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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혁신

오늘날의 혁명적 신문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4. 4. 17.


이언 앨린슨(Ian Allinson)

번역 정현호

 

 

 

코벤트리 지부의 한 동지-내부회보3(IB3) p.115-의 강조에 따르면, 현재 SWP 당 내 논쟁에 관여하고 있는 모든 진영의 동지들 모두가 신문에 대해선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의 지적은 분명 올바른 것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분적으로만 그렇다. 왜냐하면 그가 그 문제를 존 리스와 린지 저먼이 우리 당에 남긴 이데올로기적 영향이 해결되지 않았던 데서 기인한 것처럼 진단했기 때문이다.

소셜리스트 워커와 당 그리고 우리의 청중 사이의 관계는 지난 20여 년 동안 급격히 변화되어 왔지만, 해당 변화를 추동한 정치적 원인과 그 결과를 둘러싼 토론은 거의 없었다. [각주:1]

 

SWP가 쇠퇴한 근본 원인이 하강기”(the downturn)가 시작된 초기 이래로 당이 이에 대한 정확한 전망을 발전시키고 이에 맞추어 당을 적절하게 적응시키는데 실패한 것이라고 했을 때, 이제는 많은 동지들이 폭넓게 인정하는 사실이 있다. , 이러한 상황에서 당 지부들을 폐쇄한 것이 당의 쇠퇴를 악화 및 가속화시켰다는 점 말이다. 또한, 신문 배포가 이완된 것은 SWP 내부의 정치 문화 및 당과 주변’(periphery)과의 관계 양 측면에서 쇠퇴가 일어나는데 비슷한 역할을 행사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코벤트리의 그 동지는 신문판매를 재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그의 진단만큼이나 불완전한 것이다. 그보다는 오늘날 현실에 굳게 뿌리내린 전망을 확고하게 발전시켜 나감과 동시에 전자/인쇄기술의 변화 속에서 혁명적 신문이 가진 정치적 기능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변화한 환경에서 이러한 기능이 어떻게 하면 최고로 구현될 수 있는지 재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신문을 발행한다는 것이 어떤 정치적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여전히 굳건하게 옹호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기회와 도전들에 조응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진지한 혁명가들은 항상 당대 최신의, 가장 효과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구비하려 해왔다. 이 점에서 우리가 가장 진지한 젊은 활동가들을 끌어들이고자 한다면, 앞서 말한 종류의 보수적 관점을 취할 겨를이 없다.

 

혁명적 언론의 역할

 

나는 동지들이 크리스 하먼이 1984년에 발표한 혁명적 언론”(“The Revolutionary Press")[각주:2]이라는 글을 읽어보라고(혹은 다시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수백 년 동안 대중을 획득하고 조직하는데 진지한 관심이 있는 혁명가들이라면 늘 신문을 필요로 해왔다. 당시 혁명가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과 자원들을 고려했을 때 신문이 대중들과 소통하기 위한 주요한 도구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모순된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이런 생각은 투쟁의 경험을 통해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사람들을 우리의 편으로 끌어들이길 원한다. 신문은 노동자들의 구체적 경험을 우리의 일반 정치와 일관된 세계관, 마지막으로 당면 과제들과 연결시키려 노력한다. 노동자들은 특정한 경험을 통해 혁명적 결론으로 이끌리기도 하지만, 다른 경우엔 그로부터 멀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혁명적 신문은 노동자들의 경험들을 죄다 반영하기만 할 수 없다. 혁명적 신문은 노동자들을 이끌기 위해서 그들의 경험 중에 선택하고 정수를 뽑아내 정제하고 분석해야 한다. 노동계급의 삶을 수동적으로 반영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부르주아 언론은 각각의 사건들이 고립된 양 다루는데, 이 때문에 부르주아 언론에서 사건들은 상호 연결성이 없는 무작위적인 잡탕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빈곤과 범죄의 연결성을 무시하거나, Page 3[<The Sun>이 발행하는 선정지]와 강간 사건이 관련이 없는 양 드러내는 식으로 말이다.) 이와는 판이하게 혁명적 신문은 사건들 간의 연결성과 관계를 드러낸다. 많은 노동자들은 부르주아 언론의 거짓과 왜곡에 익숙한지라 신문이라는 것에 대해 냉소적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우리 신문이 정확성과 신뢰성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계급으로부터 리더십을 획득하는데 필요한 신뢰를 구축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저널리즘적 견지에서 가장 엄격한 기준을 우리 신문에도 적용해야 한다.

 

혁명적 신문은 선전과 선동을 포함한다. 이로써 신문 판매자들이 거리나 군중 속에서 청중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눈길을 끄는 헤드라인이 중요한 것이다.)

