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2014년에도 피해자를 방어하는 사람들은 집중적 비난을 받았다
노동자연대(이하 노연) 분들이 피해자와 연대자들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글들을 연달아 발표하고 있다. 피해자가 이런 글들을 보고 분노와 충격을 받고, 거기서 회복될 틈도 거의 주지 않는다.
상황은 다시 노연 분들이 피해자 공격글을 무더기로 쏟아내던 2014년 연말과 비슷해졌다. 그때 피해자를 공격하고 비난하는 글이 홈피 대문에 따로 카테고리까지 지정해 묶여져 올라가 있었고, 피해자를 편든 나를 공격하는 글도 그중에 몇 개나 차지했다.
최근에 나온 글들에서 특히 길고 자세한 것은 먼저 사회변혁노동자당이 노연의 성찰과 변화를 촉구한 글에 대해 반박하며 피해자를 비난(https://wspaper.org/article/19275)한 글과 “비방 주도자 전지윤”을 비난하는 글(https://wspaper.org/article/19300)이다.
이번에도, 내가 노연에서 탈퇴한 이후 “복수심에 가득차”서 “온갖 야비하고 부정직한 언행”과 “비윤리적인 일도 서슴지 않”았으며, “중상모략을 일삼”아 온 “각별히 위선적”인 인물이라고 쓰고 있다. 결국 “전지윤의 실체는 전무후무한 기회주의”이며 “영화 <미저리>를 연상시킨다”고 한다.
새삼스러울 건 없다. 2014년 글들에서 반복됐던 내용이고, 그후에 나를 비판하는 소책자도 2권이 나왔었다. 그 책자들을 보면 “부정직”, “얄팍한 수작”, “위선”, “교활함”, “벽창호”, “기회주의” 등의 용어로 나를 묘사하고 있다. 지난번 ‘맑스코뮤날레’에 갔더니 노연 분들이 토론회장 입구의 가판에서 그 책들을 맨 앞에 놓고 팔고 있었다.(내가 SNS에서 이 지적을 했더니 며칠 후 노연은 그 책자들을 온라인 전문공개해버렸다.)
이 상황이 서글프긴 하지만, 그리 힘들진 않다. 6년 동안 집요한 인신공격, 인격살해, 사생활 침해 등을 당해온 피해자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피해자 대리인을 하며 노연에 맞서다가 처참한 공격을 당해 온 동지와 비교해도 말이다.
그 동지들이 겪은 고통과 분노를 내가 얼마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부조리한 체제에 대한 분노 속에 희망을 찾아온 운동사회에서, 믿었던 동지들에게 이런 일을 당하면 그 고통과 좌절감은 몇 배가 될 수밖에 없다.
비록 내가 이 동지들에게 쏟아지는 공격을 당장 멈추게 할 힘은 없지만, 함께 비를 맞아줄 힘은 있다. 이번 노연의 글들은 특히 더 길고 어처구니없는 말들이 많은데, 쟁점에 대해 하나씩 다루겠다.
● “사실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 그냥 묵묵히 입 다물고 앉아 있을 것인가?”:
2012년 11월에 피해자가 처음 공론화를 했을 때, 노연은 사실 확인을 한 적도, 입다물고 있은 적도 없다. 제일 먼저 학생팀장(운영위원), 학생팀 간부와 회원들이 댓글을 달아서 ‘연애 결별의 앙갚음이다’, ‘자살한다고 하더니 이런식으로 뒤통수치다니, 두고 보자’,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 등의 댓글을 달았다. 정확한 사실도 확인 않고! 도대체 피해를 호소하는 당사자와 만남과 대화 한 번도 없었는데 무슨 ‘사실 확인’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야동을 보여준 건 성폭력이 아니고, 조직의 공식행사에서 있었던 일도 아니다’란 입장 때문에 노연은 처음부터 대화를 거부했다. 당시 피해자 지지모임이 ‘만나서 대화하고 같이 진상조사를 하자’고 6차례나 공문을 보냈지만 ‘우리는 모르는 일이고, 당사자끼리 법적으로 해결하라’고 답했다.(이 공문들과 노연의 답변은 당시 지지모임 블로그에 일부 올라가 있다. http://meanin.egloos.com/)
하지만 회원들이 연루된 사건이었고, 피해자가 온라인에 첫글을 올리자 바로 조직의 간부와 회원들이 가해성 댓글을 단 상황에서 ‘우리는 모르는 일’이란 건 말이 안됐다. 피해자는 곧이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는데, 이것도 조직적으로 부추긴 결과였다. 자신들은 권유한 게 아니라 “권리”로 봐서 “가로막지 않았다”고 하는데 궁색할 뿐이다.
