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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국회가 아닌 아래로부터 힘이 계속 중심이어야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6. 11. 25.

전지윤



때때로 한 세대 전체를 마법에 빠뜨리는 특별한 해가 있다. 이런 시기는 나중에 그 해를 단순히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의 마음 속에 수많은 상념이 떠오르게 한다. 1968년이 바로 그런 해였다. (크리스 하먼, <세계를 뒤흔든 1968>)

 

한국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민주화 항쟁이 벌어진 1987이 그런 해였다. 민주노총 총파업이 벌어진 1997년도 언급될 수 있다. 광우병 촛불이 100만에 도달했던 2008년도 기억난다. 그리고 지금 2016년이 매우 중요한 의미로 여기에 추가되고 있다.

 

지금 아래로부터 대중의 힘이 엄청난 변화들을 낳고 있다. 기존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방방곳곳에서 정권 퇴진을 주장하며 집회와 행진을 벌이는 일, 대부분의 언론·방송이 주말 집회를 홍보하고 집회 참가를 권유하는 일, 곳곳에서 내부고발자가 등장해 지배자들의 치부를 까발리는 일 등이 벌어지고 있다.

 

이 아래로부터 힘 앞에서 지배자와 우파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심각한 내부 분열로 치닫고 있다. 민정수석과 법무장관이 동시에 사퇴하며 국가 억압기구의 균열과 마비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100만이 거리로 나왔을 때 일부 우파는 침묵하는 4900만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 주말 우파가 조직한 대항 집회에는 경우 1만이 모였을 뿐이다. 100만 대 1, 이것이 지금의 상황을 요약해서 보여 준다. ‘바람불면 꺼질 것이라던 촛불은 대중의 화를 돋우는 저들의 부채질 속에서 들불로 번지고, 횃불로 커지고 있다.

 

이것은 박근혜 지지율이 여전히 밑바닥를 헤매고 있을 뿐 아니라 매주 마다 크게 증가하는 박근혜 퇴진 지지 여론 수치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주말 집회의 특징도 박근혜 퇴진을 넘어선 박근혜 구속의 외침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특히 이 정권이 그토록 덮고자 했던 세월호 7시간이 박근혜의 목줄을 죄어가고 있다. 지금 ‘7시간이란 단어만 들어도 눈가가 붉어지고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우리의 친구, 자매, 가족들이 죽어갈 때 박근혜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분노가 참을 수 없는 슬픔과 함께 폭발하고 있다. 이것만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모두의 심정이다.

 

이런 압력과 분노가 거대한 쓰나미처럼 지배자와 국가기구들을 덮치고 있다. 검찰이 비루먹은 강아지에서 굶주린 하이에나로 하루아침에 빛의 속도로 돌변”(새누리 원내대표 정진석)해 박근혜를 물어뜯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고, 억압적 국가기구이자 지배계급의 도구로서 검찰의 성격은 여전하다. 지난 검찰 수사결과는 알맹이가 빠진 것이었다. 뇌물죄 적용이 빠졌고, 공범으로서 재벌이 빠졌고, 우병우 기소도 빠졌다. 성난 파도가 가라앉으면 검찰은 언제든지 박근혜에게 면죄부를 줄 것이다. 야당의 잘못된 합의로 곳곳에 구멍이 뚫린 특검법도 마찬가지다. 박근혜가 검찰 수사를 거부하며 특검 수사를 받겠다고 하는 것도 이와 연관있다


새누리당 비박계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박근혜와 선을 긋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탈당, 분당은 물론이고 탄핵까지 찬성할 기세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공범이자 부역자였다는 것을 가리고, 시간을 끌면서 투쟁을 가라앉힌 다음에 새로운 (중도)보수신당을 만들어 위기를 벗어나겠다는 계산일 것이다.

 

<조선일보>탄핵 절차는 그대로 진행하면서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는 개헌도 함께 추진하자거나 이제는 사태를 거리에 방치하지 말고 정치권으로 끌어당겨 거기서 대타협을 했으면 한다며 이것을 코치하고 있다.

