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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과 차별

혁명적 페미니즘이 세상을 구한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7. 8. 31.

혁명적 페미니즘이 세상을 구한다: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에 대한 소고

 

 

윤미래 

 

 

 

 

채식주의자나 의제강간 연령 저하에 반대하는 청소년,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의 지지자들을 운동권이라 딱지붙이고 비난하는 글이 여성주의 단행본에 실렸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들었다. 이것은 전무후무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오히려 앞으로의 경향을 예고하는 작은 신호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 한국에서 상호교차성은 명실공히 여성주의의 언어로 자리잡고 있으며, 좌파가 상호교차성에 접근하는 것은 아직까지 좌파 이념의 발전보다는 여성운동과의 대화를 위한 '외국어 익히기'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에서 상호교차성 페미니즘 운동을 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얼마나 존재하는지를 생각하면, 이러한 합의가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지는 의외로 확답하기 어렵다

 

조직노동운동이 남성 정규직을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여성이나 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해를 조직하는 데 점점 취약해진 이유는 노동자의 단결을 중시하는 이론이 존재하지 않거나 노동운동 내에 이러한 이론에 대한 지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체제의 압력 - 같은 차별, 같은 억압에 시달리는 집단 안에서도 더욱 세분화된 위계를 만들고, 어릴 때부터 이미 세상 모든 타인은 경쟁자이며 타인의 피해는 나의 이득이라는 믿음을 학습시키며, 빈민과 유색인, 장애인, 주변부 인민을 아예 생각조차 않도록 비가시화하거나 개인적 노력이 부족한 사람들로 매도하는 사회의 압력이 조직노동운동을 비껴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압력들은 여성 운동에도 똑같이 작용한다. 그리고 상호교차성이 열어젖히는, ‘아래주변을 지향하는 폭넓은 연대의 정치보다는 소수자에 대한 배제나 차별을 정당화하는 여성 집단 내 다수자 중심의 운동이나 소수의 활동가들을 후원하거나 소비자로서 압력을 조직하는 것으로 기층의 직접 조직화를 대체하는 소비자 정치가 신자유주의 체제와 훨씬 더 친연성이 있기에, 페미니즘이 대중화되면서 이러한 경향이 지금보다 훨씬 더 성장한다 해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호교차성은 지금처럼 안정적인 컨센서스가 아니라 훨씬 논쟁적이고 급진적인 단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좌파가 이런 이유에서 조직노동운동의 파산을 선고하거나 노동조합을 아예 등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노동조합이 기득권화, 체제내화된다고 해서 노동 현장의 착취와 억압이 사라지지도, 노동 문제의 중요성이 줄어들지도, 더 넓게 사회와 연대하는 노동운동의 가능성이 사라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노력해온 현장 조합원들, 상근자들, 지도 집행부, 그리고 정치조직 활동가들이 있었기에, 민주노총이 여성이나 소수자 의제에 연대하고 비정규직 문제에 앞장서 목소리를 내면서 조금씩 변화해가는 지금 같은 성과가 가능했다. 같은 이유에서, 성적 지배와 착취가 사라지지도, 사회를 떠받치는 기둥이기를 멈추지도 않는 한, 빈민·유색인·장애인·성소수자·주변부 여성을 포괄하는 페미니즘을 향한 열망과 실천이 그치지 않는 한, 체제 내적·다수자 중심적 페미니즘이 아무리 성장한다 해도 우리는 페미니즘을 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모든 체제는 성공하는 그만큼 내적 모순을 심화시킨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는 대체로 성장의 크기에 비례하여 격렬한 공황이 뒤따라오는 것으로 표현된다. 사회가 이러한 총체적 위기에 직면하면 부분적 개선책은 더 이상 들어설 여지가 없어지고, 우리는 체제를 뒤집어엎느냐 체제 유지를 위해 그간의 성과를 무위로 만들 끔찍한 반동을 받아들이느냐의 양자택일을 강요받게 된다. 유럽 최강의 대중적 좌파 정당이었던 독일 사민당의 운명이 예시하듯이, 아무리 대중적 기반이 넓고 세력이 있었던 진보 세력이라도 체제를 뒤집어엎는 데까지 나아갈 담대함이 없다면 이 시기에 몰락을 피할 수 없다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고 흔히 정식화되었던 이 국면은 다른 말로 하면 민중이 해방된 세계를 위해 싸울 것인지, 반동적 궤변으로 스스로 위로하면서 약자를 향한 원한감정(르쌍티망)에 몸을 던져 보상을 구할 것인지의 기로에 서는 순간이다. 혁명 정치가 대중에게 유의미한 대안으로 보일 만큼의 전망과 기반을 가지고 있는지, 사회적 소수자를 포괄하는 연대를 비롯한 민주적 기치가 운동의 필수적 원칙으로 자리잡고 있는지는 여기서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후자를 단순한 도덕적 당위나 운동이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지만, 이 정신은 사회적 위기의 국면에서 급진화된 민중이 파시즘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는 데서 정치적으로 핵심적이다. 이탈리아에서도 독일에서도 파시즘은 혁명 좌파 속에서 자라났거나 혹은 최소한 그것을 자처했다. 인간의 자유, 평등, 해방의 맥락 속에서 제시되지 않는다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원한감정과 단호히 선을 긋고 민주주의의 기치를 계승하지 않는다면, 생산수단의 사회적 통제가 사회를 진보시키지는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현대사의 가장 반인륜적인 반동이 취했던 형태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에 맞서 싸우지 않는 좌파는 파시즘에 문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 국면이 닥친다면, 가장 중요한 전선은 십중팔구 성별 권력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남성 쇼비니즘은 너무나 강력하고, 사회의 모든 공간에서 받아들여지고 공감을 얻고 있으며, 여성들의 도전과 투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꽤나 승승장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태가 미래에도 계속된다면 파시즘은 남성 쇼비니즘에 호소하는 캠페인을 통해 삽시간에 대중을 휩쓸 것이고, 여기에 대해 경각심이 없는 좌파들은 이 흐름을 방치하거나 또는 무력하게 방관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페미니즘이라 부르든 여성해방론이라 부르든, 이 경향에 타협 없이 반대하고 맞서 싸우는 운동만이, 그것도 혁명적 전망을 가지고 다른 소수자에 대한 원한감정을 단호하게 배격하는 운동만이 파시즘에서 한국을 구할 수 있다. '모든 여성의 경험은 같다'는 말이 현실과 다른 것을 넘어 소수자를 혐오하는 페미니즘과 더 친연성이 있어진 시대, '모든 노동자의 경험은 같다' 역시 똑같이 보수적인 담론이 된 시대에,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은 이러한 운동에 이념과 언어를 제공할 강력한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렇게 되려면 그것은 지금 대개 말하지 않고 우회하는 문제, 부와 무장력을 독점하는 자본가 계급 지배와 자본주의 국가 체제 문제에 정면으로 달려들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기사 등록 2017.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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