더구나 ‘성매매를 하려고 한 여성이고, 오히려 가해자를 짝사랑해 유혹하려다 실패하니까 보복하려고 누명을 씌운 것’이라는 식의 재판 내용 자체가 심각한 가해였다. 이 재판은 1년 넘게 진행되면서 피해자를 괴롭혔다.
● “문제는 공개적인 온라인 비난이다”?:
노연이 피해자의 호소에 좀 더 일찍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면 온라인 공론화는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2012년 11월에 최초로 피해자가 이 문제를 공론화한 글을 다시 보자.(http://egloos.zum.com/meanin/v/835972) 이 글은 거칠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지극히 상식적 주장을 하고 있다.
“최근 학내에서 여러 가지 진보적인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운동을 주도 및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 성폭력 가해자인 대학문화 교지편집위원회 편집장이라는 점, 그리고 그가 성폭력에 대해 아직까지 어떤 사과나 반성적 태도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 저는 문제의식을 느껴 시일이 많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에서야 저의 신상이 공개된다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사건에 대해 폭로합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해결을 요구합니다.”
왜 이 목소리가 처음부터 진실성을 의심받고, 6년간 집요하고 가혹한 공격, 소송 등을 당해야 했을까? 왜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의심받아 왔을까? 주변 사람들의 증언과 모든 정황들을 볼 때, 매우 설득력있는 진실을 담고 있는데도 말이다.
공론화 이후에도 이성적으로 대응했다면, 문제는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초기의 잘못된 대응과 소송 등에 대한 어떠한 사과나 중단도 거부한 노연이 피해자 쪽의 반발을 낳았다. 더구나 지금도 이처럼 온라인 홈페이지와 기관지를 통해 피해자를 공개 비방하고, 심지어 정식도서까지 출판해 인격살해하고 있는 게 누구인가?
● “영화〈도가니〉같은 현실”이라고 표현해 “마치 집단 강간범죄 자행 단체처럼 보이게 만들려”했다?:
엄청난 과장이고 맥락 뒤틀기다. 먼저 저 표현은 ‘피해자 지지모임’의 공식글에서 나온 표현이나 제목이 아니다. 지지모임 주변의 누군가가 지지모임의 “다함께의 무분별한 2차 가해에 대한 입장”이란 글을 온라인에 퍼나르며 자기 식의 말머리를 임의로 덧붙인 것이다.
더구나 저 표현의 핵심은 노연이 생략한 앞부분에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고소. 영화 <도가니>같은 현실”. 즉 저 표현을 쓴 사람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고소한 게 ‘도가니같다’고 본 것이다. 마치 최근 사드 배치를 두고 누군가 ‘제2의 광주’라고 표현하는 게 ‘발포와 학살이 있었다’는 뜻이 아니듯 말이다.
피해자와 연대자들은 처음부터 강한 표현으로 노연을 비난하지 않았다. 위의 첫 공론화 글에서 피해자는 교지편집장의 성폭력을 문제삼으며 노연의 “방임”을 비판했다. 그런데 노연 간부와 회원들이 즉각 가해성 댓글을 달고, 이어서 명예훼손 소송까지 걸었다. 이 상황이 일부 피해자 주변 사람들이 분노하며 강한 표현을 쓰게 만든 것이다.
● “방관자가 당시 노동자연대 회원이어서 졸지에 노동자연대가 ‘성폭력 단체’로 명명된 황당무계한 사건”?:
사건 당시 노연 회원은 ‘방관’이 아니라 ‘동조’했다는 게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이다. 그래도 피해자는 처음에 노연에 대해 “방임”이란 표현을 썼다. 어느 순간 “대학문화‧노동자연대 성폭력 사건”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은 바로, 노연이 초기에 위와 같이 대응하면서였다. 즉 앞장서서 2차피해를 만들어낸 스스로의 행동이 그런 이름을 자초한 것이다.