 

혁명적 신문은 우리가 보도하지 않았다면 그냥 묻혀버렸을 투쟁들을 다룬다. 이를 통해 신문이 보도한 투쟁에 대한 지지를 건설하고, 그에 관한 주장을 제시하며, 투쟁의 교훈을 이끌어 낼 기회가 생길 뿐만 아니라, 신문의 독자층 역시 구축할 수 있다. 동지들이 해당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보고기사가 담긴 신문을 가지고 노동자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노동자들 스스로 그 보고기사를 작성하는데 기여했을 때 가장 효과가 극대화된다. 결국 신문의 청중을 건설함으로써 조직의 주변을 형성하고 미래의 성장을 위한 정치적 준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다른 지역이나 산업, 운동에 속해 있다 해도 각자 관계 맺고 있는 일정한 독자들에게 같은 신문을 팔다보면 그 과정에서 신문에 담긴 주장을 옹호하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당내에서 신문의 주장과 관련한 이견을 제기하고, 그것을 둘러싼 치열한 토론을 촉발시켜 해결에 이를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정치적 주장들을 집중시키고, 그것을 촉진하며, 논점을 더욱더 명확히 하게 된다. 또한 당내의 흩어진 그룹들을 통합시키는 효과도 불러온다.

 

혁명적 신문은 매 주마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해야 한다. 신문은 핵심적인 전략 문제에 대한 주장을 개진해야 한다. 새로운 소식들만 고집하는 부르주아 언론과 달리, 혁명적 신문은 핵심적인 주장들을 거듭 반복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물론 되도록 형식을 바꿔가면서 말이다.) 이 뿐 아니라, 신문은 더 즉각적인 견지에서도[전술적인 측면에서도]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다뤄야 한다. 각기 다른 운동이나 노동쟁의에서 어떻게 해야 승리할 수 있을지 같은 문제 말이다.

 

하먼은 상승기와 하강기라는 국면에 따라 노동자들의 경험과 정치 일반을 연결시키는 방법이 달라진다는 점을 분명하게 역설한다. 하강기의 신문은 더 장문의 기사. 분석, 역사, 이론, 그리고 국제적 사례들을 다뤄야 한다. 왜냐면,

 

“[하강기의 경우] 노동자들은 더 이상 그들의 집단적 힘을 자각하지 못하며, 지배계급의 사상이 얼마나 거짓된 것인지 실제로 꿰뚫어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혁명적 사회주의 관점을 고수하는 이들은 계급 내에서 소수때로는 극소수이다. 그리고 그 소수는 직접적 경험이 아닌 먼 과거나 먼 국가들의 투쟁에서 발전한 일반 사상에 기초해 혁명적 관점을 고수한다.”

 

, 하먼은 신문이 허위-선동’(‘pseudo-agitational')에 빠질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다.

 

이것[‘허위-선동신문]은 외형상 투쟁이 상승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 때문에 이러한 신문은 노동자들의 일상 언어로 쓰여지고,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각종 전투들과 자본주의 체제가 낳는 끔찍함에 대한 폭로로 가득 채워져 있다.”

 

마뜩치 않지만, 이런 상황[하강기의 상황을 지칭. 하강기엔 투쟁이 종종 일어나지만 이는 보통 패배하고 마는 방어적 투쟁이기 쉽다.]과 직면하는 것을 회피하지 않고 그것에 바탕하여 고심 끝에 내놓은 주장을 활동가들에게 제시하기는커녕, 투사들의 열정과 계급투쟁의 성공이라는 허위 묘사로 가득 찬 신문은 독자들을 실망시킬 뿐이다.”

 

조직가로서의 신문

 

우리는 늘 신문은 조직가라고 말해왔다. ‘조직가로서의 신문이란 관점은 레닌이 1902년 발표한 소책자 무엇을 할 것인가?”("What Is To Be Done?")[각주:3]에서 제시된 사상에서 비롯한다. 신문을 위한 보고들을 수집하는 과정, 신문을 제작하고 배포하는 과정, 그리고 신문을 팔고 재정을 모으는 과정 속에서 전국적인 네트워크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신문은 당원과 독자들이 당 중앙과 쌍방향적인 정치적, 조직적 관계를 맺게 해준다.

 

20년 전만 해도 신문을 배포하고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것은 모든 SWP 지부 활동에서 핵심적인 것이었다. 예컨대, 목요일 저녁에 모임을 했던 해당 지부는 수요일에 만나서 당원들과 접촉 대상들이 집이나 직장에서 신문을 받을 수 있도록 계획을 짜야 했다. 모범적인 지부 신문 조직자는 동지들이 얼마나 신문을 팔았는지 그리고 누구에게 팔았는지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지부들은 지역의 신문 구입자들과 핵심 접촉 대상들이 명기된 접촉 대상 명부”(“contact register")를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부들이 해소되면서 신문 배포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지속적인 정치적 관계를 맺기보단, 모임이나 집회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에게 더 의존하게 되었다. 많은 당원들이 신문을 받지도 못하고, 신문 값을 치르지도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처럼 신문 배포가 불안정해지자, 당은 당원들과 독자들에게 신문을 우편으로 받으라고 독려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신문이 지닌 조직적 역할의 축소를 공식화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신문을 배포할 때면, 독자들은 으레 한창 당이 조직하고 있는 일을 다룬 리플릿 한 다발을 받고는 이를 배포해야 했다. 신문이 우편으로 배포되면서 독자들이 지역 지부로부터 분리되어 버린 것이다. 요즘엔 많은 독자들이 종이 신문을 받기 훨씬 전에 이미 온라인에서 핵심 기사들을 읽고 있는 형편이다.

