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박근혜의 눈에서 억지로 짜내듯 눈물이 약간 나오는 데 무려 한 달이 걸렸다. 박근혜는 자신도 ‘아파할 줄 아는 대통령’이라는 것을 입증하려는 듯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지도 않았다.
하지만 박근혜의 우는 연기는 정몽준보다는 실감나지 않았다. 정몽준은 아마도 ‘옳은 말을 했지만 때를 잘못 고른’ 아들을 생각하며 감정을 고조시켰으리라.
오전에 사과하고 오후에 핵발전소 수출하러 간다는 박근혜의 눈물에 냉소적이지 않기는 힘들다. 이 곳에서 재난을 수습도 안 해놓고 이제는 딴 곳으로 재난을 수출하러 간다? 물론 외국가서 새옷 입고 뽐내기 하는 취미를 언제까지 참기는 힘들겠지.
무엇보다 문제는 오늘 나온 알맹이없고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담화 내용이다. 오늘 담화의 핵심은 해경 해체와 국가안전처 신설로 보인다. 일단 안전 업무와 구조·구난과 해양경비, 해양교통 관제 기능과 권한을 모두 가져오겠다는 국가안전처는 새로운 거대 관료조직의 탄생이다. 문제가 생기면 새로운 기구와 자리를 만들어 거기에 또아리를 틀고 새로운 유착관계를 만들어내는 게 관료들의 특기 아닌가.
해경 해체? 그러면 해피아의 본산인 해수부와 국토부는 왜 해체 않는가? 청해진 압수수색 정보를 미리 흘린 검찰은? 9시 10분에 최초 보고를 받았다는 국정원은? 컨트롤타워로서 총체적 실패한 청와대는? 지난 한달 동안 세월호의 진실을 가리기 위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기록 삭제와 조작, 정부전산센터 마비 등이 과연 해경만의 힘으로 가능했을까?
오죽하면 구원파 대변인이 “유병언 전 회장을 그렇게 신속히 압수수색한 것처럼 해경과 해양수산부, 안전행정부, 청와대까지도 압수수색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정도다.
유병언에 대한 꼬리 자르기 속에 박근혜는 “사익을 추구하여 취득한 이익은 모두 환수하고 그런 기업은 문을 닫게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면 당장 한달간 노동자 8명을 죽인 박근혜의 친구이자 집권여당 서울시장 후보인 정몽준은? 그저께 또 한명의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이건희는? 문을 닫게 만들긴커녕 더 죽여도 된다고 돕고 있지 않은가?
박근혜는 ‘국회에서 여야가 함께 문제 해결에 나서달라’고 했다. 과연 문제의 근원인 새누리와 ‘관제야당’이라는 새민련이 그런 구실을 할까? 같이 기초연금 개악안이나 합의하고 ‘수영교육 활성화 방안 토론회’나 추진하던 자들이?
무엇보다 박근혜의 오늘 대책에는 유가족들이 핵심으로 요구했던 성역없는 진상조사와 진상조사위에 강제수사권 부여 등이 빠져 있다. 언딘은 언급도 안 되고 있다. 결국 박근혜식 대처는 ‘해수부마피아’를 ‘국가안전처마피아’로 교체할 뿐일 것이다. ‘유병언장학생’들을 잘라낼지는 몰라도 ‘이건희장학생’들은 건드리지도 못할 것이다.
박근혜의 눈물에 1%의 진심이라도 담겼다면 이런 대책이 나왔어야 한다. 진상조사위에 강제수사권을 주겠다고, 언딘이 구조사업을 맡게된 경위부터 밝히겠다고, 청와대부터 수사를 받겠다고, 해운조합과 해양구조협회의 돈을 받고 법안을 처리한 여야의원들도 수사하겠다고, 언론에 대한 통제를 중단하겠다고, 선박연령 제한을 풀어버린 이명박의 책임을 묻겠다고,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규제완화와 민영화를 중단하겠다고, 공공서비스 분야의 외주화와 비정규직화를 중단하겠다고, 노후한 핵발전소들을 폐쇄하겠다고,
물론 ‘순수 대통령’도 아니고 태생부터가 부정한 박근혜가 그럴 리는 없다. 나는 어제 영화 ‘대부’가 생각났다. 영화에서 마이클 콜레오네는 성당에서 한 아기의 대부가 되는 경건한 의식을 치르면서, 동시에 자신의 경쟁자들을 다 죽여 버린다.
어제 박근혜는 명동성당 추도식에서 자신의 가슴을 치며 ‘제탓이오, 제탓이오, 저의 큰 탓이옵니다라고 세 번 외쳤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 박근혜의 경비견들은 어제와 그제 이틀 동안 이 나라의 진실과 정의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짓밟아 버렸다. 그젯밤 안국역에서 119명 연행, 어제 강남 장례식장에서 24명 연행, 어제 광화문 ‘가만히 있으라’ 대학생 97명 연행.
놈들의 시나리오가 그려진다. 검찰의 삼진 아웃제 발표 -> 대거 연행 -> 대국민 담화와 박근혜 출국 -> 세월호 국회 개원과 시간 끌며 김 빼기
하지만 저들의 뜻대로 돼서는 안 된다. KBS 사장 길환영은 김시곤에게 “주말에 대규모 촛불집회가 예정돼 있어 위기국면이다”라며 사퇴를 요구했다고 한다. 이 저들의 ‘위기국면’은 더욱 커지고 강해져야 한다. 일단 KBS 노동자들의 제작거부와 파업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삼전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강력한 연대가 건설돼야 한다. 청계광장에서 시작된 민주노총의 농성도 더 많은 조합원들의 투쟁 동참 조직과 파업 건설의 디딤돌이 돼야 한다. 탄압이 강해질수록 우리도 각개약진보다는 더 큰 단결과 힘의 결집으로 맞서야 한다. 그 속에서 운동의 방향과 진로에 대한 토론과 실천 속의 입증이 돼야 한다.
삼성전자서비스의 염호석 열사는 “빛을 잃지 않고 내일도 뜨는 해처럼 이 싸움 꼭 승리하리라”는 유서를 남겼다. 세월호 참사의 최연소 생존자인 권지연 양은 지금 ‘엄마아빠와 오빠가 왜 자기만 놔두고 제주도로 이사갔냐고 하면서 울고 있다’고 한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는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고, 모든 사람의 안전이 보장되는 나라를 만들”자고 호소했다. 더 이상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버린 뒤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하며 눈물짓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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