하지만 그 후로도 피해자 쪽이 공식적 글들에서 노연을 “성폭력 단체”라고 직접 표현한 것은 별로 찾아보기 힘들다. 그동안 ‘성폭력 단체’라는 용어를 가장 자주 많이 써 온 것은 역설적으로 노연 자신이다.
● “결론을 다 내리고는 우리 단체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2차가해’라는 무기를 휘둘렀다”? :
앞서 봤듯이 피해자와 지지모임은 6차례나 ‘공동의 진상조사’를 요구했지만, 노연이 그걸 거부하고 처음부터 가해성 댓글을 달고 가혹한 내용의 소송까지 걸게 하면서, 그것을 비판한 것이지 ‘결론을 내리고 무기를 휘두른 게’ 아니다. 이렇게 문제가 어긋난 이후, 나중에 노연은 여성연대체나 민주노총 선거운동 등에서 연대단체들이 이 문제를 제기하면 ‘그러면 당신들이 진상조사를 해줄거냐’며 부담을 떠넘겼다. 그리고 지금은 이것을 ‘우리는 진상조사를 하려고 했다’고 말하는 근거로 이용하고 있다.
● “[피해자 대리인이] 법정 진술서를 제출해 ‘[피해자의] 주장을 사실처럼’ 말한 것에 대해 두 대학문화 남학생들에게 사과하고 싶다고 했다”?:
이것은 당사자가 몇 차례나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는데도 계속되는 억지이고 사실왜곡이다. 실제 진술서를 보면 2장 전체에 걸쳐서 노연이 얼마나 잘못했고, 피해자가 왜 정당한지 거듭 주장하고 있다.
“‘다함께’의 반응이 심각하게 반인권적이라는 것은 명백했습니다”, “[피해자의] 사생활을 거론하는 인신공격이나 모욕적 언사를 퍼부은 것은 [피해자의] 인권을 부정하는 행위였으며”, “[피해자의] 폭로는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고 봐야 한다는 판단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노연의 거부로 진상조사가 이뤄지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이 사실관계를 확정적으로 표현했다면 그 부분은 미안하다고 한 것일 뿐이다. 그러니까 피해자 대리인으로서 자신이 과도한 부분이 없었는지 성찰한 것이다. 노연은 이런 성찰을 조금도 보여 준 적이 없다.
● 법원도 강제성 여부를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진상조사와 사과 등을 거부하던 노연은 항상 그렇듯이 법원판결을 그토록 신뢰하며 최우선의 근거로 삼고 있다. 이미 사건 공론화 초기에 해당 대학 양성평등센터가 조사해서 성폭력이고 노연 회원도 잘못했다는 판정을 내린 것을 무시하며 말이다. 법원은 사실 계속 양쪽의 화해를 종용했고, 그러다 전형적인 ‘서로 잘못했으니 샘샘’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노연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취사선택해 근거로 삼고 있다.
하지만 법원 판결마저 “동영상 사건 당시 [노연 회원]의 행위는 편집장인 ***이 피고에게 음란 동영상을 보게 하는 행위를 용이하게 함으로써 이를 방조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강제성 문제는, 그것을 입증할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양쪽의 진술을 보면 피해자는 ‘나는 포르노를 보지 않으려고 손으로 눈을 가렸다’고 했다. 반면 저쪽은 ‘우리도 당신이 그러는 것을 봤지만, 공포영화를 볼 때도 눈을 가리면서 손가락 사이로 본다’고 했다. 또 ‘성매매를 한다고 해서, 말리면서 교육용으로 보여줬다’는 논리를 폈다. 피해자의 진술이 더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 ‘신중하고 오랜 자체 진상조사를 통해서 자체 징계도 했다’ ?:
노연은 그동안 쏟아낸 기사나 책에서도 ‘우리는 가해자로 지목된 회원을 자체징계도 했는데 뭐가 문제라는 거냐’며 본질을 흐려왔다. 하지만, 노연이 ‘자체 징계’를 한 것은 재판의 막바지쯤인 2014년 봄, 즉 피해자가 문제제기를 하고 1년반이 지나서였다.