 

신문 배포만 타격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

 

정기적으로 동일한 사람에게 꾸준히 신문을 판매하는 것 마저 않게 된다면, 당신은 신문의 내용을 옹호할 필요성이 점점 줄어들 것이다. 독자들을 대상으로 신문 내용을 옹호해야만 신문을 더 주의 깊게 읽고, 자신의 주장에 대한 독자의 반응을 고려하여 당내에서 이견을 제시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지부의 해소로 인해] 당을 단결시킬 목적에서 정치적 주장들을 조직 내로 집중시키려 했던 신문의 역할은 축소되었다. 그 결과 정치적 이견들이 제기되지 못한 채 당의 여기저기서 곪아있기만 할 뿐, 말끔히 사라지거나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당원과 독자들이 점차 신문과 수동적인 관계를 맺게 되면서, 동지들이 신문에 보고를 작성하고 제출할 수 있게끔 훈련하려는 노력도 덩달아 소홀해졌다. 나는 1년 간 당이 보고 작성과 관련한 가이드를 <Socialist Worker> 웹사이트 상에 올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결국 내 스스로 관련된 가이드를 작성하여 201211IB2에 발표해야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조차도 신문 편집부나 중앙위원회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런 필요를 느낀 것은 아직도 보고를 작성하는 동지들의 수가 충분치 못해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상당수의 산업 보고기사들에 나타나듯, 기사들이 자신의 청중이 누구인지(청중이 해당 투쟁을 벌이는 노동자들인지, 잠재적 지지자들인지, 비슷한 상황과 마주하게 될 노동자들인지)에 대해 전혀 감을 못 잡거나,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 주장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이유는, 사태 진행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설사 사태가 우리의 예상과 달리 나쁘게 흘러간다 해도, 앞서서 그런 주장들을 함으로써 적어도 이후에 우리가 노동조합 관료에 대해 가했던 비판이 훨씬 더 탄탄한 설득력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빠진 대응

 

우리가 신문을 활용하는 방식은 변화해 왔음에도 여기에 대해 유의미한 정치적 토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변화에 대해 논의가 따라가지 못해서] 생긴 조직적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당에 핵심적인 온라인상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문제를 둘러싸고 본질을 빗겨가 대립된 채로 논쟁만 벌어졌을 뿐이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위 공백을 메우기 위해]전국의 많은 동지들은 임기응변을 발휘해 다양한 대응 방식들을 활용해왔다. 이를 통해 다른 동지들과의 관계를 견고하게 하고 주변과의 관계를 건설할 수 있었는데, 우리가 활용해 온 방식들은 다음과 같다.

 

전화 돌리기

지부/지역의 리플릿 등을 보내기 위한 이메일 알림 리스트

이메일 토론 그룹

지부/지역 페이스북 그룹이나 페이지

지부/지역 웹 사이트

문자 메시지

페이스북 이벤트

트위터

 

이들 중 일부는 특정 목적에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예컨대 전화 통화는 면대면 대화보다야 못하지만 차선책으로는 쓸모가 있었고, 시간 효율도 비교적 좋았다.

 

하지만, 위와 같은 실천들을 이론화해보려고 하질 않았던 나머지, 우리는 이것들을 일관성 없이 우연적으로 사용해왔을 뿐이다. 20년 전만 해도 당원들은 신입 당원을 정치적으로 설득하여 신문을 팔고 사람들을 직접 만나게끔 하는데 자신이 있었다. 반면에 전화 통화를 하면서 했던 얘기들은 훨씬 실용적이었고 (그래야 효과가 있으니까 말이다) 덜 정치적이었다. 이 때문에 애초 필요한 수준보다 훨씬 소수의 동지들만 참여했다. , 특정한 행동이 이보다 더 넓은 정치적 과제와 어떻게 부합하는 것인지에 대해 정치적 확신과 명확함을 가지고 있어야 동지들이 부족한 확신을 극복할 수 있다.

 

혁명가들은 활용 가능한 도구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일상 활동들을 정치적 과제와 부합하도록 만들 방법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레닌보다 가능한 선택지들을 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활동을 둘러싼 정치적 논의 수준을 지금 보다 한층 더 끌어 올려야 한다.

