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도, 바른정당 선거운동 성추행 사건도 다 장애인 탓인가
박철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선전국장)
여전한 여성 혐오 사회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1년이 되었다. 이 사건이 아직도 의미가 있는 것은 지금껏 차별과 혐오에 숨 죽여 왔던 여성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여자라서 죽었다. 내가 죽을 수도 있었다”며 희생된 여성을 추모함과 동시에 소위 ‘여성 혐오’로 가득한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행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학교, 직장 혹은 일상에서 마주치는 성폭력에 대한 폭로 및 규탄이 여기저기 얘기됐고, 낙태죄 폐지와 같은 여성의 권리를 향한 아래로부터의 행동이 시작됐다.
그럼에도 남성 중심적이고 여성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사회는 강남역 사건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미디어에서는 여성을 성적으로 상품화하고 있고, 일상에서도 여성을 차별과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상처를 주는 남성들을 여전히 쉽게 볼 수 있다.
주요 대선 후보였던 유승민 바른정당 국회의원의 딸인 유담 씨가 선거운동 도중 성추행을 당한 사건은 여전히 이 사회에 여성혐오가 팽배하다는 증거다. 유승민은 유담 씨를 ‘국민며느리’란 컨셉으로, 사고가 터졌던 “유담과 시민의 단 둘 사진찍기” 이벤트에선 아예 대놓고 시종일관 여성을 이미지와 외모로 소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유담 씨가 사고 이틀 후 “성폭력에 굴하지 않겠다”며 당당하게 선거운동을 재개했던 모습과는 별도로 하태경 의원이 “바른정당은 모든 여성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나라 건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란 발언은 진실성이 없어 보인다. 후보의 딸까지 성폭력 위험 노출 상황으로 내몰았던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언론이 유담 씨를 소모한 방식
여성 혐오를 장애인 혐오로 덮어 버리기
그런데, 작년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이든, 올해 유담 씨에게 있었던 성폭력 사건이건 주요 '여성 혐오' 사건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여성 혐오’ 문제를 장애인 차별과 혐오로 덮어 버리려는 기류가 있는 것이다.
강남역 사건 당시 경찰은 가해자가 정신장애인이라고 발표했고, 이번 유담 씨에 대한 사건에서도 가해자가 정신장애 3급이라고 발표했다. 즉, 이 문제는 가해자 개인이 ‘정신장애인’이라서 일어난 일이지, 여성 혐오가 아니라며 덮어 버리려는 것이다.
이런 경찰의 접근 방식은 두 가지 방식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로, 현상에 대한 전반적인 원인과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은 채 개개인의 잘못으로만 사건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재발 방지 대책은 필요한 것이지만, 오직 한 사람의 개인만 나쁘다는 관점은 성차별과 혐오를 부추기는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기에 결국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해결책 밖에 되지 못하는 것이다.
둘째로, 이 문제를 얼버무리기 위해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 그리고 인권침해를 부추기고 이용한다는 것이다. 정신장애인은 잠재적 범죄자이고, 그것을 막기 위해서 감시해야 하며, 심지어는 개정된 정신보건법을 통해 경찰의 ‘지도’로 강제 입원시켜야 한다는 정신장애인 혐오를 부추기는 것이다.
작년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 때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 - 백남기 농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책임자 - 은 “여성혐오는 실체가 없다”면서, 한 술 더 떠 정신질환자를 판단하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본인이 퇴원을 요구해도 거부하는 조치까지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모든 남자가 그런 것이 아니기에 여성 혐오는 실체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정신장애인의 범죄는 실체가 있다며 대대적으로 혐오를 부추기고 인권 침해까지 체계적으로 준비했었다.
장애인 혐오를 제도화한 정신보건법 개정안
한국의 정신장애인은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 찍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정신병원에 ‘강제 행정입원’되는 경우가 많다. 김춘진 전 의원은 2014년 한국의 강제입원율은 정신의료기관 전체 입원환자수의 67.4%라고 발표했다. 이는 프랑스 12.5%, 영국 13.5%, 독일 17.7%보다 월등히 높은 것이다.
