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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과 차별

로리타룩 논쟁 - 로타의 작업에 대한 비판은 ‘검열’인가?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7. 4. 3.

로타 옹호는 로리타룩 옹호도, 페미니즘도 아니다

 

이 한

 

 

최근에 로타의 작업과 그와 작업을 같이 한 여성모델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이 있었다. 이에 대해 이러한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은 검열이며, 로타와 같이 작업을 하고 싶어 하는 여성들의 욕망을 존중해야 한다는 요지의 글이 허핑턴포스트에 기고되기도 하였다. 그 글은 로리타룩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쓰여진 글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글이야말로 로리타룩을 좋아하고 즐겨 입는 여성들을 모욕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작년에 로리타룩 논쟁 - 문제는 옷이 아니라 성적 대상화이다 (http://www.anotherworld.kr/332)”라는 글에서 로리타룩을 '옹호'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복장을 착용하는 것에 대한 옹호이자 금지주의에 대한 반대였지, 그 복장을 착용하는 사람들을 대상화하는 남성중심적, 가부장제적 시각에 대한 옹호는 결코 아니었다. 그 글을 썼을 때도, 지금도 나는 로타 같은 이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고 또 그들에 분노한다.

 

내가 좋아하는 스쿨룩이, 초커가, 레이스 달린 고스로리 드레스, 오버니삭스가 왜 "순진무구하고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소녀"의 상징이 되어야 하는가. 왜 내가 좋아서 입은 옷들이 "남성에게 섹스어필하려고" 입은 것으로 비춰져야만 하는가. 나는 스쿨룩을 좋아하고 앞으로도 계속 내가 원할 때마다 입을 터이지만 남성들에게 소녀로 비춰지는 것, 성적으로 소비되는 것, 잠재적 연애상대 취급받는 것을 거부한다.

 

그런 맥락에서 당시 나는 그 옷들이 소아성애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소아성애(정확하게는 보다 취약한, 더 쉽게 다룰 수 있는 위치의 여성에 대한 대상화)는 기존부터 있었고 여성들은 어떤 옷을 입든 간에 대상화를 당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옷에 대한 새로운 담론들을 만들어내며 남성중심적 시선과 싸워나가야 한다고 썼다.

 

그러나 허핑턴포스트에 기고되었던 그 글은 로리타룩을 입는 것을 옹호하는 것을 넘어서, 로리타룩에 대한 사회 주류의 시각을 그대로 옹호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여성들의 욕망이기도 하니 존중해주자고 말한다.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 찍는 자와 찍히는 자, 주체와 객체(타자)로 나눠지는 이 구도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성찰은 없고, 오히려 그 구도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개인의 취향을 "검열"하려 하고 있다며 침묵시키려 한다.

 

물론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여성들의 욕망이 남성들의 그것과 일치할 수도 있고 스스로 대상화되는 것을 욕망할 수도 있다. 당장 인터넷에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자"로 검색해보면 수천, 수만 개의 게시글들이 나오고 이것을 검색하고 읽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만 봐도(참고로 이 게시물들에는 "귀엽고 애교있고 사근사근하게 굴라"는 명령 아닌 명령이 다양한 표현과 방법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것이 단지 남성들만의 욕망이라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 욕망이 개인의 욕망이니 그대로 "존중"(존중하자고 주장하는 측에서 말하는 존중그냥 내버려두자인 것 같다)하기만 하면 되는 걸까? 여성들이 타인(남성)의 욕망에 부합하는 모습의 자신을 만들도록 욕망하는 것이 정말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 그것이 정말 그들이 진정으로 욕망하는 바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여성들은 사회가(남성이) 여성에게 요구하는 것이 바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괴짜" 취급 받게 되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이 욕망해야할 바를 제시당하고 강요당하는 위치에 놓인 사람들의 욕망이 온전히 자기만의 것일지, 그 욕망의 실현이 그들의 자기해방과 자아실현으로 이어질지에 대해 나는 매우 회의적이다.

 

뿐만 아니라, 그 욕망이 단지 개인의 욕망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과 억압을 재생산할 수 있는 욕망이라면 재고되고 비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이 남성들의 시선에 의해 규율되고 주조되는(그리고 그것을 스스로도 욕망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그것이 지배적이게 될 때, 그것을 원하지 않는 여성 또한 그들의 욕망에 부합하는 존재가 되도록 강요당하고 억압당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여전히 성형수술과 다이어트를 원하는 여성이 무수히 많은데도, 페미니즘이 이것들을 비판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어쨌든 남성들과 욕망을 같이 하는 여성들조차 억압의 당사자이므로(남성과 달리 그들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규율하고 통제하는 건 그 자신의 몸이다. 반면 남성들은 자신의 욕망 실현을 위해 타자의 몸을 이용하고 통제하므로 직접적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한 여성들에게 비판을 가하는 것은 잘못이며, 페미니즘의 지향과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로타 류의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경계하는 페미니스트들 중 일부는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고 표현하는 여성들에게 비난을 가하고 때로는 폭력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로타와 같이 작업한 여성모델을 옹호하는 그 글은 이런 태도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을 수도 있겠지만 로리타를 재현하는 여성을 공격하지 말자는 데서 그쳐야할 주장을 "로타에 대한 비판은 검열이며, 여성들의 모든 욕망을 존중되어야 한다"로까지 나아가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여성의 이미지를 남성중심적 시각에서 재현하고 대상화하는 것은 여성혐오이고 따라서 로타의 작품은 여성혐오라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치적, 윤리적 차원에서 여성혐오에 대한 비판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이 실제의 특정인물을 소비하는 경우라면 금지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DJDOC의 미스박 세뇨리땅, 더러운 잠 등


그런데 로타의 경우 실질적으로 그의 작품이 금지당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금지주의자", "성 엄숙주의자"로 매도당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위의 그 글에서 말하는 "검열"은 아직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나는 오히려 여성을 대상화하고 여성이 가장 약한 모습으로 있을수록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이미지를 통해 구현하는 로타야말로 여성들을 "검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로타의 작품이 남성의 욕망과 판타지를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억압과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검열"로 치부하고 "모든 여성들의 욕망을 존중하자"고 답변하는 것은 페미니즘이 아니라 자유주의적인 태도가 아닌가? 특정한 정체성만이 과잉대표되고 어떤 욕망만이 과잉표출되는 불평등한 사회에서 "모든 욕망을 존중해야한다"는 주장은 어떤 욕망이 존중받지 못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로타야말로 로리타룩을 입는 사람들의 적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지만 로리타룩을 즐겨 입는 사람으로서 로리타룩을 입은 여성들에 대해 수동적인 이미지를 양산하고 마구 성적 대상화하고 있는 것에 매우 분노한다. 과거에 "야한 옷"을 입은 여성은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 "창녀"라는 인식에 대해 여성들이 분노해서 슬럿워크를 했고 "야한 옷차림"은 이제 어떤 맥락에서는 문란함이 아니라 당당함, 걸크러쉬, 저항 등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로리타룩에 대한 이런 남성중심적 재현방식에 대한 거부와 전복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짜여져 있는 남성중심적 시각과 담론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거부할지 존중할지를 논하기보단 새로운 시각과 담론들을 만들어 나가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사진 작가 로타  



(기사 등록 20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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