 

기술적 변화

 

당 내에서 인터넷[각주:4]의 영향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지만, 그것은 이따금 상황 파악을 못한 채 벌어진 것이었다. 논쟁이 혁명적 신문 이면에 놓인 정치를 다루는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논쟁은 엉뚱하게 진행되어 버렸다. 반면 이집트 RS에서 활동하는 호삼 엘-하말라위(Hossam el-Hamalawy)가 쓴 글[각주:5]은 정치에서 출발한다는 바로 그 점에서 훨씬 더 구체적으로 유용하다.

 

레닌이 활동하던 시절 이래로 수많은 기술적 변화들이 일어났다. 그가 활동하던 시절에는 신문을 이용해 당대의 과제들을 달성하고자 했지만, 기술상의 변화들로 인해 이후에 그러한 과제를 가장 훌륭하게 성취하는데 사용된 방식도 영향을 받았다. 이런 변화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지구적 차원의 즉각적인 커뮤니케이션과 24시간 뉴스로 대변되는 부르주아 언론의 가속화.

2. 노동자들이 활자 매체물보다는 점차로 TV, 라디오, 그리고 인터넷으로 뉴스를 접하게 되는 현상.

3. 편집/출판 관련 시설의 저렴화와 상용화.

4. 이전에 비해 싸고 빠른 장거리 여행.

5. 출판 업계에서 급속도로 시장 점유율을 늘려오고 있는 eBook.(러시 아워에 대중교통을 이용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현상이다.)

6. 다양한 종류의 저렴하고, 즉각적인 형태의 선별적 통신 방식(targeted communication)의 등장.(휴대전화, 이메일, SMS)

7. 사진, 오디오, 그리고 비디오를 제작하고 배포하는 기술의 비용 절감과 상용화.

8. 단순히 일대 다() 방식의 소통이 아닌, 방문자가 웹사이트 관리자 뿐 아니라 서로 상호작용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고 있는 많은 웹사이트들.

9. 소셜 미디어(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10. 그룹들 간의 원거리 토론이 가능하게 된 기능들의 저렴화와 상용화(전화/비디오 토론회, 온라인 포럼, 이메일 토론 그룹, 페이스북 그룹/페이지)

11. 상기한 다수의 소통 형식을 모바일로도 접근 가능해진 것.

12. 전면적인 국가의 감시와 이에 따른 프라이버시의 상실 (CCTV, 이메일 검열/전화 도청, 온라인 활동 로그. 전자 상거래 기록)

 

물론, 우리는 새로운 기술들에 잠재된 위험들을 경계해야 마땅하다. 특히 국가나 고용주가 그러한 새로운 기술들을 이용해 탄압을 자행할 가능성이 높은 곳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제는 목욕물을 버릴 때 아이만 있는 상황이 아니다. ["Throw the baby out with the bathwater"라는 영국 속담을 이용. 원래는 원치않는 것(bathwater)을 버리려다 소중한 것(the baby)까지 잃는다는 뜻]이제는 그 아이가 빠르게 크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맑스주의자들은 사회혁명은 생산력과 생산 관계 사이의 갈등에 기초한다고 주장해왔다. 이 점을 당에 적용하자면, 단언컨대, SWP는 현대의 의사소통 기술을 활용하는데 적응하지 못한 나머지 위기가 악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호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느 조직에서건 민주적 토론이 이루어지려면 다양한 관점들이 당원들 사이에 빠르게 전달되어야 하는데, “기술적으로 [그 파장이]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 탓에 인터넷 활용을 부당하게 거부하며 비정기적인 내부 토론 회보를 출판하는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 당원들은 이런 출판물에 도무지 글을 쓰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쓴다 해도 수개월 후에나 발표되거나, 언제 출판될지도 불확실하고, 그조차 전 당원들에게 제대로 전달될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매체에 누가 글을 쓰려고 하겠느냐 말이다. 이렇듯 내부 소통을 원활하고 신속하게 해주는 통로가 없다보니 조직 내부적으로는 급작스런 충돌과 분열을 겪고, 일부 사람들은 좌절하게 된다. 이렇게 좌절한 사람들이 끝내 조직에서 탈퇴하기도 한다.”

 

우리는 종종 맑스주의가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점을 잊곤 한다. , 맑스주의는 세계와 역사를 분석하고, 과학적 토대에 바탕해 행동의 근거를 제시하는 사상이라는 점 말이다. 지난 20년간 이루어진 의사소통 기술상의 놀라운 발전에 따라 생산관계와 생산력도 심대한 영향을 받았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사는 사회와 세계의 토대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발전이 상부구조와 인류의 생활 방식, 그리고 정치 조직을 건설하는 방식에도 반영되지 않을까? 물론 이렇게 얘기한다고 해서 내가 지금 가상세계에서 조직을 건설해보자고 유혹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내가 주장하는 바는, 현실에 뿌리내린 과학적 사회주의 조직을 건설하자는 데 있다. 이로써 당원들에게 안전하면서도 현대적인 소통 경로를 제공하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필요한 속도에 걸맞는 민주적 토론을 할 수 있어서다. , 그럴 때에야 조화와 더불어 실천상의 집중주의도 제 구실을 확실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벤트리의 동지는 온라인에서 벌이는 논쟁은 논쟁에 대한 개인주의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 파업 찬반투표를 대중 집회가 아닌 우편을 통해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면대면 모임이 토론에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혁명가들이 순전히 집단적 모임에만 의존했던 것은 아니다. 맑스와 엥겔스, 그리고 기타 모든 저명한 혁명가들은 서신 교환에 많은 공을 들였다. 예컨대, 러시아 혁명가들은 종종 신문을 해외에서 제작해야 했는데, 그럴 때 그들은 [러시아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논쟁을 따라잡기 위해 거의 전적으로 편지들에 의존했다.