 

비박 우파는 3지대에서 이런 사기극을 벌이며 간판교체와 신장개업을 하고 싶어 하는데, 여기서 비박 우파와 손을 잡을 수 있는 세력으로는 반기문만이 아니라 안철수와 국민의당, 김종인과 민주당 오른쪽의 일부 세력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것은 1987년에 노태우의 6.29선언이나, 19913당합당 등을 떠올리게 한다. 6.29선언 때 전두환·노태우는 거리의 요구를 받아 안는 척하면서 시간을 벌고, 결국 연말 대선에서 우파 정권 연장에 성공한 바 있다. 3당합당 때 노태우는 김영삼과 손을 잡으면서 야권을 분열시키고 역시 우파 정권 연장과 권력 기반 확대를 이루었다.

 

따라서 탄핵이라는 법적 절차에 들어가게 됐으니 촛불은 그만하면 충분하다. 이제 제도권에 맡겨두고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에 절대 속아선 안 된다. 이런 주장은 지금 우파들이 가장 노골적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 야당은 이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얼마전 야3당이 철도노조에게 국회에서 해결해줄테니 파업을 중단해달라고 권고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민주노총이 정권 퇴진 총파업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박수는 못칠망정 찬물을 끼얹으려 한 것이다.(유감스럽게도 3에는 원내 유일 진보정당인 정의당도 포함돼 있었다.) 국민의당 유성엽은 박근혜가 종북 운운하며 반격하는 빌미를 준다며 노골적으로 민주노총 총파업을 반대하고 나섰다.

 

사실 야당은 이것만이 아니라 많은 동요와 타협을 하며 믿음을 못주고 있다. ‘박근혜의 명예를 지켜주겠다는 문재인의 약속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러니 박근혜 쪽이 차라리 탄핵으로 가자며 뻗댈 수 있었던 것이다.

 

야당, 특히 민주당은 박근혜가 당장 퇴진하면 자신들이 2달만에 대선을 치를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생각으로 보인다. 또 그것이 낳을 국정공백과 혼란에 대한 우려와 그것을 책임지고 싶지 않은 계산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좀 더 시간을 벌면서 후보 문제와 선거연합 등을 정리하려 하고, 지배자들에게도 자신들이 이 체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러니 탄핵이 박근혜를 당장 퇴진시키려는 시도의 하나라기보다, 시간을 끌면서 여야간 정치적 거래와 타협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의심되는 것이다. ‘황교안 딜레마도 마찬가지다. 야당이 박근혜를 당장 퇴진시키고 박근혜 체제 부역자들을 모두 청산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했다면 이것은 처음부터 논란거리가 될 이유가 없었다


이런 민주당의 동요와 타협 때문인지 지금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 지지율도 일부 오르고 있지만 무당층의 증가도 두드러진다. 그래서 박근혜 쪽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전통적 우파 지지층이 되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결국 지금의 문제점은 민주당이 비박 우파와 타협하고, 비박 우파는 친박 우파와 타협하고, 친박 우파는 박근혜에게 굴종하면서 이어지는 타협과 굴종의 연쇄고리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이 연쇄 고리에 맞물려 있는 세력은 모두 국정 혼란과 공백은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고, 그 속에서 정치적 시체가 된 박근혜가 한일군사협정을 강행하는 재앙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러다가 정말 박근혜가 트럼프와 정상회담까지 하는 기가막힌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5만에서 20만으로, 20만에서 100만으로 계속 도약해 온 이 투쟁은 이제 제도권에 맡겨두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욱 더 강력한 힘으로 발전해 가야 한다. 그 점에서 1600여 단체가 결합한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지역과 부문을 씨줄과 날줄로 더 탄탄한 조직을 만들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전국 곳곳과 부문에서의 다양한 촛불집회와 행진, 대학생 동맹휴업과 농민들의 농기계 상경투쟁, 노동자 총파업 등이 건설되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이런 투쟁을 응원할 뿐 아니라, 2·3차 행동으로, 나아가 무기한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불법으로 탄압받는 '정치파업'은 결코 쉽지 않고 단지 선언한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더 강한 지지와 연대가 필요하다. 찬반 투표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토론, 동의를 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사실 노동자들이 공장 울타리를 벗어나 더 큰 사회적·정치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고 노동운동의 갈 길이기도 하다


거리의 열기가 캠퍼스와 작업장, 생활의 곳곳으로 번져가도록 더욱 노력해야 한다. 이런 대중투쟁의 물결 속에서는 선진부위와 후진부위가 고정된 게 아니며, 계속 갈마들면서 자리를 교체하고 상승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봐야 한다.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들도 이 투쟁에서 결코 소외돼서는 안 되며, 이 투쟁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그들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조직된 대중과 미조직 대중 모두가 이 투쟁의 핵심 주역이 돼야 하며, 어느 특정 주체나 특정 행동만이 아니라 이 모든 억압·차별받던 사람들의 다양하면서도 단결된 투쟁만이 진정한 힘일 것이다.