그것도 조직 내부에서 비공개적으로 징계를 했고, 징계 결과를 피해자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이 자체 ‘진상조사’와 ‘자체 징계’에는 피해자의 진술을 듣거나 만나서 같이 조사하거나 하는 과정이 하나도 없었다.
당시에 피해자의 “진술을 들어보려고 면담 요청을 했다”고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공개적 대화 요청을 거부하고, 피해자를 계속 공격하고 재판으로 가서 그렇게 괴롭힌지 1년반이 지나서, ‘우리가 조사할테니 출석해라’고 메일 보내면 응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결국, 이 ‘자체 징계’는 재판 결과가 불리하게 나오면 면피하려는 보험성이었다. 실제로 나중에 재판 결과가 나오자, 대대적으로 피해자를 비난하는 글을 쓰면서 ‘우리는 자체 징계도 했었다’며 끼워넣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전혀 진정성있는 조치가 아닌 것이다.
● 전지윤은 노연 탈퇴 전에는 피해자를 “미친*”이라고 해놓고, 탈퇴 후에 “‘성폭력 피해자’로 추앙”했다?:
일단 나는 피해자를 향해 저런 가슴아픈 표현을 한 적이 없다. 노연은 나와 단둘이 있을 때 그런 말을 들었다는 한 회원의 증언만을 근거로 대고 있다. 피해자에 대해선 증언을 그대로 믿는 건 ‘피해자 절대주의’라고 비난하더니, 앞뒤도 안 맞는 태도다.
저런 표현은 나의 평소 태도나 언어습관과도 안 맞다. 오히려 나에게 저런 말을 들었다는 노연 회원의 언어 습관과 어울린다. 그는 2014년에 페북에 이런 글을 올려 나를 위협했다. “내 발톱 드러내는 날, 갈갈이 찢어주리라”, “꿈 깨라 미친것들아”, “미친 인간 … 개소리하면 입을 가로세로로 찢어버릴지도 몰라.”
노연 지도부는 저런 태도를 자제시키긴커녕 그의 증언을 바탕으로 나를 매도했다. 무엇보다 사실, 문제의 본질은 내가 이 문제에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함께 사과하자고 노연에 제안한 것에 있다. 그런데 노연은 ‘잘못을 고수해야지 왜 반성하냐’고 비판하는 격이다.
● 전지윤은 포르노 강제 시청의 현장에 같이 있던 노연 회원이 “이 사건의 주된 책임자가 아니”라는 앞뒤 안 맞는 “기이한 논리”를 폈다?:
처음에 이 사건의 주된 책임자는 포르노를 강제로 보여준 교지편집장이었다. ‘방조’인지 ‘동조’인지 진술이 엇갈리지만 노연 회원은 주된 책임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노연의 초기 대응이 피해자로 하여금 “이 사건을 폭로하자 가장 빈번하게, 그리고 가장 조직적으로 저를 인신공격하며 2차 가해를 가하고 있는 조직”이라고 분노하게 한 것이다.
사실 노연 회원은 초기에 사과의 뜻도 비췄다. 하지만 노연 지도부가 피해자를 공격하고 소송으로 문제를 몰아가면서 대화의 여지는 사라졌다. 이후 노연 지도부는 대학 신입생이던 그 회원을 앞세워 피해자와 싸우게 만들고 자신들은 뒤로 숨었다. 그러더니 그 회원이 탈퇴하려 하자, 소환해서 비공개 징계도 내려 놓았다. 이 모든 과정은 “주된 책임자”는 바로 노연 지도부라는 걸 보여 준다.