 

물론, 온라인 토론엔 정말 약점이 있다. 메시지의 뉘앙스를 읽어내기가 더 힘들기에 온라인 토론은 오해와 불필요한 갈등을 확대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당신의 면전에서는 감히 하지 못할 말들도 온라인에선 뱉어낸다.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만이 온라인 토론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토론이 공격적으로 바뀌면 바뀔수록 더 광범한 사람들이 참여하기는 그만큼 쉽지 않게 된다. 어느 정도까지는 이런 문제들이 교육과 경험을 통해 극복되기도 하지만, 적당한 조정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예컨대, 다중의 즉각적인 응답(multiple instant responses)을 자제시키거나 막는 토론 형식처럼 말이다. 또한 친근한 사람들로 이뤄진 그룹(e.g. 소셜 미디어 친구들, 폐쇄된 그룹)과 누구에게나 개방된 포럼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토론엔 큰 차이가 있다. 토리당 지지자들의 악성 댓글이 난무하는 속에서 수준 높은 맑스주의 이론 토론을 하기는 힘들 테니 말이다.

 

자본가부터 노동조합 활동가, 그리고 SWP 당원들에 이르기까지, 현실에서는 누구나 가장 효과적인 소통방법은 여러 도구들을 조합해서 활용하는 것이란 점을 잘 알고 있다. 이 도구들이 목적에 따라 상대적으로 더 적절하거나 부적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결정적 이유가 있는데, 어떤 사람은 특정한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이처럼 다양한 소통 도구들을 적절하게 조합해 사용하는 것이지, 그 자리에서 바로 이런 가능성들을 기각시켜 버리는 것이 아니다.

 

소셜리스트 워커

 

소셜리스트 워커는 여전히 최고의 좌파 신문이다. 소셜리스트 워커는 굉장히 폭넓은 정치적 문제들을 제기하고 중요한 투쟁들 대부분을 다룰 뿐만 아니라 편집도 근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셜리스트 워커가 최근 수십년[각주:6]간 제시한 전망은 불명확했다. 이 점을 감안해야 비로소 그동안 우리가 대중과 연관을 맺기 위해 신문을 바로잡으려 그토록 분투했음에도 쉽지 않았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소셜리스트 워커는 아주 좋은 브랜드.(비록 지금은 다소 퇴색하긴 했지만) 이건 신문이 오랜 기간 발행되어 온데다가, 리플릿, 신문, 플래카드, 전단지, 그리고 온라인에서 일관되게 활용해왔던 덕분이다.

중앙위원회는 출판 부분을 다룬 글IB3 p.11 발표한 글에서 소셜리스트 워커 웹사이트에 대해 피상적 언급만 하고 있다. ,

 

올해 초 새로 선보인 소셜리스트 워커 웹사이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호의적이었다. 새 웹사이트가 모든 기기를 통해 소셜리스트 워커를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인데, 이를 통해 모바일이나 타블릿을 통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우리 웹사이트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웹사이트는 예전보다 더 유연성을 갖추게 되어, 사람들이 노동쟁의와 캠페인을 벌이는 와중에도 사진이나 비디오 클립을 전송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새 웹사이트는 근사할 뿐 만 아니라, 다양한 기기에서도 사용 가능하게끔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정치적 문제들을 해결하지는 못했는데, 바로 그 문제 때문에 우리는 지난 20121SWP 당대회에서 (대체로 시행되지 않은) 일련의 결정들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새 웹사이트는 내용면에서 출력판 보다 나을 것이 없다. 독자들과 소통하려고 하지도 않고 그런 사람들을 오프라인에서 접촉하기 위해 모아내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다. 아카이브는 예전 버전보다 더 형편없고, 태그 기능도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SWP 웹 사이트와의 통합도 형편없다.

 

더 넓은 출판 영역의 시각에서 봤을 때, 우리가 PDFeBook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은 놀라 자빠질 일이다. 그것들을 활용하면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양으로, 더 저렴하게 출판물을 발행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참으로 역설적인 것은, SWP 내에서 인터넷을 활용하자는 주장에 반대하면서 제시된 주요 주장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인터넷이 가진 수동적특성들이란 점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인터넷을 사용하게 되면 그런 위험성을 상쇄하기는커녕 그것을 더 악화시키게 된다. 예컨대, 우리는 업데이트와 관련한 이메일 주소를 수집할 형식을 만들어 제공하지도 않으면서, 기사에 대한 코멘트를 하라고 독촉하거나 행사에 사람들을 참여시키고자 행사와 관련한 지도나 달력 링크를 제공하곤 한다.

