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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6.4 지방선거 평가와 이후 전망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4. 6. 5.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의지가 우파 결집을 위협하다 


전지윤


 [편집자주] 이 글은 지방선거 다음날인 6월 5일에 다소 급하게 올렸던 것을, 지난 일주일 간의 추가된 정보와 변화된 상황을 반영해서 수정·보완한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세월호희생자가족대책위 유경근 대변인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투표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를 진심으로 공감하면서 제대로 일할 사람을 뽑자고 했다. 그 누구도 3백 명의 억울한 영혼을 잊어버리고 투표장에 들어가기는 어려웠다.


우리 머리 속에 박근혜와 구걸파는 진작에 삭제된 채 휴지통으로 가 있었다. 문제는 아무리 투표용지를 들여다봐도 세월호 참사를 진심으로 공감하면서 제대로 일할 사람이 잘 보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해운조합과 한국선급의 로비를 받아서 법안을 통과시켜주고 외유도 다녀 온 의원들은 자 돌림 두 당에 골고루 있었다.


따라서 새누리만이 아니라 새민련도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대해 굼뜬 데는 이유가 있었다. 세월호 국면 동안 새민련의 존재감은 제로였다. 새민련 대표 김한길은 박근혜의 눈물에 진정성을 느끼는조연으로 잠깐 출연했다. 국정조사에서도 새민련은 김기춘과 국정원 등이 조사와 처벌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 안을 합의해 줬다.


경기도에서 새민련 후보인 김진표는 남경필보다 더 개발과 관피아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인천에서 새민련 후보 송영길은 영종도 카지노 유치를 공약하고 나섰다. 부산에서 새민련이 민 오거돈은 바로 해피아 출신인 자였다.


결국 이번에 투표장에서 우리는 서울시장 선거 정도를 예외로 하고 안전·생명보다 개발·성장을 앞세워 온 두 당 중에 어느 하나를 찍어야 하는 딜레마에 부딪혔다. ‘국가개조를 다짐하는 자와 최대 협력을 말하는 자 중에 찍어야 했다.


FTA를 시작한 자(김진표)FTA를 비준한 자(남경필)중에 찍어야 했다. 종북 마녀사냥을 주도한 자와 도와준 자 중에 찍어야 했다. 삼성을 도와 염호석 열사를 죽인 자와 신성여객을 도와 진기승 열사를 죽인 자 중에서 찍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하늘이 무너져도 박근혜를 찍는다30% 고정 지지층을 거느린 새누리가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는 진작에 정당 지지율에서 새민련을 따돌린 새누리의 승리가 점쳐지고 있었다.


우파는 결집점이 분명한 반면, 반박근혜 진영은 결집할 곳이 분명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당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어느 때보다 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터진 세월호 참사가 예고되던 새누리의 승리를 막았다.


차가운 바다 속에 스러져간 생명들에 대한 죄스러움에 일부 사람들은 차마 새누리를 찍지 못했을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내키지 않지만 새민련을 찍었을 것이다. 하지만 둘 중에 누구도 세월호 문제 등을 공감하지 않으며 해결할 수도 없다는 의심은 강력했다. 이것이 경기도에서 남경필과 김진표 득표 격차보다 3배나 많은 무효표를 낳았다. 인천과 부산에서도 이례적일 정도로 많은 무효표가 쏟아졌다.


따라서 일각에서 이번 선거 결과를 보고 야권연대의 중요성이 확인됐다고 하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된다. 울산과 인천에서 진보정당들은 새민련과 단일화를 했음에도 모두 선거에서 패배했다. 이번 선거 결과는 관제야당과 무원칙하게 연대해서는 제대로 될 일이 없다는 점을 다시 확인해 줬을 뿐이다.


서울시 교육감 당선자 조희연. 그는 교육감 선거에서 막판 대역전극을 펼치며 당선됐다.


전교조의 승리


이번에 진보정당들은 새누리에 맞서며 새민련과는 결이 다른 진보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했다. 각자의 정치적·조직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선거연대나 후보단일화를 했어야 했다. 진보 4당의 후보 단일화는 민주노총의 요구이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심지어 진보 후보들이 단일화를 못하면 어느 후보도 지지하지 않겠다는 입장까지 냈다.


하지만 그것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참여당과의 통합 추진이 낳은 후폭풍과 종북몰이 속에 진보정당은 사분오열됐다. 종북몰이에 타협해 온 정의당은 처음부터 새민련과 묻지마 단일화에 매달렸다. 정의당은 김진표까지도 비판하지 않고 지지하는 한심한 풍경을 연출했다.


종북몰이의 억울한 피해자이며 진보진영에서도 왕따를 당하는 진보당은 정당해산 위협 속에서도 선거에 출마한 것 자체가 유의미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진보당 역시 야권연대에 미련을 버리지 않았고 일부 지역에서 허무하게 사퇴하며 새민련이 잡지도 않을 손을 내밀었다.