● “2014년 11월까지 [우리는] 위와 같은 근거 없는 비방을 그냥 보아 넘겼다... 시시비비를 따지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2차가해’가 된다”?:
앞서 설명했듯이 노연은 보아 넘긴 적이 없다. 처음부터 악의적 댓글을 달고, 소송으로 가고, 소송에서 잔인한 내용으로 피해자를 공격했다. 2014년 11월부터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기관지와 홈페이지에서 더 대대적으로 피해자를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왜냐면 재판 때문에 입이 막혀있던[그것이 재판의 목적이었다] 피해자가 재판이 끝나고 다시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노연이 그때부터 한 것은 단지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이 아니었다. 보다시피 ‘자살하려던 사람이고, 거짓말쟁이고, 연애하다 차여서 저러는 거고, 성격장애인이고...’ 이런 인신공격이었다. ‘2차 가해’ 개념이 옳든 그르든 이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 민주노총 지역본부 성폭력 사건을 “수사기관으로 가져간 것은 피해자 자신이었다”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전지윤은 “지금껏 침묵”하고 있다?:
강간 등 성폭력 피해를 겪은 사람이 문제를 사법기구로 가져가거나 응하는 게 왜 “아연케하는 정보”인지 참으로 납득이 안 간다. 이런 사건의 경우는 민주노총 등에서도 조직 자체의 징계 이후에 피해자가 법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고 자연스럽다. 보수적인 사법기구들이 이 문제에서 얼마나 진지하게 피해여성의 편에 설지 불신이 있고, 그래서 부정적 조언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최종 결정은 피해여성이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가해지목인’조차 “사법 절차에 의지하길 원한다면 그 뜻을 존중해야 한다. 그의 권리이기 때문”이라며 실제 소송도 권했던 노연이,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제보’했다는 것을 놀라운 잘못인양 반응하니 좀 어안이 벙벙하다. ‘현대자본이 이용했다’는 논리는 ‘우파가 이용하니 운동사회 성폭력을 제기하지 마라’는 논리와 빼닮았다. 법적 절차가 어떻게 시작됐냐가 아니라, 재판 결과를 가져와 민주노총의 결정마저 뒤집으며 피해자를 비방하는 게 핵심 문제라는 걸 노연은 아직도 이해 못하고 있다.
● 전지윤의 동료인 여성도 노동자연대 “중상모략”에 가담했는가?:
가혹하게도 노연은 이번 글에서 피해자뿐 아니라 또다른 여성에게 공격을 넓혔다. 이 여성이 지난해 ‘성폭력과 공동체적 해결’ 토론회에서 자신의 경험을 말한 것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그 여성의 발언은 이런 것이었다.
“운동에 뛰어 들면서 이런 온갖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경험을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운동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스스로 경험하며, 엄청난 혼란을 느꼈다. 운동 신입인 나와 달리 상대는 조직에 중요한 기여를 하는 동지였고, 이 속에서 조직에 해가 된다는 생각에 결국 입을 닫고 내 탓이라고 자책했다. 하지만 용기 있게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공동체가 불신을 해소해 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피해자는 되레 사생활이 폭로되었고 의도를 의심 당했고, 정신상태까지 거론되었다. 나는 내가 입을 닫은 게 옳았다는 슬픈 교훈을 얻었다. 그러나 오늘 이 토론회에 참가해보니 그 피해자들의 용기가 헛되지 않았다고 느낀다.”(http://www.anotherworld.kr/261)
이 발언은 공감과 위로의 박수를 받았는데, 노연이 주목한 것은 달랐다. “단체명을 특정해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앞뒤 맥락상 그 일이 노동자연대 내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이해될 수” 있다는 거였다. 따라서 “노동자연대를 넌지시 중상하는 것은 아닌지 합리적 의문”이 생겼다며, 당시 그 여성에게 몇차례나 출석 조사를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공감과 위로도 없었고 “면담에 응하지 않으시면... 주장의 진실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압박했다. ‘사건화를 원하지 않으며, 당신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응답에 노연은 “신뢰하는 사람에게만 조사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라며 계속 출석을 종용했다. 오로지 노연의 명예만이 중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단체를 특정하지도 않은 여성이, 그것도 노연이 성폭력 피해자를 어떻게 취급하는지 뻔히 목격한 상황에서 출석 조사에 응할 리는 없었다. 이것은 ‘어디서든 성폭력 경험들을 절대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압박일뿐이었다. 참담하게도, 이제 노연은 피해자뿐 아니라 이 여성까지도 추가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이런 내용과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만한 사람이 쓴 글에서 말이다.