 

제도권 야당이나 심지어 우파가 다시 이 투쟁의 성과를 낚아채지 않게 하기 위해서 거리의 시민과 시민사회, 노동운동을 포괄하는 독립적인 정치대안을 발전시키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사실 강력하고 단결된 진보정당이 있었다면, 100만의 힘이 자유주의 야당에 휘둘리다 죽 써서 누구주는 걸 좀 덜 걱정했을 것이다.

 

종북몰이와 진보당 강제해산, 진보정당 사분오열의 결과가 지금 정의당이 자유주의 야당과 같이 철도 파업 중단을 권고하는 안타까운 모습으로 나타났으리라. 거리의 압력을 원내로 전달하며 자유주의 야당을 압박하는 게 아니라, 야당의 타협 압력을 거리로 전달하는 셈이다. 물론 타협을 기대하는 일부 노동운동 지도자들도 여기서 자유롭진 않을 것이다.

 

정의당은 3당 공조가 아니라 거리와의, 원외 진보정당과의 공조에 중심을 둬야 한다. 그리고 진보정당들은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자유주의 야당과는 독립적인 정치 대안 건설에 애써야 한다. 그것은 공동의 요구와 그것을 위한 협력적 실천과 토론 속에서 더 효과적으로 건설될 수 있다. 지금같은 열기 속에서라면 대중을 폭넓게 포괄하면서도, 동시에 매우 급진적인 정치 대안을 건설하는 게 어렵지 않을 수 있다


지금의 투쟁이 876월항쟁과 7·8·9 노동자 대투쟁이 한꺼번에 결합되는 양상으로 나아간다면 정말 환상적일 것이다. 즉 미조직 대중의 자발적 투쟁 물결 속에서 급진적 의식의 발전과 민주적 자치조직의 대거 건설이 나타나고, 다양한 정치적 요구와 경제적 요구가 결합되는 양상 말이다. 이 마법같은 투쟁의 시간은 끝나지 말아야 한다.

 

 

여성들이 소외되지 않는 투쟁을 위해


최태규



이제는 전국민이 박근혜의 퇴진을 외치고 있지만, 여전히 그는 요지부동이다.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어제 뉴스에 나왔던 박근혜를 씹고 뜯고 즐긴다. 그러나 많은 지적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의 고집처럼 좀체 고쳐지지 않는 것이 있는데, 바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말들이다.

 

특히 "아줌마"로 대표되는 나이 든 여성은 우리 사회에서 무엇을 하든 비웃음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 "아줌마!"라고 불리기만 하는 것도 기분 나쁜 일이 되었다. 청와대의 구입물품목록에서 비아그라가 나오면서 황색지들은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설령 박근혜가 성적쾌락을 위해 샀다 해도 그것을 세금으로 산 게 문제이고 근무시간에 대통령이 사라진 게 문제이지, "나이 많고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활발한 성생활을 즐기건 말건 우리가 따질 일이 아니다.

 

진보진영의 많은 이들은 노동자의 파업, 검찰과 재벌의 개혁은 강조하지만, 정작 함께 싸우고 있는 여성들을 부지불식간에 비하하는 데에 슬쩍 동참하기도 한다. 박근혜가 "드라마를 좋아하는 아줌마"인 것은 국정농단과 무관한 일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어떤 여성들은 박근혜 퇴진운동을 여성혐오운동으로 규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과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박근혜에게 분노하는 마음을 십분 이해하면서 말씀드린다. 박근혜는 "아줌마"라서가 아니라 부패하고 무능한 대통령이라서 나쁘다. 대다수 중년 여성들은 지금 같이 싸우는 동지들이다. 그들을 욕되게 하지 말자


 


 

(기사 등록 2016.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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