그 결과는 쓰라리다. 진보는 울산·인천에서 갖고 있던 교두보마저 잃어버렸다. 새누리가 어부지리를 얻었다. 진보 분열이 극심한 울산에서는 교육감도 우파가 차지했다. 진보 4당의 정당득표율 합계는 9.8%인데 이것은 지난 총선의 11.4%보다 낮다.


광역·기초 의원 수를 보면 진보당은 37, 정의당은 10, 노동당은 7명의 당선자를 냈다. 4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1/5 수준으로 추락한 것이다. 사분오열 속에서는 진보당의 조직력도, 정의당의 스타 정치인도, 노동당과 녹색당의 급진성과 참신성도 빛을 발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곳곳에서 드러나는 진보정당들 간의 악감정과 불신의 골이다.


이 틈에 새민련이 진보의 정치적·조직적 기반을 잠식해 들어오고 있는 양상도 드러났다. 많은 진보 정치인들이 새민련을 기웃거리고 있고, 새민련 을지로위원회는 진보정당의 공백을 치고 들어오고 있다. 이들은 비례후보로 학교비정규직 노조 활동가를 내세우기도 했다.


반면 진보진영이 단결해서 새민련의 공백까지 메운 교육감 선거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교육감 선거에서는 '침몰하는 대한민국호에서 더 이상 가만있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분노와 의지가 인상적으로 표출됐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를 진심으로 공감하면서 제대로 일할 사람을 투표지에서 발견한 것이다. 박근혜와 경쟁 논리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결집점이 제공됐다. 세월호 희생자의 다수가 아이들이었던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지 말라고 가르치겠다고 주장한 진보 대표 인사들이 대거 당선됐다. 물론 이것은 자사고와 특목고 등 경쟁적 특권 교육에 반대해 온 교육운동의 성과이기도 하다.


단지 보수의 분열과 진보의 단일화로만 설명될 수도 없어 보인다. 전북에서는 진보 후보가 2명이고 보수 후보가 1명인데도 진보 후보가 1, 2위를 차지했고, 당선된 진보 교육감들은 전국 평균 43%의 높은 지지를 얻었다.


<조선일보>여도 야도 아닌 전교조의 압승이라고 이번 선거 결과를 요약하며 전교조에 대한민국 교육이 넘어갔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삼척 시장 선거에서 원전 반대를 선명하게 내건 반핵 후보의 압도적 당선도 고무적이다. 이것은 진보가 단결하여 결집점을 제시하면 선거에서도 우파 결집에 맞설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원전 반대'를 전면에 내걸로 승리한 삼척 시장 당선자 김양호.


 


시동걸기

 

그러나 선거 결과는 현재 계급세력 관계를 뒤틀리게 반영하는 것이지, 그것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한 이후 무엇이 바뀌었던가를 생각해 보라. 바뀐 것은 별로 없다는 냉소 속에 결집한 우파는 다시 총선·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물론 상부구조는 단순히 토대를 반영하지만은 않는다. 정치적 상부구조도 경제적 토대에 반작용을 가한다. 게다가 지금 이 나라의 경제적 토대에서는 모순이 커지고 있다. <조선일보> 주필 송희영은 이렇게 지적한다.


우리 경제는 2011년 이후 3년 넘게 침체기를 겪고 있다. 오랜 불황에서 쌓인 불안 증상, 거기서 싹트는 불만과 분노가 한계점에 도달해 있다. 경기 침체에 재난까지 얹히는 바람에 분노 바이러스가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이런 위기 때 박근혜가 기대는 것은 항상 우파 결집이다. 선거 막판에 등장한 박근혜의 눈물을 닦아주고 도와달라던 구걸 행태는 그 역겨운 정점이었다. 그런데 우파 결집은 단순히 선거용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반대 진영을 힘으로 짓밟으며 반동적 공격을 가하기 위한 시동걸기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다소 주춤하던 박근혜의 공세는 다시 시작될 수 있다. 먼저 세월호의 진실을 덮기 위한 시도가 본격화할 것이다. 한국 사회의 비정상화1%만을 위한 국가 개조의 속도도 높아질 것이다. 진보당 해산 시도 등 종북몰이와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도 강해질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는 선거가 끝나고 일주일도 안 돼서 박근혜 정부 시즌2를 알리는 섬뜩한 선전포고를 시작했다. ‘전쟁 불사, 핵무장, 북진 통일등 극우적 주장을 해 오던 문창극을 총리로 지명한 것이다. 극우강경 드라이브를 주도해 온 김기춘도 그대로 두었다


같은 날 박근혜 정부는 의료법인이 영리자회사를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의료민영화로 가는 길에 감속·중단은 없다고 확인한 것이다. 611일에는 밀양 행정대집행도 매우 폭력적이고 잔인하게 강행됐다.