● 그 밖의 문제들과 마무리
그 외에도 노연의 이번 글들은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내용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여성주의자들이 “3각 교리체계”에 빠져있고 “개신교 근본주의를 연상”케 한다는 말은 그 일부일 뿐이다.
“여성도 성적 호기심뿐 아니라 성욕도 남성 못지 않게 있고, 그래서 얼마든지 야한 동영상을 볼 수 있다”는 강변을 보자.
그러면서 피해자가 “화들짝 놀라고 수치심을 느꼈을 수 있다”며 그것이 “보수적 성관념으로 교육받고 인생 경험 적은 젊은 여성”이어서 그런 것처럼 말하고 있다. “여성은 성 문제에서도 능동적이고 개방적일 잠재력이 있다”며 심지어 “야한 동영상을 보는 일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까지 말한다.
성적으로 개방적이고 능동적이냐 보수적이고 수동적이냐가 아니라, 성폭력이 문제의 본질이고 그것은 결코 ‘대수롭지 않은 일’이 아닌데 말이다. 이처럼 기본적 인권의식이 부족하니, 자신들의 피해자 인신공격 책이 “오히려 더 잘 팔리고 있다”며 자랑하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또다시 “경험 많은 판사와 변호사들에게도 자문을 구했”다고 말한다. 필요한 것은 ‘우리 단체가 손해 볼 지에 대한 법적 자문’이 아니라, ‘피해자가 얼마나 분노하고 상처받을지에 대한 인간적 자문’이었는데 말이다. 진정한 “마녀사냥과 주홍글씨 낙인찍기”는 바로 자신들이 하고 있다는 것을 돌아봐야 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이런 성찰을 기대할 수 없어 보인다. 오히려 또다시 ‘우경화된 세력이 우리 같은 좌파를 공격한다’는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인권단체들이 자신들을 비판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인권 운동 재정 지원과 인물 포섭 노력 와중에 노동자연대가 문재인 정부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 진정한 이유”라고 한다. 또 여성‧인권 단체들이 “종파주의 때문에... 갖가지 방식으로 연대 파괴를 하고 있다”고 우긴다. 정말로 연대를 파괴하는 것은 성찰과 변화를 거부하는 자신들의 태도인데 말이다.
심지어 자신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모순과 위선”을 지적하며 “우리는 그런 사례와 개인들에 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풀어놓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를 계속 비판하면 너의 약점도 폭로하겠다’고 은근히 협박하는 것이다.
‘피해자가 성폭력을 거짓 폭로한 것은 성격장애에 연애하다 결별한 것 때문이고, 전지윤이 이러는 것은 노연에 대한 야비한 복수심 때문이고, 민주노총 활동가가 이러는 것은 노동운동 밖에서 와서 잘못을 숨기려는 것 때문이고, 여성단체들이 이러는 것은 잘못된 개념과 분리주의 때문이고, 성소수자 단체들이 이러는 것은 우경화하며 핑크워싱에 타협하기 때문이고, 인권단체가 이러는 것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노연의 비판이 싫기 때문이고...’
노연의 논리를 보면, 결국 자신들의 문제와 잘못은 하나도 없다. 성찰하려는 자세는 조금도 없는 것이다. 아무리 자신들이 운동에 기여하며 헌신해 왔어도 오류를 저지를 수 있고, 중요한 것은 그것을 돌아보고 바로잡는 것인데 말이다.
이런 온갖 문제점에도 이번 글들은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2012년 당시 회원들도 내막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이 문제가 뒤틀리는 데 핵심 구실을 한 노연의 리더들이 어떤 잘못된 생각과 관점을 갖고 있었는지 투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제였다는 것을 돌아볼 용기가 생겨난다면, 그것은 성찰과 변화를 위한 좋은 출발점일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내가 2014년에 공개 사과와 반성을 하며 쓴 글들에 더 자세한 내용과 출처, 인용, 근거들이 나와 있다.]
http://www.anotherworld.kr/117
http://www.anotherworld.kr/175
http://www.anotherworld.kr/129
http://www.anotherworld.kr/124
(기사 등록 2017.9.19)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행동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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