 

우리는 변화[각주:7]에 한참 뒤쳐져 있고, 많은 사람들도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특히 우리의 중요한 청중이 돼야 할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들 생각한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호삼의 표현대로, “그저 인쇄본을 보완하는 온라인 상의 동반물인 양 웹사이트를 그저 덤으로 취급해선 안 된다. 대신 웹 사이트는 중앙 기관이 되어야 한다. 웹사이트는 보고를 수집하고, 정치적 논쟁을 집중화하며, 우리의 주장을 폭넓은 청중에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그들과의 정치적 관계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인쇄본에 비해 훨씬 강력한 도구다.

 

그러나 우리는 목욕물을 버리다가 아기까지 버리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we must not throw the baby out with the bathwater) , 인쇄본 발행은 여전히 핵심적인 것으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쇄 발행본을 거리, 피케팅, 집회, 모임, 그리고 작업장에서 판매해야 한다. 그리고 인터넷 접속을 거의 않는/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인쇄물로 읽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전달해야 한다.

 

웹사이트를 중앙 기관으로 만들려면 상당한 자원을 그쪽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웹사이트가 그런 목적에 확실하게 부응하도록 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기사를 업데이트할 뿐만 아니라, 당원들은 효과적으로 웹을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보유한 많지 않은 재원 가운데 이전보다 더 적은 양을 인쇄본 발행 전체나 일부에 할애할 수밖에 없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정치적 주장을 통해 당원과 지지자들이 온라인 발행과 인쇄 발행을 모두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레닌은 전국 신문을 통해 혁명가들이 효과적으로 조직될 수 있다는 정치적 주장을 펼쳤다. 그는 그런 주장을 통해 일부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고, 현실에서도 그 주장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그는 분산된 혁명가 그룹들을 괴롭혔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을 제시했고 그들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수단을 제공해주었다. 우리도 오늘날 그와 같은 일을 해야 한다. , 활동가들이 가능한 효과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끔 적절한 발행물과 조직체계를 제공하는 것 말이다. 우리가 활동가들이 원하는 발행물을 제공할 수만 있다면, 활동가들은 우리의 주장을 계급에게 알릴 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더 넓은 청중과 영향력 그리고 주변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121SWP 당대회에서 우리는 더 많은 당원들이 산업 리플릿을 제작하는 일에 참여할 것을 제기하는 발의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그 발의안조차 애초 제출된 발의안을 현실화할 수 있게끔 매뉴얼을 제공했던 구체적 제안을 중앙위원회가 자신의 수정안을 통해 삭제한 후에야 통과되었다. 리플릿을 쓰고, 리플릿에 무엇을 담을 것인지 토론하고, 논조는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논의하는 것은 중요한 과정인데, 이를 통해 당원들은 상황을 평가하는 통찰력과 지도력을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리플릿은 신입 당원과 고참 당원이 함께 만드는 것이 좋고, 적절히 비당원을 포함시킬 수도 있다. , 작업장 리플릿을 발행하는 과정에서 정보를 수집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작업장에 더 깊게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지부모임에서는 리플릿과 그것에 대한 반응을 두고 논의해야하는데, 이 때문에 종종 논쟁이 촉발되기도 한다. , 우리는 동지들이 다른 글을 쓸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작업의 일환으로, 집단적으로 지역 리플릿을 제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중앙에서 제작되는 리플릿은 쓸모가 있지만, 동지들이 그걸 세부적인 지역 맥락에 맞게 변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랬을 때 동지들은 각 지역에서 기꺼이 리플릿을 출력/복사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예전에 우리는 게스테트너 스텐실 복제기(Gestetner stencil duplicator-구식 등사 복사기)를 주요 지역에 배치하곤 했었다. 지금은 모든 지역에서 최소한 성능 좋은 프린터/복사기 하나씩은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

 

우린 지금보다 더 많은 필자가 필요하다. 이것은 단지 발행물에 글을 쓰는 사람이 발행물과 관련한 작업에 더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더 열심히 팔려고 한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상근 기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기사를 쓰는 발행물은 노동자들과 피억압자들의 경험을 온전히 반영해낼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예를 들어, 레이(Ray)IB3 p.110에서 거의 대부분의 작업장에서 이루어지는 현대적 관리 기법에 대해 몇 가지 흥미로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많은 노동자들이 그 관리 기법들을 혐오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린 그 관리 기법들을 다룬 글을 거의 쓰지 않거나 그 기법들이 자본주의적 착취/저항이라는 더 큰 그림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리플릿으로는 충분치 않다. IS/SWP가 작업장 발행물을 대량으로 제작하던 시절에는 한 면은 특정 작업장, 다른 면은 정치 일반을 다루는 것이 지침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이 지침은 신문과 함께 활용할 것을 전제로 고안된 것이다. 우리가 가진 자원을 인쇄 발행에서 전자 발행으로 배치하면서, 이제는 두 면짜리 A4 리플릿이 구체와 일반을 적절히 통합하거나 다양한 글들을 싣는 데 한계가 많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1968년의 소셜리스트 워커도 무려 네 면짜리였다!