더욱이 한국은 정신질환자의 3분의 2가 강제입원이며, 정신질환자의 평균 재원기간은 247일로 스페인 18일, 독일 24.2일, 이탈리아 13.4일, 프랑스 35.7일, 영국 52일과 비교하여 매우 높다. 그런데, 작년 강신명의 체크리스트나 5월 30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정신보건법 개정안에선 행정입원에 대한 경찰 개입이 강화되고, 결국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의사가 묵살되는 강제입원이 오히려 확대되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정신장애인은 정말로 위험한가. 2011년 대검찰청 범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 장애인의 범죄율은 비장애인의 10%이다. 보건복지부가 2016년 2월에 내놓은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와 진실’ 자료에서도 ‘정신 질환 중 공격성과 잠재적 범죄를 일반적인 증상으로 하는 정신질환은 반사회적 인격장애 한 가지뿐’이며 ‘조현병 환자들은 범죄와 폭력의 위험성이 매우 낮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나와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스스로의 서술을 자기 부정하듯이 경찰에 의한 강제 입원인 ‘행정입원’을 명시한 채 정신보건법을 개정해서 시행하려 한다. 심지어 자·타해 위험 기준에 ‘지적장애’도 포함시켜서, 정신장애인 뿐만 아니라 발달장애인도 강제입원이 가능하도록 강제입원 대상을 오히려 확대시켰다. 여성혐오를 덮기 위해 이용했던 정신장애인의 강제입원을 정당화하는 법이 정신장애인을 넘어 다른 장애인 당사자마저 강제로 입원시키는 인권 침해 및 차별과 배제의 도구로 사용되기 직전이다.
차별을 차별로 덮으려는 자들에게 저항하라! 모든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라!
성폭력 사건은 주로 남성이 일으키는 것이니 잠재적 가해자인 남성들을 모두 가두거나 처벌하자고 하면 모든 남자가 그렇지 않은데 왜 그리 오버하냐고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그런데 장애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몰아가면, 세상 모든 장애인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몰아가고 장애인은 사회와 격리하자느니 감금해야 하느니 온갖 혐오와 배제가 재생산 되고 그것이 끔찍하게 제도화가 되는 것엔 오버한다고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렇게 여성·장애인 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서로 얽혀서 혐오와 배제를 재생산하는 광경을 2년 연속으로 본다. 이런 광경은 사회 전반적으로 소수자를 죄악시하며 특정 문제를 무마하려는 풍토를 만들어 낸다. 동성애자가 군대 내 성폭력을 만드는 것처럼 얘기하면서 성소수자 인권 침해로 악명높은 군형법 92조 6항의 폐지가 어렵다고 말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대표적인 예다.
사회의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위정자들은 이를 이용해 서로의 운동을 이간질하려 하고 분리시켜 목소리를 잠잠하게 하려고 한다. 더 나은 세상을 바란다면 특정한 차별을 부추겨서 문제시되는 차별의 문제를 덮으려는 것에 맞서서 함께 싸워야 한다.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으로 말미암아 탄생한 여러 페미니스트 단체들이 작년 강신명의 정신장애인 체크리스트 발언에 반발해 여성혐오 문제를 왜곡하지 말라며 항의운동을 했고, 장애인 운동 단체도 강남역 살인 사건은 여성혐오 문제임을 분명히 하며 경찰청 앞에서 항의운동을 했다. 페미니스트 운동, 장애인 운동, 성소수자 운동 등 한국 사회의 사회적 소수자 운동은 앞으로도 더욱 연결되고 함께 하면서 차별을 차별로 덮으려는 조류에 굳건히 맞서서 인권이 더 충만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모든 차별과 혐오에 함께 저항하자! 차별을 부추겨 차별을 덮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과 연대가 함께하는 사회를 저항을 통해 끝내 만들어 내자!
(기사 등록 2017.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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