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혁명적 지도란 무엇인가?

[편집자] RS21의 포럼 “Political Weekend”에서 2014년 3월 31일 “혁명적 지도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토론이 이루어졌고 이 글은 그 토론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http://rs21.org.uk/2014/03/31/rs21-political-weekend-what-is-revolutionary-leadership/)


캘리번의 복수 (Caliban's Revenge)[각주:1]

번역 김태연

 

 

 

레이첼 에보랄과 댄 스웨인이 “혁명적 지도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토론을 이끌었는데, 이 주제는 극좌파 사이에서 가장 논쟁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로 이번 토론을 통해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댄은 '혁명적 지도'을 둘러싼 이론적 개념에 초점을 맞춘데 비해 레이첼이 했던 발제는 '혁명적 지도'가 개인들, 특히 작업장의 노동자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둘러싸고 훨씬 더 구체적으로 이루어진 토론이었다.  

 

혁명조직의 목표는 "최상의 사상들"로 노동계급을 조직하는 것이라는 기존의 개념을 검토하는 것으로 댄이 발제를 시작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최상의 사상들”이란 것이 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은 종종 '혁명가들'을 우월한 이해력이나 전략을 가진 사람들이거나, 아마도 훨씬 더 조야하게 말해서, 맑스주의적 시각이 바탕에 깔린 이론으로 무장한 사람들로서 여겨왔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도란 순전히 우월한 사상으로 열등한 대중을 획득하는 문제일 뿐이다.

 

댄은 이러한 시각에 비판적이다. 그에 따르면, 자신을 레닌주의 전통과 연결 짓는 조직들은 '규율'의 원칙을 사활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특징이 있다. 또, 그들은 그 규율의 원칙을 통일된 방식으로 주장하고 행동하기 위해 당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하는 협소한 문제로만 인식해 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 댄은 혁명 조직에서 ‘규율’이란 종류 여하를 불문하고 계급의 생생한 경험과의 의미 있는 연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실제 노동자들이 삶의 갈피갈피마다 겪는 바로 이런 경험들이야말로 혁명적 사상을 담금질하고 명확히 하며 쓸모 있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혁명적 ‘지도’란 착취 받고 억압 받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고 싶게끔 했던 해당 경험들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를 짚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최상의 사상들'이 매력을 가지는 이유라고 댄은 주장하는 듯 했다. 즉, 혁명적 투쟁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하는 지식이란 의미로 말이다. 물론 이것을 이제 곧 금방이라도 ‘혁명의 날’이 임박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그것은 바로 지금, 그리고 노동계급의 생생한 경험에 확고하게 자리 잡은 프로젝트를 말한다.  

 

레이첼은 ‘혁명적 지도’라는 발제를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밥 크로우와 토니 벤의 사망에 대해 가슴 아프게 애도하는 현상을 지적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노동 계급 운동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인물들로, 좌파들에게는 우상과 같았다. 이런 현상이 좌파 대다수가 지도라는 것을 연상하고 이해한 방식인데, 이에 대해 레이첼은 이런 식으로 우리가 지배자들의 사상을 부지불식간에 받아들이게 된다고 주장했다. 즉, 우리가 이들을 지나치게 신뢰한 나머지 맹목적으로 이들에게 의존한 채, 이런 카리스마 있는 인물들이 우리 대신에 투쟁을 지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우리가 극복해야만 할 사고방식이다.

 

물론, 노동계급 중에도 “지극히 평범”함에도 불구하고 비범한 역할을 해온 ‘리더들’이 많이 있다. 레이첼은 그러한 사례로 수지를 언급했다. 수지는 그녀가 일하는 작업장에서 노조 대표였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골칫거리가 생기면 제일 먼저 그녀를 찾았고, 이에 그녀는 찾아온 이들에게 조언을 해주거나 직접 도와주곤 했다. 심지어 수지는 잊을 만하면 꼭 작업 도중에 “우발적인” 화학물질 유출 사고를 터트려 사실상 비공식적인 조업 중단 사태를 만들곤 했는데, 사실 이는 수지가 과로로 힘들어하는 직원들을 쉬게 할 목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짜고 저지른 일이었다. 수지는 작업장에서 사실상 지도적 역할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레이첼은 이런 종류의 ‘자생적 지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주장했다. 혁명적 지도는 노동자들의 정치적 수준을 높이는 투쟁을 통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반인종주의와 여성해방,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권리, 그리고 서비스 사용자들과 관련된 만만치 않은 문제들을 드러내고 이것들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즉, 이러한 “정치적 의식을 가진 노조 활동가”가 작업장에서 벌어지는 노동자들의 직접적 경험과 그것을 넘어선 운동과의 연결고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작업장을 넘어선 운동이란 것도 단지 다른 작업장에서 벌어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관계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운동들을 말하는 것이다.

 

레이첼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지적한 것이 있다. 투쟁의 수준이 낮을 때는 물론이고 계급 충돌의 전선이 그어질 장소와 시간을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때조차도 우리는 계급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두고 고심해야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정치적 예리함 뿐 만 아니라 겸손함이라는 원칙을 가져야만 한다. 우리는 누구에게서든, 어디에서건 “계급으로부터 기꺼이 배우려 하는 개방적인 태도”를 지녀야 한다. 우리가 이런 태도를 견지하지 못한다면, 기회를 놓쳐버려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것이다. 반대로 그 기회를 붙잡는다면, 그 잠재력은 엄청날 것이다.

 

다방면에 걸친 토론이 벌어지는 동안 청중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발언을 했다. 논쟁이 된 부분은 레닌주의적 리더십 모델이 지금도 타당한가에 대한 문제제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이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은 맑스주의 사상이 오늘날의 투쟁에서도 유효하도록 하는 것이 혁명적 지도의 목표라는 점에 대해선 다들 동의했다. 또, 청중들 사이에서 겸손함의 가치에 대해 높이 평가하거나 유연함을 강조하는 주장들이 많은 동의를 얻었다. 어릿광대라는 주제를 놓고 잠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쨌든 장내에는 노동자들의 다양한 경험에 귀 기울여 흡수하고 이를 통해 배우는 것이 리더십의 핵심적인 측면이며, 이 점이 그동안 지나치게 무시되어 온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 점에 대해 레이첼은 경청하는 태도가 작업장에서 벌어지는 활동을 지도하는데 실제로 필수적이긴 하지만, 노동자들이 노조 대표가 자기 말을 잘 들어주기만 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의 지도를 따르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정리발언을 마쳤다.

 

  1. 캘리번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에 등장하는 원주민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는 귀족인 프로스페로의 권위에 도전하며 프로스페로의 딸 미란다를 노리는 악역으로 그려지지만, 이후 많은 좌파 비평가들에 의해 억압받는 민중의 초상으로 재해석된 바가 있다. Caliban's Revenge는 영어권에서 이러한 맥락을 담아서 종종 쓰이는 좌파적 조어로서, 필자의 필명으로 추정된다. [본문으로]
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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