 

, 지금 인터넷 이용자들은 무료로 제공되는 정보에 익숙하다. 사실 인터넷 이용자들은 고객이라기 보단 상품에 가깝다. 왜냐하면 그들의 개인 정보와 스크린 공간상의 존재는 광고업자들에게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방식이 퍼져가면서 인쇄본 미디어의 위기가 발생하고 광고 수입 재정만으로 무료 신문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당연히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모델을 따라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독자들을 정치적으로 설득해서 그들이 우리의 출판물에 재정적 지원을 하게끔 해야 한다. 물론 이것이 출판물 한 부당 얼마의 가격을 매기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초기의 신문은 비쌌고, 문맹률도 높았기에 신문을 돌려 읽거나 글을 아는 사람이 소리내어 읽어주곤 했다. 돈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모아서 냈다. 그때와는 다르게 오늘날 온라인 독자들은 실제의 재정적 지지자들보다 훨씬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독자층을 최대한 늘리면서도 그들의 재정적 기여율을 극대화해야한다. 이것은 온라인 보다는 인쇄 발행물을 활용할 때 더 쉽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둘 모두를 결합해 활용하는 것이 이롭다.

 

[글들의] 재활용은 매우 중요하다. 웹사이트가 우리의 중앙 기관이라면, 웹사이트상의 글들을 결합하여 다양한 인쇄 발행물로 제작할 수 있다. 그 중 일부는 중앙에서 직접 출력된 형태로 제작되겠지만, 나머지는 PDFeBook, 혹은 eBook 독자들이 사용하거나 다운로드하기 쉽게 편집 가능한 포맷으로 제작될 것이다. , 일부는 (적절한 수준에서) 지역적 차원의 변형을 거쳐 인쇄와 배포를 할 수 있도록 제작되기도 할 것이다. 아무래도 장문의 글을 PC화면이나 폰으로 읽고자하는 사람은 많치 않아서다.

 

소셜리스트 워커 리플릿과 이따금씩 나오는 별쇄본(“pull-outs”)이 작업장 게시판과 벽에 게시되곤 한다. 이건 온라인상에서 컨텐츠가 "바이러스처럼 확산"(“gonig viral")되는 현상의 출력 인쇄물 버전에 해당한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확산될 수 있는 컨텐츠를 더 많이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짧은 소책자나 자료표(fact-sheets)로 출력 가능한 인포그래픽(infographics)이든 밈(meme)이든, 아니면 특별 발행물이든 말이다. 이들 모두에는 웹 주소가 기재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당원들에게 일련의 지침을 제공해줘야 하고, 해당 지침을 중심으로 훈련 세션을 운영해야 한다. 마치 우리가 작업장에서 조직을 시작할 때처럼 말이다. 이런 교육엔 다음의 것들을 포함한다. 예컨대, 리플릿 쓰기, 웹사이트 용 글쓰기, 활용가능한 사진 촬영, 비디오 제작과 활용, 라이브스트리밍(livestreaming), 소셜 미디어의 효과적인 사용, 인신공격이나 왕따를 피하면서도 인터넷 사용하기 등등 말이다.

 

부르주아 언론은 연중무휴로 온종일(24/7) 뉴스를 내보면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소셜 미디어의 속도를 따라잡기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부르주아 언론은 자신의 역할을 보도 기능으로 한정했는데, 이는 사건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시한을 넘기 전에 심층분석을 제공하는 것이 그만큼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같은 함정을 피해야 한다. 우리의 웹 사이트가 모든 것을 즉시 보도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물론 주요 사건에 대해 조심스럽게 생방송 보도를 활용하면 청중들을 끌어들일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하는 모든 보도는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부정의한 상황을 폭로하고, 투쟁을 부각시키며, 교훈을 배우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주장하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즉시 보도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해서, 먼저 공식 입장에 합의를 해야만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 논평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편집부의 입장과 집단적 관점이 형성되기 전에 어떤 동지가 사건을 분석하도록 토론 공간을 개방하는 것은 온전히 다른 문제라는 점을 과감하게 인정해야 한다. 개인들이 논평을 하고 거기에 다른 사람들이 응답하는 과정 덕에 사람들은 집단적 관점을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왕성한 대인 접촉 문화(contacts culture)를 구축해야 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상의 다양한 접촉을 통해 활동가들과의 정치적 관계를 체계적으로 건설하고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양과 질이라는 측면에서 전화 통화와 직접 만나러 방문하는 것을 혼용할 수 있다.

