과는 다른 방식의 정치를 실천해야 한다. 항상 그렇듯이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누구도 이것이 쉬울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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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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