결국 박근혜는 세월호 후폭풍 속의 지방선거를 앞두고 잠깐 화장을 고치긴 했지만, 금새 화장을 지우고 다시 살벌하고 광기어린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오히려 더욱 더 살기등등하게 내 갈 길을 가겠다며 나서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선거가 끝난 지금, 세월호와 한국 사회의 진실과 정의를 위한 투쟁은 본격 시작돼야 한다. 이번 선거를 통해 이런 투쟁 속에 필요한 것이 다시 드러났다. 먼저 새민련을 믿거나 추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새민련이 바라는 수준으로 요구와 투쟁을 조절하며 제도권으로 공을 넘겼다가 결국 뒤통수맞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 홍준표가 이번에 재선한 것을 보며 쓰라린 교훈을 배워야 한다. 지난해 진주의료원 폐업 반대 투쟁 때 새민련은 적자를 줄이기 위해 일부 구조조정을 수용하라고 노동자들에게 요구했다. 그리고 국정조사를 통해 홍준표를 막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보건의료노조 지도부는 이런 새민련과 보폭을 맞추며 자발적 구조조정안을 제시했고, 투쟁을 국정조사를 위한 압력수단 정도로 위치지었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을 끌고 국회를 공을 넘긴 결과는 진주의료원 폐업 강행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편이 상황의 주도권과 기세를 되찾기는 어려웠고, 이는 선거에서도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홍준표를 낙선시키고 진주의료원을 재개원할 수 있다던 기대는 이제 난망해졌다. 홍준표는 강성노조에 원칙있게 맞섰다며 대선 주자를 넘보고 있는 실정이다.(당시 일부 좌파는 이런 보건의료노조 지도부를 제대로 비판하지 않고,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기대를 가졌었다.)


새민련이 박근혜에 타협하며 우리의 뒤통수를 치는 것은 그들의 계급적 한계 때문이다. 새민련에서 가장 낫다는 박원순마저 이번에 한계를 드러냈다. 그는 염호석이 누군지도 모른다고 했으며, 현대중공업 산재 살인에 대해 정몽준을 추궁하지도 않았다. 박원순은 보라매병원 임신 노동자 해고에도, 다산콜센터 간접고용 계약직 문제 방치에도 책임이 있다.


밀양 투쟁의 한복판에 있는 이계삼 씨는 나는 핵없는사회공동행동이 광역단체장 후보들에게 보낸 탈핵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왜냐면 박원순 후보도 대부분을 무응답했기 때문이다. 핵발전을 지속하며 안전·생명을 지킬 수는 없는 데 말이다.


진정한 시험대


필요한 것은 진보의 독립성과 단결된 투쟁이다. 진보정당의 사분오열이 우려스러운 것은 그것이 선거보다 투쟁에서 낳을 해악 때문이다. 전교조가 그 지독한 마녀사냥을 당하다가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성과를 얻은 것에서 배워야 한다


전교조는 해직자를 내치고 법내로 들어오라는 압박을 단결해서 거부했고, 선거에서도 진보진영과 함께 단일후보를 만들어냈다진보교육감 운동 진영은 그 마녀사냥에 굴복해서 전교조와 선 긋기와 거리두기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교조 지부장 출신 교사들을 곳곳에서 후보로 내세웠다.


반면 종북몰이에 선 긋기로 대응해 온 것은 진보정당들 사이에 분열과 반목을 키우기만 했다. 다른 진보정당과 단체들마저 가까이 하기를 꺼리며 왕따시킨 진보당은 눈에 띄게 세가 축소됐다. ‘헌법 내 진보를 말하던 정의당도 이번에 초라한 결과를 얻었다. 옛 동지의 등에 칼을 꽂고라도 의회적 성과를 얻고자 했던 것을 돌아보면 애처러울 정도다.


이 틈에 우파는 진보당과 종북을 꽃놀이 패처럼 이용하는 데 재미들린 상태이고, 새민련은 진보정당들을 개무시하며 누구 손을 잡아줄까식의 거드름이나 피우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우리가 우파 결집에 맞서 진보정당과 단체들의 공동전선적 단결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것은 타당했다. 종북몰이에 선 긋기와 거리 두기로 대처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던 것도 말이다.


이것이 조직을 통합하라거나, 서로 차이점을 긋고 비판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각자의 조직적·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행동강령적 요구를 중심으로 공동전선적 단결을 하자는 것이다. 공동의 적과 그들의 탄압에 맞선 단결된 투쟁 속에서 박근혜 퇴진 요구의 필요성, 북한에 대한 올바른 관점 등을 토론·비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KBS에서 양대노조가 단결한 것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냈는지 보라. 지방선거에도 연연하지 않고 투쟁한 KBS 노동자들은 결국 길환영을 쫓아낼 수 있었다.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명령'에 따라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이, 억울한 영혼을 일부라도 달랠 수 있는 성과를 얻어낸 것이다.


610, 희망연대노동조합 씨앤앰 지부와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 케이블방송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 소속 조합원 12백여 명이 공동파업을 한 것도 단결의 힘을 멋지게 보여 준 사례다.

세월호의 진실과 정의를 위한 단결된 투쟁과 공공부문 민영화·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요구·투쟁들을 결합해 나가자. 선거 결과에 낙담하며 널부러져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런 투쟁에 헌신하며 단결과 투쟁을 위한 노력과 전술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미 끝난 선거가 아니라 바로 이 단결과 투쟁이야말로 진보의 진정성과 가치를 판단할 진정한 시험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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