 

우리는 조직 내적인 소통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상기한 수단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그룹(지역별, 활동 부문별, 분파별)에 속한 많은 동지들이 이미 이런 토론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이메일 토론, 페이스북 토론, 스카이프(Skype) 다중 화상 채팅 등을 실험해왔다. 이런 것들 각각이 나름의 문제들을 가지고 있지만, 가장 좋은 실행 방법을 찾기 위해 해당 수단이 지닌 장점과 단점들을 실험해보고 그 결과를 놓고 토론해야 한다. 하지만, 이건 중앙위원회가 IB3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 것처럼, 단지 내부 토론과 관련한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중앙위원회]SWP 웹사이트에 소셜리스트 워커 토론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우리 발행물에 실린 글들에 대해 비판하거나 이론상의 중요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만약 동지들이 좌파 전략을 둘러싸고 최근에 마크 토마스와 에드 룩스비가 벌인 논쟁에 대해 비판하거나 덧붙이고 싶다면, 온라인에서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건 더 광범한 사람들과 연관을 맺는 문제이기도 하다. 일부 동지들은 돌봄 노동을 해야 하거나 여기저기 이동해야 할 사정 탓에, 혹은 지리적으로 고립된 나머지 지부 모임에 참여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모임에 실제로 참여하는 것이 쉽도록 계속 노력해야겠지만, 개인 라이브스트리밍을 활용해서 직접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도울 수는 없을까? , 온라인을 통한 소통을 늘려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이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게 되면, 지부가 없는 지역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모을 가능성도 있다. (이미 노동조합들은 분명 이렇게 온라인을 통해 조합원을 모집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를 위해 세부적인 제안과 필요한 변화를 추진할 수 있는, 다양한 전문지식을 갖춘 미디어 위원회가 필요하다.

 

결론

 

SWP는 소통과 조직이라는 면에서 너무 시대에 뒤처져왔다. 기왕의 기술적 변화를 레닌의 정치를 적용하고 발전시킬 기회로 활용하기 보다는 혁명적 신문이라는 형식에 집착해왔기 때문이다. 그 사이 우리의 관행은 신문의 정치적 컨텐츠를 잃을 정도로 변질되어 버렸다.

 

만약 우리가 효과적으로 조직을 건설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오류들을 시정하기 위해 가능한 빨리 과감한 전환을 해야 한다. 제대로 굴러가지도 않는 구식 방식에 집착하느라 조직을 건설할 기회를 날려버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호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웹사이트가 신문의 대체물이 될 수는 없다. 동지들은 각종 행사나 당원 네트워크, 그리고 동조자들에게 신문을 계속 배포하려 애써야 한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노동자들의 수가 늘었다고는 해도 (모바일이든, 편안하게 피시방에서든), 신문은 여전히 그들과 소통하기 위한 핵심적인 수단일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신문이 정기적으로 발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앞으로 신문은 조직에서 핵심적인 출판물이라기보다는 보완물이 될 것이다. 따라서 웹사이트를 조직가로 선택하는 것, 이것은 레닌이 지난 세기에 던진 같은 질문에 대한 현대적 답을 내놓기 위한 첫 걸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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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my와 Mark 가 이 논쟁에 참여한다. (IB1 p.40 and IB3 p.73) [본문으로]
  2. http://www.marxists.org/archive/harman/1984/xx/revpress.html [본문으로]
  3. http://www.mrrxists.org/archive/lenin/works/1901/withd/index.htm [본문으로]
  4. 조니 존스(Jonny Jones)의 “Social media and social movements"(마르크스21 10호에 수록, <소셜 미디어와 사회운동>)이 매우 유용하다. 특히 강한 유대 관계(strong ties)와 느슨한 관계(weak tie)를 다루는 부분에서. http://www.isj.org.uk/?id=772 [본문으로]
  5. "What is to be done: The Website as an Organizer" http://www.arabawy.org/2012/09/06/what-is-to-be-done-the-website-as-an-organizer-revsoc/ [본문으로]
  6. “하강기”(the "downturn")라는 용어는 70년대 말 노동자 투쟁의 물결이 썰물처럼 빠지고 있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러한 상황에서 당이 단결하는데 매우 유용한 묘사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 밖의 중대한 국면 변화는 없다고 가정했고, 이 때문에 새로운 시기를 분석하려는 진지한 시도를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는 상승기(upturn)가 곧 이어 찾아 올 것이라고 기대했고, 이는 당이 새로운 상황에 적절하게 조응하는 것을 방해했다. 계급투쟁은 일면적이지 않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상승기”나 “하강기”, 또는 “그 사이”라는 틀보다 더 심도있는 분석이 필요하다 [본문으로]
  7. 예를 들어, 제이슨 만(Jason Mann)이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썼던 많은 자료들을 보라. http://www.strategic-organizing.com/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